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아침, 어제까지 이사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망월사역을 향했다. 모임장소가 1번출구인줄 알고 3번출구에서 나와 한길로 해서 북쪽의 1번출구 앞에서 기다리는데 아무도 없다. 정병기회원이 전화해주어 3번출구(남쪽)인 줄 알고 다시 그곳에 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린다. 정병기(김의정), 김정호, 유한준, 오창규, 박승욱, 정기섭, 김주홍, 이기후, 김영준, 서석범, 나까지 12명이다.
나 때문에 조금 늦어 미안했다. 10시 15분쯤 산행이 시작되는데 난 욕심을 내어 짧은 시간에 역앞에 있는 엄홍길기념관을 잽싸게 살피고 나와서 후미를 좇는다. 단체산행이니 기념관을 더 볼 시간은 없고 시간 있을 때 찬찬히 살펴야겠다.
뒤에 가는 김정호회원과 정병기회원을 만나고 김회원이 길에서 족발과 막걸리를 산다. 꽤 큰 스케일의 도로밑을 지나 삼행길은 비교적 순탄해서 경사가 심하지는 않다. 망월사를 지나 포대능선에 오르면 고생은 끝일 거라고 누군가 이야기한다. 몸과 마음이 이사로 지쳐있는지라 그렇게 되길 바라며 후미에서 산행을 한다.
10시 46분 산악인 엄홍길씨의 집이 있던 집터에 도착했다. 국립공원의 정비로 인해 산속에 있던 집들이 다 헐렸고 그 와중에 엄대장의 집도 없어진 듯 했다. 자랑스러운 산악인이 살던 곳인지라 팻말이 서 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어 두었다.
산에서의 봄은 이미 꽃이 말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나무와 회색의 바위들을 보면 봄이 어디 있으랴 싶지만 연분홍 진달래와 노오란 생강나무꽃을 볼 때 봄이 왔음을 어이 부인하랴. 겨울이 가고 봄이 옴은 자연의 이치로 계절의 윤회이다. 이렇듯 자연은 순환하는데 인생은 어떤가? 일직선으로 죽음을 향하여 전진할 뿐이다.
불가에서는 윤회를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말엔 나이가 다시 시작된다는 뜻의 '回甲'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 60 이 되면 인생이 다시 시작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말 뿐일 터이다. 죽음으로 향하는 이 길을 어찌 돌릴 수 있을까? 한 순간 순간을 충실하게 살다 갈 뿐이다. 산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한 나의 인생이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11시 18분 덕제샘에 도착하여 물 한 모금을 마셔 보았다. 박승욱회원이 좀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조금만 오르면 망월사 절이다. 경사가 조금 가팔라진다. 힘을 들여 오르니 망월사이다. 먼저 오른 회원들이 종각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망월사에서 보는 경치는 꽤 좋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한다. 특히 서쪽으로 절집의 지붕곡선과 함께 보이는 암봉들의 자태가 매우 수려하다. 사진으로 찍어 둔다.
잠시 쉰 후에 능선을 향하여 전진한다. 12시 1분 포대능선과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목제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목이 마른 김에 막걸리 한 병을 꺼내서 나누어 마시는데 다들 그 맛이 일품이라고 말한다. 한 병은 점심을 위해 아껴 두었다.
포대능선의 험준한 코스는 서쪽으로 좀더 가야하고 이곳의 길은 험하지 않고 경사도 심하지 않아서 갈 만하다. 좀더 가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열심히 걷는다.
12시 27분 중식장소로 예정했던 헬기장에 도착하였다. 다들 식사를 꺼내 놓는데 반찬이 화려하다. 그러나 나의 중식은 김밥 두 줄이다. 어제 이사하느라 지친 하마부인이 아침에 밥을 준비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동네표 김밥을 사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염치없이 회원들의 준비물에 손이 갈 수 밖에. 김정호회원(일명 고산자)이 산행 전에 준비했던 막걸리와 족발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새로 나온 정기섭회원의 준비물이 특히 진수성찬이다. (앞으로도 기대해 본다면 압박일까?)
식사를 끝내고 다시 전진이다. 조금 더 가면 험난한 곳이 나올 터이다. 난코스 직전의 봉우리를 지나 드디어 포대능선의 최고 난코스에 돌입했다. 쇠말뚝에 쳐진 줄을 잡고 좁은 돌틈을 헤치며 거의 수직인 암벽을 오르내려야 한다. 체력소모가 제법 되는 곳이다. 그러나 한가지 다행인 점은 이 길을 일방통행으로 정한 일이다.
최근 일인데 이곳 난코스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동쪽(망월사쪽)에서 서쪽(자운봉쪽)으로만 가도록 정해져 있다. 길이 좁기 때문에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면 한쪽에서는 반대편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었는데 일방통행의 지정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듯이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들도 하나하나 해결되어 나가길 기원해 본다.
난코스를 통과하는데 예상보다 힘이 들지 않고 시간도 그닥 걸리지 않았다. '인생사 닥치고 보면 못 할 일은 없다'는 호기로운 생각도 든다. '그분께서는 견딜 수 있는 시련만을 주신다'는 말씀도 생각이 났다.
난코스를 마치고 약간의 성취감을 느꼈다면 어렵게 생각되었던 이사를 무사히 마쳐서인지도 모르겠다. 살던 집을 전세놓고 좀더 넓은 집으로 전세를 들어야 했는데 전세들 사람을 구하고 이사갈 집을 구하는 것이 근 6개월이나 기다려야 했었다. 드디어 작자가 나타나고 계약이 성립되었다. 부족한 돈을 빌리고, 이삿짐센터와 계약을 하고 , 도배와 장판과 페인트칠을 맡기고, 이삿짐을 싸고 버릴 것들을 골라내고, 전화와 인터넷을 옮기고, 모자란 가구를 사고, 부족한 커튼을 장만하고 동사무소(주민 센타)에 가서 주소를 바꾸고 또 확정일자를 받아야 하는 둥, 8년만에 해 보는 이사인데 제법 신경 쓸 일이 많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 나가니 도움이 안되어서 하마부인과 둘이서 이사 준비와 뒷치다꺼리를 다 해야만 했다. 하마부인의 고생이 컸다.(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샜다. 산행을 하면 몸은 힘들지만 마음속의 생각들이 정리가 되어서 좋다.)
난코스를 지나 자운봉을 앞에 둔 삼거리에서 대오를 정리하기 위해 잠시 쉬었다. 3시반까지 우이암 밑에 도착해야 한다고 산행대장인 유한준 부회장이 서두르다고 한다. 우이암에서 암벽을 타는 회원들과 조우하기 위해서이다. 암벽팀은 오전 10시 우이동에서 만나 우이암을 등반한다고 하였었다. 그 와중에 김주홍회원과 정기섭회원은 신선대에 올라갔다 오겠다며 떠난다.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여 몸을 사리는 나의 부러움을 산다.
우이암까지의 길은 두세번의 하강과 상승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우이암 직전의 전망대에 가서 사진촬영을 같이 하기 위해 모이자고 하고 다들 걸음을 내딛는다. 능선 길인지라 걷기에 적당한데 몇개의 하강과 상승이 있는 지점에선 약간의 힘이 들기도 했다.
오후 3시 5분. 고무판이 깔린 부드러운 표면의 계단을 힘들게 올라 드디어 동쪽과 북쪽으로 넓게 열려 오봉과 자운봉은 물론 상장봉까지 조망되는 전망대에 섰다. 여기서의 경치는 언제 보아도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회원들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지척이 우이암인데 시간은 3시를 조금 넘겼다. 원래 예정시각인 3시반보다 빨리 우이암 아래에 도착할 것 같다. 3시 10분 우이암을 보며 진행한다. 바위위에는 몇 팀인가의 자일 파티(록트라이밍 팀)가 있다. 거기 우리 회원들도 있을 터인데 잘 보이지는 않는다. 드디어 우이암이 보이는 봉우리를 지나 우이암밑에 도착했다. 휴대전화 교신으로 이미 상황은 파악되었는데 우리 바위 팀은 정상 밑 마지막 피치를 남겨 놓고 있는데 그곳을 다른파티가 오르고 있어 정체되어 있는 상태이다.
드디어 바위 중턱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회원들의 모습이 보이고 손광윤회원이 반가히 손을 흔들어 준다. 워킹 팀은 휴대의자에 앉아서 바위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구경한다. 시간이 흐르는데 아직 정상으로의 등정은 시작이 안된다. 4시가 가까워 온다. 김주홍회원과 정길섭회원이 도착하고 뒤쳐져 있던 박승욱회원도 바위 밑으로 도착했다. 박승욱회원이 술과 홍어를 내 놓아 나누어 먹었다.
암벽 팀은 정상 등정을 기다리다가 계획을 수정하여 하강하기로 한다. 워킹 팀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기다리기엔 앞 팀에 막혀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워킹 팀과 바위 팀은 반가히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각자의 취향에 맞춰 같은 산에서 워킹과 록크라이밍을 수행한 오늘이야 말로 우리 산악회의 새로운 기록이자 훌륭한 이정표가 아닌가 생각된다.
회원들을 추스려 보니 정병기(김의정), 김정호, 이기후 회원이 먼저 내려갔다. 이기후회원은 약속 때문에 먼저 떠났고 정, 김 두 회원은 산밑 주막에서 약주를 하며 기다린다고 한다. 김주홍회원이 그 둘을 지원하기 위해 먼저 떠난다.
우리들은 우이동 종점 근처 원석이네 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엔 진달래가 보이는데 편한 길인지라 걸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회원들도 많았다. 그런데 하산길을 거의 다 갔을 때 이훈상회원이 마중을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기다리기에 지루해서 잠시 소풍으로 생각하고 올라온 길이었다. 회원들을 빨리 보고 싶어하는 이훈상회원의 마음씨가 정말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원석이네 집이라는 음식점에서의 뒷풀이는 약간은 떠들석하면서도 즐거운 자리였다. 소주와 맥주와 사이다가 목을 넘어가는데 화로에선 맛있는 찌게가 끓고 있었다. 생각컨대 그 순간 회원들의 피도 끓고 있었다. 훈풍이 감도는 분위기여서 모두들 아름답던 젊음을 되찾은 듯 했다. 아니 되찾았다! 건배와 건배 사이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우정이 꽃피는 그런 자리였다.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날이다.
(아래에 산행 때와 뒤풀이 때 찍은 사진을 몇장씩 실었습니다. 구글로 보는 산행트랙은 '구글어스로 본 한국의 산들' 이라는 게시판으로 옮겼습니다. 참고하십시오.)
첫댓글 넓은 집으로 이사하신것을 축하드리고 바쁘신중에도 산행기를 꼼꼼히 기록해주셨네요...메모도 안하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기록을 하시는지....그저 부러울 다름입니다...
처음 산행 이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게 대해 주신 선배님,후배님들 감사합니다.... 거기다 칭찬의 말까지 해 주셔서~~~~ㅎㅎㅎ 그리고 엄홍길씨 뒤의 바위 이름은 개구리바위 라고 합니다.... 암벽 하는 분들이 인공등반 훈련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