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란 무엇인가?
“문화유산답사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로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새내기님들에게 어떻게 하면 보다 명료하게 답사를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는 참으로 고민이 되는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답사의 경험과 해외 문화유적을 보면서 느낀 것은 “知(앎)과 行(실천) 일치” 바로 이 두 가지가 문화유산답사의 정의며
목적이라는 것은 답사의 경험에서 체득한 것이다.
근대적인 답사가 있기 전부터 우리의 옛 선인들은 이 땅의 산이나 강의 흐름을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었다. 답사에는 지도가
반드시 있었고 강산의 이름과 인물의 조사는 필수였고 산이 뻗어 바다로 빠지고 강이 산과 산을 가르는 지혜를 능히 알 수 있었
기에 아직도 전해지는 수많은 주옥같은 답사기들이 전해진다.
앞서 말한 것은 바로 앎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앎은 바로 준비이다. 우리가 답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얼 내의 “답사준
비방”에서 이루어 지는 것처럼 면밀히 참가자들에 의해 준비가 된다. 답사가 여늬 여행과 다른 것은 이러한 준비과정에서 부터
차이가 난다. 각 지방의 문화유산을 검토하고 대략의 역사와 가치를 점검하고 사찰의 내부중 어느 부분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는 등 준비의 과정이 일반 여행보다는 치밀하게 이뤄져야한다.
여행이 바로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의 의미가 있다면 답사는 새로운 발견에 있다 할 것이다.몇 번이나 보았던 건물이나 유구도
볼 때 마다 새로움이 느껴지고 지식이 더해짐에 따라 자신의 머리 속에는 처음 답사때 폐허밖에 보이지 않던 폐사지에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진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답사를 시작하면서 느끼는 일종에 만족감이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대중 답사일 경우는 공통된 취미
와 생활을 가진 이종의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답사의 재미에 인간적인 정으로 풋풋한 새로움을 안겨 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답사를 다니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앎의 요건중 하나는 모든 답사지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여하한 여건
하에서 만들어진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속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이에 대한 이해와 의미를 잊지 않는 것
이 답사의 선행요건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두 번째로 답사의 감흥을 답사기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냥 답사를 다니다 보면 그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항상 남의
의견만 따른다. 사전답사와 의견을 교환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답사기를 적게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얼의 모토인 “답사를 통한 올
바른 역사인식”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된다.
요즘은 우리 문화가 점점 관광과 문화라는 틀속에서 현대인의 취향에 맞추다 보니 문화의 본질이 뜻하는 바를 벗어나는 화석화
경향이 없지 않다. 각 도나 군에서 문학관이니 자료관이니 박물관이니 사회가 풍요해지는 만큼 문화적 욕구를 원형을 보존하는
것 보다는 외형적인 문화 화석화에 치중한다.
로마의 시내에는 프로 로만을 비롯해 수많은 건물 유구가 길가에 드러나 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거리다. 관광객
들이 로마에 가서 이런 것을 보는 순간 로마에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문화 화석화의 경향에 반대해 선진국에서는 생태적 문화
(ECOCULTURE),생태관광(ECOTORISM)등의 문화화석화 경향을 배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문화복원과 복구라는 것은 현재 어떤 수준일까...
일례로 전남 담양에 있는 소쇄원은 우리나라 별서정원의 대표격인데 소쇄원의 담장은 원래 토담이지만 현재는 붉은 회칠로 일부
복원 되어있다. 왜 본래의 토담이 이렇게 복원되었냐고 물으니 좀더 견고하게 쌓는다고 군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문화의 본질을 벗어난 복원이다.
우리 문화는 원래 자연의 형상을 거스러지 않는 다. 담장에 풀이 자라고 꽃씨가 날라 꽃이 담장 사이에 피어 있는 것이 우리 문화
인것이다.담장이 숨을 쉬기도 하고 비가 한번 세차게 올 때면 담장이 갈라지기도 한다. 무너지면 다시 쌓는 것이 담장인 것이다.
이미 70 고령이 되셨지만 다카하시 도이오라는 재일 한국인이 있다. 지금은 일본 혼슈의 비와호 근처에서 만년을 보내고 계시지만
평생을 일본 국보 문화재를 보수하신 분이다.
언젠가 TV에 한번 나오신 적이 있지만 이 분의 문화보전의 열정은 대단하시다. 떨어져 나간 불상의 얼굴을 복원하시는 것은 그
선인의 숨결을 느끼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문화재 보수를 위한 후학을 비와호 근처에서 가르치고 계신
다고 한다.
물론 우리에게도 문화 생명의 뿌리를 내린 분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문화 불모의 이 땅에 “조선탑파의 연구”를 집필하신 우현
고유섭 선생님과 전곡리에 뼈를 뿌리신 삼불 선생님의 의지는 경주 동해 바다 한켠에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와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에 초라한 비석 하나로 남아 있다.
우현 선생님의 추모집 중에 “경주기행의 일절”이라는 부분을 소개코자한다.
『경주에 가거든 문무왕의 위적을 찾으라.구경거리로 경주로 쏘다니지 말고 문무왕의 정신을 기려 보아라. 태종무열왕의 위업과
김유신의 훈공이 커지 않음이 아니나 이것은 우리가 문헌에서도 기릴수 있지만 , 문무왕의 위대한 정신이야 말로 경주의 유적에
서 찾아야 할것이니 , 경주에 가거들랑 모름지기 이 문무왕의 유적을 찾으라. 건천의 부산성도 남산의 신성도 모두 문무왕의 국
방적 경영이요, 봉황대의 고대와 임해전의 안압지도 사천왕의 호국사찰도 모두 문무왕의 정경적 치적이 아님이 아니나, 무엇보
다도 경주에 가거든 동해의 대왕암을 찾으라』
우리는 이제 정리된 답사의 목적을 윗글에서 찾을 수 있다. 답사는 앎에서 비롯되고 행에서 그 목적을 찾을 수 있으나 앎과 행을
이어주는 것은 정신이다. 폐허속 에서도 피어난 정신이 있다면 문화적 보전의 실물적 가치가 없더라도 그것은 보전되어야 하고
답사지로 선호되어야 한다,
푸른 빛의 동해바다 이제 이 바다를 생각할때면 문무왕의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봐야하고 그 정신을 삶의 지표로 삼아
이 땅의 문화유산을 살린 수많은 선열을 생각해야 한다.
이 땅에 있는 유물과 유적은 우리가 빌린 것이니 그 보전에 남다른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파리의 샹젤리제에 있는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나 조각들도 복원이나 복제가 대부분이다.
이제 우리는 생태적 문화관을 가지고 앎과 실천의 소중함을 여러 사람에 전하자. 그리고 작은 답사라도 준비하는 준비위원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바로 답사를 통해 앎과 실천외에 하나를 더 배운다면 희생과 봉사이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를 참으로
풍요하게 만들 수 있는 큰 밑거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에서 배울 것이 없으면 버릴 것을 배워라" 는 나의 답사에서 영원한 화두로 남는다...
아사달 차문성
출처 :충주전통문화회 원문보기▶ 글쓴이 : 동수마루/김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