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색깔을 덧씌워 놓았지만, 이것은 가족(家族)에 관한 영화이다.
‘가족(家族)’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화 “붉은 가족”은 이 국어사전에 없는 ‘사상과 이념으로 이루어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진짜 ‘가족’의 힘이 어떠한지를 풀어내고 있다.
암호명 ‘진달래’ 백승혜(김유미 분)는 조명식(시아버지 역할, 손병호 분), 김재홍(남편 역할, 정우 분),
오민지(딸 역할, 박소영 분)와 남파되어 가족으로 위장, 남한에 정착해 살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인질이 되어 버린 북한의 진짜 가족의 안녕을 위해 살인지령도 마다하지
않고 서슴없이 수행한다. 한편, 그들의 이웃에는 할머니, 부부, 손자(창수)로 이루어진 ‘창수’네가 살고
있는데, 한마디로 콩가루, 막장집안이다.
그러나, 영화는 갈 데까지 간 이 창수네 가족을 통해 위장가족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즉, 위장가족은 위계에 의한 질서는 있지만, 그들의 공동체(가족) 안에서는 각 개인의
공간(방)에서만 살고 있어 철저히 고립된 채 구성원간에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조명식이 암에 걸렸지만 그 사실을 구성원에게 철저히 숨기는 장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에 비해 창수네는 위계도 없고 서로 간에 존경심도 없어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곧 깨어질 듯이
위태롭지만, 혈연이라는 울타리를 통한 관용, 그리고 가족간에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며 싸움도 하고
갈등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행위조차도 가족간 소통의 일환임을 보여주고 있다.
위장가족에게는 진짜가족간의 그러한 갈등조차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위장가족들이 북한의 진짜가족을 위한 최후의 선택을 하면서 숨죽여 엿들었던 창수네 가족의
싸움을 그들의 역할에 맞게 재현하면서 정점으로 치닫는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문득 ‘피는 이념(사상)보다 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해체가 가속화함으로써 각종 사회문제가 급증하는 요즈음 위장가족의 한계를 통하여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붉은 가족」은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창수네 가족간의 싸움을 역할연기를 하면서까지 위장가족이 느끼고자 했던 가족이란 과연 무엇일까.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쓰고 이주형 감독이 영화화하여 2013년 11월에 개봉하였는데,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간혹 구성이 다소 치밀하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띄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 관람하시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2014년 1월 22일, 수,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