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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의 성립(?), 사적 소유
2022 10 08 한로(寒露)
인간이 사회라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토지의 공유화, 교육과 의료의 무상화, 하늘길ㆍ땅길ㆍ물길 등의 선형화의 길을 공공화 하는 것이 공동체의 삶을 명랑하고 즐겁게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서양 철학사에서 입말이 쓴글로 전승되기 시작하면서, 하늘과 땅의 상대적 대립과 동등성에 대해 인간들은 고민하였다. 천지는 상응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한참 후대에서야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생겨나지 않았던 시절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 시절에 이 땅이 풍성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에도, 공상은 그렇지 않다. 그 상상은 인간의 바램이 투영된 것이다. 기복신앙의 기원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이 각각 자기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자기 변화를 하는 과정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역사상 그리 오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에 인간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있고 난 뒤에, 그리고 무수히 세월이 지나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인간의 필요에 따라 둘 사이의 연관지어 생각했을 것이다.
서양 철학사 이전에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그래도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를 신화나 종교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런 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성립에 관하여 생각하기보다, 이 둘 사이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즉 자연에 기대어 자연을 이용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고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 각각은 유한하고 일회적이며,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환원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자각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느 종교적 심성에서도 영원과 회귀를 담고 있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을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영원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적과 같이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도 생명있는 존재는 땅위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간다. 산다는 것, 앞선 이들의 이야기를 잘 새기고 사모하여 현존의 삶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살았으리라
신화든 종교든 전설처럼 전승되어 이어져 오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추억들을 되새기는 것에서, 하늘과 땅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삶에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 깨달음이 삶에서 유용하다는 것, 또한 새로움을 발견하고 발명할 수 있는 길을 열었을 것이다. 인간은 그 사이에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다는 것, 즉 멀리 있는 지평선에서나 더 멀리 바라보는 바다의 수평선에서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다고 해서 두 경계 사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겠지만, 그 둘 사이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추억들의 이야기의 전승을 엮어보면 알 수 있다. 추억들의 단편들을 하나의 기나긴 이야기로 연결하며 살아가는 것은 소중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이 단편들의 이야기를 입말로 전하면서, 그 앞 시대에 살았던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들이 신들이 되고, 그들 뒤에 남은 인간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앞선 인물들의 삶이 현존의 삶에 연결성이 있다고 여겼으리라. 하늘과 땅 사이의 지평선이 경계가 아니라 연결 면(面)이듯이, 선대와 후대의 삶의 연결점은 기억에 해당할 것이다. 이 기억은 공간의 연결 면처럼 길게 선을 이루기보다, 추억들을 뒤섞어서 덩어리고 부풀려져 있는 것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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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의 연관으로서 자연이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하는 만큼이나, 어제의 삶과 이제의 삶을 아제로 이어가는 인간이 있어왔다는 것이다. 이 인간이 의식적으로 막연하게 연결된 하나에서 천지(天地)라는 분할된 구성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하늘과 땅 사이의 어떤 관계인지를 생각하는 만큼, 인간 자신이 천지라는 자연과 어떤 연관 속에 있는지를 생각하였으리라. 좀 더 잘 또는 오래 살아보겠다는 의미에서 인간은 자연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를 생각하였으리라.
하늘과 땅의 문제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문제로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경우에 인간은 자신에게도 자연에게도 근본적인 근거에 대해 탐문했으리라. 그러면 인간은 어디서 왔느냐를 물을 수 있을 때가 되었고, 이로부터 세계(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느냐에 대한 물음을 먼저 생각했으리라. 신화와 종교에서, 그리고 사변적 사고에서 우주 다음에 인간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순서적으로 앞선 물음으로 우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이 선험성 또는 선천성을 인정하는 것임에도, 이런 물음을 깊이있게 사유하기에는 자료들과 조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앞선 물음을 물을 수 있는 자기에 대한 반성이 먼저 있었을까?
인간이 자기반성으로 자연(우주) 속에서 어떻게 생겨났느냐를 물을 수 있고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과거의 오랜 이야기를 잘 알 수 없지만, 있어왔던 이야기들이 전승되었기에, 약간의 시간적 간격이 있더라도, 자연과 인간은 거의 같은 생성 시기에 있어 왔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당연했으리라. 인간이 우주를 사고하는 것, 그것은 이미 상식(공통감관, 오관)이 통일성을 지닌 완성품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선험성만큼이나 통일성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서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이 신체를 갖추었다는 의미에서.
상식(공통감관, 다섯가지) 중에서 가장 활동적인 것이 눈이다. 간단한 지식은 눈으로 전승하는 것이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은 옆에서 보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기나긴 이야기는 눈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익힌다. 아마도 호머를 눈먼 봉사집단으로 전해지는 것도, 시각적(눈을 통한) 도구를 통해 전수하기보다, 입말로서 (귀를) 내밀하게 전승하는 것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일 수 있다. 브라만들의 리그베다 경전의 전수는 더욱 그러하다. 전승이란 어제를 이제 그리고 아제에 연결하는 것인데, 추억들의 장면은 우선은 눈의 지각작용보다 귀의 지각작용이 길게 이어진다. 눈의 방식이 보다 정확성을 갖고 또는 증거할 수 있는 것이며, 이를 쓴글로 표시하여 남길 수 있고, 그림(문자와 도형)으로 표시하는 오랜 기간 동일 방식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입말은 남길 수 없어서, 변형되고 축약되고 왜곡되기도 하며 사라지는 듯하지만 그 여운(너울)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단지 하나의 단어 주몽, 헤라클레스라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에서 그와 지금의 삶의 느낌이 퍼지는 것이다.
그림처럼 추억들로 이어짐이 소리처럼 기억으로 이어짐과 다르고, 그러고 나서 과거의 이야기 중에서 쓴글로 이어짐이 상위를 점하면서 인간이 의식적 차원의 이중성이 하나의 방식으로 통합되듯이 형성되고, 그리고 역사상으로 슬기인으로서 자격을 갖추었으리라. 이 시대가 고대 여러 문화들의 전승에서 토막글들로서 남게 되는 시기이리라 그 슬기인은 과거를 전승하고,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검증하고 증명하는 과정에서 제반 학문들이 발달할 수 있을 것이다.
쓴글이 그림으로 여러 문자들로 그리고 문법적 체계를 갖는 개별 언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입말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고 사라지지만 – 이점에서 문자의 기원을 논할 수 있어도 언어(입말)기원을 탐구할 수 없다는 것이 그럴 듯하다 - 문자는 계속 남아서 어쩌면 인간의 의식을 풍부하게 했을 것입니다. 학문은 이런 문자들을 통하여 체계를 세우다가, 문자만으로 당시의 현존을 폭넓게 연관 지을 수 없었을 때, 당시의 실재적이고 경험적 상태드을 검증하기 위해 과거의 유적과 유물을 중요시하였을 것이고, 나아가 지층과 지구의 역사까지도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이, 지구상에서 하나의 획일적인 선형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인간사는 하나의 통일성으로부터 사고하는 것은 착각이자. 허구이다. 그래도 편리성으로는 논리적이고 수학적 체계로 배우는 것이 유용하고 실용적이며 또한 도구적이다. - 이를 과도하게 신뢰하고 적용하는 데서, 인간중심주의 사고 즉 휴머니스트들이 나온다. 일찍이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휴머니떼르가 이기적 휴머니스트에게 밀려난 게 자본주의 현실이지만 .. -
그 문자들의 다양함은 입말의 다양함이 먼저라는 것을 추론하게 하다. 이처럼의 인간의 통일적 단선적 사고에 앞서서 총체적이고 확산적인 사유가 있었다는 것인데, 경험적 사실들에서 추론적 사고로 진행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추론적 통일성을 상위에 두는 생각방식일 것이다. 왜 통일성이 단선적 사고가 알려질까?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말로 귀신이 덮어 씌여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정복에 의한 약탈의 문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통일성이 먼저가 아니라 다양성이 있었고, 이를 하나로 만들려는 노력은 사고의 편리이지, 인간 각자의 삶을 교감하고 공감하는 삶의 풍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사고와 공감의 두 계열은 다른 길이었을 것이나, 어째거나 통일성과 단일성이 종교라는 이름아래 상식의 과학이 승리를 구가하고 있었다.
통일성과 동일성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서, 그 집단과 사회에서 벗어나서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시기에는 이치와 근거에 맞지 않는 쓴글에 따라서 그저 수긍하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쫓겨나서 위험하다고 하는 자연 속에, 허무하다고 하는 우주 속에 미아가 될 것이라는 공포를 심었고, 거부하는 자들에게 악마같은 자들이 자기를 악마성을 감추기 위해 선량한 이들을, 빨갱이로 몰듯이, 마남(마녀)사냥에 열중했다.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의 통일성과 단일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한 평생을 살아보면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은 여전히 입말 속에 남아있다. 인간은 과거로 환원할 수 없고 또한 다시 살 수도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로 환원불가능하며, 통일성으로 회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이 긴 영속을 갈망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한다. 그 정은 교감과 공감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상정(常情) 속에 아름다움(le beau), 인(仁) 또는 연민(la pitié), 자연처럼 스스로 이루어짐(la grâce)이 심성 속에 남아있다. 이 인간이 혼자서 행할 때, 자기의 모자람, 부족함을 알면서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심성에서 인간은 자기의 반성을 넘어서, 인간은 삶의 과정 총체를 성찰하면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이로서 자아가 성립할 것이다. 이런 성찰에서 어쩌면 통일성의 복속 또는 부속에서 벗어나 스스로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등장할 것이다. 이런 시기에 토지와 터전에 대한 성찰에서 자기 입말들이 등장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함께 소통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자의식의 발현이며 확장일 것이다.
엄청나게 기나긴 인류사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갈래를 치며 이루어 왔던가, 그래도 흥미롭고 슬기로운 이야기가 있는 금수강산과 8천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창조할 수 있는 권능이 있고, 그 권능을 현실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글. 한글이 일제를 벗어나서 자본제국을 벗어나는 하나의 길일 것이다. 평화통일영세 중립코리아. (55U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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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슬기가 있다고 해서, 자신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에 있다고 여기는 것은 눈의 작업도 아니고, 오히려 귀의 작업도 아닌 다른 것이 아닐까? 눈을 감아도 선하고 귀를 닫아도 들여오는 듯한 이야기를 전하는 선지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이 전하는 것은 추억들이라기보다 내재하는 내밀한 목소리(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아)가 아니었을까? 그 내면 소리를 여러 다른 쓴글로 표현되었다고 해서, 그 쓴글을 통해서 후세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그 목소리의 정체(l’identité, 동일성)를 알기에는 2천년 이상이나 지나 새로운 시대에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즉, 이런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즉 그림을 그렸던 구석기 시대이래로 입말과 쓴글의 동시적으로 통용되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무한정의 노력을 기우려왔었다. 그럼에도 오랜 상식의 시대를 거쳐서 데카르트의 양식에 이르러서야 자의식이 발동했다고 하고, 상부에 복속된 신하(sujet)가 자기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주체(sujet)의 시대로 들어섰다고들 한다.
자기의 정체성을 알려는 시기에도 하늘과 땅의 연대성을 지닌 것과 같이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의 연결자 정도라는 것이다.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 사이에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무(巫)라고 하던가? 인간이 주인이 된다는 것이, 그것은 인도의 싯달다가 보기에 거꾸로 탐만치(貪慢癡)에 빠진다는 것이리라. 사실 이 탐욕과 오만은 현재의 지성주의자들의 사리사욕(私利私慾)으로 공공재를 사적 소유로 바꾸는 것과 같다. 이런 지성주의자의 근거(raison)에는 사적 소유의 차지(전유)를 정당화하는 자본이라는 새로운 상부를 형성하였다.
인간의 손과 노력이 간 것을 자기차지라고 한 로크의 소유권에서 잘못되었지만 말이다. 이런 소유가 인간의 활동의 것이지만, 개인의 활동의 것이 아니라고 보았던 프루동에 의하면, 재산은 도둑질이다.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곳에서 자신의 삶의 범위 이상의 것을 소유하려는 것은 도둑질이라기보다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근대성의 발달을 광기의 역사로 보는 푸꼬의 이야기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고 중세에서 상층이 행한 악마화의 작업을 교묘하게 치장하여, 상층은 신과 왕 대신에 자본을 대치하면서, 저항하는 자들에게 빨갱이라는 덧을 놓았다. 웃지못할 사실들로서는 공동체의 삶을 강조하는 종교에서, 공동체의 잉여가치를 사적 소유를 전유하고, 게다가 그 재산을 대물림하는 기생충 같은 양아치들이 공정과 정의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허무화와 개돼지화의 사고 논법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아직도 고중세에 머물고 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잘 알고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라는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인간이 르네상스든 훈민정음이든 인간의 자의식의 발전에서 인간이 스스로 교감과 공감할 수 있는 사회를 성립시킬 수 있을까? 거의 5백년 이상이나 지났음에도데카르트가 말하는 자의식, 주체가 성립하기나 한 것일까? 어쩌면 훈민정음이 성립해서도 한문문화에 젖어있었고, 한글을 주장했더라도 일제와 미제를 겪고 있는 이 땅과 터전에서 상부에 대한 저항과 항거, 항쟁과 혁명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글로 입말과 쓴글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어쩌면 한글이 8천만과 금수강산을 이어갈 것이다. 그 세대가 자기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진실하고 실재적 자의식의 발현은 다양성이 실현되는 공동체에서 일 것인데, 그 실현에 입말과 쓴글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벩송 표현으로 “설탕물이 녹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4:36, 55U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