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월기행
영월하면 먼저떠오르는 것은 오지중의 오지로 단종애사,고씨동굴,김삿갓유적지,청령포,동강래프팅 등이다.
지금은 사통팔방 고속도로가 개통 1일권의 관광이 가능한 지역이 되었고 박물관의도시로 볼거리,먹거리,지역특성을 살린 관광명소가되었다.
부산에 구순의 오용환 선배님은 아들 딸들이 외국에 살아도 외국에도 한번도 안나가시고 영월발전소근무지 떠나신지가 너무 오래되신것 같아서 모시고싶어서 “영월한번 구경하시겟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나도한번 가보고싶어”...하시기에미루다 장거리여행이 걱정이되어 몇주후 다시물으니 “다음에 가지머”,하시는 것임니다. “이 나이에 다음은 없습니다.” “저승길보다 이승길이 좋다고, 우리 날잡아 떠납시다”.마침 장정규박사의 영월태양광 발전소 견학이야기도 있고해서, 부산지회장 강문석 교수와 함께 4명이 부산 지하철 노포동종점에서 8시만나 출발 남양산IC통과 중앙고속도로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제천IC통과 바로 영월군 남면 연당에 도착 태양광 발전소를 먼저구경하기로 했다.12시가 다되어 연당에 도착에 했다. 연당은 영월읍까지 20리길을 산넘고 강건너 중고등학교를 통학하던곳이고 부친산소가 있는곳이라 벌초와 동창회에 년에한두번씩오는 곳이다. 동창생 할머니가세분이 계시는데 두분은 허리와 관절이 안좋아서 걷지못하고, 그중에 한분에게 점심 예약을 부탁했더니 촌이라 마땅한 식당이 없다고, 집에서 준비했다고 해서 집으로가서 생각지도 못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대접받고 있는데 태양광 발전소 직원들이 찾아와서 다과를 함께하고 10여분거리를 따라가서 발전소측의 차로바꾸어 타고,태양광 발전소를 학했다.부친산소와는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영월군에서30만평의부지를제공하고.1,500억의공사비를투자한 대역사였다.1년여만인,2013.12.30일에준공,시설용양,39MW(영월화려발전소의1/3용량).2014연간.55,096,784.KWH의전기를 생산하고 있었다.이는 우리나라 최대태양광발전소이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대역사 가아닌가.요즘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배출문제가 심각한 상황이고 우리나라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195개국중 7위로서 온실가스 감축압력에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이런상황에서 크린에너지 생산은 좋은 선제적 대응이라하겠다.지금도 조경공사,공지활용 관광 자원화공사가 진행중이다.(참고로,부산르노삼성 태양관발전소가,세계최대국내최초라고 알려진,시설영량은26MW임).이는 영월군수 박선규님의 적극적인협조와 장박사의 여러가지난재를 극복한 추진력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됨니다.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마치고 다음 코스로 청령포로 향했다.청령포는 3면이물로 둘러싸이고 한면은 절벽으로 막혀있어 배없이는 탈출이 불가능 한 곳으로 마치 섬과 같은 곳이다.단종어소에는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이 재현되어 재현되어었다.수령600년의 관음송,망향탑,단종이 지은 애절한 자규시(子規詩),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읊은 시조비가있었다.(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다음은 장능에서 역사관을 관람.단종의 짧은 생애를 보았다.12살의 어린 나이로 제16대왕에 즉위 하였으나.세조에게왕위를빼았기고,15세에상왕이되었으며,성삼문,박팽년등이 복위를 꾀하다 죽음을 당하고,세조3년에 노산군으로강봉되고 그해 금성대군 유(瑜)가 다시복위를 꾀하다가 서인으로 내려지고 결국 1457년 10월 24일 유시에 17세의 어린나이로 영월읍 관풍현에서 승하하였다.바로옆에 엄흥도 기념관에서 호장(戶長)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조각상과 엄흥도가 유서와 다름없는 비장한 비문이 서있었다.‘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노라’.(爲善被禍.吾所甘心).날이 저물어 읍내 예약된모텔에 옛친구 4명이 기다리고 있었다.가까운 식당에서 소주한잔 기울이며 옛날이야기와 장박사의 태양광발전소를 견학한 친구들의 찬사에 다시함번 감사했다.아침은 모텔인근 시장안 해장국으로 친구들과 먹고 친구들과는 해어지고 영월발전소를 지나 고씨동굴로향했다.도중에 발전소 앞을 지나면서 발전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으나 감회는 오회장님과 필자는 남달았다.반백년전 오회장님은 발전과장님이셨고,필자는 잠시 실습생이 였으나 그당시는 몰았고 한전퇴임후 알게되었습니다.고씨동굴은 옛날엔 배를타고 강을 건너야 들어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다리가 놓여서 쉽게 들어갈 수 있었으나 옛날엔 내부에 물이많이고여있었고 지금은 핼맷을 쓰고 낮은 포복을 하고 기어 들어갈수 있어 오회장님은 일찌감치 포기하시고 장박사와 함께 막장까지함께 구경을 하고 나오고 강교수는 사진에 몰두 뒤에 함유할수 있었고.오회장님은 관리실에서 기다리고계셨다.마지막코스로 김삿갓계곡을 거쳐 김삿갓(김병연,1863~1807)이 패족이되어 마대산(1052m)중허리에 숨어살던곳까지 차로 올라가, 김삿갓연구에평생을 바친 향토학자 박영국씨에의하여,1982년에 유적지가 발견되어 2002년9얼에복원된 옛집을 구경하고 내려와 김삿갓묘 안내인 최상락(일명최삿갓)씨의 설명을 들었다. 시선(詩仙) 난고(蘭皐)는 조부를 비난하는 글로 장원급제 하였으나 나중에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알고 하늘이 부끄럽다고 평생삿갓을 쓰고 40여년을 전국을 방낭 걸식을하다가 전남 화순군 동복에서 57세의나이로 사망 3년후 둘째아들 김익균이 현제의 장소로 이장되어,김삿갓묘역의 정비사업으로 난고 조각공원 조성, 김삿갓의생애를 한눈에볼 수 있는 문학관건립 등 관광명소가 되어있었다.주변의 조각품과 시비, 문학관을 둘러보고,그의 ‘간음야점(艱飮野店)’라는 시한수.‘천리길 나그네 가진것 겨우 지팡이 뿐이니/남은돈 일곱닢 오히려 많다 하겠네/주머니속에 깊이깊이 간직하자 다짐했건만/석양에 주막을 만나니 아니마시고 어쩌리’.(千里行裝付一柯,餘錢七葉尙云多,囊中戒爾深深在,野店斜陽見酒何). 귀가길 제천 의림지를 경유 칠곡휴게소에서 잠시쉬면서 차한잔하고 거기서부터 강교수가 대리운전을 자청 부산까지 편하게 와서 조녁식사까지 대접받고 일박이일 추억의 영월여행 무사히 마치고 해어졌습니다.끝까지 함께하신 오용환선배님의 건투에 감사드립니다.
*두편의 시임니다.한편은 죽음을당하기 전에지은 단종의 시이고,한편은 성삼문의 죽음을 당하면서지은 절명시임니다.
*단종은 할아버지 세종대왕의 등에엎혀 사랑을 독차지했고,아버지 문종은 집현종 학사들에게 세자를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비명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자신을 낳은지 하루만에 돌아가시고, 자신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잃은 사육신들의 수 많은 죽음을 보았고,무었보다 천계천 영도교에서 생이별한 아내 정순왕후의 그리운 얼굴을 사무치게 보고싶어 망향탑에서 지었다는 자규(두견새)시 임니다.
* 자규시 <단 종> 子 規 詩
원통한 새 한 마리가 궁중을 나오니 (一自寃禽出帝宮)
외로운 몸 그림자마저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매누나 (孤身隻影碧山中) 밤은 오는데 잠들 수가 없고 (假眠夜夜眠無假)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窮恨年年恨不窮)
새벽 산에 울음소리 끈어지고 달이 흰 빛을 잃어 가면 (聲斷曉岑殘月白)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구나 (血流春谷落花紅)
하늘은 귀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天聾尙末聞哀訴)
서러운 이 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지는가 (何奈愁人耳獨聰)
*성삼문(1418~1456)은 세조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에도 죽음을 택하고 남긴 절명시로 단종의 복위를 꿈꾸다 실패하여 처형당한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형장으로 가는 수레에 실릴때 남긴 너무나 태연자약한 시임니다.
* 절명시 <성삼문> 絶命詩
형장의 북소리는 죄인의 생명을 재촉하고 (擊鼓催人命)
머리들어 석양을 보니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려 하는구나 (回首日欲斜)
황천 가는 길에 주막조차 없다는데 (黃天無客店)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자고 갈거나 (今夜宿誰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