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 (화)
제목 : 성도의 거룩한 삶
오늘의 말씀 : 고린도전서 15:21-34 찬송가: 167장(구 157장)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중심 단어
사망, 부활, 그리스도
주제별 목록 작성
그리스도
21절: 죽은 자의 부활의 근원이 되신다
22절: 모든 사람이 그 안에서 삶을 얻게 된다
23절: 부활의 첫 열매이시며 강림하실 분이다
24절: 장차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실 분이다
25절: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왕 노릇 하실 분이다
28절: 자신도 하나님께 복종하게 되실 분이다
도움말
1. 그리스도 안에서(22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때문에’라는 뜻이다. 이것이 구원의 전제 조건이다.
2. 깨어(34절): ‘술에서 깨어나다’라는 뜻이다. 영적 무지와 나태에서 벗어나 맑고 정결한 정신으로 깨어 있으라는 의미다.
말씀묵상
믿음의 경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더 이상 그리스도를 믿지 않게 됐습니다. 베드로도 잠시 동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패배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가 곧 승리라는 사실을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 권세를 이기시는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24절). 이 사실을 믿는 것이 곧 승리입니다. 성도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성도의 어깨를 무겁게 합니다(요일 2:16).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미 다 싸워 이기신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로 이기신 승리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으며 담대히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부활을 믿는 자의 삶
바울은 32절에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맹수와 싸웠습니다(32절). 그는 부활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로서 깨어 의를 행하고, 거룩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34절).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만물이 하나님께 복종할 때,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복종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28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2.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여러분의 삶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바울은 왜 12~14장에서 신령한 성령의 은사와 사랑이야기 하면서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이야기 끝에 갑자기 15장의 묵직한 부활 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부활의 교리’가 왜 맥락 없는 이야기처럼 들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서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목적이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신령함을 자랑하므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가진 것처럼 ‘영적 교만’에 빠져 서 은사를 받지 못한 성도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문제 있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바로잡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신령한 은사가 있다고 자랑하면서도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 은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바울은 이렇게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 온전히 알게 되는 때가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종말, 재림은 차례대로 될 것이며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마지막 단계는 사망이 멸망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세상에서 사랑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줌으로 성령의 은사를 공동체 안에서 오용하지 않고 이 땅에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자신은 이렇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은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라고 말하면서 부활의 과정을 설명해 준다.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런데 바울은 왜 ‘사망이 맨 나중에 멸망받는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사이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갈등하며 살아가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마귀)를 이미 무력시키셨다고 말씀하셨는데(히2:14)왜 우리는 마귀의 공격을 받으며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사망은 이미 패배했지만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라지의 비유’와 열결해 보면 그 이유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은 종들이 가라지를 당장 뽑겠다고 할 때 “가만 두라!”고 말씀하신다.(마13:29). 왜냐하면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다칠까 염려하시기 때문이다.
사망을 지금 당장 멸하지 않으시고 ‘맨 나중’으로 유보시키시는 이유는 지금 당장 사망을 멸망시켜버린다면 모든 역사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아직 이 땅에는 주님께 돌아와야 할 잃어버린 영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을 자들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벧후3:9, 롬11:25)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인애, 자비, 사랑, 긍휼로 알곡 성도를 온전히 보호하고 그 수가 차기까지 심판을 미루고 참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은 구원받았지만 우리의 ‘몸’은 날마다 쇠퇴하고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사망이 멸망한다는 것은 곧 성도들의 몸이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도 부활할 것을 약속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일어날 성도의 최종적 변화(부활)를 위해 맨 마지막 순서에 배치해 놓으신 것이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자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요한은 그 마지막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
“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사탄이 먼저 불못에 던져지고 가장 마지막에 ‘사망’자체가 불못에 던져짐을 받게 된다. 그런 후에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맞이하게 된다. (계21:1-2)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진짜 안다면, 하나님이 만유의 주되심을 진짜 믿고 산다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오늘 ‘의’를 행함과 ‘거룩함’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대사 “아들아 너에게 다 계획이 있구나!”가 세계적으로 명대사가 된 이유는 빈부격차와 계급 문제에 대한 씁쓸한 풍자와 현실적인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일 예배 때마다 우린 외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영혼을 향한 영원한 플랜을 가지고 계신 분시다.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들꽃의 하나님 되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랑의 주님. 우리는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사이에서 날마다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종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십자가와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마귀)를 이미 무력시키셨음을 믿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능력보다 마귀의 능력이 더 크게 보이는 이 믿음 없는 눈을 바꾸어 주시옵소서.
부활의 소망보다 죽음의 대한 두려움이 더 가깝고 의를 행하고 사는 것보다 타협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더 크게 보이는 종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고 오늘도 내 자신과 혈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진짜 만유의 주요 부활의 주가 되심을 믿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성탄절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날을 준비할 줄 아는 지혜로운 종이 되게 하옵시고, 아직 주님께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길 원하십니다!”라고 인사하며 이 하루도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6년에도 들꽃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중매하는 중매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