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의 향수
냄새만큼 생생한 기억도 드물다. 약을 달이는 냄새는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고 쑥과 망초의 후텁지근한 냄새 속에는 타 들어가는 고향의 들판이 있다. 여치와 산딸기를 찾아 가시덤불을 헤치고, 게와 동자개와 그리고 모래무지 같은 것을 쫓아 질펀히 흐르는 강을 헤매었다. 물고기의 비린내와 온몸에 감겨 오던 저 미끈거리는 녹색말의 냄새. 놓쳐 버린 어린 날의 나의 강은 언제나 그런 냄새와 함께 꿈꾸듯 기억 속을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아직도 돌아갈 수 없는 나의 고향. 유년의 꿈속에도 저 지겹도록 기나긴 신작로가 펼쳐져 있고, 몽롱한 의식 속으로 꽃가루처럼 날리던 벌떼의 웅웅거림. 그리고 7월의 폭양 아래 하얗게 피어 있던 찔레꽃의 진한 향기. 그 향기가 언제나 나를 멀미나게 한다. 갓 켜 놓은 목재의 송진 냄새와 바다의 찝찔한 소금 냄새가 또한 내 마음을 부풀게 했다. 그런 냄새는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언제나 하나의 축복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살던 마을 앞에는 큰 제재소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는 소나무와 전나무와 이깔나무와 자작나무 같은 아름드리 원목들이 넓은 공터에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곤 했는데, 그 거목들만큼이나 우람한 어깨와 완강한 팔뚝을 가진 인부들이 이마에 땀을 번득이면서 사철 목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헹야."
"헹야"
"헹야라."
"헹야."
졸음을 몰고 오던 저 단조로운 반복음, 인부들의 살갗에서 풍겨 오던 저 건강한 땀 냄새. 그리고 술 취한 사람의 얼굴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태양의 열띤 숨결. 무엇이고 다 잘라 버릴 듯한 기세로 흰 강철 이빨을 번쩍이던 회전톱의 위협적인 웅얼거림. 원목을 들이대면 깊은 잠에서 기분 좋게 깨어나듯. 거인의 하품 소리와도 같이, '쏴아아아'하고 후텁지근한 여름 공기를 잘게 가르며 울려 퍼지던 상쾌한 마찰음. 그리고 나무의 마지막 남은 부분이 둘로 갈라질 때, "팡"하고 터지던 저 경쾌한 파열음.
그것은 소나무 수관樹冠위로 부는 바람 소리처럼, 또는 소나기나 폭포의 쏟아짐처럼 싱그러운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오후의 한때를 나는 혼자서 통나무 더미 위에 앉아서 그 원목의 싱그러운 향기와 회전톱의 날카로운 쇳소리에 취해 있곤 했는지 모른다.
근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나가 버린 지금도 나는 한 잔의 송실주에서조차 저 싱싱한 원목들을 생각하고, 제재소를 생각하고, 회전톱의 경쾌한 음향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일 수 없는 그 건장한 인부들의 명목을 위하여 잔을 들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의 찝찔한 냄새. 여덟 살의 사내 아이였던 내 앞에 전개되어 있던 나의 최초의 바다는 몹씨 성이 나 있었고, 발정기에 든 암말처럼 번들거리며 나를 향해 돌진해 오고, 또 오고… 그러다가는 호소라도 하듯 내 발 아래 허연 거품을 쏟고는 다시 물러가고… 그리고 헛되이 거품만 남기고 아득히 수평선이 되어 돌아서 갔다.
지금은 바다는 나의 유일한 자연이고 결코 정복될 줄 모르는 나의 영원한 여성이지만, 여덟 살에 받은 감동과 경이는 이제 기억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그 후의 모든 바다는 유년기 바다의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찝찔한 해초의 냄새와 함께 바다는 언제나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거기 그렇게 지금도 누워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냄새 말고도 과거의 애틋한 영상의 뒤에 잔잔히 번져 오는 배음背音 같은 냄새도 있다. 첫수확을 알리는 햇감자와 옥수수를 찌는 냄새, 더위를 먹었을 때 향수병 속에서 솔솔 새어나오던 분홍빛 향수 냄새. 아버님의 피우시던 담배 냄새와 폭죽이 터질 때 "화"하니 끼쳐 오던 화약 냄새. 내 팔뚝에 최초로 주사바늘을 꽂던 무표정한 간호원에게서 나던 저 크레졸 냄새와 처음 맡았던 자동차의 가솔린 냄새.
이런 냄새는 쑥 냄새나 송진 냄새와는 다른,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이었다. 지금도 그런 냄새를 따라가면 거기에는 언제나 번화한 거리와 쇼윈도 안에서 웃고 있는 예쁜 마네킹이 있고, 잘 닦아 놓은 황금빛 트럼펫이 놓여 있다. 여덟 살의 내 유년은 얼마나 그 나팔이 가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기억 속의 냄새 가운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역겹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 냄새도 있다. 선향線香의 냄새가 그렇다. 될 수 있다면 멀리 도망치고 싶은 냄새. 그것은 죽음의 냄새였다. 내가 처음 그 냄새를 맡은 것은 옆집 주인이 어느 추운 아침 벌목장에서 동사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날이었다. 여인의 곡성과 함께 그 지독한 냄새는 며칠을 두고 온 동네에 퍼져서는 밤안개처럼 문틈으로 새어들었다.
나는 그것이 사람이 썩는 냄새라고 믿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 후에도 그 느낌이 달라지지 않았다. 선향의 냄새는 화장터에서도 났고, 눅눅한 절간에서도 났다. 선향 냄새 속에는 지금도 여인의 울음소리와 몽롱한 초상집 초롱이 있고, 울긋불긋 단청을 입힌 상여가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냄새가 그립다. 이런 냄새를 따라가면 거기에는 아직도 나의 유년의 저 순수와 모든 형상에 대한 경외감이 생생한 영상과 함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