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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음악성
7080부터 화려했던 여자 레전드. 음색이나 발성 감성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여가수 중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로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는 인물. 흉내내는 것조차도 불가능해서 그녀가 부른 노래라는 걸 누가 들어도 금방 알아낼 정도로 유니크한 음색의 소유자다.
한영애가 데뷔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여가수가 허스키하고 거칠게 노래를 부른다는 건 상상하기가 힘들었던 일이었지만 윤시내와 더불어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가 한국 가요계에 여성 보컬의 다양성을 가져온 것은 부정하기 힘들 듯. 물론 인기는 윤시내가 더 많긴 했으나. 또한 블루스 장르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음악적 스펙트럼에 있어서도 한영애는 R&B, 포크록, 트로트, 블루스 등 매우 다양한 장르에서 모두 그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은 대가이다. 1999년 발매한 5집에서는 트립합을 선보이기도 했고,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던 한국 가요들을 리메이크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고, 가장 최근에 낸 6집에서도 R&B, 레게 음악을 시도한 바 있다.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해 그녀가 보여주는 무대만을 보고 음악적 스펙트럼을 평가하기엔 앨범 디스코그래피가 너무도 아쉬울 정도.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 탓에 저음 위주의 가수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웬만한 여자 가수들도 소화하기 힘든 초고음을 난사하는 것도 매우 쉽게 하는 보컬. 어반자카파의 조현아(가수)는 봄여름가을겨울 방송에서 한영애 2집 타이틀 곡인 바라본다를 듣고 '이 노래 엄청 높네요ㄷㄷ'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그야말로 음역대가 엄청 넓다.
많은 무대 경험과 오랜 연극 배우 생활 덕에 이미 젊을 때부터 탄탄한 발성을 보유하고 있었고 목관리도 훌륭하게 되어 있어서 지금도 30년전 발표된 누구 없소를 음원이랑 똑같이 소화해낸다.
3. 디스코그라피
현장의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몇 안되는 한국록의 라이브 앨범 중에서도 독보적인 수작으로 뽑힌다. 2014년 8월 6일에 재발매되었다.
4. 트리비아
영화배우로서 활동한적이 있다.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서 까메오로 출연했는데 비록 비중은 적었으나 극중 꽤 중요한 역할이었다.
다만 1981년 2월 12일자 경향신문 기사에서는 26세로 나와 있었다. 한영애 팬클럽 코뿔소에서 팬들이 한영애를 부르는 애칭. 한영애가 본인 나이 소개를 할 때 항상 "28살 딸기띠입니다." 하는 데서 유래됨. 이유는 28살이 한영애가 생각하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던 황금같은 시기라고 함.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까 봐 나이 이야기는 잘 안 하는 것으로 알려짐. 딸기는 한영애가 좋아하는 과일. 다만 이후 한영애는 여러 방송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노래를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여러 번 밝혔다. '노래는 말하듯 하고, 대사는 노래하듯 하라'는 가르침을 얻기도 하고, 음악의 공간성을 체득하게 되었다고. 그냥 한 말이 아니라 진짜로 불렀을 수도 있다. 윤도현의 MUST에서 2NE1의 <Ugly>를 부른 것을 보면.. 아무래도 허스키하고 중량감있는 음색과 블루스의 궁합이 좋다보니 유독 인기가 많은 편이다. 다만 한영애 본인은 여러 차례 밝히기를 자신의 음악이 블루스 음악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전통적인 블루스 음악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며, '블루스의 여제'란 별명에 대해서도 특정 음악 장르에 구속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3옥타브를 가뿐히 넘어가는 고음들이 후렴에서 난사되는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곡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샤우팅도 해야한다; 게다가 전인권이 이 곡에서 코러스로 참여해서 코러스마저 높다. 술을 마시지 않아서 김현식과 동료들이 스튜디오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조금만 마시라고 하고 혼자 나오는 일이 많았다고. 2013년 5월 22일 엠넷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숲"에서 밝힌 내용이다.
조율의 가수 '한영애'의 인터뷰
[출처] 조율의 가수 '한영애'의 인터뷰|작성자 곡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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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누구없소' 등을 불러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한영애' 그녀의 인터뷰 기사다. 조금은 시간이 흘렀지만 한영애의 이 인터뷰기사를 통하여, 가수의 노래에 대한 생각, 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대중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등을 조금 엿볼 수 있고, 나아가 노래하는 사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노래 하나 하나에 담기는 가수의 열정과 고뇌와 깊은 통찰...등을 대중들이 과연 어느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중들은 좋은 노래에 흥겨워 하고 행복해 하면 된다. 그렇지만 가수에 대하여, 노래에 대하여, 늘 존중과 고마움을 잊어선 안되겠다. 먼저 선입견 없이 그녀의 노래를 들어본 후에 인터뷰기사를 일독하시길 권한다.
“음악은 오로지 음악만 생각하고 매진할 때 완성되는 것”
권오경 : 한영애가 말하는 한영애는?
한영애 : 노래하는 가수다. 인기가수. 70년대 말부터, 그 중간에도, 지금도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 없소'라는 노래로 나를 기억한다. 자주 팬들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여러분들과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권오경 : 한동안 공연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한영애 : 햇수로 3년 동안 거의 무대 활동을
하지 않았다. 자선공연이나 조그만 무대 공연만 간간이 했었다. 무대에는
자주 오르지 못했지만 5년째 EBS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를 진행 중이다. 방송이 굉장히 재미있더라. 그래서 라디오 활동만 열심히 했다. 사실 2003년 [Behind Time]을 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디서부터 시작 해야 하는 건지 몰랐다. 정확한 단어는 아니지만
슬럼프에 가까웠다. 슬럼프라는 단어가 어설프긴 하지만, 이제
난 노래가 하고 싶다.
권오경 : 세상에
'한영애'의 이름을 알린 2집 [바라본다] 이전의 역사가 궁금하다.
한영애 : '해바라기' 활동
이후 서울예술대학에 들어가 연극을 전공했다. 연극 활동을 7~8년쯤
했다. 그러던 즈음 어떤 쓸쓸함이 느껴졌고, 계속 연극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도 들었다. 우연히 음악 선배를 만났는데, 그
선배가 그러더라. 음악을 해야 할 사람이 왜 연극판에 와서 방황하느냐고. "내게 음악이란 세계가 있었지. 노래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5년 1집을 낼 때는 어떻게 노래해야 할지 몰랐다. 기획자가 하라는 대로
하니까 오히려 욕심 같은 게 생겼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고, 음악을 가다듬었다. 2집은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오경 : [바라본다]의 탄생에 대해서 얘기하면?
한영애 : 1집 [한영애]의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2집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가사를 써놓고 여기에다 어떤 사운드를 입힐 것인지 고민했다. 막막했다. 누가 어떤 음악을 얼마나 잘하는지 몰랐으니까. 무작정 김수철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홍섭이라는 능력 있는 친구를 소개시켜줬고, 그와
함께 [바라본다]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음악과 가사를 정리하고, 송홍섭씨에게 편곡을 의뢰했다. 녹음할 때는 많은 음악 친구들이 스튜디오를 찾았다. '바라본다'의 코러스 녹음 날에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김현식, 전인권, 윤명운 같은 분들이 와서 코러스를 자청하기도 했다. 유재하씨는 '비애'라는 곡을 주면서
"누나 이 노래 히트시켜야 돼"라고 말했다.
권오경 : 화려한 사이드 맨들이 참여했다.
한영애 : 우린 굉장히 치열했다. 에피소드가 나올 틈이 없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치열하면서 즐거웠다. 오로지 음악만 생각했다. 요즘도
2, 3집 만들 때처럼 음악만 생각할 수 없을까 자주 고민한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음악은 오로지 음악만 생각하고 매진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우린 그때 오로지 음악 하나만을 바라봤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바라본다]가 꼽혔다니 첫 단추를 잘 꿰어준 김수철씨와, 음반 전체를 꾸며준
송홍섭씨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권오경 : 당신은 인기가수였나?
한영애 : 당시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들으면 웃을 거다.
하루는 '젊음의 행진'에 출연하게 됐다. 담당 PD가 처음에는 세 곡 정도 부르라고 하더니 다음날 여섯 곡으로
늘리자고, 그 다음날은 아예 프로그램 전체를 저보고 다 맡아서 하라고 하더라. 그때만 하더라도 가수 한 명이 '젊음의 행진' 전체를 책임진 전례가 없었다. 내가 처음이었다. 카페마다 이 프로그램을 녹화해 틀곤 했다. 손님들은 "와, 한영애다"를
연발했다. 그 정도까지 인기가 있었는지 정확히 10년 뒤에야
알게 됐다. 공연이 끝나면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산에 오르거나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리 자주 무대에 오르는 편이 아니었다. 같은
콘셉트의 공연을 다시 하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콘서트를 하기 싫었다. 부끄러웠다. 연극을 했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1년에 공연 몇 번 하고 잠잠하고, 또 몇 번 하고 잠잠하고. 그러다 보니 내가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거다. 10년
뒤에야 내가 인기가수였다는 걸 알게 됐다.
권오경 : 가사도 노래에 큰 힘을
실어준 것 같다.
한영애 : 모든 노랫말에는 의도가 있고,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음반을 낼 때의 생활이나 정서의 변화도 생각하지만,
4분짜리 곡의 노랫말로서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노랫말을 쓰기
위해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 모든 건 일상에서 나온다.
권오경 : 일상이 궁금한데?
한영애 : 내 생활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많겠지만, 즐겁게
대답해드릴 게 별로 없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방송국 가서 방송하고, 세 끼 밥 챙겨먹고, 그림 구경하고, 책 읽고, 잠
잘 자고... 독특한 사생활이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난 정말 평범하다.
특별한 취미도 없다. 친한 친구들은 잘 알고 있다. 일상을
정말 잘 다스리는 사람이고 싶다. 밥 열심히 잘 먹고, 잘
걷고, 산에 가고... 그런 것들 말이다. 가사를 쓰기 위해 특별히 하는 건 없다. 다 일상의 일부일 뿐이다. 다 거기서 끄집어낸다. 결론은 사랑이라는 두 단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 말이다. 노래 잘하는
법도 마찬가지다. 시간 맞춰 밥 잘 먹으면 된다.
권오경 : '코뿔소'와 '북극여우'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
한영애 : [바라본다]에
실린 '코뿔소'라는 곡은 내 팬클럽의 이름이기도 하다. 팬클럽 활동에 거의 관여하지는 않는다. 1년에 한번 만나는 것 외에
특별한 교류도 없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끈끈한 유대 관계 같은 게 있다. 늘 고맙다. 3년 동안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항상 같은 마음으로
기다려준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표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설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무거워진다. 그들은 고마움의 대상이자, 내 힘의 원천이다.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다들 잘 있는 거지? '북극여우'는
내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자가 붙여준 별명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다만
스태프들이 추측한 게 있다. 자기네끼리 생각해본 거다. 고독하고, 도도하고, 거만하고, 까칠해서라나. 북극여우는 석양을 보면서 두 발로 선다고, 그래도 여우는 여우란다. 꼬리를 감춘 여우.
권오경 : 2003년
발표한 [Behind Time]에서 트로트를 소화했다.
한영애 :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서로 비례된다고 생각한다. 트로트 하면 젊은 날에는 지루하고 따분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음악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젊은 친구들이 나와 이번 앨범은 '힙합과 갱스터 랩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자주 보게 된다. 록이 어떻고, 재즈가 어떻고, 펑크가
어떻고 다들 장르 얘기를 한다. 장르가 뭘까 생각했다. 다들
장르만 얘기하고 음악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대중가요의 시작점에 대해 생각했다. 책을 뒤지니 트로트, 신민요, 동요가
우리 가요의 모태였음을 알게 됐다. 그게 트로트를 찾아 듣게 된 계기가 됐다.
권오경 : 그리고
그 트로트를 너무나 잘 불렀다.
한영애 : 트로트를 듣고 다니니 주변 사람들이 음반을 내보라고 권유하기 시작했다. 5집 [난.다]에서도 '봄날은 간다'를
불렀더니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트로트가 좋은 이유는 이렇다. 첫째, 노랫말이 좋다. 당시에는 시인 아니면 극작가들이 가사를 썼다. 들으면 경건해 진다. 둘째, 노래를
통해서 슬픔을 이겨내려는 감성이 좋다. 셋째, 트로트는 감정을
필터링해서 다음 감정을 드러내는 굉장히 정교하고 정갈한 노래다. [Behind Time]은 숙제 같은
음반이었던 것 같다. 트로트를 부르면서 최종적으로 느꼈던 것은 어떤 장르든 잘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권오경 : 새로
밴드를 결성했다. 젊다!
한영애 : 밴드 멤버들 대부분이 20살, 21살이다. 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비결, 젊게 사는 비결은 철이 없기 때문이다. 먹는 거 가지고 싸우고, 늦게 오면 싸우고. 그러면서 지낸다. 이 아이들하고 밴드를 결성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오랜 음악 친구인 한상원과 정원영의 권유 때문이었지만,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어렸을 때 누가 누구를 만나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이 친구들은 완벽한 개인기를 갖추고 있지만, 내공의
세월을 갖추지 못했다. 반면 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젊음과 패기가 없다. 나는 처음 시작하는 기분으로 임했고, 이 친구들은 긴장감을 가지고
엄격한 자세로 참여했다.
권오경 : 그래도 힘든 점은 있을 텐데?
한영애 :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함께 가는 이유는 내가 20년 뒤에 행복한 대중, 행복한
관객이 되고 싶어서다. 20년 뒤면 이 친구들은 굉장히 훌륭한 뮤지션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내가 음악 활동을 더 이상 못하게 될 즈음, 이들의 무대를 객석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래서 이들과 시작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어떤 열정이 이들에게 숨어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걸
끄집어 내주고 싶다.
권오경 : 향후 계획은?
한영애 :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다는 건 새로운 일을 꾸미겠다는 의미로 봐도 될 것이다. 이 밴드의 결성을 지켜본 친구들은 "새로운 사운드가 나오겠지" 예상을 했다. 맞는 말이다. 새롭다는 건 기준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 친구들과 자주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면서 서로 호흡도 맞추고, 그 새로운 사운드도 뽑아낼 계획이다. 올해에는 디지털 싱글이든, 정규 앨범이든 새로운 음악을 발표할 생각이다. 비밀이지만 모든 걸 다 섞을 계획이다. 요즈음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자꾸 들린다. 어떤 조합이 될지 모르겠지만, 많은
것들을 한 데 섞을 것이다.
권오경 : 음악 외의 계획은?
한영애 : 연극을 전공했고, 연극 배우였다. 요즘 연기와 음악을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모든
것에 대해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깊이로 갈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일 뿐이다. 언젠가 연극 무대에 다시 한 번 오르고 싶다. 영화를 할지도 모르겠고. 연극이든, 영화든 다른 예술 분야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조우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계획만 세우고 있을
뿐이다.
권오경 : "이런 한영애로
남고 싶다."라고 얘기한다면?
한영애 :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그냥 내 노래가 일상에서 한두 곡이라도 흘러나와 사람들 마음속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라본다]가 100대 명반에 선정된 것만으로 감사한다. 항상 부끄럽다. 음악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여러 목표를 설정한다. 명예를 얻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하는 목표 말이다. 내가 음악을 하는 목적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다.
장소 : 서울 논현동 플렉스 연습실
진행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http://www.gaseum.co.kr/ )
사진 : smooth
[출처] https://blog.naver.com/moonhdu/50193808702 조율의 가수 '한영애'의 인터뷰|작성자 곡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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