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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미끼
한승원
산수(傘壽)를 앞에 둔 이제는, 내가 나의 새 교과서를 새로이 산조(散調) 투로 쓰고 그 교과서대로 살기로 한다. 무당의 활옷을 입고 거리를 할보하고, 왈츠를 틀어놓고 내 사랑하는 도깨비와 더불어 막춤을 추고, 엔진 능력 좋은 어선을 구입하여 선유를 즐기는 따위의 멋대로 살기, 그것이 산조일 터이다. 내 사랑하는 도씨(도깨비)는 나의 산조 교과서가 만든 비대칭의 존재이다.
비대칭 파장의 대표적인 소리는 에밀레종소리이다. 나는 파도에서 비대칭 파장의 소리를 듣고 해당화에서 비대칭의 향기를 맡는다. 산조적인 삶은 비대칭의 율동을 가진 삶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구해서 타고 다니는 2톤짜리 FRP 어선이 사실은 내 삶을 활성화시킴에 있어서나, 나를 잡아갈 저승사자를 속이는 데 있어서나 홀로그램 화려한 가짜미기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사랑하는 도씨의 관여 간섭에 의해 행해지는 일이다.
내가 연꽃바다라고 명명한 짙푸른 득량만 바다, 나의 마녀 같은 그 백년지기 친구는 제 마음대로 말갛게 침잠하기도 하고, 출렁거리기도 해서, ‘야 이 사랑스러운 년아’ 하는 야비한 정까지도 함부로 건네려 하도록 나를 적당히 들썽거리게 하곤 한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내 머리 위에서 끼룩끼룩 울면서 선회했다. 등의 깃털에 검은 점이 있는 갈매기다. 어린 시절 나는, 물에 빠져 죽은 시누이의 넋이 된 새가 갈매기라고 들었다. 오빠와 올케와 시누이 셋이서 바다를 건너다 밀물이 세차게 밀려들어 셋이 물에 휩쓸려 떠갔는데 오빠는 자기 아내만 구했으므로, 시누이는 물에 떠내려가 익사했던 것이다. 아내는 또 얻으면 아내인데 왜 여동생을 버리고 올케를 선택했느냐는 시누이의 넋이 된 갈매기는 끼룩끼룩 한스럽게 울며 나는 새이다.
배가 고팠다. 나는 배고픔을 속이 허심허심하다고 표현한다. 꽃봉오리처럼 봉싯한 무인도 꽃섬의 서남쪽 모퉁이에 배를 대고 낚시질을 하기로 작정했다. 갯바위의 비스듬한 엉설에 노끈들이 매달려 있다. 다른 낚시꾼들이 다녀간 흔적이다. 좋은 낚시질 자리인 모양이다.
바야흐로 밀물이 지고 있었다. 해류는 꽃섬 모퉁이를 감돌아 흘렀다. 하늘에는 부연 내 구름이 끼어 있고, 바람은 남쪽에서 서늘하게 불어왔고, 별로 드높지 않은 파도가 일었다. 먼 바다에서 달려온 파도들은 배의 옆구리를 찰싹찰싹 간지럼 먹였다. 꽃섬 모퉁이 갯바위 엉설의 새끼줄을 뱃전에 묶었다.
낚싯대를 꺼내 길게 빼 늘였다. 줄 끝에는 말굽 모양의 낚싯바늘이 뒤에 숨어 있는 가짜미끼들이 네 개나 달려 있다. 홀로그램이 있는 새우 둘, 형광을 발하는 멸치 하나, 꼴뚜기 모양의 미끼 하나였다. 그것을 물에 던졌다. 맨 끝에는 납으로 된 봇돌이 낚싯바늘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봇돌이 심연 속의 땅에 닿는 감촉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신경을 집중시켰다. 물때는 바야흐로 좋았다.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은 썰물이 지다가 밀물로 바뀔 때의 십여 분 동안과 밀물이 지다가 썰물로 돌아서는 어름의 얼마 동안에 아주 심한 허기를 느낀다고 들었다. 허기진 고기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허겁지겁 잡아 삼키는 것이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푸드득 하는 전율 같은 손맛으로 인해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낚싯대를 잡아채면서 줄을 감았다. 마주앉은 도씨가 늦추지 말고 느긋하게 끌어 올리라고 충고를 했다. 내 사랑하는 도씨의 간섭은 서두르곤 하는 내 성정을 조율하는 자동센서 노릇을 한다.
우럭 한 마리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잡아 올려놓고 보니, 이놈은 투명한 새우 미끼를 널름 삼키려다가 낚시 바늘에 걸려 있었다. 하아, 가짜미끼에 보기 좋게 걸렸구나, 하고 내 사랑하는 도씨가 말했다. 도씨 이놈은 진실로 고마운 놈이다. 토굴에 머무는 동안, 바닷가 산책을 할 때, 농로를 타고 거닐 때, 나에게 기발한 시 한 구절이나 소설 한 대목을 귀띔해주곤 한다.
흥분해 있었다. 내가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하얗고 늘씬한 2톤짜리 어선 한 척을 레저용으로 구입하고, 집에서 선착장까지 왕래할 네 바퀴 달린 오토바이 한 대를 산 다음, 낚시 가게에 가서 낚시장구 일체와 구명대를 준비하면서부터이다. 내가 흥분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의 도씨는 한사코 차근차근히 준비하라고 충고했다. 여느 때 나는 도씨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체하지만 사실은 마음 속 깊이 새겨 놓곤 한다.
여느 때 내 사랑하는 늙은 아내는 나보다 한 술 더 떠서, 돌다리를 두들겨보고 나서도 건너지 말고 멀리 돌아서 가는 조심성을 나에게 주문한다.
역사 인물 소설 ‘다산’을 쓰려 하면서 거문고에 대한 세밀한 상식이 필요했다. 주인공을 사랑하는 여인이 거문고를 켜는데, 주인공은 그 신비한 소리에 취한다. 그 소리는 주인공의 삶과 영혼을 흔든다. 주인공은 그 소리의 어떠한 성정 때문에 삶과 영혼이 흔들리는가.
나는 거문고 한 조를 사서 그것의 원리와 연주하는 법을 터득하고 그 소리에 대하여 밀도 짙게 알고 싶었다. 아니, 아는 정도만이 아니고, 그 소리의 혼과 신명이 담긴 짧은 시 한 편을 제시하고, 독자를 사로잡고 싶었다. 그러려면 거문고라는 악기와 그것으로 연주한 음악에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했다.
광주의 한 전통악기점으로 갔다. 광일전통악기라는 가게에서는 직접 악기를 제작하여 판매했다. 가게 앞쪽에는 판매점이 있고, 뒤편에는 악기 제작소가 있었다.
거문고와 가야금과 대금 아쟁 따위가 진열대에 늘어서 있었다. 사장이 인간문화재 장인이어서 직접 제작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내가 거문고에 관심을 보이자, 사장은 제작소 내부를 보여주었다. 제작소 한가운데는 작업대가 있고, 사방 바람벽에는 바싹 말린 오동나무 널빤지들이 세워져 있고 옆의 창고에는 그 널빤지들이 두둑하게 쌓여 있었다.
거문고 한 조에 얼마냐고 물으니 정악을 연주하는 악기는 500만 원이고 산조를 연주하는 것은 400만 원이라고 했다. 나는 거문고의 여섯 개의 현(줄)을 무엇으로 만드는지, 그리고 각 현의 소리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물었다.
장인은 거문고의 현을 명주실로 만든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오동나무 한 그루가 죽어야 거문고의 몸체가 되고, 2만 마리의 누에고치가 죽어야 한 조의 거문고 6현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거문고의 소리가 신비한 까닭은 오동나무와 누에고치의 넋이 만드는 소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나자 나는 거문고를 사고 싶어 환장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거문고 이야기를 하자, 제발 사지는 말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거문고에 대한 공부를 하기만 하라고 했다. 그 소설을 쓰기 위해 사서 연주하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그것을 다 쓰고 난 다음에는 산지기집 바람벽에 걸려 있는 거문고가 될 것 아니냐고, 또 거문고에 미치고 나면 다른 소설을 더 쓰지 못하게 될 것 아니냐고. 나의 사랑하는 도씨도 아내의 비위를 거스르게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아내는 소설가인 나의 영육을 관리하는 숭엄한 존재이다. 아내의 비위를 상하게 하고는 견디지 못한다. 젖먹이 아이처럼 젖의 주인인 아내의 요구를 거역하지 못하는 공처가이자 경처가(敬妻家)인 것이다. 나는 아내를, 노자가 말한 우주적인 자궁(谷神)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장흥의 전통문화에 대하여 잘 하는 후배에게 장흥에 거문고 치는 예인이 있느냐고 물으니 예술대학에서 거문고를 정공하는 여학생이 읍내에 살고 있는데 실력이 대단하다고 소개해 주었다. 스물 네 살인 그녀를 찾아가서 거문고 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거문고 기초학습에 관한 책을 주기에 복사해서 가지고 들어와 밤을 새워 읽었다. 그 학생의 집에 찾아다니면서 거문고 연주법을 배웠다. 그 학생은 산조전문 악기를 가지고 있었다. 정악이 엄격한 규범을 가진 악곡이라면 산조는 자유롭게 연주하는 악곡이다. 나는 역시 산조가 좋다.
그녀가 가르쳐주는 대로 연주하려 했지만, 내 손가락들은 우둔해서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 나는 거문고의 각기 굵기가 다른 여섯 개의 줄들과 그것들이 내는 소리의 차이점들을 귀에 익혔다. 중간 굵기의 문현(文絃)은 부드럽고 포용성이 넉넉한 반면, 가장 굵은 무현(무絃)은 장중하고 근엄했고, 나머지의 현들은 아름답고 곱고 유현했다. 그 소리의 유현함에는 비대칭의 홀로그램이 들어 있었다.
젊은 예인은 내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가를 재바르게 눈치 채고 음반 두 장을 빌려주었다. 거문고의 달인(인간문화재)이 연주한 음반들이었다. 음반을 가져다가 오디오의 씨디 플레이어에 넣고 틀었다. 아침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듣고, 다시 되돌려 듣고 또 들었다. 음반에 구멍이 뚫어질 정도로 거듭 들었다. 그 결과 거문고라는 악기와 거문고의 음악이 몸에 익기 시작했고, 거문고소리가 가지고 있는 신성이 나의 영혼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일 년여에 걸쳐 소설을 쓰면서, 미친 듯이 거문고 음악을 들었는데, 그 음률이 내포한 신성이 내 영혼과 쓰고 있는 소설의 중추신경을 지배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다음과 같은 짧은 시 한 편을 쓸 수 있었다.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神琴)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
그들의 몸을 비틀어 꼰 울음은
혼의 선율이 되고 그 선율은 빛이 되고
찬란한 빛은 새가 되어
펄펄 푸른 하늘로 날아가네.
(神琴, 何爲神琴 數萬繭殉 其體繩哭 魂音光芒 輝煌飛鳥 翩翻蒼天)
위의 시를 그 소설의 첫머리에 실었는데, 그것은 독자를 홀리는 미끼인 셈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형광과 비대칭의 홀로그램을 발산하는 가짜미끼인 것만 같다.
내가 내 사랑하는 도씨와 더불어 하는 바다여행을 위해 통 크게 4천만 원쯤을 투자한 것은 나의 늙은 아내와 도씨 때문이다. 돌다리를 두들겨보고도 건너지 말고 돌아서 가라고 고집을 피우곤 하던 아내가,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하는 까닭으로 늘그막의 우울증에 빠져 있는 나를 가엽게 생각하고, 미덥지 못해 조마조마해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이 허락을 한 것이다. 아내의 허락은, 나를 새로이 펼쳐질 찬란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흥분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나를 더욱 흥분하게 한 것은 낚시 가게에서 산 가짜미끼 한 상자이다. 그 상자 속에는 플라스틱이나 고무 재질로 만든 새우, 멸치, 꼴뚜기, 갯지렁이 따위의 가짜미기들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형형색색이었다. 어떤 것은 몸이 희고 투명한데 묽은 내장을 가지고 있는 작은 물고기의 모양새이고, 어떤 것은 형광을 발산하는 멸치이고, 또 어떤 것은 홀로그램을 발산하는 새우 모양새였다. 그것들 뒤에는 낚시가 숨겨져 있다. 그것들을 낚싯줄 끝에 매달아 깊은 물속에 드리워 놓는다면, 출렁거리면서 빨리 흐르는 물결을 따라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거릴 것이다. 도미나 농어나 우럭이나 볼락 들이 그 가짜미끼를 살아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덜컥 삼키려고 들 것이다. 가짜미끼를 고안해낸 것은 얼마나 약고 영리한 발상인가.
초등학생 시절 낚시질을 하기 위해 정강이까지 빠지도록 무른 갯벌에서 갯지렁이를 잡은 적이 있다. 갯지렁이를 대나무 그릇에 넣어 가지고 아버지를 따라 목선을 타고 낚시질을 갔었다. 그때는 줄낚시를 했었다. 낚싯바늘에 갯지렁이 한 마리를 꿰면, 갯지렁이가 고개를 외틀어 손가락 살갗을 물어뜯었다. 살갗이 따끔거려서 나는 진저리를 치곤했다. 갯지렁이가 낚싯바늘에 꿰어지는 고통을 참지 못한 채 고개를 외틀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는 것도 고통이고, 갯지렁이에게 살갗을 물리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고통을 당하지 않고도 가짜미끼를 이용하여 낚시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살이가 사실은 가짜미끼놀음에 다름 아니다. 내가 쓴 시나 소설들도 독자를 낚는 하나의 가짜미끼인지 모른다. 아니, 신이 눈앞에 드리운 가짜미끼에 걸려 고개를 회회 저으며 몸부림치는 것이 창작 행위 아닐까.
가짜미끼로 무엇인가를 잡는 것이 어찌 어부나 낚시꾼들뿐이랴.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하여 지역구민들에게 가짜미끼를 던지고, 장사꾼들은 고객들에게 가짜미끼를 던지고, 냉장고 회사는 선녀 같이 하얀 살결의 여인이 걸치고 있는 달빛 드레스 자락을 바람에 하늘거리고 팔락거리게 하여 에어컨디션을 팔고, 사기꾼들은 가짜미끼를 이용하여 사기를 친다.
내가 지금 4천만 원을 들여 배와 오토바이와 낚시 장구들을 장만해 가지고 멋들어지게 바다여행을, 나의 사랑하는 도씨와 즐기려 하는 것은 또 어떤 가짜미기놀음일까. 나는 신이 던져준 또 하나의 미끼에 걸린 것이고, 나는 가짜미끼를 이용하여 물고기와 그 물고기 이상의 무엇인가를 낚으려고 한다.
하루 전날부터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낚시장구와 구명대는 배의 이물의 갑판 밑 창고에 넣어 놓았고, 배를 장재도 선착장에 정박해놓았다. 장재도 선착장은 서쪽을 향하고 있어 태풍에도 안전하다.
바다여행을 나선 날 아침 아내는 밥과 물김치와 된장과 고추장과 도마와 식칼과 물 두 병과, 칠레산 와인 카르멘 한 병과 병 마게 뽑는 기구들을 싸주었다. 그것들을 오토바이 뒤에 실었다. 나는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내가 흥분해 있음을 눈치 챈 내 사랑하는 도씨가 “한사코 천천히, 느긋하게!”하고 충고를 했다.
아내는 걱정이 된 듯 “평생 소원하시던 일인께 원도 한도 없이 한 번 즐겨보시오. 핸드폰 잘 챙기셨지라우? 바다에는 그물이 널려 있다고 합디다. 주꾸미 그물, 정치망, 미역발, 삼중망.....정말, 정말 조심하시고, 구명대는 반드시 착용하시고, 여차하면 119 부르시오. 와인은 꼭 한 잔만 하시고, 절대로 두 잔은 마시지 말고.....”하고 말했다.
도씨와 함께 하는 바다 선유 여행, 그것은 모험이었다. 바다는 마녀였다. 한없이 큰 입과 펄럭거리는 물너울 치마폭, 깊고 드넓은 자궁, 드높은 파도와 휘돌아 흐르는 해류를 가지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게으름을 피우고 바람이 불면 미친 듯 출렁거리고 들썽거리는 마녀이다. 그 바다 여행을 하려면 그 마녀의 성정에 맞추어 함께 들썽거리거나 출렁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바다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내 사랑하는 도씨는 사사건건 관여하고 간섭을 했다. 바다여행을 하려는 자는 스스로 바다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파도가 되어 함께 출렁거려야 하는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수문항에 배 한 척이 나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거간노릇을 해준 것은 한일수산 김사장이었다. 세로 길이 10 미터에 가로 길이 4,5 미터에 무게 2톤인 배였다. 가격은 3천5백만 원인데, 주인은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했다. 스즈키 엔진 값만 2천만 원이고 배 짓는 값만 1천5백만 원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딱 1년 탔는데, 선착장이나 갯바위에 세게 부딪친 적 한 번 없고, 무거운 짐을 실은 적도 없고, 필요 이상으로 과속한 적도 없으므로 새 배나 한 가지라면서, 깎을 생각은 아예 말라고 했다. 나를 따라 간 도씨는 열심히 세심하게 배를 살폈다. 사랑하는 나의 도씨는 주도면밀했다. 도씨가 “배를 한 번 시험 운항을 해보자고 하소.”하고 귀띔을 해서 내가 주인에게 순전히 내 의견인 양 “일단 배를 한 번 타봅시다.”하고 말했고, 주인은 기름을 주입했다. 시동을 걸어 바다로 몰고 나갔다. 배는 파도를 헤치며 황홀하게 두둥실 나아갔다. 검푸른 물너울을 헤치면서 득량만 바다 한가운데로 떠갔다. 득량도를 왼쪽에 끼고 완도 방향으로 달렸다.
지도상에서 보면 득량만은 ㄷ자 모양새의 호수 같은 바다이다. 고흥반도가 상변이고 보성땅과 장흥땅이 하변인데, 순천 벌교를 등진 채 완도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완도 쪽에서 흘러 들어온 밀물은 보성 벌교 쪽으로 달려갔다가 썰물이 되어 완도 쪽으로 되돌아나가곤 한다. 때문에 이 바다의 갯벌은 무르면서도 차지다. 보성과 장흥과 고흥 땅에서 흘러든 육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어름에는 프랑크톤이 많다. 치어들이 성장하기 좋은 장소이므로 모든 물고기들은 득량만에 들어와 알을 낳으려고, 고흥의 섬들과 완도 여러 섬들 사이의 물목들을 유영해 오는 것이고, 그 물목에서는 고기잡이가 잘 되는 것이다. 또한 득량만 갯벌에서는 고막과 키조개와 바지락과 우렁이조개들이 잘 자란다. 백 년 전, 일본인들은 식민지인 이 땅에서 양식을 얻기 위하여 보성과 장흥과 고흥의 연안바다 갯벌에 간척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는데, 그 간척지에서는 기름진 좋은 쌀을 얻을 수 있었고, 그것들을 일본으로 실어냈다.
장환도를 오른쪽에 끼고 잠시 달리자 왼쪽에 금당도가 나타났다. 선주는 “뱃전을 잘 잡으시고 윗몸을 낮추십시오.”하고 주의를 준 다음 쾌속으로 달려주었다. 배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렸다. 자잘한 물방울들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선주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이렇게 달리면 시속 한 60키로쯤 될 것이오,”하고 말했다.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당장에 그 배를 사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은행에 들어 있는 돈을 헤아렸다. 3천5백 만 원을 빼내더라도 살림살이 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씨가 ‘운전하는 것 잘 배워.’하고 귀띔을 했다. 나는 도씨의 말을 따라 선주의 운전하는 것을 샅샅이 살폈다. 선장실은 남자 한 사람이 들어가서 운신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데, 오른쪽 창틀 옆 바람벽에 엔진 조작하는 장치가 있었다. 전진, 후진, 멈춤의 눈금이 있고, 한가운데 동그란 운전대가 있었다. 열쇠를 꽂아 오른쪽으로 돌리면 시동이 걸리는 것은 자동차와 다름이 없었다.
나는 선주에게 “속도를 줄여보시오.”하고 말했다. 선주가 속도를 줄였을 때, 나는 “잠시 내가 한 번 운전을 해봅시다.”하고 말했다. 선주가 자리를 비껴주었고, 나는 운전대에 앉아 핸들을 잡았고 가속을 하기도 하고 저속으로 운항해보기도 했다. 배는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달려주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뱃머리가 소록도를 향해 가도록 핸들을 틀었다. 얼마쯤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나아가게 핸들을 틀어보기도 하고, 왼쪽으로 나아가게 틀어보기도 했다. 속도를 완전히 줄인 다음 후진시켜보기도 했다. 배는 말을 잘 들었다. 이 정도면 얼마든지 운항할 수 있을 듯싶었다.
배 운전하기에 골몰하고 있는 나에게 선주가 말했다.
“배를 사신 다음에는 운전을 배우고 면허증을 습득한 다음에 운항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멀리 가려면 해경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바다 한가운데서 엥꼬 안 당하려면 기름을 충분히 부어 가지고 다녀야 하고요.”
운전 연습을 충분하게 해본 다음 자리를 선주에게 내주었다.
선주는 핸들을 잡고 뱃머리 너머의 바다를 내다보면서 말했다.
“연안바다에는 어장이 아주 많아요. 주꾸미 잡이 소라병줄, 낙지 통발 줄, 정치망, 미역발, 김발, 숭어 농어 도미 잡는 삼중망(三重網)....그 가운데서 가장 위험한 것이 삼중망이요. 만일에 삼중망에 프로펠러가 감겼다하면 배가 순식간에 뒤집힐 수도 있어요. 앞을 잘 보고 운전을 해야 하는데, 하얀 부표를 잘 피해야 해요. 위험하니까 구명대를 꼭 착용하십시오.”
도씨는 이제 더 시험운전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 선착장까지 배를 끌고 가서 정박하는 시험을 한 번 해보라고 귀띔했다. 나는 선주에게 “내가 부두로 끌고 가서 정박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하고 말했고, 선주가 나에게 핸들을 맡겨주었다. 나는 부두 쪽으로 배를 몰았다. 배는 뱃머리로 파도를 깨부수면서 부두를 향해 나아갔다. 부두가 가까워오자 속도를 줄였다. 뱃머리를 천천히 부드럽게 부두 옆구리에 댔다. 선주가 배를 부드럽게 잘 정박시킨다고 칭찬했다.
당장에 선주와 함께 농협으로 가서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돈을 지불했다. 이제 배는 내 것이 되었다.
도씨가 “이젠 낚시가게로 가자.”하고 말했다. 낚시 가게로 가면서 도씨가 말했다. “배를 가장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부두는 장재도에 있는데, 거기까지 왕래하려면 오토바이가 한 대 있어야 한다. 오늘 오토바이도 한 대 사버리자.”
낚시 가게에 가서 릴낚싯대를 두 개 사고, 줄낚시를 한조 샀다. 가게 주인이 인조 가짜미끼 한 상자를 내놓고 구입하라고 권했다. 인조 가짜미끼들은 종류가 수없이 많았다.
낚시질이란 어차피 미끼를 이용하여 고기를 속이는 행위인 것이었다. 신은 미끼를 이용하여 인간을 낚고, 인간은 미끼를 이용하여 고기를 낚는다. 나는 앞으로 전개될 나의 바다 여행을 상상하면서 낚시 장구와 구명대를 가방 속에 챙겼다. 낚시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오토바이 가게로 갔다. 도씨가 타기 쉽고 위험하지 않는 네 바퀴의 오토바이를 선택하라고 귀띔했다. “자전거는 잘 타시지요?”하고 가게 주인이 말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주인은 “그럼 금방 탈 수 있습니다.....좌우로 회전할 때는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하고 말했다. 도씨가 헬멧을 사야 한다고 귀띔했다.
나는 헬멧을 쓰고 핸들을 잡고 시동을 걸었다. 시운전을 했다. 천천히 달리다가 속도를 내보았다. 어질어질한 속도감 때문에 가슴과 전립선과 불알과 항문의 괄약근이 시큰거렸다. 한 5백 미터 달리다가 되돌아왔다.
나는 주인에게 “여기서 우리 집까지는 15 키로나 되니까 내가 거기까지 이것 싣고 타고 갈 수는 없소. 트럭으로 좀 실어다가 주시오.”하고 말했다. 주인은 나의 청을 뿌리치지 않고 오토바이와 낚시 장구를 트럭에 실었다. 트럭 뒤에는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기계가 달려 있었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오토바이를 실었다. 나와 도씨는 조수석에 탔고 주인은 우리 집에까지 실어다 주었다.
우럭 세 마리를 잡았다. 한 마리는 멸치 모양의 가짜미끼 를 먹으려다 걸리고, 다른 두 놈은 홀로그램 미끼새우를 먹으려다 걸렸다. 시장기를 참을 수 없었다.
도마와 칼을 꺼냈다. 우럭을 도마 위에 놓고 오른 손에 칼을 들었다. 왼 손으로 아가미를 잡고 비늘을 벗겨 긁어냈다. 배를 가르고 창자를 끄집어냈다. 갈매기가 머리 위를 선회했다. 저놈이 벌써 비린내를 맡았을까. 창자를 뱃전 너머 수면으로 던졌다. 갈매기가 하강하여 물에 뜬 창자를 채갔다. 내 우럭 요리가 계속되므로 아직 먹을 것이 더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 갈매기는 떠나지 않고 머리 위를 선회했다. 나는 갈매기의 처지를 생각하고, 포를 뜨기 전에 다른 고기의 비늘을 거스르고, 배를 갈랐다. 창자를 꺼내 수면으로 던졌다. 갈매기가 어김없이 하강하더니 창자를 채갔다. 만일 창자에 낚싯바늘을 달았다면 갈매기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도씨는 말했다.
나머지 한 마리를 도마에 놓고 비늘을 거스른 다음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냈다. 창자는 갈매기가 한 입에 삼킬 수 있는 크기였다. 창자를 던지려던 나는 당황하여 망설였다. 머리 위를 선회하는 갈매기가 세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어디서 날아와 합세를 한 것일까. 나는 우럭의 빨간 아가미들을 잘라냈다. 먹이를 세 개로 만들어 뱃전 너머의 수면으로 던졌다. 갈매기들이 급강하하여 그것들을 채갔다. 채간 먹이를 삼키고 난 그들은 멀리 떠나가지 않고 내 머리 위를 선회했다. 끼룩 끼룩 울면서 춤을 추어주었다. 먹이 값을 하겠다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인가. 문득 가짜미끼로는 물고기의 육신을 잡아 올리고, 진짜미끼로는 새의 영혼을 포획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투른 솜씨로 우럭의 포를 떴다. 척추와 거기에 달린 가시만 남기고 살집을 정교하게 발라냈다. 세 마리의 포를 다 떴다. 고기들이 별로 크지 않았으므로 살코기의 양은 많지 않았다. 살코기를 바닷물에 씻은 다음 가져온 생수로 헹구고 자잘하게 썰었다.
하늘에는 내 구름이 끼었으므로 햇살은 따갑지 않았고, 바람은 건듯건듯 불었다. 사발에다가 자잘하게 썬 회를 담고 물김치 건지를 송송 썰어 넣었다. 물을 알맞게 붓고 된장 반 숟갈과 고추장 반 숟갈을 넣어 풀었다. 맛을 보니 약간 새콤한데 싱거웠다. 식초가 생각나서 김치국물을 좀 붓고 된장 반 숟갈을 더 넣어 저었다. 아내가 만들어주던 된장물회의 맛을 어느 정도 흉내를 냈다. 사랑하는 도씨가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 맛이 좋다고 나의 바다 여행을 축하해주었다. 와인을 꺼내 코르크마개를 따고 종이 잔에 한 잔 따라 마시고, 회를 먹었다. 위 속에 외인과 회가 들어가니 시장기가 가시었다. 밥 한 덩이를 물회에 넣어 말았다. 후룩후룩 국물을 마시면서 회와 밥과 김치 줄거리를 씹어 먹었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다는 노래가 생각났다. 바다에 나와서, 포도주에 싱싱한 생선 된장물회에 밥을 말아 먹고 있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호사가인 것이다. 도씨가 말했다. ‘너는 가짜미끼 아닌 진짜미끼에 영혼이 포획되고 있다. 누가 던진 미끼인 줄 아느냐, 신이 던진 미끼이다.’
갈매기들은 지치지 않고 내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뱃머리에 앉아 나를 살피고 있었다. 배가 불룩해졌을 때 나는 그놈들의 영혼을 확실하게 포획하고 싶어, 도마에 남아 있는 우럭의 등뼈와 머리와 꼬리들을 칼로 자잘하게 쪼았다. 나는 날카로운 뼈와 가시들이 갈매기들의 목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더욱 잘게 쪼았다. 그것들을 수면에 던져주었고, 갈매기들은 급강하하여 그것들 가운데 몽근 것만을 주워 먹었다. 나만큼 확실하게 갈매기들의 영혼을 포획한 남자가 어디 또 있을까. 도씨가 말했다. “너만큼 갈매기들에게 잘해준 어부는 어디에도 없다.” 갈매기들은 다시 내 머리 위를 선회했다. 그들은 끼룩끼룩 노래로써 은혜 갚기를 하고 있었다.
도씨가 이제는 돌아가자고 말했다. 사랑과 정이 넉넉한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는 행운아이다. 가짜미끼 달린 낚싯대를 거두어 가방에 담고, 도마와 식기를 씻어 갑판 밑에 간직했다. 시동을 걸었다. 배를 몰았다. 뱃머리가 자잘한 파도를 깨부수며 나아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짓거리가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이렇게 너를 허비하느냐,’ 하는 소리가 내부에서 들려왔다. 허허로운 시공에 나 혼자 나뭇잎처럼 작은 배 위에 의미 없이 떠 흐르고 있다는 아픈 고독과 허무감이 엄습했다. 세상으로부터 유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여느 때 나는 낚시나 등산 따위로 나를 허비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나를 배반하고 있다. 유체이탈(幽體離脫)의 모순을 살고 있다. 나의 실체는 작가실 해산토굴의 텔레비전 앞에 누워 있는데, 내 영혼이 배를 타고 바다 낚시질을 즐기다가 돌아가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것 아닌가.
내 심사를 알아차린 도씨가 위로의 말을 던졌다. “너, 늘 너의 영혼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느냐, 옛날 중국의 시인 굴원(屈原)이 그의 어부사에서 한 말처럼 ‘모두가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회 한복판에 우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을지라도 늘 허허롭고 한가로운 세상에 유배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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