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바루기 ¿
@ 유명을 달리하다
우리말에는 죽음을 뜻하는 표현들이 많이 있다. ‘목숨을 거두다’, ‘세상을 떠나다’, ‘한 줌의 재가 되다’, ‘잠들다’, ‘돌아가다’ 등을 비롯해 ‘별세하다’, ‘타계하다’, ‘영면하다’, ‘작고하다’와 같은 한자어식 표현도 있다. 그중에 ‘유명을 달리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유명’은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
‘유명’(幽明)은 어둠과 밝음을 이르는 말로 저승과 이승을 나타내기도 한다. ‘유명을 달리하다’는 밝은 이승을 떠나 어두운 저승으로 감으로써 이 세상에서 다시는 함께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죽다’를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한데 ‘운명을 달리하다’라는 표현도 그에 못지않게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유명을 달리하다’와 ‘운명을 달리하다’는 같은 뜻일까.
‘운명’(殞命)은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형은 오랜 객지 생활로 아버지의 운명을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께서는 80세를 일기로 운명하셨다” 등처럼 사용해야 한다. 즉 ‘유명’과 ‘운명’을 혼동해서 벌어지는 일로 사람이 죽었음을 나타낼 때는 ‘운명을 달리하다’가 아니라 ‘운명하다’라고 써야 바르다.
이전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됐다는 의미로 ‘운명이 달라졌다’고 표현할 수는 있다. 이때의 운명은 ‘殞命’이 아닌 ‘運命’이다. ‘운명’(運命)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이나 그것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