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 행복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루카 6,20-26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최고의 긍정심리학자들이 장기적인 행복에 미치는 외부 세계의 영향은 10%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장기적인 행복의 80%는 우리의 뇌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스트레스 없이 평온하게 살아간다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습니다.
1967년 과학자 토마스 홉스와 리처드 라헤는 삶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스트레스를 점수로 매겨 구분하는 작업을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배우자 사별을 통한 스트레스 점수는 100점, 이혼은 73점, 실직은 45점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은 몇 점일까요? 기쁘고 좋은 일이니 스트레스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자그마치 50점이나 나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배우자 사별, 실직, 결혼, 이혼 등은 우리 주변에서 참 많이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겪은 모든 분이 스트레스로 인해서 커다란 질병을 얻었을까요?
사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스트레스에 잘 견디도록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 삶을 지속시켜주는 엔진의 역할을 이 스트레스가 담당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스트레스의 최고 강도 문제가 아니라 지속시간이 중요합니다. 회복될 전망이 있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우리 몸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강한 사람도 어느 순간에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가난, 굶주림, 슬픔, 미움을 당함…. 이를 통해서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스트레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혼자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기에 하느님의 손길에 의탁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 머무르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에 묻혀서 풍요와 만족을 누리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하느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의 풍요와 만족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합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만을 내세우면서 욕심과 이기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고 호소만 하지 마시고, 그 스트레스 안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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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조명연 신부님 글 하나 더 드립니다~
「약간의 다름을 인정합시다.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2,000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대략 25,000개의 유전자 서열을 푼 결과를 발표하면서, 모든 인간 존재가 대략 99.9% 동일하며, 인종간의 차이보다는 각각의 인종 안에서 한 개인의 유전적 구성의 다양성이 더 크다고 발표했지요.
저 사람과 나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문자 그대로 같은 가족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적대시하고 싸우려는데 급급할까요? 다름을 틀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를 뿐임을 기억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꿈꾸는 자는 영원히 살지만, 꿈 없는 사람은 하루를 살 뿐이다(존 보일 오라일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루가 6,20-26)
「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
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ものである。」
(ルカ6・20-26)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the Kingdom of God is yours.”
(Lk 6:20-26)
年間第23水曜日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カナナン サラムドラ、 ノヒヌン ヘンボッカダ。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ハヌニム ナラガ ノヒエ コシダ。"
(루가 6,20-26)
「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
마즈시이 히토비토, 사이와이데아루
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ものである。」
카미노쿠니와 아나타가타노모노데아루.
(ルカ6・20-26)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the Kingdom of God is yours.”
(Lk 6:20-26)
Wednesday of the Twenty-third Week in Ordinary Time
Lk 6:20-26
Raising his eyes toward his disciples Jesus said: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the Kingdom of God is yours.
Blessed are you who are now hungry,
for you will be satisfied.
Blessed are you who are now weeping,
for you will laugh.
Blessed are you when people hate you,
and when they exclude and insult you,
and denounce your name as evil
on account of the Son of Man.
Rejoice and leap for joy on that day!
Behold, your reward will be great in heaven.
For their ancestors treated the prophets
in the same way.
But woe to you who are rich,
for you have received your consolation.
But woe to you who are filled now,
for you will be hungry.
Woe to you who laugh now,
for you will grieve and weep.
Woe to you when all speak well of you,
for their ancestors treated the false
prophets in this way.”
年間第23水曜日
2024-09-11「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富んでいる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3水曜です。
慈しみ深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被昇天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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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富んでいる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
そのとき、6・20イエスは目を上げ弟子たちを見て言われた。
「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
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ものである。
21今飢えている人々は、幸いである、
あなたがたは満たされる。
今泣いている人々は、幸いである、
あなたがたは笑うようになる。
22人々に憎まれるとき、また、人の子のために追い出され、ののしられ、汚名を着せられるとき、あなたがたは幸いである。23その日には、喜び踊りなさい。天には大きな報いがある。この人々の先祖も、預言者たちに同じことをしたのである。
24しかし、富んでいる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
あなたがたはもう慰めを受けている。
25今満腹している人々、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
あなたがたは飢えるようになる。
今笑っている人々は、不幸である、
あなたがたは悲しみ泣くようになる。
26すべての人にほめられるとき、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この人々の先祖も、偽預言者たちに同じことをしたのである。」(ルカ6・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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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最高のポジティブ心理学者たちは、長期的な幸せに対する外部世界の影響は10%に過ぎず、長期的な幸せの80%は私たちの「脳」が世界をどう見るかにかかっていると発見しました。それゆえ、どのように考え、行動するかが重要です。問題は、この世界のすべてを常にポジティブに見るのは不可能だということです。ストレスなく平穏に生きることもまた不可能です。
1967年に科学者トーマス・ホブズとリチャード・ラーは、人生に大きな打撃を与えるストレスを点数で分ける作業を行いました。その結果、配偶者の死によるストレスは100点、離婚は73点、失業は45点という結果が出ました。それでは結婚は何点であるでしょうか?喜ばしい出来事なので全くストレスがないように思えるかもしれませんが、何と50点もありました。
ここで私たちが考えるべきことがあります。ストレスがすべての病の原因であると言われます。ところが、配偶者の死、失業、結婚、離婚などは私たちの周りでよく見られることです。それでは、それを経験したすべての人がストレスによって大きな病を得たのでしょうか?
実は、人間は本質的にストレスによく耐えるように作られていると言われています。むしろ私たちの命を維持するエンジンの役割をこのストレスが担うこともあります。したがって、ストレスの最大強度の問題ではなく、持続時間が重要です。回復が見込めるストレスはむしろ私たちの体に前向きに作用しますが、持続的なストレスは強い人でもある瞬間に倒す可能性があります。
貧困、飢え、悲しみ、嫌われること……。これらを通じて大きなストレスを受けるように思えませんか?しかし、主はこうした人々が幸せであるとおっしゃいます。ストレス自体の問題ではなく、このストレスをどのように受け止めるかが重要です。このようなストレスを一人の力で克服することはできないため、神の手に委ねることになります。このように神の中に留まることで、真の幸せを得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しかし、世の基準に埋もれて豊かさと満足を楽しむ人々はどうでしょうか。彼らは神の手助けを必要としません。ただ今の豊かさと満足感が続くことを望み、より多くを手に入れようとして、さらに高みを目指します。主の意志ではなく自分の意志だけを押し通し、欲と自己中心の束縛から逃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このように神と共にいないことで不幸になってしまうのです。
真の幸福の道を探す私たちでありたいです。ストレスが多すぎると訴えるばかりでなく、そのストレスの中でも共にいらっしゃる主に出会ってください。真に幸せな人になることができ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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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の基準で幸せを追求することのなく、すべてを主に委ねる信仰を保つ「貧しさ」を齎す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