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열차 기관사 3명이 3시간 내 3명 치어 … 철도 역사상 처음 일어난 ‘이상한 사고’
열차 한 대가 세 시간 동안 기관사 세 명이 바뀔 때마다 사망사고를 낸 엽기적 사건이 ‘열차괴담’을 양산하고 있다.
믿기 어려운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지난 5월1일 10시20분 전남 여수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새마을호 162열차(기관사 김길선)는 출발 26분 후인 10시46분, 여수시 율촌면 율촌역 인근 여흥 건널목을 건너던 이모씨(81·여)를 치는 사망사고를 냈다. 이후 기관사를 바꾼 이 열차(기관사 변기연)는 첫 사고가 난 지 2시간18분 후인 오후 1시4분쯤 전북 완주군 삼례읍 삼례역 구내 길이 12m 익옥천 교량을 지나던 강모씨(82·여)를 친다. 그리고 바로 35분 후인 오후 1시39분에는 전북 익산시 함열읍 와리 용성 건널목에서 자전거를 타고 무단횡단하던 구모씨(90)가 열차에 받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익산역에서 기관사가 바뀐 지 10분 만의 일이었다. 여수를 출발해 익산시까지 210km를 오는 동안 세 명의 노인이 모두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기관사가 운전한 같은 열차에 치여 숨진 것.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사고 조사를 마친 철도청이 내린 결론은 ‘우연의 일치’라는 것. 다만 국내 철도 역사 103년과 세계 철도 역사에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철도청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올 4월 말까지 건널목이나 철길 횡단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230명. 하지만 단일 구간 내에서 한 열차가 각기 다른 사망사건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꼬리에 꼬리 물고 ‘열차괴담’ 양산
철도청의 조사 결과 이번 사건에 기관사의 과실은 없었던 것으로 잠정 결론났다. 철도청 순천지역사무소 윤영철 조사팀장은 “기관사의 책임이 없으므로 아무런 배상 책임이 없고, 유족들에겐 위로비 명목의 장례비가 지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철도청의 이런 입장 표명과 관계없이 시중에서 구구한 ‘괴담’들이 떠돈다는 점. “저승사자가 급하다 보니 새마을호를 이용했다” “열차 번호 162호, 기관차 번호 7408호, 둘 다 각기 숫자를 합하면 아홉수, 마지막과 끝, 죽음을 의미하는 숫자들이다” “7408호 기관차는 지금까지 노인들만 100명을 죽인 귀신 붙은 기관차다” “올해 전라선에서 숨진 15명의 혼이 씌었다” 등등(철도청 홈페이지 게시판). 물론 이에 대한 철도청의 반응은 “사실무근의 허황된 이야기”라는 것.
하지만 이번 사건들에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목숨을 잃은 노인들은 각각 그 시간, 그 자리에 가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고 모두 무엇인가에 홀린 듯 건널목이나 철길로 빨려 들어갔다.
사고 이틀 전부터 친구 집(건널목 건너편)에 가지 못해 마음이 급했던 첫번째 희생자 이씨 할머니는 열차가 온다는 경보음이 울리는 상황에서도 지팡이를 짚은 채 건널목에 들어섰고, 두 번째 사고의 희생자 강씨는 철길 건너 자신의 과수원에서 일하다 전날 온 비로 철길 밑 도로가 물에 잠기자 철길 무단횡단을 선택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강씨는 이날 과수원 옆의 짧고 건너기 좋은 철길을 놓아두고 교량 위를 걷다 사고를 당했다. 평소 가는귀가 먹고, 눈이 어두웠던 세 번째 구씨의 경우는 더욱 이상하다. 건널목 차단기 틈새로 자전거를 타고 들어서는 구씨를 안내원이 온몸으로 제지했으나, 그는 오히려 안내원을 피해 열차가 오는 곳으로 자전거를 몰아간 것.
“정말 귀신이 씐 것인지, 굿이나 제사라도 지내야 할 모양입니다.” 마지막 사고 당시 열차를 운전했던 기관사 임수영씨(38)는 아직도 이 꿈같은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과연 여수발 서울행 162호 새마을호에는 귀신이라도 붙은 것일까. 수수께끼 같은 이번 사건의 전말은 죽은 자만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