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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eto의 번역 재고
1.들어가는 말
고린도전서 11:23-26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친 성찬식의 전 통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 이 성찬식에 대한 가르침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한 초대교회의 오랜 전통에 속한다.1) 바울에 대해 연 구하는 학자들은 바울이 성만찬의 전통을 어디서 받았는가에 대해서 질문 하고 토론하였다: (1) 예루살렘 교회, (2) 안디옥 교회,2) 그리고 (3) 부활한 주로부터 직접적으로.3) 바울의 성만찬 전통에 존재하는 이러한 전통의 기 원의 문제에 더하여, 고린도전서 11:23에 등장하는 paradid, wmi의 수동태형paredi,deto는 또 다른 해석학적 문제를 야기한다. 사실 이 그리스어 단어paradi,dwmi는 23절에서 두 번 발견된다. 첫 번째 경우에서 바울은 자신이 주로부터 받은 성만찬의 전통을 고린도인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능동태의 형태로 사용하고(pare,dwka) 있다. 그러나 두 번 째 경우에서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배신당했다’, ‘잡혔다’, 혹은 ‘넘겨졌 다’는 사실을 지칭하기 위하여 수동태의 형태로 사용한다(paredi,deto). 물론paredi,deto는 중간태로서 ‘예수가 스스로를 내어 주시던’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으나, 대다수의 주석서들과 영어 그리고 한글 성경들은 예외 없이 수 동태로 번역하고 있다.4) 여기서 본 논문의 주제는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수동태 paredi,deto를 어떻게 해석 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물론 paredi,deto에 대한 바른 해석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성만찬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가르침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놀라운 사실 은 대다수의 한글 성경들에서 발견되는 ‘잡히시던’이라는 번역은 paradi,dwmi의 사전적 의미들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잡히시 던’이라는 한글 번역이 paradi,dwmi의 지나친 의역임을 알려주고, 이 번역에 대한 재고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또한, 비록 성만찬의 배경을 담고 있는 고린도전서 11:23의 그리스어 표 현 evn th/| nukti. h-| paredid, eto가 이 사건과 연관된 유다의 배신행위에 대한 역 사적인 기억을 담고 있지만, 바울이 고린도전서 11:17-34에서 성만찬의 전 통을 인용하는 주된 이유가 유다의 배신을 통한 예수의 잡힘에 대한 단순 한 기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지에 대해서 질문해 보아야 한다. 사실 바울이 성만찬의 전통을 인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린도교회가 멸시 받는 약한 자들을 돌보아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거기서 발견되기 때문이 다. 성만찬에 드러난 예수의 자기희생과, 나아가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 의 자기희생은 고린도교회의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돌보기 위해서 자신 을 희생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인용하는 성만찬의 전 통은 유다의 배신행위나, 혹은 그 배신행위로 말미암은 예수의 붙잡힘 그 자체에 대한 역사적인 기념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의 배신행위들을 통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준 예수와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기념하는 초대교 회의 가장 오래된 의식이다. 바울은 이 희생적인 사랑을 고린도 교인들 상 호간의 섬김의 근거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eto는 ‘잡히시던’이라는 의역 대신, 바울이 (1)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성만찬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하는 방식으로 (2) paradi,dwmi의 의미장(semantic field) 내에서, 그리고(3) 바울 이전의 성만찬의 전통에 대한 이해를 참고로 하여 재번역되어야 한다.
사실 paredi,deto의 번역에서 현재 영미권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과거 영어 성경들이 채택했던 ‘betrayed’(배신하다, 혹은 내어 주다)대신에, ‘handed over’(내어 주다)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서 고린도전서 11:23의evn th/| nukti,라는 표현은 paredi,deto의 의미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복음서의 전통은 nu,x. 대신 저녁을 의미하는 평범한 단어ovyi,a를 사용하기 때문이다(막 14:17). 본 논문의 목적은 이런 학문적 흐름 속에서 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 eto에 대한 최선의 한글 번역을 찾아보고, 그 번역이 전달하는 신학적 메시지에 대해서 조사해 보는 것이다.
* Harvard University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음. 현재 호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shlee@hoseo.edu.
1) 두 그리스어 단어 paralamba,nw와 paradi,dwmi는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전통적인 가르침의 전 달을 의미하는 기능적인 언어들로 쓰였다. 이 유대인 전통을 따라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인 들에게 전달한 성찬식에 이 두 단어들을 적용하고 있다.
2) 참고. Robert D. Richardson, ed., Mass and Lord’s Supper: A Study in the History of the Liturgy, Dorothea H. G. Reeve, trans. (Leiden: Brill, 1979), 204-208.
3) Francis Watson, “‘I received from the Lord...’: Paul, Jesus, and the Last Supper”, Todd D. Still, ed., Jesus and Paul Reconnected (Grand Rapids: Eerdmans, 2007), 103-124.
4) 물론 예수의 내어 줌에는 예수 자신의 주도적인 결정이 포함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 결정 은 가룟 유다의 배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다
2. Paradi,dwmi의 어휘론적 분석
대다수의 영어 성경들에서 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eto는 ‘배신당했다/내어 주다’(betrayed)로 해석되는 반면에(NAU, NIV, NRS), 대다수의 한글 성경들에서는 ‘잡히시던’으로 해석된다(개역, 개역개정, 표준, 공동,공동개정, 새번역).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개역)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개역개정)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드시어서 (표준)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공동)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공동개정)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새번역)
영어 성경들이 채택한 ‘배신당했다/내어 주다’라는 해석은 예수께서 잡 히시던 날 밤에 일어난 유다의 배신행위를 기억나게 하는 반면에, 한글 성 경들의 ‘잡히시던’이라는 해석은 그 결과로 예수에게 발생한 붙잡힘의 사 건을 기억나게 한다. 그러나 뒤에서 자세히 설명되겠지만, paradi,dwmi의 가 장 기본적인 의미는 내어 주다이고, 배신하다는 부차적인 의미에 해당한 다. 그러나 내어 줌의 의미는 그 안에 배신함을 포함한다. 사실 배신하다를 의미하는 주요 그리스어 단어는 prodi,dwmi이다.5)
이 사실은 복음서 저자들 이 예수에 대해서 prodi,dwmi를 사용하는 대신에 paradi,dwmi를 사용할 때,그들은 유다의 배신행위 이외의 다른 메시지를 강조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영어 성경의 번역들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글 성 경들에서 발견되는 ‘잡히시던’이라는 번역이다. ‘잡히시던’이라는 번역은paradi,dwmi의 사전적 의미들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eto를 어떻게 한국어로 재번역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한다. 우리는 과거 영어 성경들이 채택했던 ‘betrayed’(배신당했다/내어 주다)를 한글 성경 번역에 채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최근의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선택한 ‘내어 주다’(handed over)를 한국어 번역에 채용할 수 있다. Paradid, eto에 대한 한국어 번역을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1) paradi,dwmi의 의미장,
(2) 예수에 대한 제자 들의 기억, 그리고
(3) 성만찬을 포함한 고린도전서의 문맥적 상황.
먼저, paradi,dwmi의 의미장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고전 그리스어에 대해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으로 인정받는 리델과 스캇(G. Liddell & R. Scott)의 사전에 따르면, paradi,dwmi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주다’, ‘타인 에게 넘겨주다’, ‘전달하다’ 혹은 ‘타인의 손에 양도하다’, 내어 주다’ 등이 다.6)
뮬턴과 밀리간(J. H. Moulton and G. Milligan)도 ‘내어주다’를paradi,dwmi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 제시한다.7) BDAG사전도paradi,dwmi의 의미를 ‘배신하다’ 혹은 ‘붙잡히다’ 대신에 법적인 상황의 경 우는 ‘넘겨주다’, 그리고 군사적인 상황의 경우는 ‘항복하다/내어 주다’로 해석한다.8)
과거 영어 성경들이 채택했던 ‘betrayed’라는 번역은 이미 많은 영미권 학자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았다. 리델과 스캇은 이 단어가 때로‘betrayed’라는 의미를 함축할 수 있다며 제노폰(Xenophon)과 포사니우스(Pausanius)의 예를 든다. 그러나 윌리엄 클라센(William Klassen)은 리델과 스캇이 제시한 제노폰과 포사니우스의 예들을 모두 상세하게 검토한 후에‘betrayed’라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9)
사실 리델과 스캇도‘betrayed’에 해당하는 가장 적합한 그리스어 단어로 prodi,dwmi를 우선적으 로 제시한다.10) 신약성경에서 prodi,dwmi는 3번 등장하는데, 그 중의 한 번 은 가룟 유다를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다(눅 6:16). 반면에 paradi,dwmi는 영(Young)의 컨코던스에 따르면 신약에서 94번 정도 등장하는데, 그 중 40번은 ‘betrayed’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번역에 대해서 클라센은 신학적인 입장이 어휘론적 해석을 지배했다고 경고한다.11)
칠십인역에서 paradi,dwmi는 대략 200번 정도 등장한다. 이 중 3분의 2 이상의 경우 하나님이 이 동사의 명백한 주어로 나타난다.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원수들에게 넘겨주거나(호 8:10; 렘 15:4), 그들의 원 수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는 분이다(창 14:20; 출 23:31). 하나님은 의로운 자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고(욥 2:6), 어리석고 악한 자들을 멸망 에 넘겨준다(잠 11:8; 집회 4:19). 칠십인역에서 paradi,dwmi는 대부분 ‘넘 겨주다’의 의미를 띄지, ‘배신당하다’ 혹은 ‘붙잡히다’라는 의미를 띄지 않는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도 이 그리스어 동사를 300여 번 사용한다. 요세푸스는 이 동사를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주었다’(War 4.370)라는 표현에서 채용한다. 하나님은 유대인들 을 배신하거나 붙잡지 않았고, 그들의 불의한 행위들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으로 유대인들을 로마인들의 손에 내어 주었다. 헬라파 유대인 파 일로(Philo)도 paradi,dwmi를 거룩한 일들에 대한 기억을 후대에 넘겨줄 때(Pot. 65),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불멸한 지식을 전해 줄 때(Sac. 64, Imm. 1.92), 그리고 지혜로운 말들을 후대에 전승해 줄 때 (Pla. 127) 사용한다.
이 모든 경우들에서 우리는 paradid, wmi가 결코 배신 당하거나, 그의 결과로 붙잡히는 행동을 지칭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paradi,dwmi는 내어 줌 혹은 넘겨줌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의 본문인 고린도전서 11:23의 paradi,dwmi도‘배신당하다’ 혹은 ‘붙잡히다’의 의미보다는, 가장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내 어 주다’라는 뜻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예수가 내어 준/넘겨준 사건은 유다의 배신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현재 많은 영미권 학자들은 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eto를 해석할 때, ‘betrayed’ 대신 ‘handed over’를 채택하고 있다.13) 왜냐하면 학자들은 유다를 통한 예수의 내어 줌의 사건에서 유다의 배신행위의 중요성보다도, 성만찬 전통의 의미에 대해서 복음서와 바울이 강조하는 구원론적 메시지를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 강조하는 점은 paredi,deto가 복음서와 바울의 성만 찬 전통에서 사용되기에 앞서,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의 희생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위한 내어 줌으로 묘사할 때 칠십인역에 의하여 채택된 단어라 는 사실이다(사 53:6, 12). 학자들은 이 단어를 통하여 성만찬의 전통이 기억 하는 예수의 희생에 대한 묘사는 예수의 내어 줌의 기폭제가 되는 유다의 배 신행위를 포함하지만, 그 배신행위보다도 더 중요하게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신학적인 묵상에 더 깊이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14)
이에 위어드 포프키즈(Wiard Popkes)는, 클라센과 대부분의 주석가들과 동의하면서, ‘betrayed’라는 의미보다도 ‘handed over’라는 의미를 강조하고,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내어 줌의 궁극적인 주체, 곧 ‘예수를 내어 준 이가 누 구인지’에 대해서 질문 한다: 하나님, 예수 자신, 유다, 빌라도, 혹은 대제사 장?15) 물론 고린도전서 11:23의 evn th/| nukti. h-| paredid, eto라는 표현은 그날 밤에 발생한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하면서, 예수의 내어 줌이 유다의 배신 에 따른 결과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그날 밤에 예수를 내어 준 이가 유다 인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복음서 저자들과 바울은 예수의 내어 줌의 의미는 유다의 배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가룟 유다의 배신을 통한 예수의 내어 줌의 이면에는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예수의 희생과 그 희생을 요구하셨던 하나님의 구원론적 결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우리는 바울이 초대교회 전통의 일부로 물려받은 성만찬 전통과 연관하여, 먼저 복음서에서 paradi,dwmi가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문맥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상세하게 다루어 보고자 한 다. 왜냐하면 단어들의 의미는 그 단어의 의미장뿐만 아니라, 그 단어들이 등장하는 역사적, 문맥적 상황에 의해서도 상당 부분 결정되기 때문이다.
5) W. Bauer, F. W. Danker, W. F. Arndt, and F. W. Gingrich,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Frederick William Danker ed., 3rd ed.(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761-763.
6) Henry George Liddell and Robert Scott, A Greek-English Lexicon (Oxford: Clarendon Press, 1996), 1308.
7) J. H. Moulton and G. Milliga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New Testament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7), 482-483.
8) W. Bauer, F. W. Danker, W. F. Arndt and F. W. Gingrich,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761-763.
9) William Klassen, Judas – Betrayer or Friend of Jesus? (London: SCM, 1996), 47-59. 10) Henry George Liddell and Robert Scott, A Greek-English Lexicon, 1474-1475.
11) W. Klassen, Judas – Betrayer or Friend of Jesus?, 47-59.
12) 여기서 언급되는 예들은 B. K. Peterson, “What Happened on ‘the Night’? Judas, God, and the Importance of Liturgical Ambiguity”, Pro Ecclesia 20 (2011), 368에서 차용하였다.
13) Joseph A. Fitzmyer, First Corinthians (New Haven: Yale Univ. Press, 2008), 436; Richard B. Hays, First Corinthian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198; Anthony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 2000), 869; A. Eriksson, Traditions as Rhetorical Proof: Pauline Argumentation in 1 Corinthians (Stockholm: Almqvist & Wiksell International, 1998),179-196.
3.복음서와 paradi,dwmi
먼저, 성만찬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그날 저녁(ovyi,aj genome,nhj, 막14:17)에 일어난 사건을 묘사하면서, 마가는 가룟 유다가 예수를 대제사장 들에게 paradoi하/ 기 위하여 그들에게 갔다고 전한다(막 14:10). 그리고 14:21에서 마가는 예수가 가룟 유다에 의하여 paradi,dotai되었다고 말한다.위의 14:10의 paradoi를/ 우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번역해 볼 수 있다:
(1) ‘유 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배신하다.’ 혹은
(2)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다.’
첫 번째 번역은 paradi,dwmi의 의미장에서 약간 벗어날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에게”와 문법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 다.
두 번째 번역은 paradi,dwmi의 의미장에서 발견되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 일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에게”와 문법적으로 훨씬 더 부드럽게 연결된 다. 또한, ‘넘겨주다’의 해석은 그 행동 이전에 발생한 유다의 배신행위를 전제로 하여 배신행위를 그 의미에 포함한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모든 한글 성경들은 마가복음 14:10의 paradid, wmi를 ‘배신하다’대신 ‘넘겨주다’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21절의 paradi,dotai에 대한 번역에서 한글 성경들은 상호 다른 해석들을 보여 준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개역개정)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새번역)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공동개정)
먼저 개역개정의 ‘파는’이라는 의미는 paradi,dwmi의 의미장에서 발견되 지 않는다. 공동개정은 유다의 배신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새번 역은 유다의 배신행위의 결과로 발생한 예수의 넘겨줌에 더 초점을 맞춘 다. 여기서 21절은 14절의 능동형을 수동형으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가룟 유다에 의하여 배신당한 인자’라기 보다는 ‘가룟 유다에 의하여 (배신당하 고) 넘겨준 인자’라고 번역하는 것이 마가복음 14장의 전체적인 문맥에 더 적합하다.16)
여기서 마가는 인자의 넘겨줌이 성경에 의하여 이미 예언된,즉 하나님께서 계획한 일의 성취임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마가가 강조 하는 성경에 예언된 사건은 유다의 배신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배신의 결과로 발생한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로의 넘겨줌이라는 것이다.
또한, 마가는 유다를 예수를 pare,dwken한 자라고 소개하면서, 그를 이 동사 의 주어로 제시한다(막 3:19). 마가복음 3:19에서 개역개정은 paradi,dwmi를 ‘판’이라고 해석하고, 공동개정은 ‘팔아넘긴’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는‘판’ 혹은 ‘팔아넘긴’은 paradi,dwmi에 대한 지나친 의역임을 부인할 수 없다.한국어 성경들은 유다가 예수를 넘겨준 행위 이면에 존재했던 은 30냥에 예 수를 판 행위를 이 단어의 번역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번역은 이 단어를 ‘넘겨준’이라고 바르게 해석한다. 마가복음 3:19은 마가복음 14:10, 21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pared, wken을 우리는 ‘판/팔아넘긴 자’ 보다 는 배신한 이후에 ‘넘겨준 자’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옳다. 그러나 마가는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다룬 자신의 복음서 15:1, 15에서 예수를 pare,dwkan한 자들로 가룟 유다 이외에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 그리고 본 디오 빌라도’를 제시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그리스어 동사 paradid, wmi는‘배신하다’ 혹은 ‘판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어 주다’라는 의미로 해석되 어야 함이 자명하다. 따라서 모든 한글 성경들은 마가복음 15:1, 15에서 ‘내 어 주다’라는 번역을 채택한다. 결국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 전반에 걸쳐서paradi,dwmi를 통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준 행위가 단순히 가룟 유다 혼 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인간들의 연합된 결정의 결과였음을 알 려 준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적인 결정 뒤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그리 고 그 뜻에 대한 예수의 순종이 있었음도 알려 준다.
이에 마가는 9:31(paradi,dotai)과 10:33(paradoqh,setai)에서 paradi,dwmi의 수 동형을 통해 예수가 대제사장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고난과 죽 음에로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여기서 수동태 동사들은 ‘배신당하다’혹은 ‘팔리다’의 의미라기보다는, 배신과 판 행위들을 포함한 여러 인간들 의 결정으로 예수가 고난과 죽음에 넘겨진 사건을 지칭한다.
그러나 마가 는 8:31에서 예수의 내어짐 혹은 넘겨짐 이면에는 하나님의 뜻이 존재하고,예수의 자기희생의 결정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의 순종의 결과임을 dei/라 는 그리스어 단어를 통해서 표현한다. 이 사실은 마가에게 있어서 예수의 내어짐을 표현하는 수동태는 가룟 유다나 대제사장들을 주어로 하는 일반 적인 수동태가 아니라,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신적인 수동태임을 알려준 다. 왜냐하면 유다와 다른 인간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 준 사건 이면에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적인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17)
이는 인 간들이 예수를 고난과 죽음에로 내어 준 행위들이 하나님의 뜻과 결정을 이루기 위하여 신비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우리는 마가 복음 9:31과 10:33에서 예수가 이미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로의 내어 줌의 필요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 에서의 예수의 마지막 기도는 자신의 죽음의 필요성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예수의 자발적인 순종을 의미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마가복음 14:21에서 예수는 자신이 대제사장들에게 내어짐이 성경에 기록 된 예언의 말씀의 성취이고, 그 성취를 위하여 유다가 사용되고 있다고 제 자들에게 가르친다. 이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는 자신의 죽음은 한 인간의 배신의 결과로 내어 준 행위의 결과에 따른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 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자신의 순종의 행위였음을 분명히 한다.
마태의 경우도 누가와 함께 예수의 내어짐 사건에 대한 마가의 이야기 전개를 전체적으로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예수가 잡히시던 날 밤에 일어난 사건을 묘사하는 마태복음 26:21, 23을 한글 성경들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나를 팔리라”(개역개정)
“나를 넘겨줄 것이다”(표준) “나를 배반할 것이다”(공동개정)
마태복음 26:21, 23의 번역에서 한글 성경들은 마가복음 14:10의 번역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따라서 마태복음의 경우에도 우리는 paradi,dwmi가 유 다의 배신행위의 결과로 그가 은 삼십 냥을 받고 예수를 대제사장들에게‘넘겨준’ 사건을 지칭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마태는 가룟 유다의 회개의 고백을 통하여 그가 예수 를 배신한 후에 대제사장들에게 내어 준(hm[ arton paradouj. ) 행위에 대하여 자책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마 27:4). 여기서 우리는 마태가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가룟 유다가 분명한 책임이 있음을 명백하게 알리고자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마태도 자신의 복음서 20:18에서 예수의 고난과 죽음으 로의 내어짐을 수동태 동사 paradoqh,setai toi/j avrciereu/sin kai. grammateu/sin를 통해서 묘사한다.
이 본문에서 수동태 동사 paradoqh,setai는 붙잡히다,혹은 내어 주다로 해석될 수 있다. 전자의 해석의 경우는 이어지는 여격 표 현 toi/j avrciereu/sin kai. grammateu/sin을 ‘dative of agent’로 해석해야 한다.그러나 이러한 문법적인 표현을 위해서는 ‘u`po.+소유격’이 훨씬 더 나을 것 이다. 나아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내어 주다’라는 해석이 예수의 수난 이야기에 더 잘 부합한다.
그러나 비록 여기서도 수동형 동사는 예수의 죽음에 관여한 ‘대제사장들,서기관들, 그리고 로마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만, 이 사건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표현된 하나님의 의지가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18) 이 사실은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 27:8-10에서 유다의 은 30냥을 위한 배신행위가 이미 예레미야에 의하여 선포된 예언의 말씀의 성취라고 선 포한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도 자신의 제자들 중의 하 나인 유다가 자신을 배신하고 넘겨줄 것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고, 심지어 다른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공포하며 알려 주었다(마 26:21). 다 시 말하면, 마태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로마인들에게 예수가 넘겨진 사건에서 유다가 은 삼십 냥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긴 행위보다도, 그 행위의 결과로 예수가 고난과 죽음에로 넘겨진 사건이 하나님에 의하여 미리 계획 된 사건이었음을 그의 복음서 전반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다.
누가도 마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로의 넘겨짐에 대한 묘 사에서 마가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누가복음 22:22의 수동태 동사paradi,dotai를 한글 성경들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비교. 22:48).
“그를 파는 그 사람”(개역개정)
“그를 넘겨주는 그 사람”(표준)
“사람의 아들을 잡아 넘기는 그 사람”(공동개정)
마가와 마태의 번역에서와 마찬가지로, paradi,dotai를 개역개정은 ‘파 는’으로, 표준은 ‘넘겨주는’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공동개정은 기존의‘배반할’이라는 해석을 버리고, 대신 ‘잡아 넘기는’이라고 해석한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 저자들보다도 더 빈번하게 22:4, 6, 21, 22, 48에서 paradi,dwmi를 사용하고 있다. 프랑수아 보봉(François Bovon)은 누가가 이 단어의 사용에 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유다의 배신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배신의 결 과로 예수가 죽음에로 내어진 사건이라고 주장한다.19)
흥미롭게도, 누가는 가룟 유다의 배신행위를 그의 마음에 들어간 사탄과(눅 22:3) 그의 악함에로 돌린다(행 1:18). 여기서 우리의 주제를 위해서 중 요한 사실 한 가지는 누가는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행위를 지칭하면서paradi,dwmi가 아니라, prodo,thj(배신자)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누가는 prodi,dwmi를 통해서는 유다의 배신행위를, 그리고 paradi,dwmi를 통 해서는 그의 배신의 결과로 발생한 예수의 넘겨짐을 표현하고 있다. 마태 와 마찬가지로, 누가는 예수의 수난에 유다가 큰 책임이 있음을 분명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마가와 마태와 마찬가지로, 누가도 수동태 동사paradi,dosqai를 통해서 예수의 넘겨짐에 관여한 하나님의 존재를 간접적으 로 인정하고 있다.20)
사실 누가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음을 신적인 dei뿐/ 만 아니라, boulh. qeou/(행 2:23)라는 강한 표현을 통 해서 이중적으로 강조한다.21) 비록 인간들은 자신들의 무지함 속에서 예수 를 못 박았지만, 누가에게 예수의 죽음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예정된 하나님의 뜻과 미리 아신 지식을 따라 행해진 구원의 사건 이다(행 3:17; 2:23; 눅 2:32). 이 사실은 비록 유다의 배신행위가 예수의 체 포와 고난의 시발점이 되었으나, 그의 배신의 행위는 이미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포함한 예언의 말씀의 성취를 위한 것이라는 누가의 선포에 의해서 더 분명해진다(행 1:16).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 1:1에서 자신들 가운 데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결과임을 선포하고, 그 일들의 핵심은 바로 예수의 죽음이라고 강조한다. 누가는 예수의 입을 통하여 그 의 고난과 죽음이 이미 성경에 의하여 예언된 사건임을 여러 번 강조한다(눅 24:46; 9:31; 18:33).
요한의 경우에도 비록 유다의 악한 배신행위가 예수의 수난 이야기의 중 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수의 자발적인 순종임이 분명하다(요 10:17-18). 요한은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던 중, 사탄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예수를 팔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예수가 친히 유다에게 빨리 그가 마 음에 품고 있는 계획을 실행하라고 명령한다는 것이다(13:2, 26-27). 이 사 실은 유다의 배신과 그에 따른 예수의 넘겨짐, 심지어는 유다를 통하여 예 수를 죽이고자 하는 사탄의 계획조차도 하나님의 숨겨진 구원의 계획의 일 부로 사용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22)
이처럼 복음서의 저자들은 모두 다 예외 없이 예수의 넘겨줌은 유다의 배신으로 시작되었으나,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서의 성만찬 전통에서 기념되는 것은 유다의 배신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시작된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로의 내어짐”이 인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핵심적인 사 건이었다는 사실이다.
14) Anthony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869; R. B. Hays, First Corinthians, 198; J. Fitzmyer, First Corinthians, 436; Cilliers Breytenbach, “The Septuagint Version of Isaiah 53 and the Early Christian Formula ‘He Was Delivered for Our Trespasses’” , Novum Testamentum 51 (2009), 339-351.
15) W. Popkes, Christus Traditus: Eine Untersuchung zum Begriff der Hingabe im NT (Zurich: Zwingli Verlag, 1967), 159-169; Anthony Cane, The Place of Judas Iscariot in Christology(Aldershot: Ashgate, 2005), 21.
16) Adela Yarbro Collins, Mark: A Commentar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620, 648.
17) Raymond Brown, The Death of Messiah (New Haven: Yale Univ. Press, 1998), 1:212; Wiard Popkes, “Paradidomi”, Gerhard M. Schneider and Horst Balz, eds., Exeget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3), 3:19; B. K. Peterson, “What Happened on ‘the Night’? Judas, God, and the Importance of Liturgical Ambiguity”, 375-376.
18) Ulrich Luz, Matthew 8-20, Hermeneia: A Critical &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1), 539; B. K. Peterson, “What Happened on ‘the Night’? Judas, God, and the Importance of Liturgical Ambiguity”, 377.
19) François Bovon, Luke, vol. 3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2), 172. 비교. W. Popkes,Christus Traditus: Eine Untersuchung zum Begriff der Hingabe im NT, 134-142, 174-181, 217-219.
20) Beverly R. Gaventa, “Interpreting the Death of Jesus Apocalyptically: Reconsidering Romans 8:32”, Todd D. Still, ed., Jesus and Paul Reconnected (Grand Rapids: Eerdmans, 2007), 140; François Bovon, Luke, vol. 3, 136.
21) Charles H. Cosgrove, “The Divine dei/ in Luke-Acts: Investigation into the Lukan Understanding of God’s Providence”, Novum Testamentum 26 (1984), 168-190; John T. Squires, The Plan of God in Luke-Acts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93).
22) 참조. Tom Thatcher, “Jesus, Judas, and Peter: Character by Contrast in the Fourth Gospel”,Bibliotheca Sacra 153 (1996), 435-448.
4.바울 서신서와 paradi,dwmi
4.1.고린도전서와 paradi,dwmi
복음서의 경우 예수의 죽음은 유다의 배신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예수의 고난과 죽음에로의 넘겨짐은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계획되 고 실행되어진 사건으로 묘사된다. 바울도 자신의 서신서 여러 곳에서 예 수를 고난과 죽음에로 내어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롬 8:32). 이 사실은 paradi,dwmi의 수동형을 통해서 복음서 저자들과 바울 이 유다 혹은 다른 인간들의 예수의 내어 줌 혹은 넘겨짐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강조하고자 했다고 추론해 볼 수 있게 한다.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1:23에서 paradi,dwmi를 통해서 강조 하고자 하는 바가 유다의 배신행위인지, 아니면 예수가 대제사장들과 로마 인들에게 붙잡힌 사실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러한 인간들의 행위를 통하여 예수가 고난과 죽음에로 내어진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해 보 아야 한다. 우리는 앞에서 paradid, wmi가 ‘배신당하다’ 혹은 ‘붙잡히다’로 해 석될 경우 ‘내어 주다’라는 그 단어의 가장 보편적인 의미를 상실할 뿐만 아 니라, 그 단어 안에 함축된 행위의 주체가 하나님과 예수와 무관하게,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로마 병사들로 고정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또한 만약 이 동사의 수동태형이 신적인 수동태라면,배신당함으로 번역할 경우 그 동사의 행위의 주체인 하나님에 대한 강조도 사라져 버리고, 동시에 인간들의 행위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신적인 계획 과 의지 사이의 긴장 관계도 송두리째 없어져 버린다.23)
고린도전서 11:23의 후반부에서 바울은 주 예수가 빵을 들고 마지막 식 사를 제자들과 나누던 밤을 묘사하면서, 그 밤에 예수가 paredi,deto되었다 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이 수동태 동사의 주어로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모든 한글 성경들은 이 단어를 ‘붙잡힌’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붙잡힌’이라는 의미는 paradi,dwmi의 의미장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사실 바울이 이 수동태 동사를 언급하면서 유 다의 이름을 빠트린 것은 매우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성만찬의 전통에서 별로 유다의 역할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린 도전서 11:23은 이러한 paradid, wmi의 어휘론적 의미의 문제에 덧붙여, 바울 이 paradi,dwmi의 수동형을 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유다의 배신행위의 결과로 예수에게 일어난 붙잡힘의 사건인지, 아니면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로의 내어짐이 의미하는 예수의 희생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인지에 대한 신 학적인 질문도 야기한다. 만약 리차드 헤이즈(Richard Hays), 브라이언 피터 슨(Brian Peterson), 그리고 베벌리 가벤타(Beverly R. Gaventa)가 강조하듯 이, 수동태 동사 paredi,deto가 신적인 수동태로서 이 동사의 행위의 주체(agent)가 유다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이 동사를 통해서 바울은 예수를 죽 음에 내어 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자기희생과 하나님의 뜻에 대 한 예수의 자발적인 순종을 강조하기를 원한다고 볼 수 있다(비교. 롬 4:25; 8:32).24)
사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1:17-34에서 성만찬의 전통을 인용하는 주된 이유는 고린도교회가 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여 분열되었 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멸시받는 약한 자들을 돌보아야 할 이 유로 성만찬에 드러난 예수의 자기희생과, 나아가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제 시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인용하는 성만찬의 전통은 유다의 배신으로 말미 암는 예수의 붙잡힘에 대한 역사적인 기념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하 여 예수를 배신한 유다와 대조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줌을 통하여 표 현된 예수와 하나님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을 통하여 예수와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기념하는 고린도교회는 약한 자들을 돌보기 위한 강한 자들의 자기희생을 자신들 안에서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과 예수의 자기희생을 담은 십자가의 사건은 유다의 배신 과 유대인 지도자들의 불의,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의 불공정한 재판을 통 해서 완성되었다고 복음서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바울은 paredi,deto를 통해서 예수의 수난에 담긴 인간들의 불의한 행위들을 전제하고 그 의미에 포함하는 동시에, 그들의 불의한 행위들이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을 위하여 절묘하게 사용되었다는 자신의 신학적 관찰을 강조 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수동태 그리스어 단어 paredi,deto를 ‘붙잡히 던’ 대신 ‘넘겨지던’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바울의 신학적 이해를 더 잘 전 달하는 것이라는 위의 주석가들의 주장에 동조할 수 있다. 이 새로운 번역을 통해서 우리는 이 단어가 낭송되는 성만찬의 사건 때마다 유다의 배신 행위나 로마 병사들의 체포의 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예수의 자기희생이라는 신학적 메시지를 더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1:23-26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달받고’(pare,labon) ‘전달 한’(pare,dwka) 초대교회의 성만찬에 대한 전통을 재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예수의 고난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 니라, 과거에 그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쳤던 성만찬에 대한 교훈을 다시 상기시키고자 한다. 바울의 성만찬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에는 분명하게 예 수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비록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 시에는 아직 복음서가 글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예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교회의 시작부터 초대교회 전통의 핵심을 구성했다.바울에게도 예수의 고난의 이야기는 그가 전한 예수의 복음의 핵심을 이루 기에,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린도 교회의 시작부터 예수의 죽으심과 부 활에 대한 이야기를 성만찬의 전통과 연관하여 분명하게 전달했다.
예수의 고난 이야기 중 23절의 paredi,deto에 대한 해석에서 대부분의 한 글 성경들은 ‘잡히시던’이라고 번역한다. TDNT에서 우리의 주제어인paradi,dwmi에 대한 논문을 작성한 프리드리히 뷰크셀(Friedrich Büchsel)은 고린도전서 11:23에서 paredid, eto는 분명하게 유다의 배신과 그로 말미암 는 예수의 붙잡힘을 지칭하고 있다고 주장한다.25) 왜냐하면 예수가 잡히던 혹은 넘겨주던 사건은 열두 제자들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고든 피(Gordon Fee)도 이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서에 보존된 유다의 배신의 행위를 기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26) 바울이 예수를 내어 준 유다의 배신행위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성만찬의 배경을 담고 있는 그리스어 표현 env th/| nukti. h-| paredid, eto는 이사건과연관된유다의배신에대한역사적인기억을담고있기때문 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 날 밤을 언급하면서 nu,x.를 사용하는데 반하여, 복음 서는 저녁을 의미하는 평범한 단어 ovyi,a를 사용한다(막 14:17). 이 사실은 바울이 nux, 에 별다른 신학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러나 우리는 고린도전서 11:23에서 바울이 paredi,deto를 통해서 유다의 배신을, 혹은 그 결과로서의 예수의 붙잡힘을 강조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유다의 배신의 결과로 예수가 죽음에로 넘겨진 사실과 그 이면에 놓인 하 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강조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해 보아야 한다.만약 여기서 바울이 복음서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면, 그도 역시 고린도전 서11:23에서 예수의 내어짐과 그 이면에 담긴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강조할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와 연관하여, 바울이 자 신이 가르치는 성만찬의 전통 어디에서도 유다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사 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27) 왜냐하면 성만찬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 의 마지막에서 바울은 성만찬이 단순히 제자의 배신으로 예수에게 발생한 한 가지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기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죽으심에 대한 기념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바울의 복음은 유다라는 한 인간의 배신과 그에 따른 예수의 생애에 발생 한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의 피와 살 을 통해서 창조한, 즉 예수의 죽음의 희생을 통해서 설립한 새로운 언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전 11:25).28) 바울이 전해 준 성만찬의 전통에서 하 나님의 새 언약의 핵심 메시지는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고 몸 을 내어 준 예수의 자발적인 희생이다(고전 11:24). 이 사실은 그날 밤 예수 가 포도주와 빵을 통해서 ‘너희들을 위한 나의 몸과 피’를 기념하라고 한 명 령에서 분명해진다. 예수의 자발적인 희생에 대한 결정은 가룟 유다의 어 떠한 인간적인 행위, 곧 그의 배신과 내어 줌에 선행하여 이루어진 사건이 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3-26의 성만찬의 전통에서 유다의 배신 행위의 결과로 발생한 예수의 붙잡힘이 아니라 예수의 내어짐에 담긴 하나 님의 희생을 강조함으로써, 고린도교회의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돌보아 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미 위에서 우리는 이 그리스어 동사가 구약성경이나 칠십인역 그리고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의 문헌에서 ‘배신당하다’ 혹은 ‘붙잡히다’ 등의 의미 들을 내포하지 않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복음서 전통에서 이 단어 는 인간들의 악한 행위들의 결과로 예수의 내어짐을 의미함도 살펴보았다.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바울이 고린도전서 11:23에서 paredi,deto를 통하 여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도 당시의 paradid, wmi의 일반적인 용례와 복음서 의 전통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해 준다. 물론 이 추측 은 바울의 서신서들에서 발견되는 그리스어 동사 paredi,deto의 다양한 용례 들을 살펴봄으로써 더 분명해질 것이다.
먼저 고린도전서 5:5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계모와 살고 있는 한 불의한 형제를 사탄에게 paradou/nai하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paradid, wmi는 분명하게 붙잡힘이 아니라, 사탄에게 넘겨줌을 의미한다. 또한 고린도전서13:3에서도 바울은 자신이 비록 자신의 모든 소유와 몸을 가난한 자들을 위 하여 ‘넘겨준다’(paradw/)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가르 친다. 여기서도 paradid, wmi는 붙잡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마지막으로,고린도전서 15:24에서 paradi,dwmi는 종말의 마지막 때에 예수가 모든 권세 와 정사들을 파괴한 후에 하나님께 회복된 자신의 왕국을 ‘넘겨주는’ 행위 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우리의 본문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고린도전 서 전반에 걸쳐서 paradi,dwmi는 붙잡힘의 의미가 아니라, ‘내어 준다’ 혹은‘전달한다’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사실 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eto를 붙잡히다라고 번역하는 것은 이 단어의 일반적인 용례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의미를 이 단어에 덮어씌우는 어휘론적 오류를 범할 뿐만 아니라, 이 단어 이면에 담긴 예수의 자기희생 의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나아가 예수의 자기희생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간과하는 신학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 수동 태 동사를 붙잡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유다와 대제사장의 역할을 지나치 게 강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초대교회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도 예수 에게 행해진 수동태 동사의 궁극적인 주어, 혹은 실행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이런 측면에서, paredi,deto의 수동태는 신적인 수동태로 간주 되어야 한다는 바렛(C. K. Barrett), 헤이즈, 그리고 가벤타의 주장은 매우 설 득력이높다.29) 이사실은유다가예수를내어주기전에이미예수께서자 신을 스스로 내어 주기로 결정했고, 예수의 결정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예 수를 내어 주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30)
에릭슨(A. Eriksson)은 바울이 그의 독자들에게 특정한 논지를 만들 때,그와 그의 독자들이 함께 동의하는 전통들을 자신의 논지의 근거로 자주 사용했다는 것을 강조한다.31) 바울의 성만찬에 대한 전통을 포함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11:17-34에서 바울의 주된 관심사는 성만찬에서 배제된 약한 자들을 향한 배려이다. 성만찬의 가르침이 고린도의 약한 자들을 향한 배려의 가장 좋은 근거가 되는 이유는 성만찬이야말로 예수의 죽음에 담긴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성만찬에서 기념되는 예수의 죽음의 의미는 화해와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예수 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준 자기희생의 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성만찬 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바울과 고린도 교회는 유다의 배신행위로 말미암는 예수의 체포보다도, 약한 자들 곧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자발적으로 죽 음에 내어 준’ 예수의 자기희생을 기념한다. 이런 면에서, paredi,deto는 붙 잡힘이 아니라 내어짐, 혹은 넘겨짐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32)
23) Anthony Cane, The Place of Judas Iscariot in Christology, 21; B. K. Peterson, “What Happened on ‘the Night’? Judas, God, and the Importance of Liturgical Ambiguity”, 363.
24) Richard B. Hays, First Corinthians, 198; Brian K. Peterson, “What Happened on ‘the Night’? Judas, God, and the Importance of Liturgical Ambiguity”, 363; Beverly Roberts Gaventa, “Interpreting the Death of Jesus Apocalyptically: Reconsidering Romans 8:32”, 138.
25) Friedrich Büchsel, “paradidomi”, G. Kittel, ed.,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vol. 2 (Grand Rapids: Eerdmans, 1964), 169.
26) Gordon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Grand Rapids: Eerdmans, 1987), 549.
27) 참조. Richard Hays, First Corinthians, 198.
28) B. K. Peterson, “What Happened on ‘the Night’? Judas, God, and the Importance of Liturgical
Ambiguity”, 372.
29) Beverly Robert Gaventa, “Interpreting the Death of Jesus Apocalyptically: Reconsidering Romans 8:32”, 138.
30) C. K. Barrett, A 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Peabody: Hendrickson, 1968), 266; J. Fitzmyer, First Corinthians, 436; R. Hays, First Corinthians, 198; Raymond F. Collins, First Corinthians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1999), 431.
31) A. Eriksson, Tradition as Rhetorical Proof: Pauline Argumentation in 1 Corinthians.
32) Anthony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970.
4.2.바울의 다른 서신서들과 paradi,dwmi
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 eto에 대한 위와 같은 해석은 로마서에서 더 분명해진다. 로마서 4:25에서 바울은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 어줌”(paredoq, h)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남을 입으셨다(hvge,rqh)고 선포한다. 흥미로운 것은 개역과 개역개정은 paredoq, h를“내어줌”과 “내줌”이라고 각각 해석하는 반면에, 새번역,은 “죽임을 당 하셨고”로, 표준은 “죽임을 당하시고”로, 그리고 공동과 공동개정은“죽으셨다가”라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paredi,deto에 ‘죽임을 당하시 고’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어떤 한 국어 성경도 로마서 4:25에서 이 단어를 ‘배신당하다’ 혹은 ‘붙잡히다’라고 번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마서 4:25에서 발견되는 두 개의 수동태 동사 들 paredoq, h와 hvge,rqh의 주어는 하나님이심이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우리의 의로움을 위하여 예수를 부활시키신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인하여 그를 내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예수의 희생 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을 바울은 로마서8:32에서 능동태의 형태로 더 분명하게 설명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pare,dwken)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개역개정).
여기에 등장하는 pare,dwken을 모든 한국어 번역본들은 다 “내주신”이라 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신적인 수동태의 주어인 하나님을 능동태의 형태로 분명하게 아들 예수를 내어 주신 분이라고 칭하고 있다. 우리 의 죄를 인하여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는 로마서 1장에 서 죄인들을 죄악된 욕망의 권세에게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 와 대조된다(롬 1:24, 26, 28). 사실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죄와 사망에게내어준바된인류를구원하고자함이다.33) 이두본문들에서베 벌리 가벤타는 paradi,dwmi는 내어 줌을 의미한다고 분명하게 강조한 후, 더 나아가 paradid, wmi는 내어 준 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죽음이나 사탄과 같은 제 3의 능력 있는 대상을 전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34) 바울은 고린도전서2:6, 8에서 이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예수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의 책임을 넘기고 있다. 만약 가벤타의 의견이 옳다면, 예수의 내어 줌은 단순히 죄에 대한 희생의 의미를 뛰어 넘어, 인류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 붙잡고 있는 사 탄에 대한 하나님의 공격을 의미한다. 이 의견은 위에서 이미 언급된 고린 도전서 15:24의 paradid, wmi의 용법과 일맥상통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서도 동일한 그리스어 동사 parado,ntoj를 통해 바울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바울은, 하나님에 의하여 내어 준 바 된 예수는 단순히 하나님의 뜻 혹은 유다의 배신의 행위로 말미암는 희생자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 죄인 들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기로 결정한 분이라고 선포한다(비교. 갈 1:4).
결론적으로, 위의 모든 증거들을 종합해 볼 때, 고린도전서 11:23의 수동 형 동사 paredi,deto는 붙잡힘 대신에 내어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 직하다. 그리고 이 수동형 동사 이면에는 인간의 배신행위 이면에 담긴 하 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자기희생 간의 절묘한 연합이라는 신학적인 메시지 가담겨있다.35) 바울에게있어서이수동태동사는단순히한인간의배신 이나 예수의 붙잡힌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기억을 넘어서, 예수의 십자가 상에서의 죽음을 설계하고 실행한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랑과 예수의 자기 희생에 대한 복음의 소식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수동형 동사는 인간을 붙잡 고 있던 죄와 사망의 권세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공격과 그로 말미암는 사탄의 패배의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다.36)
여기서 우리는 왜 바울을 포함한 신약의 저자들이 가롯 유다에 의해서 넘겨진 예수를 기억하면서 그 의미가 분명하게 배신을 의미하는 prodi,dwmi대신 paradi,dwmi의 수동태인 paredi,deto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질문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많은 학자들은 예수의 넘겨짐을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을 통해서 해석한 초대교회의 전통을 제시한다(사 53).37) 이사야 53:6과 12절에서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은 하나님에 의하여 “많은 이들의 죄”를 위하여 “넘겨줌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흥미롭게도, 이 두 곳에서 칠십인역은 prodi,dwmi대신 paradi,dwmi를 채용한다.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리젠필드(H. Riesenfeld) 도 “주 예수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내어 준 바 되었다”(롬 4:25)와“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다”(롬 8:32)라는 바울의 고백은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의 대속의 죽음을 위한 내어 줌의 전통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38)
33) B. R. Gaventa, “Interpreting the Death of Jesus Apocalyptically: Reconsidering Romans 8:32”, 130-136; B. R. Gaventa, “God Handed Them Over: Reading Romans 1:18-32 Apocalyptically”, Australian Biblical Review 53 (2005), 113-123.
34) B. R. Gaventa, “Interpreting the Death of Jesus Apocalyptically: Reconsidering Romans 8:32”, 132; B. R. Gaventa, Our Mother Saint Paul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7), 116-117. 참조. Gabriella Berényi, “Gal 2,20: a Pre-Pauline or a Pauline Text?”, Biblica 65 (1984), 490-537.
35) B. K. Peterson, “What Happened on ‘the Night’? Judas, God, and the Importance of Liturgical Ambiguity”, 374.
36) B. R. Gaventa, “Interpreting the Death of Jesus Apocalyptically: Reconsidering Romans 8:32”, 139.
37) Cilliers Breytenbach, “The Septuagint Version of Isaiah 53 and the Early Christian Formula ‘He Was Delivered for Our Trespasses’”, 339-351.
38) H. Riesenfeld, “u`pe,r”, G. Kittel, TWNT VIII (1969), 512. 참조. C. Breytenbach, “The Septuagint Version of Isaiah 53 and the Early Christian Formula ‘He Was Delivered for Our Trespasses’”, 351. 사실 바울은 갈 1:4와 2:20에서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직접 내어 주었다고 선 포한다.
5.나가는 말
본 논문은 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eto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재 고해 보는 논문이다. 모든 한글 성경들이 이 단어를 ‘붙잡힌’이라고 번역하 지만, 이 의미는 paradi,dwmi의 의미장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이 그리스어 단 어의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 우리는 세 가지를 고려해보았다:
(1) paradi,dwmi의 의미장,
(2) 성만찬에 대한 복음서 전통, 그리고
(3) 고린도전서의 문맥적 인 상황.
우리는 paradi,dwmi의 가장 보편적인 의미가 ‘내어 주다’임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복음서의 성만찬의 전통에서 이 단어는 예수가 유다의 배신 행위의 결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진 사실을 가리키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고린도전서와 다른 서신서들에서 바울도 이 단어를 통하여 예수가 고난과 죽음에로 넘겨진 사건을 지칭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복음서와 바울은 둘 다 예수의 넘겨짐은 유다의 배신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 으며,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의 결정과 그 결정에 대한 예수의 순종 이 존재함을 강조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복음서의 저자들과 바울에게 수동태 동사 paredi,deto는 인간들의 범죄 행위들과 그에 따른 예수의 수난과 하나 님의 섭리 간의 신학적인 긴장을 담고 있다. 복음서 저자들은 인간의 배신행 위로 말미암는 예수의 죽음이 신적인 de/i와 기록된 예언의 말씀의 성취라는 주장을 통하여 이 사실을 분명히 한다. 바울은 위의 동사의 능동태형이 쓰이 는 곳들에서 그 행위의 주체가 하나님 혹은 예수임을 분명하게 명시하여, 예 수의 죽음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 계획과 예수의 사랑의 순종의 결과임 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고린도전서 11:23의 paredi,deto는 유다의 배신행 위로 말미암는 예수의 붙잡힘에 대한 단순한 기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악한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예수가 고난과 죽음에 로 내어진, 혹은 넘겨진 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새로운 번역은 성만찬의 전통을 통해서 고린도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울의 가르침의 의도, 즉 성만찬이 기념하는 예수와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근거로 한, 성도들 상호간의 돌봄의 필요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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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교수(호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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