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비문증과 광시증 씨리즈 꿈
구급차이동 중에 핸드폰이 진동음을 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켰다.
“요한아 선생님이다.”
“예. 선생님.”
“오늘 병문안을 가려는데 면회가 되니?”
“아 예. 어젠 되었는데 갑자기 재검사를 해야겠다고 금지 됐어요.”
“뭐야 그럼 수술이 잘못 된 거냐?”
“그건 아니고요 세계가 깨어나긴 했는데 천정만 응시하며 이상한 말을 해서요.”
“어 그래....참 걱정이다. 어서 정상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
요한이는 지금 세계의 아버지 상황까지는 말씀 드리기는 어려워 그만 두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진찰 후에 링거를 맞고 내과 입원 병실로 옮겨졌다.
눈을 감고 누어계신 아버지를 살펴보니 다친 발을 방치하여 생긴 발이 기형적이고
발목의 둘레도 서로 달랐다.
그 발로 절룩거리며 고물 수집을 했다고 생각하니 측은해 보였다.
갑자기 자신의 부모님이 감사하고 그동안 너무 부를 누리고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며 아프리카에 마른 뼈만 남은 사람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세계도 그런 가녀린 발이 아버지 ‘보호 본능’으로 많은 대화와 효심으로
세상에서 제일 친근한 부자 사이가 되었고 죽음에서 깨어나자마자
간절하게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버님은 어떠세요?”
“아 예. 허약 체질에 심한 감기 몸살에 탈수증상으로 실신하신 것 같아요
잠에서 깨면 괜찮아 질 거 에요.”
이른 저녁. 깊은 잠에서 깬 세계아버지가 눈을 떴다. 기운이 없어 보여 물었다.
“아버님 정신이 드세요?”
하지만 대답대신 허공을 가리키며 혼잣말을 했다.
“검은 실 거미줄....하나. 둘. 셋.”
요한이는 깜짝 놀랐다. 세계와 아버지가 나란히 눈을 뜨자마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순간 아버지도 세계처럼 정밀 검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밀려왔다.
너무 놀라 간호사에게 자세히 물어 보려고 나갔는데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이 또 진동음을 냈다. 어머니였다.
“아들. 어떻게 됐어?”
“예. 어머니 감기 몸살에다 심한스트레스로 인한 쇼크라고 하는데 괜찮을 것 같아요.”
“응. 그래? 내가보니 세계도 그렇지만 아버지가 건강에 더 신경을 많이 써야겠더라.
아내도 없이 살면서 식단도 부실했을 거고....네가 그동안 식사라도 챙겨 드렸니?”
“예. 자꾸만 사양하셔서 순대 국밥 두 번 요.”
“잘했다. 아들.”
요한이는 어머니의 칭찬에도 하루 종일 병원에서의 생활에 몸과 눈에 피곤이 너무 몰려왔다.
잠깐 바깥 저녁풍경으로 피곤한 눈을 달래려고 긴 복도를 따라 나가다가 세계 아버지의
‘거미줄’이라는 걱정의 말을 깜빡 잊어버렸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 것을 깜빡하는 것을 ‘천재의 특성’이라고 말하던
합리화도 지워져 버렸다.
복도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의사 선생님이 보였다. 서강서 원장님이었다.
반가움에 세계의 소식도 무척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불렀다.
그런데 깜빡하고 이름대신 소문으로 들었던 명의사 애칭을 먼저 떠올렸다.
“히포크라. 아니지 서원장님~”
“어? 요한학생. 아직 가지 않았네?”
“죄송합니다. 성함을 부른다는 것이...”
“아냐~ 가끔은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면 내가 히포크라테스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기거든? 고마워.”
“예? 그럼 저도 별칭이 하나쯤 있어야겠는데요?”
“그래? 혹시 부잣집 귀공자 아냐?”
“아니에요 세계가 또라이인 저를 닮았다며 ‘베스트 또라이’라고 불렀는데 좋은 건지
나쁜 건 지 잘 모르겠어요.”
“좋은 거겠지? 근데 요한이 아버님은 뭐하시나?”
“예. 회사...”
“어? 그럼 아버님이 부메랑회장님?”
“어떻게 아세요?”
“하하하 희귀성 부 씨에다가, 귀공자에다가, 부요한 이니까 내가 넘겨짚었는데 정말 맞아?”
“예.”
“하하하하.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너는 아버지를 닮았구나.”
“예? 아버지를 어떻게 아세요?”
“알려 줄까?”
“네.”
“오래전에 해병대 속옷을 입은 사람이 한강에 투신한 사람을 뛰어들어 구했거든?
마침 구조 현장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는데 낡은 런닝과 팬티에 ‘해병’이라고
수를 놓아준 것이 클로즈업 되었지 뭐야.
그건 구멍 난 것을 어머님이 자수를 놓은 거라는데 그 해병은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어머니가 놓아준 ‘해병’글자를 보며 용기를 냈다는 이야기도 텔레비전에 나왔거든?”
“아 예~”
요한이는 아버지에게 무용담처럼 들었지만 또 타인에게 듣는 일이 무척 즐겁고 행복해서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다.
“그 후에 ‘창대’라고 하던가? 하여튼 어떤 속옷 회사가 해병 글씨를 넣어
‘슬럼프 업 3종 세트’라며 속옷을 만들어서 입으면 ‘강한 남성’이 된다고
광고를 해서 대박이 났다고 하더라고 하하하하.”
“아니 원장님께서 어떻게 저희 아버지를 그렇게 자세히 아세요?”
“하하하 바로 투신한분 아들이 안과의사가 되어 우리병원에 근무를 해서 자세히 듣고 알았지
언제 한번 만나 보겠니? 하하하하.”
“아 예 감사합니다. 세상 참 좁네요.”
한참이나 유쾌한 이야기를 하던 ‘봉천동 히포크라테스’는 본업으로 돌아갔다.
“세계를 종합검사를 해 보았는데 그게.”
두려운 생각이 앞질러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급한 마음에 원장님의 말씀을 끊고 물었다.
“예? 좋지 않아요?”
그때 세계의 아버지가 링거를 꼽은 체 다가오고 있었다.
요한이는 세계아버지보다 세계가 걱정이 되어 아버지가 들으면 안 되는 말이라도 나올까봐
가까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다. 얼른 말씀을 듣고 아버지를 만나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계는 안과 선생님말씀에‘비문 증’에다가 ‘광시 증’이라고 하던데?”
“그게 뭔데요.”
퇴근하면 아내에게 세 마디 밖에 안한다는 경상도 남편과 동급인 일반의사와 달리 자상하신 명의 히포크라테스의 긴 설명이 시작되었다.
다가오던 세계의 아버지는 요한이를 보자 이야기를 끊으면 안 될 것 같아선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하고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두 사람의 말이 아버지에게도 간간히 들릴 정도의 거리였다.
“비문 증이란 하늘을 보면 거미줄이나 보푸라기 실처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떠다니는 것이 보이거든? 심약한 상태의 사람은 ‘파리’라고도 하며 떠다니는 것을
잡으려고 허공에 손짓도하고,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들려서
정신이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받고 그래.”
“아 예~그럼 광시 증은요.”
“응 그건 노안으로 많이 발생하지만 눈에 심한충격이나 심한 스트레스로도 생기거든?
또 ‘망막 광시 증’이 있는데 그건 커튼이 내리듯 어두워져 실명을 하기도 하거든?
비문 증은 거미줄, 광시 증은 불빛으로 나타난다고 분류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거나 뭐가 보인다는 의식을 하지 않으면 걱정과 불편함도 사라지는 증상이야.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아, 세계의 경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안심해. 됐나? 다만.”
“예? 또 뭐가 있어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기억 상실증’이나 ‘부분기억 상실증’이 올수도 있는데
수술결과가 좋으니까 안심 쪽으로 생각해도 될 거야.”
“휴우~감사합니다. 원장님.”
“세계는 내일부터 면회가 가능하다 알았지? 그럼 나 먼저 간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원장님을 서둘러 보내고 세계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님 들으셨어요?”
“응 대충.....”
“세계가 평소에 뭐가 떠다닌다고 했어요? 빛도 보이고?”
“응, 뭐가 떠다니는 것 같다고는 들었는데 빛은 처음이야.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던?”
“예. 아버님도 비문증이 있으세요?”
“응 나도 그러긴 했어, 선생님이 걱정 말라고 하시던데?”
“예 맞아요. 내일부터 세계를 면회해도 되니 좋으시죠?”
“요한아 니가 많이 고생했다. 고마워~”
“뭘요 아니에요. ”
요한이는 걱정이 해결되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음날 학교에 소식을 전하자 모두 기쁨의 박수를 쳤다.
그중에 웹툰이가 가장 큰 박수를 쳤다.
쉬는 시간에 다가온 웹툰이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반장 미안하다. 내가 일진 애들 설득해서 곧 찾아 갈게. 고마워.”
“아냐 그럴 수도 있지. 내가 공평하지 못하게 너무 세계의 편을 들어서 맘이 상했지?”
“뭐야~ 바로 그거야~”“뭔데?”
“나는 너의 그런 넓은 마음이 싫어서 잘난 척 한다고 내가 객기를 부려서 이 사단이 난거야~”
“헐~ 그 그래?”
“도대체 넌 언제나 내 수준에 딱 맞는 말을 해서 나를 즐겁게 해줄래?”
“그럼 내가 또 너를 화나게 한 거야?”
“헐~이렇게 눈치까지 없는 정석 교과서야 됐고. 어쨌든 고맙다.”
오후. 요한이는 기억 상실증 이라는 말에 마음이 걸려 병실을 찾았다.
세계가 잠들어 있고 아버지는 곁에 앉아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요?”
“응 왔니? 그래. 니가 한번 깨워볼래?”
“그럴까요? 너무 보고 싶고 대화도 나누고 싶고....”
요한이는 조심스레 세계를 불렀다. ‘나를 알아볼까’ 하는 마음이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세계야 나다. 요한이. 니가 찾았던 아버지도 옆에 계셔.”
세계는 말소리를 듣고 잠이 깬듯했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그리고 첫 마디는 아버지였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묻는 말의 대답이었는지 혼자만의 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 버지?”
“그래. 나 여기 있다 손 잡아보자.”
아버지는 세계의 손을 잡았다. 힘이 점점 들어갔다.
하지만 세계는 손에는 힘이 없고 맡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배가......”
“배라니 무슨?”
순간 요한이는 또 두려운 생각이 몰려왔다.
‘정신이상의 헛소리가 아닐까? 기억 상실증이 아닐까? 부분 기억상실도 올수 있다고 하던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세계는 아버지의 물음에는 대답이 없고 이후로도 말이 없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요한이는 걱정에 잠겼지만 아버지는 의외로 담담하고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까지 번졌다.
요한이는 세계의 아버지를 이상한 눈과 호기심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세계가 아직 아프고 너무 피곤한가 봐요.”
“응? 아냐 이건 아주 좋은 징조야.”
“예? 무슨 말씀을....”
“세계는 아침에 일어 날 때 새벽마다 꿈을 꾸는데 물음에 대답을 해주면 그 대답한 말이
끝말잇기처럼 되어 씨리즈 꿈을 꾸다가 일어나거든?”
“아 언젠가 세계에게 들은 말 같기도 해요.”
아버지는 아들에 관하여서는 말씀이 길어졌다.
“그래? 세계는 지금 꿈결이야. 어떨 때는 내 질문에 서너 편씩이나 시리즈로 꾸다가 잠이 깨거든?
그러니까 곧 깨어난다는 증거야 지금은 2편 쯤 될 것 같은데 묻는 말에 대답이 없어서 그러지
저는 마음으로 대답하고 지금 꿈을 꾸는 중일거야”
“아하 그러면 기억 상실증이 아니라 곧 깨어나서 의사소통이 가능하겠네요?”
“그럼~ 확실히.”
“아버님. 그러면 세계가 누구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제정신이 돌아와서
꿈을 깨고 일어날지 내기라도 할까요?”
세계의 아버지는 몸이 급한 회복이라도 되었는지 아니면 아들의 일이라 그런지
말씀이 점점 길어졌다.
“헐~ 그건 보나마나야~ 내가 아버지라 아들을 제일 잘 알고 질문도 최고의 질문을 할 테니까.
그리고 확실한건 아니지만 남들이 묻는 질문은 인식이 안 되고 인지도가 떨어져
나를 이기지는 못할 거야.”
“아하 저에겐 그런 ‘핸디캡’이 있고 아버님에게는 ‘프리미엄’이 있어서 제가 지겠는데요?”
“아냐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지~ 꿈은 이루어진다?”
잠든 세계를 두고 요한이는 식사 대접을 위해 근처 좋은 식당을 검색했다.
“아버님. 갈비 좋아 하세요?”
“좋아하긴 하는데....아냐 싫어해.”
“아버님. 괜찮아요.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사드릴게요. 명륜동에 진짜 갈비집이 있는데
2호점이 봉천동 요 근처에 있어요. 빨리 가요.”
요한이는 손을 잡아끌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잠시 침묵에 탁자 아래를 보니 또 다시
연약한 발목이 보였다. 급히 떠오르는 생각에 물었다.
“아버님. 세계가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무척 깊고 넓은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글세? 엄마 없이 자란 부자간이라 그러겠지?”
“아니 무슨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깨어났을 때 아버지를 처음 부른 것을 보면.”
아버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 생각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우리는 가위 바위보 게임하며 놀았는데
세계가 혼잣말로 하던 말이 있었지. 그 말을 중학생 때까지 하고는 했어,”
“무슨 말인데요?”
“아빠. 나는 주먹처럼 용기 있고, 가위처럼 날카롭고, 보자기처럼 누구나 감싸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버지는 그 말을 하다가 중간쯤부터 울컥한 마음이 들었지만 끝까지 참고 해냈다.
“와우~ 3학년이 그 말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아버님~”
“그러게 말이야. 난 그 말을 듣고 세계 몰래 눈물을 닦으며 울었단다. 으허허허...”
눈물이 흐를까봐 최대한 절제한 웃음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요한이와 아버지는 세계가 깨어났을 때마다 세계와 나누었던 말들을
질문처럼 들려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세계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약발 떨어진 시계바늘이 멈춰서 돌아가지도 넘어가지도 않는
0시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에는 요한이의 차례였다.
막 입을 열려는 찰나에 세계가 요한이를 불렀다.
“요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