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우상이자 지난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모 가수의 죽음이 최근 들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그의 딸도 10여년 전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그 가수의 딸은 생전에 희귀 질병을 가진 장애아였던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름도 생소한 ‘가부키 증후군(Kabuki Syndrome)’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가부키 증후군의 대표적 특징은 가부키 배우들을 닮았다는 점이다 ⓒ iBric.org
이 같은 이름이 붙여지게 된 까닭에 대해 전문가들은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마치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키 무대에서 화장한 배우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도대체 가부키 증후군이 어떤 질병이기에 보기만 해도 섬뜩하고 낯선 표정을 하고 있는 가부키 배우들을 닮았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특이한 얼굴은 가부키 증후군 환자들의 대표적 특징
가부키 증후군은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일본에서 처음 보고된 희귀 질병이다. 처음 발견됐을 당시만해도 대부분의 환자가 일본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가부키’라는 일본어가 증후군의 명칭으로 붙여졌다.
그러나 몇 년 후부터는 필리핀이나 베트남, 그리고 인도 및 중국 등 아시아 대륙에서 고르게 발견되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유럽과 남미에서 잇달아 환자가 나타나면서 처음에는 지역적 특징을 가진 줄 알았지만 이제는 전 세계에서 고르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본에서 환자가 발견된 이후 10년 뒤인 1991년에 첫 사례가 보고되었고, 그 뒤 20여년 동안 총 10명의 환자가 보고되었다.
가부키 증후군의 특징은 크게 5가지로 구분되는데 4가지는 신체상의 이상이고, 나머지는 정신적 이상 증세가 있다. 신체적 이상으로는 특이한 얼굴과 기형적 골격, 그리고 손가락 지문의 변이 및 성장 지연 등이 꼽히고, 정신적 이상으로는 정신 지체를 들 수 있다.
가부키 배우의 눈꼬리와 닮은 증후군 환자의 모습 ⓒ wikimedia
특이한 얼굴은 가부키 증후군을 앓는 환자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다. 다른 신체적 특징들은 환자들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특이한 얼굴은 모든 환자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양상이다.
이 증후군에 걸리게 되면 눈썹이 활 모양으로 휘어지고, 콧구멍이 좁아지며, 귓바퀴가 두드러지게 커진다. 이런 증상이 마치 얼굴을 변장하고 무대에 서는 가부키 배우들을 닮았다고 해서 가부키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특이한 얼굴 다음으로 많은 증상인 기형적 골격의 경우는 두개골에서 변형이 일어나는 증상을 말한다. 또한 척추에서도 변형이 일어나고 손가락이 구부러지기 시작하여 고관절에서 습관적 탈구가 자주 일어난다.
이어서 지문의 변이 같은 경우는 손가락 끝의 살집이 형성되지 않아 지문이 제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증상을 가리키고, 성장지연 증상은 출생시에는 정상 키와 체중을 보이다가 생후 1년 후부터 성장이 지연되기 시작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뚜렷해지는 지연 현상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이상 증세인 정신 지체의 경우는 언어 발달에 있어서 문제점을 보이다가 점차 자폐증이나 발달 장애 같은 증상을 보이게 된다.
원인은 분명치 않지만 염색체 이상으로 추정
가부키 증후군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증후군을 처음 발견하여 학계에 보존했던 니이가와(Niikawa) 박사와 쿠로키(Kuroki) 박사도 유전적 질환이라는 것만 짐작했을 뿐이지 발병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증후군의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증상에 관여하는 매개체가 바로 염색체이고, 이는 KMT2D나 KDM6A 같은 돌연변이 염색체나 성염색체인 X염색체 이상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다 보니 치료법도 마땅하지 않은 형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치료할 수는 없어도 관리는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치료약은 없어도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지연시킬 수는 있다는 의미다.
증후군의 원인은 원인은 분명치 않지만 염색체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 free image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후군의 특징은 바로 면역력이다. 대한의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가부키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가 평소 건강 관리에 소홀해지면 면역력이 크게 떨어지는 특징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가수의 딸이 급성 폐렴으로 갑작스럽게 숨진 원인이 가부키 증후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증후군 관리에는 개별적 대처 방식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현재 희귀질환 전문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의 ‘희귀질환헬프라인(helpline.nih.go.kr)’에 따르면 가부키 증후군은 다양한 질환을 가진 만큼 증상들마다 개별적으로 대처를 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의 관계자는 “말하는 것과 운동하는 것이 불편한 가부키 증후군 환자들이라면 언어치료와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며 “또한 심장 및 면역력에 문제가 있다면 합병증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받는 것도 치료 방법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