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수봉정(秀峯亭)
경상북도 기념물 제102호)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487
↑경주 수봉정(秀峯亭)
수봉 이규인(圭寅) 선생은 지금의 경주 외동읍 괘리(慶州 外東邑 掛里) 487번지에서 7남매의 막내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자(字)는 우서(瑀瑞)이고 호는 수봉(秀峯)이다. 선생은 경주이씨 27世 금산공(錦山公) 대수(大遂)의 9대손이다.
1919年 오늘의 수봉학원(秀峯學園-현 경주중고등학교)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수봉정을 건립하고 또 "이 수봉정(李秀峯亭)"의 이름으로 이제까지 주민들의 구휼사업을 위해 쓰던 재산을 등기하여 체계를 세워 본격적으로 교육, 의료, 구휼의 사회사업을 펼친다.
1930년대 초에 김성수, 안재홍, 송진우 등 민족지도자의 성원을 얻어 사립 경주보통학교를 설립, 구국의 인재를 양성하려 하였다.
이 학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주공립중학교로 개교되었다. 그러나 광복 후 선생의 유지대로 사학으로 환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본 건물은 선생의 선각(先覺)과 실천궁행(實踐躬行)을 배우는 도장(道場)으로서, 그 의미가 깊다.
공은 뜻을 오로지 실용후생(實用厚生)에 두었으며,, 백성들이 기아(饑餓)에 허덕이는 참상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5천석의 부자인 공(公)은 '의식주(衣食住)가 족한 나머지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라는 신념에서이다.
선생은 1936년 음력 5월 3일 수봉정에서 명을 달리하였으며 묘소는 경주시 소정산(현, 구정동 소재)의 영역에 모셔져있다.
광복직후 모금에 의한 건국 최초의 동상이 설립되고 드디어 1961年 공에게 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이어 유림에서는 공의 실사구시적인 사상과 업적을 높이 기려 근세 인물 백년사에서 사회사업과 육영사업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지원이 인정되어 향의(鄕議-지역민의 총체적인 의견)로써 설형(設享-향사를 설치)되는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정자는 1924년 서당인 비해당(匪懈堂)과 약국인 보인재(輔仁齋)를 갖춘 2층 건물로 건립하였으나 1953년에 현재와 같이 단층으로 개수하였고, 지역의 구휼사업 및 육영사업을 추진하면서 독립운동가에 대한 지원을 펼치던 곳이었다.
1993년 수봉정(秀峯亭)을 역사성에 의한 공적을 인정하여 경북문화재(慶北文化財)로 지정되었고 2차에 걸쳐 국비와 도비 및 시비로 보수하였다.
↑수봉정 기념물 표석
↑외삼문인 이인문
↑마당에 놓여있는 석재들.....
첫댓글 정말 훌륭한 분이셨네요.
기회가 되면 찾아보고 싶구요.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