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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에드먼드 힐러리 경
민재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민재의 얼굴에 두손을 대고 어루만졌다. 영웅 산악인의 손을 민재가 덥석 잡았다.
“존. 민재 강. 정말 위대한 일을 했어. 뉴질랜드TV 7뉴스를 보며 눈물이 나더라고. 이 나이에 그리 쉽게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세상에서 제일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른 나. 그런 나를 세상 사람들은 큰 사람(偉人), 위대한 사람으로 여기는데.
삶의 현장에서 어려운 이를 위해 내 몸을 헌신한 존. 그런 자네가 내 생각엔 사람다운 사람(爲人), 위대한 사람이야.“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세상에서 영웅으로 칭송받는 분이 말씀하고 계신다. 민재를 두고 사람다운 사람,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민재가 안간힘을 다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빼냈다. 지갑 속에 넣고 다니다 삶이 힘들 때, 꺼내 봤던 5달러 지폐를 꺼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평소 존경했어요. 이 지폐에 나온 에드먼드 힐러리 경 초상만 봐도 힘이 났어요. 큰 바위 얼굴을 지금 눈앞에서 뵈니 떨려요.”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민재가 보여준 5달러 지폐를 보며 지그시 웃었다.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한다는 작은 징표라도 남겨줄게.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그 5달러 지폐 자기 초상 밑쪽에 뭔가를 썼다. 존 민재 강. 챔피언. 에드먼드 힐러리. 다음에 친필 사인을 해줬다. 날짜와 함께.
민재가 그 5달러 지폐를 에드먼드 힐러리 경으로부터 받았다. 사람다운 사람(爲人). 챔피언으로 부름 받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영웅의 친서.
민재가 그 지폐를 들고 한참이나 쳐다봤다. 이어서 살짝 입을 맞췄다. 다음엔 뜨거워지는 가슴에 대고 눈을 감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뭉클했다.
거룩한 의식(儀式. Ritual)을 치르는 성스러운 느낌에 모두 숨을 죽였다. 민재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지갑 속에 그 5달러 지폐를 고이 넣었다.
“평소 존경하는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정신적 유산을 받았습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오늘이 최고로 감동적인 날이네요. 감사합니다.”
민재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민재 머리에 두 손을 얹었다.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축복 기운을 불어넣어줬다.
이어서 두 팔로 민재를 꼭 껴안아 주었다. 과거와 현재의 영웅이 현재와 미래의 영웅 후계자를 기대했다. 그때 병실 안에 진한 장미향이 피어올랐다.
***
병원에 면회 온 방문자들이 모두 떠나간 자리. 민재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넘나드는 꿈속에서 날개를 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따라 다녔다. 그의 생애를 보면서 인터뷰 하듯 써 내려 갔다. 대학 시절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한 글쓰기 습관이 발동했다.
1953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 첫 페이지에 세계 최고봉에 선 에드먼드 힐러리 경 모습. 그의 나이 34세 때였다.
1953년? 그때가 언제인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절에 에베레스트라고!
그는 1919년, 오클랜드 남부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한국 삼일 운동이 일어난 해였으니까 까마득한 역사 속이었다.
에베레스트 최고봉에 함께 등반한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감격에 벅찬 에드먼드 힐러리. 그는 또 다른 에베레스트 거봉으로 우뚝 섰다.
세상은 그를 위대한 사람, 영웅으로 칭송했다. 사람들은 보통 여기까지만 생각해 왔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하면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탐험자라고.
민재가 보려는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민재가 20년전으로 회귀한 지금부터가 중요한 것처럼. 민재는 과거 지난 생에서 해야 할 일에 애쓰면서 살았다.
회귀한 지금 생은 더 치열한 삶이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회귀하고서는 하고 싶은 일을 더 하면서 살고 있다. 거기에 할 수 있는 일까지 더 하면서.
해야 할 일로. 지금의 택시일, 이어질 택시 회사 설립. 다음에 할 버스 운전 그리고 버스회사 인수. 뉴질랜드에서 운수 사업이다.
하고 싶은 일로는. 글쓰는 일이다. 수필에서 단편소설로 이어서 장편 소설까지. 세상 곳곳에 캠퍼밴 여행도 다니며 생생한 이야기를 건져 올리고싶다.
다가올 미래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 그땐 웹소설도 즐겁게 매일 쓸 거다. 독자와 소통하며 인생을 나누는 일. 서로 힘도 되며 사는 보람도 느낄 거니까.
할 수 있는 일. 남을 돕는 일이다. 우선 주변부터.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많다. 혼자 사는 세상 아니니까. 지금 내가 혼자 살아도 다 관계 속에 산다.
‘그러지. 해야 할 일은 현실적인 생계 관련 일인데. 거기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해보고 싶은 일, 취미나 적성 또는 달란트에 몰입하는 일은 뒷전이 되지.
할 수 있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해야 할 일에만 정신 쏟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 남을 돕는 일이나 사회봉사 또는 후원은 남의 이야기로 남고 말아.‘
민재에게 회귀 직전의 상황이 스쳐갔다. 그때도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회귀 전후, 민재 상황과 다짐이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왔다.
‘뉴질랜드에 이민 와 평범한 택시운전사로 살아왔던 47세의 민재 강!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즐겨 찾았던 베델스 비치 해안 절벽 트램핑 도중,
실족으로 바다에 낙하하고 죽음의 경계선에서 27세로 회귀인생을 산다.
예민한 후각 이능에 힘입어 선택과 집중의 천재 택시운전사로 등극하고,
뉴질랜드 택시업계와 버스업계까지 경계선을 넘어 거침없이 질주한다.
에드먼드 힐러리 탐험정신으로 통쾌한 성공을 펼쳐나가는 뉴질랜드 천재 택시운전사, 존, 민재 강!
20년간의 정보와 안목으로 다시 살 게 된 이번 생엔, 하고 싶은 일도 하고, 할 수 있는 일도 하며 살자.’
전 생에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2008년 오클랜드 병원에서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셨다. 민재가 택시운전하다 말고 파넬 성공회 성당 장례식에 참석했다.
성당에서 경건한 장례미사 곡이 울려 퍼졌다. 힐러리경의 장례는 뉴질랜드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나이 88세였다.
20년 전으로 회귀한 현재는 2003년. 극적으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만났다. 전생대로라면 지금 그 분은 83세다. 몇 년을 더 사시다가 운명하실 분이다.
민재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별세한 병원, 오클랜드 병원에 사고로 입원하고 있다는 사실.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순간, 그만 민재가 울컥했다.
‘꿈만 같지만, 몇 년 동안 같은 시대를 그 분과 함께 살아간다는 현실. 그 분이 옆에서 정신적 지주로 돕고 계신 이상, 더 소신껏 일하고 감사히 살자.’
민재가 마음속에 다짐을 한 뒤, 에드먼드 힐러리 경 회고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주요 장면만 살피며 감동부분 몇 곳에 잠깐씩 멈췄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오른 후, 내려왔다. 다음 은 최하층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분은 1967년, 살아생전부터 뉴질랜드 $5짜리 지폐에 초상으로 나왔다. 항상 서민들의 손에 있는 $5짜리 지폐로 환생이라도 하듯이.
에베레스트 산에서 그 분이 환하게 웃고 계셨다. 삶이 고달플 때, 바라만 봐도 위안이 되었다. 민재가 지갑속에 가지고 다니며 자주 꺼내 봤다.
전 생애에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연관된 에피소드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에피소드 하나.
이른 아침, 민재가 오클랜드 서쪽에서 택시 손님을 태우고 훼리 터미널로 향하던 중이었다.
교통체증이 계속되었다. 옆 좌석에 탄 할머니 손님이 안절부절못하듯 몸을 들썩거렸다. 창밖에 목을 빼고 앞뒤 차를 기웃거렸다.
아주 중요한 일로 훼리 여객선을 놓치면 큰일난다고 울상지었다. 헤드라이트와 양쪽 깜빡이 불을 켜고 경찰차처럼 비상 운전을 이어갔다.
손과 등에 땀이 배었다. 우여곡절, 좌충우돌, 위험천만을 피해 시내 브리토마트 훼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훼리선 떠나기 3분 전이었다.
시든 꽃처럼 풀이 죽었던 할머니 얼굴에 그제야 안도의 기운이 감돌았다. 할머니가 택시요금을 민재 손에 던져놓고 황급히 내렸다.
몇 발짝 뛰어가다 다시 돌아왔다. 지폐 한 장을 민재 손에 더 쥐여 주며 외쳤다.
“땡스 어 랏!”
어안이 벙벙했다. 할머니가 주고 간 팁, 지폐를 들여다보았다.
‘챔피언!’
뉴질랜드 5 달러짜리 지폐였다. 그 속에서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민재를 바라봤다.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챔피언이라고.
에피소드 둘.
민재가 교민 신문에 낸 칼럼 중 일부가 떠올랐다. 민재가 오클랜드 서부 지역, 와이타케레 산맥에 에드먼드 힐러리 발자국을 따라 트래킹 중이었다.
뉴질랜드 국민 영웅, 에드먼드 힐러리 경. 그의 위대한 정신은 곳곳에 살아 움직였다. 그를 기리는 안내 표식이 등산객들에게 손짓했다.
그가 살아생전 와이타케레 산맥 중 즐겨 찾았던 주요 코스가 잘 정비되어있었다.
등산객들을 위해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시청 삼림 보호 직원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힐러리 트레일’ 70km를 지정했다.
힐러리 트레일 코스를 안내하는 전 구간에 걸쳐 작은 표식말뚝을 세웠다. 그 말뚝 위에 네모난 안내 표지판도 붙여놓았다.
표지판에 새겨있는 에드먼드 힐러리 얼굴이 등산객에게 인사했다.
민재 역시 토요일이면 힐러리 트레일을 따라 삼림 속을 걸었다. 산과 바다를 낀 등산로를 걷는 트램핑의 별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평일 주중에는 일 속에 푹 빠졌다가 주말에 힐러리 트레일을 서너 시간 걷다 보면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동안 일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고단함이 땀으로 녹아내리고, 새로운 활력이 충전되었다.
안내 표지판에 새겨진 에드먼드 힐러리 얼굴이 뉴질랜드 지폐에 나온 초상처럼 환하게 웃었다.
에드먼드 힐러리 트레일, 트래킹 코스의 백미인 베델스 비치. 그 산등성코스를 따라 걸으면 광활한 세상 태즈마니아 해안에 압도되었다.
태평양의 웅장한 바다, 세상을 삼킬듯한 포말 파도에 가슴이 확 트였다. 그분이 섰던 자리에 민재가 발을 포개고 있는 게 아닌가.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폈다. 뭉클한 느낌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닮고 싶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미소 지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한 큰일을 먼저 해서 위대한 사람(큰 偉人)이 되었다.
그의 생애에 더욱 중요한 일은 정작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을 내려와서 시작되었다. 세르파로 함께했던 텐징 노르가이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남은 인생을 어렵고 힘든 텐징의 나라, 네팔 돕기와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히말라얀트러스트’를 만들었다.
그 헌신이 그를 위대한 사람(사람다운 爲人)으로 거듭나게 했다.
네팔에서 병원건설 일에 몰두할 때, 그의 아내와 딸이 위로 방문차 네팔로 오다 비행기사고로 카트만두에서 운명했다.
120여 차례에 걸친 네팔방문은 계속 이어졌다. 그 결실로 30여 곳에 학교와 20여 곳에 병원을 세웠다.
네팔 정부는 힐러리의 정신을 기려 에베레스트 관문 공항을 힐러리-텐징 공항으로 명명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과거나 현재나 뉴질랜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유는 무얼까 생각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주어진 여건에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이웃과 환경을 위해 산다는 것, 그 뒤끝은 울림 있는 마무리로 남았다.
서민들이 매일 쓰는 $5짜리 지폐에 남아 있어 볼 때마다 다시 에드먼드 힐러리경을 기릴 수 있어서 좋았다. 생활 속에 함께 살아있는 분이었다.
고국에서 뉴질랜드를 방문한 분들을 만나면 에드먼드 힐러리경 이야기를 의례 들려주곤 했다.
떠날 때 깨끗한 뉴질랜드 $5짜리 지폐를 봉투에 넣어 선물로 드렸다. 자녀들에게 그분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정신을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묵직하게 화두를 던졌다.
‘뛰어난 사람만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동기다. 진정 무언가를 원한다면 온 마음을 다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있는 곳에서 의미 있고 즐거운 일에 올인하라고 하셨다. 울림 있는 공감이었다.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위하여 다소 불편하고 힘든 것 열 가지를 감수하는 것이 이민 생활이 아닌가 싶었다.
위인(爲人)은 멀리 있지 않았다. 지갑에서 뉴질랜드 5 달러 지폐를 꺼내 들고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분이 환하게 웃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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