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년4월30일(日)晴,雲---화왕산(火旺山)-관룡산(觀龍山)...해봉산악회(105명)
* 화왕산(756m)
위 치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구마고속도로에서 창녕읍으로 접어들면 왼편에 기암 절벽 같은 바위들로 병풍처럼 별쳐진 산이 시야에 들어 온다. 화왕산에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화왕산군립공원이다.
정상부에는 화왕산성이 있다. 이 화왕산성에는 옛날 화산활동으로 생긴 분화구가 못(용지)의 형태로 3개가 있다. 성내에는 잡목이 없이 억새만 자라고 있어 가을철에는 갈대제와 초봄에는 억새태우기 행사가 이루어진다.
봄에는 진달래,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억새, 겨울의 설경 등 사계절 산행지로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는 산이다. 드넓은 평원이 더없이 넉넉해 보이는 화왕산은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의 우국충정이 서린 호국영산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환장고개로 불리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넘어서면 바위 낭떠러지 위로 10리 억새밭이 웅자를 드러낸다.
화왕산하면 억새풀을 떠올리게 할 만큼 화왕산은 억새풀의 대명사가 되었다. 6만여평의 대평원에 십리 억새밭. 화왕산 억새밭은 산 위에 펼쳐지는 광활한 대초원이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옴팍한 대규모의 분지가 온통 억새꽃 하얀 솜이불을 두르고 있다.화왕산의 억새는 크기도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다. 화왕산 억새밭을 한 바퀴 도는 데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화왕산 억새밭은 새벽녘에는 또다른 진풍경이 펼쳐진다. 밀려온 안개가 푹 팬 초원을 가득 채우면서 초원은 하얀 호수가 된다. 안개가 억새꽃 사이사이를 지날 때면 억새밭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하얀 목을 내밀고 우유빛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듯한 선경을 이룬다.
가을에는 이곳 5만평 억새숲에서 국내최대의 산악인 야간축제가 벌어진다. 전국 각지에서 1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산신제와 의병추모제를 비롯, 통일기원 횃불행진이 펼쳐져 7백50 고지의 가을밤을 수놓으며 일대 장관을 이룬다.
화왕산은 진달래 명산이기도 하였으니 억새태우기 행사 등의 영향인지 화왕산성의 서쪽 사면에서만 진달래를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오히려 화왕산 보다 관룡산 정상에 이르기 전부터 관룡산 정상에서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6.5km 능선 등산로를 따라 중간 산악도로 이전까지 진달래가 이어진다. 기온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4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여 5월 초순까지 이어진다.
화왕산의 진달래 산행은 산행기점을 옥천리 매표소에서 시작하여 관룡사- 관룡산 정상- 하왕산 정상 - 창녕여중 코스로 잡는 것이 진달래산행을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 관룡산(觀龍山)
개 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고암면에 있는 산.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팔공산을 주봉으로 팔공산맥 중에 솟아 있다. 높이는 740m로 높은 편은 아니다.능선을 이웃하고 있는 화왕산과 더불어 봄에는 진달래, 가을이면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관룡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이곳에는 보물 제146호 관룡사 약사전, 보물 제212호 관룡사 대웅전, 보물 제295호 관룡사 용선대석가여래좌상, 보물 제519호 관룡사 석조여래좌상이 보존되어 있다. 인근에는 사적 제65호인 목마산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부곡온천이 가까이 있어 등산객들이 주말을 이용, 등산과 온천욕을 겸해 찾는 사람들이 많다.
등산로는 옥천리-관룡사-정상-청룡암-옥천리로 돌아오는 8㎞ 거리의 3시간 코스, 관룡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옥천리로 돌아오는 8㎞ 거리의 2시간 코스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창녕에서 옥천행 버스를 타고 관룡사에서 하차한다.
+ 관룡사(觀龍寺)
개 요
경남 창녕군 창녕읍(昌寧邑) 옥천리(玉泉里) 관룡산 남서쪽 화왕산(火旺山)에 있는 절.
종파: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394년
소재지: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산 남서쪽 화왕산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신라 8대사찰의 하나로, 394년(내물왕 39)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583년(진평왕 5) 증법(證法)이 중창하고 삼국통일 후 원효가 중국 승려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대도량(大道幾)을 이루었다.
748년(경덕왕 7) 추담(秋潭)이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1401년(태종 1)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堂宇)가 소실되어, 1617년(광해군 9)에 영운(靈雲)이 재건하고, 1749년(영조 25)에 보수하였다.
이 사찰에는 대웅전(보물 212호)과 약사전(藥師殿, 보물 146호)을 비롯하여 석조 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519호)과 약사전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11호), 용선대(龍船臺) 석조 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 등이 있다.
* 화왕산성(火旺山城)
개 요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玉泉里)에 있는 가야시대의 석성(石城).
소재지: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면적:18만 5724㎡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사적 제64호.1963년 지정. 면적 18만 5724m2. 조선 전기의 기록을 보면 둘레가 1,217보(步:1보는 6尺)이며, 성 내에는 샘이 9, 못이 3, 또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창녕뿐 아니라 영산(靈山)·현풍(玄風)까지를 포용하는 성으로서 군사적으로 주요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실용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다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적이 순식간에 대로를 따라 북상하게 되자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곽재우(郭再祐)의 의병 근거지였으며, 그는 이 성을 굳게 지킴으로써 왜군의 경상우도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1596년(선조 29)이나 전쟁이 끝날 무렵인 1598년에 비변사(備邊司)는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재인식하여 산성수축의 긴급함을 건의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산행코스:창령여중(10.40)-정상(12.10)-서문(12.30)-관룡산(13.55)-관
룡사(14.45)-옥천주차장(15.40) 총 5시간
*** 약 1개월 전 억새 밭 분지를 불태워 매스컴을 탔든 화왕산.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으로 빠져 달리다가 단석산 못미처 우측으로 또 하나의 지맥으로 흘러 비슬산을 솟구쳐 그냥 남쪽으로 달리는데 화왕에서 암벽과 분지를 일구고 내리 용트림하듯 일어서 암능이 꿈틀되는 관룡산 산행을 하기 위해 시민회관 앞에 나가니 [400차]기념산행.
그래서인가 관광버스 2대도 찾아오는 회원들을 모두 수용 못해 집행부는 입석에 간이의자와 승용차까지 동원한다. 그리고 사고로 한동안 나오지 못했든 임 대장까지 나와 열성을 보인다.
진영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하고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스카프, 타월, 양말 등의 기념품을 분배하는 집행부. 9시56분, 칠서T/G를 거쳐 10시26분, 창녕에 도착한다. 2차선 비좁은 도로에 정차하자 교통경찰관이 차량정체 이유로 조금 더 올라가라고 단속한다. 105명중 10명은 바로 관룡사 쪽으로 가고 95명이 비좁은 도로를 따라 창녕여중으로 올라간다.
10시40분, 선두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다리를 저만큼 둔, 왼쪽 등산로로 접어든다. 5분 정도 올라갔을까, 오른편으로 노란 바탕에 붉은 글씨로 [입산금지]란 깃발이 걸려있다. 선두는 이미 내 시야에서 벗어났고 그 뒤는 깃발을 힐긋 힐긋 보며 방울 소리 듣고 따라가는 양떼처럼 계속 뒤만 따라간다.
아니나 다를까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에 야구모를 쓴 젊은이가 헐레벌떡이며 올라온다. "아저씨! 여기는 입산금집니다! 여기 보십시오. 저렇게 다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일부 회원은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그냥 올라가고 10여명이 주춤해 있는데 곧 장년의 산불감시 요원이 손에 지폐를 움켜 진 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다.
"입장료는 주고 가야지 에!"
그 소리에 겨우 안도하는데 누가
"입장료는 산행 대장이 뒤따라오니 받으시오."
한다.
다시 나타난 콘크리트 포장도로. 10시55분, 스피커에서 설법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오는 [도성암]에 닿는다. 암자도 구경할 겸 들린 경내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는 회원으로부터 시원한 생수 한 컵을 받아 마시고 등산로가 뚜렷하지 않는 소나무 숲 속을 올라가는데 아가씨 두 사람이 소나무 그늘아래서 오이를 깎아 와작와작 맛있게 먹고 있다.
얼마 후 등산로는 경사지고 인위적으로 갈 지 자로 만들어 놓았다. 11시35분, 어지간히 진이 빠졌는가 노송이 있는 경사에서 선두 그룹이 휴식을 취하며 수통으로 나팔을 부는가 하면 주저앉아 간식을 하기도 한다. 잠시 이 광경을 촬영하다 계속 S자로 올라간다.
조그마한 억새 밭을 가로지르며 우로 푸른 숲 한 점 없는 거대한 암능과 암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올라간다. 그리고 누렇게 마른 억새의 등산로 변에 가지색의 제비꽃과 콩알만한 앙증 서러운 노란 야생화를 발견한다. 이런 헐벗은 산에도 싱싱한 생명의 약동이 있다는데 나도 모르게 불끈 힘이 솟구친다.
그러나 얼마 후 밀생한 소나무 터널 숲을 자나 치며 무수한 솔방울이 대롱 대롱 매달려 고사해 간다고 아우성 치는 소나무를 발견하고 가슴 아파한다. 솔방울이 유달리 많이 열려 있다는 건 종족 보존 본능으로 공해와 영양부족으로 곧 시들어 죽어가지만 나의 2세는 많이 퍼 뜨려 놓아야겠다는 식물의 종족 보존의 지혜인 것이다.
다시 나타나는 억세 밭 오솔길 중간에서 저 아래 뒤따라 느릿느릿 올라오는 회원들을 촬영한다. 주변의 경관도 살피며 느긋하게 걸어오면 좋으련만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해서 인가. 아니면 너무 힘들고 숨이 차서인가. 거이 앞사람의 엉덩이나 등산화의 뒤축만 보며 올라온다.
한 두 그루의 시들어 가는 진달래가 보기가 민망한데 정상이 저만큼 보이는 곳에서야 제법 짙은 분홍빛으로 떼 지어 채색하고 있다. [길벗]과 [우리들의 산]산행 시 안면이 있었든 B양이 정상을 바로 머리에 두고 주저앉아 지난 밤 새도록 얼려온 시원한 물병으로 목을 축이고 있다.
주변의 풍광을 촬영하고 그녀의 호의에 미쳐 녹지 않은 물병으로 찔끔되며 갈증을 달랜 뒤 계속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3년 전, [모여 산악회]를 따라 올라왔던 오른쪽 등산로 안부에서부터 원색의 등산 대열이 줄 이어 있고 이미 정상에는 많은 회원들이 멀리 바라보며 땀을 훔치고 있다.
12시10분, 해발756.6m의 정상비 앞에 도착한다. 정상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많은 등산객들. 그 아래의 비탈진 공터에 만세 삼창 아닌 야호 삼창을 서울에서 달려온 김 중령의 선창으로 약식 상봉 식을 마치고 [서문 성터]에서 점심식사 한다며 곧 출발한다.
등산객은 계속 올라오고, 계속 내려간다. 완만한 경사의 분지의 억새 밭은 말끔히 태워 밋밋한데 등산객들이 멋대로 밟고 지나다닌 무수한 길들이 서툰 이발사가 제멋대로 이발 기계로 밀어 부친 흔적처럼 흉한 몰골을 들어낸다. 북서쪽 암벽 비탈 쪽으로는 이미 시들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진분홍 진달래 군락들이 꺼져 가는 젊음을 아쉬워하듯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분지를 가로질러 [龍池洞天]쪽으로 내려가는데 30대의 한 젊은이가 양말도 벗어 재낀 체 맨발로, 돌출 된 밋밋한 바위 위에 큰 大자로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얼마 전 억새 밭을 무섭게 태웠는데 강인한 생명력으로 파릇파릇 돋아난 풀 사이로 노란 야생화가 앙큼하게 피어 있다.
그 틈바구니에 개미 두 마리가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해 매고 있는 약동하는 생명력의 마당이여! 세상살이 싫다고, 힘들다고, 비관하는 사람들에게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어 부지런히 촬영하고 있는데 일단의 무지막지한 젊은 등산화가 아슬아슬하게 그 옆을 짓밟으며 뛰어 내려간다. 저 아래에서 집행부의 베레모가 이리로 내려오라고 손짓한다. 물 끼가 질펀한 못 주변을 촬영하고, 12시30분, [서문]에 도착한다.
잔돌로 정성 드려 쌓아 놓은 [배바우]쪽으로 나가는 성문아래에 많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광경을 촬영하는데 친절한 B양이 성벽 위에서 여기 고기도 많으니 점심 식사하러 오라고 소리친다.
허물어진 성벽안쪽에 족발 집을 경영한다는 중년남자 등 3,4명의 낯선 얼굴들과 함께 둘러앉아 골동품 스텐 도시락 그릇에 담아온 김밥을 펼쳐 놓고 모처럼 느긋하게 식사하고 13시5분, 관룡산을 향해 출발한다.
오른쪽으로 [昌寧曺氏得姓之地]라고 음각 한 크다란 비석이 철책 안에 세워져 있고, 10여m거리를 두고 가스 버너에 코펠을 얹어 놓고 라면을 끓인다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그 옆 텐트 안에는 건장한 젊은이 셋이 나란히 한밤중 인양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
[동문]을 거쳐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 주변을 촬영하며 혼자 걸어가는데 하복부가 드부룩 하다. 아무래도 발산을 시켜야 시원할 것 같아 뒤돌아보니 따라 오는 사람 없다. 푸른 하늘과 진달래를 바라보며 마음놓고 가스를 뿜으며 잠시 신선이 된다.
등산로는 곧 차도로 변하면서 여기 저기 승용차들이 주차해 있고 오른편으로 샘터가 보인다. 노란 개나리 군락을 거쳐 [화왕산성(동문)2.8Km,옥천2.9Km]의 이정표가 보이는 지점에서
"아저씨! 힘드시겠습니다. 앞장 서 등산하시랴, 촬영하시랴, 피곤하시죠!"
옆을 돌아보니 30대 안경 낀 젊은이가 웃으며 따라온다.
"네, 그래도 생동하는 야생화나 곤충을 촬영하면 살아 숨쉬는 산의 정기 속에 있다는 생각으로 걸으니 오히려 활력이 넘치는데요. 피곤하다는 건 거이 정신적인 문제지요!"
젊은이는 수긍이 가는지 머리를 꺼덕이며 빙긋이 웃는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넓은 안부를 그냥 통과, 다시 비탈을 오른다. 13시55분, 헬기 한대 정도 마음놓고 앉을 수 있는 해발 740m의 펑퍼짐한 관룡산 정상에 도착한다. 여러 팀의 등산객들이 각각 모여 앉아, 혹은 서서 간식을 하는가 하면 갈증을 풀기 위해 수통으로 나팔 분다. 잠시 주변을 촬영하고 남쪽, 저 아래의 관룡사를 내려다본다.
급경사의 흙 먼지가 풀썩이는 등산로를 따라 잡목가지를 잡으며 조심조심 내려간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저 만큼 액세서리 배낭을 멘 아가씨가 바위사이로 난 등산로의 급경사를 엉덩이를 바짝 낮추어 내려가는데 조그마한 배낭이 지면에 질질 깔리며 내려간다.
14시15분, 중허리쯤 내려왔을까. 암반이 있고 그 사이 분재처럼 소나무가 비틀리고 있는 곳에 아가씨 두엇이 확 트인 풍광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편으로 관룡산 자락의 암벽이 금강산을 옮겨다 놓은 듯 빼어난 그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등산로는 마사토로 변해 미끄러질 위험요소가 더욱 많아 미숙한 아가씨들의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한다.
14시45분, 관룡사 뒤뜰에 도착한다. 대웅전 옆 약수터에 많은 등산객들이 소원을 빌며 던진 동전이 무수히 빠져 있는 돌로 만든 수조를 한바퀴 둘러서서 물 받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 광경을 촬영하다 턴하며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에 초점을 맞추는데 뒤에서
"아저씨! 회보에 지리산 산행기 썼지 에?"
한다.
"네."
하며 뒤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가 환히 웃으며 댓돌 위에 앉아 있다.
"너무 생생하게 재미있게 ....................
산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