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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씩 둘씩 보내시며
말씀/ 마가복음 6:1-29
요절/ 마가복음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지금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깊어지고 적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정체성이 분명해질수록 세상 사람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받고 배척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척받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배척받는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여행에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배척받는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으로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배척의 의미와 복음을 전하는 인생이 어떤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지 알려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인생을 살며 인격과 내면성이 성장하고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떠나 갈릴리 나사렛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곳으로 예수님의 고향입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남부 산지의 작은 마을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중요성이 없는 마을입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인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나사렛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표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것은 제자들을 훈련하려는 뜻이 있으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당시에는 랍비가 다른 곳에 있다가 자기 도시를 방문하면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담긴 지혜와 권능에 놀랐습니다. 예수님 말씀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드는 감동과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담긴 지혜와 권능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약속된 메시야 이심을 증거해 줍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나사렛 사람들은 권세 있는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처럼 평범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모욕하는 말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말씀의 은혜를 받고도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말씀 후반부의 “배척한지라”의 헬라어 원문의 뜻은 “넘어지다”라는 의미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는 생각에 믿음의 세계로 가지 못하고 넘어졌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의 배척을 영적인 시각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선지자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했음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 예수님을 잘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거부하고 배척하였습니다.
5절에서 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단정 짓고 판단하는 나사렛 사람들에게 능력을 베풀면 그들은 더 타락하고 교만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척받았지만, 말씀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척받는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배척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배척당한 것은 제자들도 얼마든지 배척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 예수님처럼 고난받고 세상에서 거부당합니다. 힘이 없고 논리가 부족해서 배척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배척받습니다. 우리는 배척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 없이 영광도 없고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와 영광을 구하거나 일신의 안락과 성공을 구하기보다 고난과 십자가를 구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적인 생각과 교만을 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했습니다. 병자들이 고침 받고 죄인들이 죄 사함을 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권능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함부로 단정 짓고 판단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이 흘러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다양한 지식을 가졌다는 것이 곧 예수님을 잘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경험이나 생각에 빠져서 예수님을 인간적인 생각과 교만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7절을 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 여행을 통하여 실제적인 믿음 생활에 대해 훈련하고자 하십니다.
전도 여행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주도적으로 생명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것만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명 역사에 동참하도록 전도 여행을 보내십니다. 제자들이 시대의 방황하는 양들을 섬기고 먹이는 자들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멀리서 지켜보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명 역사에 참여하기를 원하시고 참여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주도적으로 역사에 참여하여 생명 살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동역자와 합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합심 동역의 역사입니다. 전도서 4장 9절에서 12절은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합심하여 역사를 섬기면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합심 동역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권능에 의지하여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냥 보내시지 않고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어 보내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영적인 싸움이 필요합니다. 나의 지혜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예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권세와 능력으로 자신의 문제를 뛰어넘어 양들의 문제를 돕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심을 믿고 도전하면 됩니다.
넷째,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8절에서 9절을 보십시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지팡이 하나와 신발 한 켤레를 허락하셨습니다. 지팡이와 신발은 이스라엘의 산과 광야를 여행하기 위한 필수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필수적인 것들은 가져가되 그 이상은 가져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의지할 대상은 돈이나 양식이나 자기들이 가진 물건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신앙을 가르쳐 주십니다.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훈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과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할 때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복음 증거에 전념해야 합니다. 10절에서 11절을 보십시오. 영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 머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전도를 나가는 목적은 편안한 여행하는 게 아닙니다. 제자들은 편한 안식처를 찾아 옮겨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안락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분명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미련 없이 떠나야 합니다. 복음을 거절한 자들은 그들 스스로에 대하여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12절에서 13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제자들은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들은 회개하라 전파하였습니다.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결단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는 자들에게서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이 치료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생명 역사에 쓰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14절에서 1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권능을 절대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제자들의 전도로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졌다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능력을 행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자, 분봉왕 헤롯은 예수님을 살아난 세례요한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누구는 엘리야라 하고 누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17절부터 29절은 세례 요한의 죽음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자 마가가 제자들의 전도 여행 후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마가는 세례요한과 헤롯을 비교하여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에 집중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로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세례 요한은 권력자에게 희생된 사람 중 하나로 보일 수 있습니다. 세상은 권력자인 헤롯을 부러워하고 그와 같은 인생을 살고자 합니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된 사건의 경위는 이렇습니다. 헤롯 왕은 자기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결혼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죄에 대해 단호하게 책망했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헤로디아는 책망하는 요한을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했습니다. 헤롯의 생일잔치를 기회로 헤로디아와 딸은 요한을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생일잔치에 참여한 많은 사람 앞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었습니다. 크게 만족한 헤롯은 딸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헤롯은 자신이 맹세한 게 있어 사형 집행인을 보내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헤롯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은 권력을 추구하는 자답게 부패하였고 나르시시즘 성향을 보입니다. 헤롯은 자기 통제가 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그릇된 결정들을 반복합니다. 자신의 자리에 대한 확신이 없고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고 주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헤롯은 왕이었지만 실상 그 내면은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겉으로는 왕의 위엄을 뽐내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죽은 사람조차 두려워할 만큼 불안하고 예민했습니다. 헤롯은 후에 로마 황제 가이우스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고 유배지에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헤롯의 영혼은 영원한 고통과 흑암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권력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에게 모욕받거나 조롱을 당하거나 배척받을 때 그러한 마음이 커집니다. 배척받으면 싸우고 싶은 마음과 분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저자 마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배척받는 세상에서 싸우고 분노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를 세례 요한의 죽음을 통하여 분명하게 전달합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주신 큰 축복과 영광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한 세례 요한을 축복하셔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순교는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저자 마가가 요한의 순교를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만사형통이 마련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복음 때문에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모욕당하고 환난과 핍박당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사역이라는 것을 나사렛 사람들과 세례 요한의 순교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핍박과 박해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전도의 고리가 이어져 결국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달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복음이 우리에게서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또 다른 사람에게로 뻗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명확하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궁극에는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고난과 죽음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배척당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배척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배척은 우리가 제대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배척받는 시대는 우리에게 가장 효과적인 위로와 도전을 줄 수 있습니다. 배척하는 가운데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와 권능으로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복음 전파에 힘쓸 때 하나님께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로 인하여 인격과 내면이 성장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에도 제자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복음을 전파함으로 희망을 주는 자가 되고 승리하고 영광된 길을 걷게 도와주는 자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배척받고도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전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시고 능력과 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우리는 배척하는 시대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말씀만 전하면 되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힘입어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복음을 전하고 생명 살리는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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