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누리길, 그렇게 아쉬운 또 하루가 지나가고
1.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비는 오지 않았고 하늘은 맑았다. 간밤의 비로 인해 그 많던 미세먼지도 사라지고 나뭇잎과 풀들은 신록을 자랑했다.
2.
출발지는 법기수원지주차장이다. 법기수원지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위치해 있다. 부산 지역의 일본인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한 흙댐으로 1932년에 준공되었다. 현재 법기 수원지의 물은 범어사 정수장으로 보내어 정수된 뒤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 두구동, 청룡동, 남산동 일대에 공급되고 있다.
법기수원지는 비 오고 적당히 안개 낀 날이 좋다. 그런 날에는 키 큰 나무들도 더 높아 보이고 수원지 물은 더 푸르게 보인다. 수원지를 둘러싼 산들이 아득하니 릴케의 시를 떠올리게 했다. 아쉽게도 이 날은 비는 그쳤고 안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월을 눈앞에 둔 신록이 빚어내는 맑은 초록이 안개 없는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천성산누리길의 시작은 정겨운 오르막길이었다. 전망대를 지날 무렵부터 바람이 몹시 불었다. 일행들 중에 살짝 추위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적당한 곳 정자에 둘러 앉아 간식을 나누었다. 잡채, 전, 쑥떡, 엄나무와 두릅 장아찌, 구운 계란, 여러 종의 막걸리 등으로 추위를 조금 덜었다. 가져온 음식이 많아 길을 걸을수록 배가 꺼지기는커녕 점점 더 불러왔다.
하산길은 오솔길이었다. 푹신한 흙의 감촉이 마치 비단길을 걷는 듯했다. 조금 경사가 있기는 해도 걷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점점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정선아리랑 한 가락을 구성지게 부르고 싶었다. 자연을 벗 삼아 산천을 주유하면 그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언젠가는 훌쩍 벗어던지고 외로운 길 떠나야지.....
3.
이정민총무님이 사전에 예약해둔 오리고기전문집으로 갔다. 이동간의 어려움은 오전에 항아리 닦느라고 누리길 걷기에 불참하신 저별고문님이 와서 해결해주었다. 오리고기는 생각보다 양이 많았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총무님은 늘 공주였는데 이 날은 무수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회장으로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분위기는 홍시헌부회장님이 주도해주셨다. 머슴이라고 머리에 흰 띠 두르셨는데, 스마일님은 왕관 같다고 하셨다. 아! 같은 사람이어도 보는 눈이 저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싶었다.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다. 다들 말씀도 잘하시지.....^^
4.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한 작은 암자를 찾았다. 스님을 만나 뵈었고, 부처님 앞에 인사를 했다. 암자 옆 폭포는 장관이었다. 비록 인공이어도 인공인 냄새가 적게 났다. 김수영 시인의 ‘폭포’라는 시가 생각났다. 올곧은 것에의 변함없는 의지, 아래로만 향하는 한결같은 마음. 그렇지만 폭포는 그 웅장함에서 비의 영향을 받는다. 이 날은 전날 비옷 탓인지 수량이 많았다. 그렇다. 아무리 강한 것이어도 절대 혼자만은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세상의 진리일 것이다.
암자 뒤에 자리한 저수지를 향했다. 사람이 거의 안 다니는 곳이라고 했다. 저수지에는 그 흔한 낚시꾼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저수지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편백나무 숲이 나타났다. 누군가가 매여 놓은 그네가 있었다. 김호규님이 익숙한 솜씨로 그네를 탔다. 뒤이어 새뜰님도 타고 린청님도 탔다. 다곡님도 타고 문연남님도 탔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그네를 탈 줄이야 누군들 알았겠는가?
저수지를 내려오니 스님이 마련한 찌짐에 일행이 가져온 막걸리로 간단한 곡차 나눔의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 많은 스님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5.
암자에서 헤어졌다. 아침에 온 대로 귀가했다. 아쉬운 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 날의 하루도 시간이 지나면 아련한 기억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 기억, 아름다운 기억을 하나 더 쌓는 것, 그게 나이 먹으면서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