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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꺼지고 장막이 걷히자 사람 얼굴 높이만큼 솟은 무대에 가수 싸이가 등장했다. 첫 번째 노래는 싸이를 ‘국제가수’로 만들어준 노래 ‘강남스타일’. 싸이 특유의 말춤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관객 모두가 팔을 꼬고 다리를 올려 신나게 몸을 흔든다. 싸이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고 무대에 오르면 싸이를 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착각은 금물. 무대 위의 싸이는 만질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허상에 불과하니까. 용인 에버랜드 안에 놀이기구처럼 마련된 홀로그램 공연장 'K팝 홀로그램' 얘기다. K팝 홀로그램 공연장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싸이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상설 홀로그램 공연장 중 하나다. 홀로그램 기술이 무엇이길래 진짜 같은 싸이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일까. 일반 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실감을 제공하는 홀로그램 기술을 알아보자. K팝 홀로그램 공연장에서 쓰이는 홀로그램 영상은 투명한 스크린을 이용한 기술이다. 투명한 스크린을 무대 위에 설치하고, 무대 밑의 관객은 투명한 스크린에 비친 영상을 본다. 엄밀히 말하면 진정한 홀로그램1)이라기 보다는 눈속임 기술에 가깝다. 그래서 이 홀로그램 기술에 붙은 이름도 '페퍼스 고스트(Pepper's Ghost)'이다. 혹은 스크린에 떠오른 영상을 본다고 하여 ‘플로팅 홀로그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페퍼스 고스트’라는 이름은 1800년대 극장에서 착시효과를 이용해 연극 무대에 환영을 연출한 극 연출가 존 헨리 페퍼의 이름에서 따왔다. 빛이 그대로 통과하기도 하고 빛을 반사하기도 하는 투명한 스크린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 이 기술에 쓰이는 투명한 스크린은 ‘포일(Foil)’이라고 부른다. 포일은 관객 방향으로 기울어지도록 무대 위에 45도 각도로 설치된다. 포일에 영상을 비추는 역할은 무대 밑에 은밀하게 설치된 또 다른 스크린의 몫이다. 무대 밑 스크린에 영상을 쏘는 일은 무대 천정에서 바닥을 향해 영상을 비추도록 설치된 프로젝터가 맡는다. 프로젝터에서 나온 영상이 관객의 눈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을 순서대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무대 천정에 고정된 프로젝터가 무대 바닥을 향해 미리 녹화한 영상을 비춘다. 바닥에 있는 스크린은 프로젝터가 쏜 영상을 담고, 무대 바닥 스크린에 반사된 영상이 다시 45도 각도로 무대 위에 설치된 투명한 포일에 비친다. 무대 앞에 있는 관객은 무대 천정이나 바닥에 있는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볼 수 없다. 무대 위 투명한 포일에 떠오른 영상만을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싸이가 등장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국내외에서 실제 공연, 전시 기술로 상용화된 홀로그램 기술은 대부분 이 방식을 따른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입체 영상이 떠오르는 홀로그램 기술을 본 적이 있는가. 영화 속 홀로그램 기술은 아직도 어렵다. 실제 쓰이는 기술이 영화의 상상력을 따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페퍼스 고스트 홀로그램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방법도 있다. ‘프리 포맷’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술이다. 프리 포맷은 무대 뒤에 설치된 프로젝터가 무대 위 스크린에 직접 영상을 비추는 방식이다. 여기에 쓰이는 스크린은 페퍼스 고스트 방식에 쓰이는 투명 포일과 다르다. 프리 포맷은 마치 모기장처럼 생긴 스크린에 영상을 직접 비춘다. 지난 2010년 일본에서는 가상 캐릭터 '하츠네 미쿠'가 프리 포맷 홀로그램 기술을 활용해 대규모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프리 포맷 방식은 무대 설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무대 위에 스크린을 기울여 설치할 필요 없이 직각으로 설치하면 되고, 무대 구조를 복잡하게 설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 프로젝터가 쏘는 빛을 관객이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실감이 덜하다는 게 단점이다. 포일을 45도 각도로 설치하는 페퍼스 고스트 방식은 프리 포맷 방식과 비교해 무대 설치가 까다롭다. 비용도 많이 든다. 관객이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볼 수 없도록 무대를 설계해 좀 더 현실에 가까운 홀로그램 영상을 만들어준다는 점은 프리 포맷 방식과 비교해 더 나은 점이다. ![]() 페퍼스 고스트와 프리 포맷 등 현재 쓰이는 홀로그램 기술은 입체안경 등 부가적인 장치 없이 3D 홀로그램 영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최근 공연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추세다. 프로젝터 성능이 전보다 발전했다는 점도 홀로그램 기술을 앞당겼다. 이 같은 홀로그램 공연에 쓰이는 프로젝터는 밝기 성능이 2만 안시(ANSI)급이다. 일반적으로 사무실에서 쓰이는 프로젝터가 3천 안시급 제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홀로그램 공연에 얼마나 밝은 빛을 내는 프로젝터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홀로그램 영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눈앞에서 싸이가 손에 닿을 듯 떠오른다고 상상해보라. 어두운 홀로그램 공연장 안에서 공연이 펼쳐지는 잠깐 동안 관객은 환상적인 3D 영상을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홀로그램 공연 기술은 영상 위에 기발한 연출을 더해 한 편의 공연예술을 완성해 나가는 추세다. 어떤 무대 연출 기법이 홀로그램 기술에 더해지느냐에 따라 관객은 더 나은 공연을 체험할 수 있다. 무대 연출 기법은 홀로그램 영상 기술과 맞물려 공연을 더 사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예를 들어 관객의 얼굴 사진을 찍어 무대에 올리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관객은 싸이와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때는 미리 제작한 싸이 동영상 외에 별도의 3D 렌더링 기술이 홀로그램 영상 위에 덧씌워진다. 재생 중인 영상 위에 관객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합성하는 과정이다. 가수 '샤이니'의 홀로그램 공연에서도 관객의 얼굴 사진을 영상에 넣어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홀로그램 영상이 무대에서 나오는 동안 실제 배우가 무대에 함께 등장하는 것도 관객의 눈길을 잡는 좋은 방법이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마련한 ‘샤이니’ 홀로그램 공연장에서는 마술사 복장을 한 배우가 무대에서 영상과 함께 공연을 펼쳤다. 마술사는 영상에 맞춰 미리 동작을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 예정된 동작을 선보이는 식이다. 무대 위에서 홀로그램 영상 속의 의자가 날아다니는 동안, 마술사는 의자를 따라 허공에서 손동작을 연기하면 된다. ![]() 미국에서 지난 2012년 열린 음악축제 ‘코첼라’에서도 배우와 홀로그램 영상이 함께 공연을 펼친 바 있다. 1996년 사망한 전설적인 힙합 가수 ‘투팍’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깜짝 등장한 것이다. 투팍의 얼굴을 담은 홀로그램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실제 가수 '스눕독'이 함께 무대에 올라 마치 옆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연출했다. 관객은 사망 11년 후 후배 가수와 함께 공연하는 투팍을 본 셈이다. 무대뿐만 아니라 홀로그램 공연장 벽면 전체에 영상을 비춰 마치 공연장 전체가 무대인 것처럼 꾸미는 '미디어 파사드' 기술이 접목되기도 한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 외벽을 마치 디스플레이처럼 활용해 무대 밖에서도 화면을 전달하는 기법이다. 원래 기업 제품발표회나 마술쇼 등 제한된 영역에서 이따금 쓰이던 홀로그램 기술이 문화 콘텐츠와 맞물려 공연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국내 가수의 상설 공연장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특히 활발하다. K팝과 한류 열풍 덕분이다. 홀로그램 영상 기술은 공연예술 외에도 조금씩 활용처를 넓히는 추세다. 박물관이 대표 사례다. 홀로그램 공연이 관객과 가수가 호흡하는 활동적인 콘텐츠라면, 박물관의 홀로그램 전시는 정지된 콘텐츠다. 해외 박물관의 예술품을 홀로그램 기술로 국내에서도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3D 체험은 홀로그램 기술을 떠받치는 중요한 특징이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물의 복제, 복원, 창조와 같은 경험이 관객에게 환상적인 체험을 줄 수 있다.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싸이의 공연을 매일 10여회 방영하는 공연장, 이미 십수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가수를 무대 위로 불러들이는 콘서트, 좋아하는 가수가 하늘을 나는 연출까지. 홀로그램 기술은 관객의 환상을 먹고, 공연예술과 전시 기술에 발을 뻗는 중이다. 발행2013.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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