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4년 최재경 법무부 검찰2과장이 사표를 던졌다. 요직인 검찰2과장에서 수원지검 형사부장으로 사실상 ‘좌천 인사’를 당한 직후였다.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업무처리 방식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 원인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정상명 대구고검장은 KTX를 타고 급히 상경해 최 과장의 사표를 만류했다. 두 사람은 1990년 대구지검 김천지청장과 김천지청 검사로 만난 사이였다. 2005년 4월 정상명 고검장은 대검 차장에 오르자 최재경 검사를 대검 중수1과장으로 발탁했다. 그의 수사 실력과 강단있는 성품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정상명 대구고검장은 KTX를 타고 급히 상경해 최 과장의 사표를 만류했다. 두 사람은 1990년 대구지검 김천지청장과 김천지청 검사로 만난 사이였다. 2005년 4월 정상명 고검장은 대검 차장에 오르자 최재경 검사를 대검 중수1과장으로 발탁했다. 그의 수사 실력과 강단있는 성품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 최재경 인천지검장.
최재경 중수1과장은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론스타 사건 같은 굵직한 사건을 처리했다. 2005년 11월 검찰총장에 오른 정상명 총장은 2007년 초 서울동부지검이 수사하던 제이유 사건이 ‘검사의 회유 의혹’으로 위기에 몰리자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라”며 사건을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에게 통째로 맡겼다.
최재경 검사에 대한 검찰 내 선후배 검사들의 신망은 두텁다. 이를 밑거름으로 최 검사는 대검 수사기획관, 대검 중수부장을 거치며 검찰을 대표하는 최고의 특수통 검사로 꼽혔다. 그는 2008년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있을 때 세종증권 매각 사건을 수사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형 건평씨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검찰 선후배들은 그를 ‘검찰총장 후보감’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 2012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의 최재경 인천지검장.
하지만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2012년말 대검 중수부장 시절 중수부 폐지 문제로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과 충돌하면서다. 그는 폐지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상대 총장은 사퇴했고, 그도 전주지검장으로 사실상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그는 이후 작년 12월 인천지검장으로 올 때까지 고검장 승진에서 두 차례 탈락했다.
2007년 서울지검 특수1부장 때 ‘BBK 사건’과 ‘도곡동 땅 사건’을 수사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많았다.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수사 결론이 나오자 정치권 일각에서 그를 “정치 검사”라고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정치적 사건의 한복판에서 그는 중심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올 4월 인천지검장으로 ‘유병언 일가 비리 수사’를 맡았다. 국민적 관심사인 이번 수사는 고검장 승진을 앞둔 그에게 어쩌면 마지막 시험대였다. 그는 검찰청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사건 수사에 전력을 다했으나 이 사건에 발목이 잡혔다.
24일 유씨 추적과 관련한 검찰의 부실 수사에 책임을 지고 그는 대검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전날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이 언론 브리핑을 통해 지난 5월 25일 순천 별장 압수수색 당시 유씨를 놓친 사실을 공개한 뒤 사의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 때 별장 내부에 숨어 있었다. 검찰이 이 사실을 안 건 지난달 26일 유씨의 비서 신모씨로부터 관련 진술을 듣고나서다. 하지만 최 지검장은 이를 한 달여만에 공개했다. 이 사실을 일찍 공개했다고 해서 유씨 추적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꼭꼭 숨겼다. 유씨 추적 작업에 나선 경찰도 이 사실을 몰랐다. 검찰은 추적 정보를 경찰과 공유한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 해결에 사활을 건 최 지검장으로선 유씨를 잡을 때까지 이를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최 지검장의 생각이 사건 수사를 더 어렵게 만들고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 지검장은 수사 과정에서 “유병언을 반드시 잡아 법정 최고형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