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랑주점>>
<커피 샷, 추가하기> 外 39편
에세이문학출판부
톡방 숫자 표시는 아직 1이 남아 있다. 곁에 있는 남편은 조금 전에 확인하는 걸 봤고 큰아이는 간간이 댓글을 다는 걸로 보아 작은아이가 아직 안 읽은 것 같다. 그동안 잘 유지되고 있던 가족 간의 라그랑주점이 흐트러지고 있는 걸까?
라그랑주점(點)은 두 개의 천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0'이 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어느 한쪽으로 끌려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 수 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가 1772년에 이 점의 존재를 밝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다섯 군데나 있다고 한다.
(.....)
놀이터에서 자주 시소를 탔었다. 무거운 내가 뒤쪽에 앉으면 아이쪽 시소가 들려 높이 치솟았다. 무게 중심을 맞추려면 내가 조금 앞쪽으로 옮겨가야 했다. 아이가 앉은 곳은 중심에서 멀고 내가 앉은 곳은 중심에서 가까웠다. 시소를 타며 균형은 같은 거리에 놓일 때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알맞은 거리를 유지할 때 이루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라그랑주점에 있는 물체가 이동하게 되면 주변 천체들은 스스로 움직여 다시 다른 곳에 그 위치를 만든다고 한다. 균형의 아름다움은 영구불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자를 위한 움직임으로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 간다는 데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상호 소통과 배려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포용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
합주할 때 처음에는 불협화음이 난무한다. 연습이 반복될수록 옆 사람과의 타이밍이 조율되고, 드디어 각자의 음은 제자리를 잡아 완성도가 높아진다. 신영복 교수는 붓글씨를 쓸 때 한 획의 실수를 다음 획으로 감쌌다고 한다. 앞의 실수는 뒤에서 보완하고 한 행의 결함은 다음 행의 배려로 고쳐 완성된 서예 작품을 얻었다.
살면서 나는 끝없이 라그랑주점을 찾곤 했다. 그러나 내 지점 찾기는 번번이 실패의 연속이었다. 바쁜 부모님은 자꾸만 나를 밀쳐냈고, 남편과 아이들을 지나치게 끌어당겼다. 사회에서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도 기울기가 맞지 않아 삐거덕거렸다. 나이 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균형을 찾는 것이 조금 수월해진 것을 느낀다. 그것은 내 거리를 지키려고 할 때가 아니라 내어줄 때 찾아오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상대방에 따라 조금씩 내 영역을 양보할 때 관계는 편안해졌다.
가족 단체톡방의 숫자 1이 사라졌다. 작은아이가 문자를 확인한 것이다. 우리 가족의 라그랑주점은 변함없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며칠간 작은 아이의 방황으로 그 간격이 흐트러졌지만 다른 이들이 다시 거리를 조정해주었다. 단톡방에 다시 글을 남긴다.
"우린 각자 가족별자리를 구성하는 행성이란다."
-<라그랑주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