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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
앞에 올린 ‘오일 달러 도둑질’에 이란의 훈제칠면조 가공공장이 나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중앙아시아에서의 칠면조 수요와 이슬람교 신자인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할랄(Halal: 허락된 것) 식품과 먹으면 안 되는 하람(Haram: 허락되지 않은 것) 식품에 관한 설명이 나오는 다른 편을 옮겨 봅니다.
(소설 속의 시점은 2016년입니다.)
48. 코모도 중동 진출
“아, 예. 그렇군요. 세컨드 소스이다 보니까 군용장비를 납품해도 메리트는 별로 없는가 보네요.”
문도가 고개를 끄덕이고 신창원이 따라준 푸얼차(보이차) 찻잔을 받아 들었다.
코로 향을 맡아본 다음 한 모금 입안에 넣고 혀를 돌려 음미하는 척해보는데, 약간 시큼한 게 차라리 커피 생각이 난다.
여비서가 들고 온 다반 위의 주전자와 찻잔 등, 은은한 청자색 다기 세트는 품위가 있어 보였다. 꽃문양을 손으로 세밀하게 조각한 듯한 수제품으로, 모르긴 해도 수십만 원은 더 되지 싶다.
“참, 평택에서 큰 아파트를 짓고 있더군요.!”
차 맛이 어떠냐고 물어볼 것 같아서 문도가 얼른 평택에서 공사 중인 창원건설 얘기를 꺼냈다.
“아, 가 봤어요? 뭐 지금은 남는 게 별로 없어도 나중을 생각해서 공사실적 쌓느라고 그러고 있소. 국내에서는 맨날 해 봤자 그게 그거고, 해외로 나가야 제대로 된 목돈을 벌어 볼 텐데 말이요. 허허.”
“아, 앞으로는 해외 건설공사도 하실 생각입니까?”
“지금 막 중동 붐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건 알고 있지요? 이란에 엄청난 공사가 벌어질 거요. 굵직한 것들은 분야별로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벌써 MOU(양해각서)가 체결되었고, 하청업체를 물색하는 중이오.”
“그러시면, 창원건설도 하도급을 받아서 중동에 나갈 수 있겠네요?”
엊그제 평택에서 계두식이한테서 들은 풍월이 있어서 문도가 아는 체 장단을 맞춰준다.
“그렇소. 조그만 거 하청받아서 나가기는 할 거요. 그런데, 경험 있는 인부들 모집해서 파견하고 뒤치다꺼리 다 해 봤자, 고생만 실컷 하지 뭐 별로 남는 게 있어야 말이지!”
신창원이 이마에 갈매기를 짓는데, 영판 창원파 오야붕 인상이다.
“아, 예. 중동에 인부들 파견하려면 아무래도 인건비 부담이 크겠네요. 음흠.”
“이란에는 대규모 공사 말고도 관공서 건물이나 소규모 주택단지 같은 시장도 많이 있소! 그런 걸 직접 따낼 수만 있으면 대기업에서 하청받는 것보다 훨씬 짭짤할 건데 말이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창원건설이 총력을 기울여 직접 수주 영업을 하시겠네요?”
“그렇소! 다른 중소 건설업체들도 엄청나게 애쓰고는 있는데, 국내서도 잘 모르는 업체를 이란에서 누가 알아줘야 말이지! 이참에 우리 창원건설이 한 건 올려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오.”
신창원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문도를 지그시 바라본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창원건설도 이란에서는 네임 밸류 name value가 없지 않습니까? 이란에 창원건설하고 링크되는 회사라도 있습니까?”
“당연히 없지요! 그래서 회사지명도를 단기간에 올리는 방법을 한번 모색해보려고 우리 고 사장님을 보자고 한 겁니다.”
“예? 제가 뭘 어떻게…”
문도는 신창원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창원건설`, 하면 일반인들이 무슨 회사인지 잘 모르지 않소? 그런데 만약에 말이오, `비행칠면조 건설`, 하면 아하, 훈제칠면조 체인점 하던 `비행칠면조`가 건설회사를 차렸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지 않겠소?”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란으로 나가신다면서요? 이란사람들은 비행칠면조를 모르지 않습니까?”
문도가 신창원이의 어이없는 소리에 웃으면서 되묻는다.
“그래서 이란에 `창원칠면조` 전국체인점을 먼저 차리고 싶은 거요! 고 사장 비행칠면조가 호프집 차린 지 몇 달 만에 대박이 나서 별다른 광고도 없이 전국체인점을 시작했다면서요?”
신창원이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느냐는 표정으로 문도를 바라본다.
“아, 예. 그랬지요. 하하. 그런데, 이란에도 훈제칠면조가 잘 되겠습니까? 그 사람들 이슬람교 믿는 그 뭐냐, 무슬림이라서 혹시 칠면조 고기 안 먹는 거 아닙니까?”
골통 최근상이한테서 쫑코 먹으며 외워뒀던 무슬림이 금세 떠올랐다.
“하이고, 고 사장께서 이슬람교 신자 무슬림도 다 아시고, 뭔가 잘 될 것 같은 비전이 보입니다. 허허.”
“그거야 뭐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무슬림이 칠면조고기는 먹는가 보네요?”
“그럼! 돼지고기 빼고는 거의 다 먹는다고 보면 되고, 칠면조는 미국 사람들보다 거기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더 잘 먹어요! 우즈베키스탄 같은 데는 지역유지나 부자들이 송구영신 연말 파티를 칠면조요리로 한답디다. 이스라엘에서 칠면조 먹는 문화가 전파되었다나 봐요. 주로 경찰들이 사 가는데, 연말에는 예약해야 될 정도라고 하요. 칠면조가 영어로 이슬람국가 나라 이름 터키 turkey 아니오? 허허.”
사업가 신창원이 중동의 칠면조 수요에 대해서 사전 조사를 많이 한 모양이다.
“아, 그렇지요! 16세기 초에 멕시코산 칠면조가 스페인에 의해 유럽으로 들어가서 영국에서 대중음식화 되었다지요. 그래서 그 이전에 이슬람 쪽 터키에 있는 칠면조와 비슷한 뿔닭, 호로새 고기 먹을 때 사용되던 `터키 닭 turkey cock`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게 된 거고요. 미국에는 오히려 그 유럽 종이 100년 뒤 17세기에 건너갔다고 하지요?”
비행칠면조 사장답게 알고 있던 칠면조 역사가 기억난 문도가 신이 나서 읊어댄다.
“역시 우리 고 사장이 칠면조에 관해서는 해박한 전문가시네! 허허.”
준재벌 신창원 사장이 말끝마다 우리 고 사장, 우리 고 사장 한다. 뭔가 문도한테 긴히 부탁할 게 있다는 얘기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에도 비행칠면조 분점이 있다는 것 같던데. 거기에 무슬림이 많이 드나들지 않아요? 바로 옆에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이 있는데! 이번에 터키가 돈 들여서 개축한다면서요?”
신창원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문도를 바라본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에 서울로 유학 가서 개망나니 짓 하며 돌아다녔던 신창원이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사전답사도 하고, 각본대로 문도를 제압해서 제 뜻을 관철하기 위해 제법 고단수를 부리려고 한다.
“아, 예. 이태원 분점 매출이 제일 많습니다. 그런데 무슬림이 많이 오는지는 아직 파악을 못 했네요. 뭐,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다 보니까요. 하하.”
신창원이를 금수저 출신 조폭 오야붕 정도로 생각했던 문도가 허를 찔리고 움츠러든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흑표전차 엔진용 피스톤과 실린더를 생산하는 막강한 방위산업체 대도정밀을 운영하는 준재벌 사업가다.
“허허, 그거야 당연하지요! 아직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론 사업도 계속하실 거고. 작년에 진주 칠면조 가공공장도 인수했지, 사하라 주연으로 출연해서 촬영하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텐데, 비행칠면조 분점 사정이야 어디 신경 쓸 시간이나 있었겠소? 허허. 다 이해 하요.”
문도 사정을 이해해 주는 척하면서, 영화 사하라는 내가 큰돈 들여 영화 보급사 차린 덕분에 그만큼이라도 성공한 줄 잊지 말라고 압박한다.
“예, 그럼요. 그래도 영화는 사장님 덕분에 그만큼이라도 관객동원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창원의 공치사를 들은 이 대목에서 문도가 모른 척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그래, 그 진주 칠면조 가공공장은 요즘 어때요? 잘 돌아가지요?”
문도의 업무상 시간 비중을 떠보려는 속셈인가?
“아, 예. 공장장이 알아서 잘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낡은 기계를 교체해볼까 해서 외국 자료검토 하느라고 저도 시간 좀 보내고 있지요.”
문도가 가공공장에 뺏기는 시간이 적지 않은 걸 강조한다.
“아, 그래요? 가공 기계도 좋은 건 외국에서 도입하나 보네. 육류가공 기계도 감가상각 기간이 짧지요?”
“예, 뭐 컨베이어 설비는 기간이 길지만, 도축용 기계는 3년도 못 가서 교체해야 됩니다. 특히 훈제가공 기계는 1년마다 바꿔야 되고요. 그래야 제대로 훈제된 육질이 쫄깃하고 향이 좋은 고기 맛이 살아나니까요.”
문도도 사업가 기질은 있다. 공장의 주요한 사항은 어느 정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음, 그렇소? 기계설비 교체도 필요하겠지만, 운용하는 기술자들도 중요하지 않소? 특히 훈제기계는 노하우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나 금방 배울 수 있는 거요?”
이제는 종업원에 대해서 파악하려고 든다.
“아, 예.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오랜 경험에 의한 데이터가 남아있습니다. 재료의 섞는 비율이나 숙성시키고 굽는 시간 같은 거니까, 그대로 따라 하면서 기계에 맞춰주면 됩니다. 일종의 레시피 recipe 라고나 할까요?”
전국에 히트를 친 문도의 훈제칠면조다. 독특한 맛을 만들어내는 그 가공공정이 그의 말처럼 아무에게나 맡겨도 될 만큼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다. 그 레시피는 지정된 몇 사람만 열람이 가능한, 1급 보안이 유지되는 기술자료이기도 하고.
“음.. 아무래도 오랜 경험에 의한 비결이 있겠네! 아무나 할 수 있으면 개나 소나 다 유사한 훈제칠면조를 출시했겠지!”
신창원이 보이차를 새로 따라 문도에게 건네주고 자기도 마시면서 잠시 머릿속으로 뭔가를 깊이 생각한다.
“그런데 사장님! 아까 이란에 창원칠면조 브랜드로 전국체인점을 차리겠다고 하셨는데, 제가 공급해드린다고 해도 한국에서 거리가 너무 멀어 어렵지 않겠습니까? 식품 신선도 문제도 있고, 매일 비행기로 나르면 항공료 부담이 너무 클 건데요.”
자기네 비행칠면조를 공급해달라는 뜻으로 지레짐작한 문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그거야 당연히 안되지요! 운송 문제보다 더 큰, 현지 이란국가의 식품 허가를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소! 식품업체는 이란의 기존업체를 하나 인수해서 창원칠면조란 회사명으로 현지법인 설립하면 되는데,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할랄 식품과 먹을 수 없는 하람 식품의 규제가 아주 까다롭소. 지금 국내에서 유통되는 비행칠면조를 그대로 수입해 들여다가 유통할 수는 없어요. 허허.”
이미 이란 식품시장 조사를 다 마치고 훈제칠면조 사업을 구상한 신창원이다.
“아, 그렇습니까? 할랄과 하람 식품이 정해져 있어서 식품 조리과정도 체크가 되겠네요?”
“그렇소. 우선 육류도 이슬람 방식으로 도축된 고기만을 할랄로 인정하요.”
“이슬람 방식 도축이요? 어떻게 도축하는데요?”
“이슬람식 도축법은 `비쓰밀라(하나님의 이름으로)` 라고 외친 뒤에 날카로운 칼로 짐승의 목을 단번에 베어야 되요! 생명을 잃는 짐승의 고통을 최소화 해주려고 그런다네. 허허.”
“아, 그런 도축 방법 규제도 있군요! 역시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무슬림들이라 다르네요.”
생명을 잃는 짐승의 고통을 최소화한다고? 사람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놈들이!
과격 테러 단체 IS 대원들이, 몸이 결박되어 불안에 바들바들 떠는 포로를 꿇어 앉혀놓고 온갖 잡소리로 협박하며 떠들고 나서, 목을 가차 없이 베는 장면을 떠올리며 문도가 눈살을 찌푸린다.
“어찌 보면 잔인한 것 같아도, 이왕 죽일 거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겠다는 뜻이라니까 이해는 되요. 이란방식으로 칠면조를 도축하는 게 쉽지 않아서 문제지! 허허.”
문도의 속내를 읽었는지 신창원이 딴소리로 주의를 칠면조에 집중시킨다.
“그러면, 식품 조리과정에도 까다로운 규제가 많겠는데요?”
“크게 어려운 건 없소. 몇 가지만 지키면 되는데 특히, 돼지고기에서 추출된 젤라틴 gelatin 성분이 들어있으면 절대로 안 되요! 우리 한국 라면도 수프에 들어간 성분 때문에 할랄이 아니라서 먹을 수 없소. 케이크나 빵, 초코파이도 마찬가지라서 이란 제품은 폭신한 맛이 안 나요.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에서 추출한 아르헨티나산 젤라틴을 사용해서 그렇다 더만. 심지어 화장품도 철저히 성분분석을 해서 돼지고기나 알코올 성분이 들어가면 안 된대요. 허허, 참 웃기지요?”
“예. 그렇네요!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란에 아예 가공공장을 차리려고요?”
문도가 신창원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이제야 감을 잡아간다.
“그렇소! 그래서 오늘 우리 고 사장님을 좀 보자고 한 거요. 고 사장 도움 없이는 이란 진출이 어려울 것 같아서!”
본론을 꺼낸 신창원이 예리한 시선으로 문도를 바라본다.
이란의 중소규모 건설시장을 노리고 창원건설이 직접 공사를 따내기 위해서는 우선 `창원`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이란 국민들에게 심어야 하겠다.
단시간에 그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바로 이슬람 사람들이 잘 먹는 칠면조고기, 훈제칠면조 전국체인점 판매이다.
한국의 비행칠면조 수입 판매는 안 되니까, 이란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고 아예 가공공장을 차려야 되겠다.
그래서 국내 제일의 비행칠면조 가공공장 사장인 고문도,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쩔래? 도와줄 껴? 안 도와줄 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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