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환생
신성한 매실 758
한편, 최림은 전두태를 따르던 놈들의 근황이 궁금했다.
“서울에 남은 잔당들을 다 처리했어요?”
“아니, 잔당 처리는 나와 남은 팀원이 계속할 거야.”
“A팀? 아니면 B팀?”
“아냐. 남아 있는 자들로 새로운 팀을 만들 거야. ”
“거기서 누나가 팀장 하게요?”
“물론. 사무실은 계속 그대로 쓸 거니까, 너도 서울 오면 놀러 와.”
미오는 최림을 대견하다는 듯 한참을 바라보다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수애는 그날 밤 남아서 최림을 간호했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수애마저 대학원 수업으로 마저 서울로 떠났다.
그녀가 떠난 오후에 합동수사본부 요원들이 방문했다.
그들은 최림에게 본부장 명의로 표창장을 주었다.
최림은 사건 확인서에 서명함으로써 마침내 이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날 밤, 최림은 목표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허탈했다.
이제 경찰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고 수애가 있는 서울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미오가 극구 말리는 바람에 잠시 마음을 접었다.
대신, 지구대에 전화하여 휴직계를 썼다.
당분간 집에서 요양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최림은 부모님의 산소를 찾았다.
이어 스승이던 무림 거사의 무덤 앞에서 한참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할 때였다.
이상하게도 전두태의 기이한 웃음소리는 계속 들렸다.
우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하하!
그해 추석 무렵이었다.
역시 그날도 보름달이 밝았다.
그날 이후 지구대에 휴직계를 제출한 최림은 읍내 기사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식당 주인은 주문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TV만 보고 있었다.
이미 자리에 있던 손님들도 웅성거렸다.
“또 그놈들이네! 666인지, 뭔지.”
“666이 아니라, 전두태지. 그런데 놈은 죽었다, 하지 않았나?”
“뭘 그래? 죽든 말든, 이들이야말로 의인이야. 정말 속이 다 시원하다야.”
최림은 전두태란 이름이 나오자, 얼른 TV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여의도 광장에서 방화·살인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피해자는 이른바 우리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이비 교주라고 불리던 정○○ 씨, 이○○ 씨, 허○○ 씨 등 3명입니다.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현장에서 긴급 체포되었는데 총 2명입니다.」
그러면서 TV는 이례적으로 용의자 2명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명은 민서라의 수행원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김유리였다.
‘김유리?’
최림은 갑자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하는 노랫말이 생각났다.
‘유리가 왜 저런 일을?’
최림은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민채원이 자살하기 전에 한 말을 떠올렸다.
‘하하. 최 형사님 주위에도 우리 신도들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아, 놀랍게도 김유리는 놈의 신도였다.
그리 생각하니 최림은 일전 H 읍에서 꼬마에게 전두태의 편지를 건네준 이가 김유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예쁘지만 키가 좀 작은 언니였어요.’
아이의 말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최림은 그 여자가 민채원이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권 팀장을 당혹하게 한 두류산의 편지를 전한 이는 바로 김유리 형사였다.
그제야 최림은 그녀가 경찰서 방화 사건 이후 스스로 사표를 낸 이유를 알았다.
이어 앵커가 흥분된 목소리로 또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범인들은 순순히 체포되면서 그때처럼 인쇄물을 남겼는데요.
올 초 전국 10곳의 방화·살인 사건 때 뿌린 인쇄물과 너무 흡사합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 자들은 알량한 종교의 힘을 이용하여
다수 선량한 시민을 재산과 영혼을 갈취한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로서
전원 일치로 극형인 화형에 처함.
천년왕국, 전두태’
아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때 방화·살인 사건의 주모자인 전두태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민채원과 동반 자살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버젓이 그의 이름이 인쇄물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TV를 보던 최림은 온몸에 힘이 빠졌다.
믿고 싶진 않지만, 전두태가 부활한 것이다.
2,000년 전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한 것처럼 다시 살아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가 환생했다.
그러면 또 제3, 제4의 화형식이 거행될 것이었다.
그런데 처형 대상자가 바뀌었다.
예전엔 정통 기독교 지도자였지만, 이번엔 사이비 교주 대상이었다.
이에 영역을 확장한 것일까?
최림은 밥 대신 주인에게 소주 한 병을 청했다.
머리가 지끈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들은 분명히 천왕봉에서 밑으로 추락하였다.
그런데도? 아아 …….
‘추락하는 건 날개가 있다.’
하고 말한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말이 맞는 걸까?
그때 분명히, 전두태와 민채원은 천왕봉 정상에서 추락했다.
이후, 최림은 몇 시간 동안 그곳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충격으로 환청과 환시가 계속되어 그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보냈다.
그 와중에도 최림은 조 형사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긴 했다.
조민태 형사는 전두태 사건이 끝난 뒤, 합동수사본부가 해체되고 재차 산음 경찰서 형사팀의 팀장이 되었다.
그리곤 바위 위에 누워 비만 맞았다.
이후, 겨우 정신을 차리고 최림은 산에서 내려왔다.
곧바로 그는 인근 식당에서 만취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자신이 깨어났을 때는 읍에 있는 병원이었다.
병원에서 최림은 찾아온 지구대 소장에게 휴직계를 제출했다.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그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술이 오르자, 그는 곧바로 형사팀의 조민태 형사에게 전화했다.
“어! 최림. 오랜만이야. 글쎄, 몸은 좀 어때?”
“그저 그렇습니다. 그보다, TV 보셨죠?”
“그래, 우리도 이것 때문에 난리 났다. 어디야?”
최림은 마음이 급했다.
“그때 시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구? 아하. 전두태와 민채원 말이지? 그게…….”
“빨리 말씀해보세요.”
“그런 뒤, 폭우가 계속되었잖아.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어 일주일 후에 현장으로 간 것으로 기억이 나.”
“그래서요?”
“그러니까, 그게……. 민채원의 시신은 발견했는데, 전두태의 시신을 발견할 수가 없었어.”
최림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산짐승이 전두태의 시신을 훼손했나 봐. 핏자국만 있고 사체는 없었어.”
최림은 전두태가 그의 특기인 ‘순간이동’을 감행했다고 봤다.
그러기에 정황상 일부러 그의 피 일부를 바닥에 남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조 형사에게 할 순 없었다.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럴 수 있지. 그때 민채원의 시신은 바닥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에 걸려있었지만, 전두태의 시신은 바닥에 있었던 거로 추정해. 그래서 그만 짐승에게 훼손되었다고 판단한 거지.”
“그래서 수사를 종결했어요?”
“그랬지. 어쨌든 천왕봉에서 그곳으로 추락했다면 살 수는 없어. 민채원의 시체도 떨어지면서 바위에 부딪히고, 나뭇가지에 찔려 참혹했거든. 결정적으로 바닥에 전두태의 피가 낭자했어. DNA를 채취해서 국과수에 넘겼더니 그의 혈흔인 걸로 판명이 났어.”
최림은 그의 말에 긴 한숨이 나왔다.
아니, 화가 났다.
“아뇨! 전두태는 부활했습니다!”
“뭐? 무슨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냐?”
“아니, 죽었든, 살아있든 뭐든 그는 환생했단 말입니다.”
“…….”
“TV를 자세히 보십시오.”
“TV?”
“네, 인쇄물 맨 아래 그의 서명이 있습니다. 전 그 서명을 잘 알아요. 누구도 모방하거나 위조하지 못할 그만의 서명입니다. 분명히 그가 서명했어요.”
그러자 조 형사는 짜증을 냈다.
“그만 끊자. 지금 바빠. 그리고 너도 곧 들어올 준비나 해. 아무래도 이 사건 때문에 또 골치 아프게 생겼어. 끊어!”
조 형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직 휴직 기간이 한 달 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최림은 조 형사의 전화를 받았다.
“도와줘야겠어.”
“전 휴직 기간이고 또 아직은 지구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휴직 기간 종료 및 부서 이동은 이미 조치해두었어. TV를 봤으니 이 사건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 줄 알 거야. 내일 아침 9시까지 형사팀으로 출근해. ”
최림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캔 맥주를 꺼내 잘근잘근 씹듯이 마셨다.
전두태가 부활했다.
아니, 전두태는 살아있다.
아아, 나는 아직 놈을 잡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