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형사들 | 서량
궂은 오늘을 취조하는 형사들
코트 깃을 세우고 어두운 어제를 탐색한다 기필코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그들은 진작에 바람의 DNA와
솔잎 몇 점과 당신의 머리칼 하나를 비닐봉지에 넣어
국립과학원에 수사의뢰를 한 바 있다
누군가 말한다 "혹시 희생자가 범인이고 가해자가 희생자라면
어떡합니까?" -- 수사반장이 응답한다
"물적 증거를 대야 해 사랑의 진면목을 추측으로만은 안 돼!"
눈매 날카로운 강력한 형사들이 디카로 사진을 찍는다
들꽃이건 잡초건 돌멩이건 사람 몸의 변화건 두뇌활동이건
닥치는 대로 디카 셔터를 누른다 그들은 당신 마음속
가장 살벌한 곳을 향하여 플래시를 번쩍번쩍 터뜨린다
끝내 범죄를 밝히고야 마는 빛, 빛의 핵심이 춤을 춘다
나쁜 詩 | 서량
나는 나쁜 詩가 좋다
중고등학생 때도 불량배나 호적 이름과 출석부 이름이
다른 애들하고 가깝게 지냈지 더러 퇴학당하고
몇몇은 그 나이에 자살했다 오죽하면 나와 친하면
이 자식들이 자꾸 자살을 하니까 이젠 절대 누구와도
친하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했어 그때는
나는 나쁜 詩가 구미에 맞는다
남들이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詩는 사실 좀 거시기해
詩가 꽃이라고? 나는 꽃다운 詩와
생화보다 더 꽃다운 조화를 분별할 자신이 없어 그럴
능력조차 없다 시시하게 금세 시드는 생화보다
싱싱한 조화가 좋아요 로댕의 조각처럼
다빈치의 그림처럼 붙박이로 남는 예술품이 더 좋아
코를 막아도 오묘한 향기며 내 숨골에 꼭꼭
숨어 있는 천상의 음악이 찡하게 내이內耳를 간질이는 詩
이건 참 나쁜 詩다! 하며 씁쓸하게 읽은 후 한 5분쯤 지나
갑자기 왈칵 끌리는 그런 이상한 詩가 너무 좋다니까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