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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성당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39-45)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성당’은 세례자 요한 성당에서 약 1Km정도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 아인카렘은 나자렛에서 100km나 떨어진 곳으로 버스로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2천년 전에 열서너 살의 소녀였던 마리아가 걷기에는 사나흘은 족히 걸리는 거리이다.
어리다면 어린 소녀가 여행 중에 만나는 위험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용기는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의 돌보심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기나긴 고난과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하느님의 ‘때’가 찼을 때 새로운 희망과 구원을 가져오신 마리아.
예수님께서 구약을 완성하셨지만 마리아는 단순하고 굳센 믿음으로 구약의 완성을 도운 여성이셨다.
세례자 요한 성당을 나와 방문성당으로 향하는 큰길가에 있는
주차장을 지나면 바로 왼쪽에 ‘마리아의 샘’이 있다.
이 샘은 14세기부터 마을 사람들에 의해 ‘마리아의 샘’으로 불리고 있고,
그 위에는 이슬람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아인카렘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1948년에
약 3천명의 이슬람과 3백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었던 조용한 마을이었지만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발생한 아랍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였고,
전쟁을 피해 피난한 사이 유대인들이 아인카렘을 점령했고,
전후 이스라엘은 ‘부재자 재산법’ 1950.3)과 ‘귀환법’(1950.7)을 만들어
제도적으로 아랍인들을 추방시키고, 귀환한 유대인들을 정착시키게 되었다.
성서에서 ‘우물’은 백성에게 계속해서 생명을 주는 장소였다.
우물은 또한 지혜, 모든 사람이 찾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사악은 우물가에서 리브가와 사랑에 빠졌고(창세 24,10-27 참조),
야곱도 우물가에서 라헬과 사랑에 빠졌다(창세 29,1-14참조).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았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이 우물가에서 만났다고 한다.
‘마리아의 샘’을 지나 시골풍경이 느껴지는 한적한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산언저리에 아담한 기념 성당이 기다리고 있다.
이 방문 성당에서는 무엇보다
유다 산악지방의 평화로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이 기념 성당은 십자군이 통치하던 시기에 2층으로 된 기념성전이었지만
십자군이 물러난 뒤 파괴되었고,
그 후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소유로 넘어갔지만 파괴된 채 방치되었다.
1469년에서 1483년 사이에 이슬람들은 아르메니안들을 쫓아내었고,
그 후 이슬람 가족이 가족을 꾸려 사는 동굴을 제외하고 나머지 건물들은 폐허가 되었다.
비록 비 그리스도인인 이슬람이 기념 성전터를 점유하여 살고 있었지만
작은형제(프란치스칸)들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이곳을 찾아 성모 방문 축일을 기념하였다.
작은형제들은 1679년 폐허가 된 이곳을 구입하였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 급기야 1862년에 동굴이 있는 아래쪽 성당을 복원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 후 1938년에는 위쪽성당(2층)을 짓기 시작했지만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955년에 공사를 완료했다.
작은형제회에서는 1938년 전 성당을 짓기 전해인 1937년 고고학 발굴 작업을 하였는데,
이때 산 쪽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작은 샘이 있는 곳에
이미 고대시대부터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이 거주지는 로마시대까지 계속 되었고,
비잔틴 시대에 샘이 있는 동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배의 장소가 되었으며,
곧 성전이 건축되었고 오늘날까지 그 흔적들이 남아 있게 되었다.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새로운 건물들은 이 동굴과 동굴을 포함하여 더 크게 지어졌는데,
성전 주위에는 거주지와 방어 진지들까지 있었다.
먼저, 동굴이 있었던 아래쪽 성당을 들어서면 3개의 커다란 프레스코화가 눈에 들어오는데
중앙에는 마리아 와 엘리사벳 상봉(루카 1,41-45참조),
왼쪽에는 당번 차례가 되어 주님의 제단에서 분향을 하고 있는 즈카르야 (루카 1,8-20참조)
그리고 오른쪽에는 베들레헴 인근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헤로데 왕의 명령에 의하여, 헤로데의 병사들을 피해
엘리사벳이 세례자 요한을 바위 뒤에 숨기고 있는(마태 2,16 참조) 프레스코화가 있다.
헤로데의 병사들이 어린 아이들을 학살하는 프레스코가 있는 오른쪽 벽면 아래쪽 벽감 안에는
세례자 요한과 관련한 성스러운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기적의 바위’를 볼 수 있다.
2세기에 쓰여진 위경인 야고보 복음서에 의하면
헤로데 병사들이 어린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문을 들은 엘리사벳은
아기인 세례자 요한과 함께 산으로 피하였는데 뒤에서 군사들이 쫓아오자
바위 앞에서 오고 갈 수 없는 상황에 엘리사벳이 기도를 하자
그 바위가 갈라져 엘리사벳과 아기를 숨겨 주었다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을 숨겼던 기적의 바위 오른쪽에는 위층 성당으로 연결된 오래된 계단이 있다.
아래층 기념 성전을 나와 오른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위층 기념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위층 기념성전은 교회사 안에서 마리아의 영광을 찬미하는 축제적인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위층 성당의 정면에 있는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있는 마리아’의 프레스코화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깊은 인상을 준다.
나자렛을 떠나 척박한 유대 광야를 걸어오시는 마리아 뒤로
메마른 산 능선들 이 보이는데 기나긴 순례의 여정을 의미하며,
마리아의 양 옆에 있는 작은 꽃들과 꽃을 피운 사브라(선인장)가 마리아를 맞이하고 있다.
사브라는 물이 없는 척박한 광야의 악조건 하에서도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내고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데,
마리아야말로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는(이사 11,1 참조) 참 사브라가 된다.
그리고 마리아의 발 아래 있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은 현세의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께 희망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가난하고 겸손한 신앙인을 의미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천사들의 마리아 경당을 봉헌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왼쪽의 안경을 쓴 현대 인물은
이 성당을 지은 건축가가 자기의 모습을 그려 넣은 것이다.
건축가인 바를룻찌(Barluzzi)는 작은형제회 재속회 회원이었다.
위층 성당 문을 들어서면 마주하는 큰 벽면에는
교회 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칭호들을 기억하게 하는 다섯 개의 대형 프레스코화가 있다.
첫 번째, 하느님의 어머니 :
‘하느님 어머니’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교부는 로마의 성 히뽈 리뚜스(+235년)였고,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에게 공식적으로 부여된 칭호이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천사의 예고로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과 몸에 받아들이시어
‘생명’을 세상에 낳아주셨으므로 천주의 성모로
또 구세주의 참 어머니로 인정받으시고 공경을 받으신다.
당신 아드님의 공로로 보아 뛰어난 방법으로 구원을 받으시고
아드님과 불가분의 긴밀한 유대로 결합 되시어,
천주 성자의 모친이 되시고 따라서 성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딸이 되시며
또한 성령의 궁전이 되시는 이 최고의 임무와 품위를 지니고 계신다.”(교회헌장 53)
두 번째, 교회의 어머니이시고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신 마리아 :
마리아께 신뢰를 표현하는 가장 오래된 기도문으로
3세기에 알려진 것으로 “천주의 성모여”(Sub tuum Præsidium)가 있다.
“천주의 성모여, 당신의 보호에 우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항상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여.”
“천주의 성모여”는 마리아의 모성적 사랑에 의지하여,
예수님의 어머니께 간구하여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안과 무서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항상 제일 안전한 피난처요 사랑이 담긴 항구인 것이기 때문이다.
"은총의 계획안에 있는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은 주님 탄생의 예고에 믿음으로 동의하시고
십자가 밑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간직하셨던 그 동의에서부터
모든 뽑힌 이들의 영원한 완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존속된다…….
당신의 모성애로 아직도 나그넷길을 걸으며 위험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을 돌보시며 행복한 고향으로 이끌어 주신다.
그 때문에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라는 칭호로 불리신다.”(교회헌장 62)
세 번째, 은총의 중개자(가나의 혼인잔치) :
공관복음에서 보면 마리아라는 이름이 여러 번 거명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예수의 어머니를 마리아로 지칭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항상 ‘어머니’라고 표현한다.
손님으로 초대받은 어머니 마리아가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그들은 포도주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아들 예수에게 이야기 한다.
이 구절을 교부들과 주석가들은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를 알고 기적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해석을 해 왔고,
그래서 아들 예수는 어머니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때’가 아직 되지 않았지만 기적을 베풀었다고 주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이 일부 비평가들의 주장처럼 논리적인 비약이라고 하더라도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지는’ 실망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어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절망의 상황을 어머니가 아들에게 알려 주었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의 중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마지막 상황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주도권 아래서 기적이 성취된다.
마리아가 ‘포도주가 없다’는 이야기를 아들에게 한 것은
그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고,
이것은 또 하나 중요한 모습이 있다.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에 눈감지 않고 함께 하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이다.
비록 일부 비평가들의 의견처럼 어머니의 요청에 의해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에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했던 어머니의 애절함이
바로 중재가 지니고 있는 참 의미이다.
네 번째, 레판토 해전:
지중해를 제압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가 키프로스 섬을 빼앗자
1571년 10월 7일 교황 비오 5세는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의 연합함대로 하여금
코린트만(灣) 레판토 앞바다에 있는 투르크 함대를 공격하게 하여 대승을 거둔 전쟁으로
이 전투로 투르크 세력이 서 지중해 지역으로 팽창해 오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고,
투르크 해군의 노예로서 노를 젓던 그리스 도교 1만 5천여 명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리스도인 군사들은 그 당시 자신들이 거둔 승리가
묵주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받은 하느님의 거룩한 모친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성 비오 5세 교황은 이날을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10월 7일)로 제정하였다.
다섯 번째,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에 대한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5-1308)의 논쟁’ :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 박사이며 뛰어난 스콜라 철학자이자 교회 박사이다.
그의 신학 체계는 교묘한 형이상 학적 분석법에 따라 강생을 주요 주제로 다룬 것이 특색이다.
인간이 저지른 원죄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육화 하셨다는 것이 교회의 정설로 받아들여질 때, 둔스 스코투스는
인간이 죄에 물들지 않았을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육화 하셨을 거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에 따르면, 강생은 영원으로부터, 심지어는 구원은 별문제로 치고, 선언되었다.
강생은 하느님 사랑이 창조된 최상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영원한 섭리에 따라 당신 성자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 체계가 마리아께 관한 신학적 사고를 혁신시키는데 큰 발자취를 남겼다.
둔스 스코투스는 교회가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정의(1854년, 비오 9세)하기 훨씬 이전에
이 교리를 주장하고 옹호했으며, 마리아의 이 특권에 관한 신학 명제를 확립하였다.
당대의 신학 기풍과 정반대 입장에 선 이 프란치스칸 학자는
원죄로부터 천주의 모친이 예방된 것은
그리스도의 품위와 탁월성에 위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찬양한다고 역설하였다.
성전 바닥은 땅과 하늘과 바다에 존재하는 동식물들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고,
14세기 이태리 토스카나 풍으로 채색된 천정의 단청은 우리에게 친밀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바가리니(Vagarini)와 마넷띠(Manetti)에 의해 꾸며진 성당은
하늘의 천사들과 지상에서 마리아께 신심 깊었던 성인들에 둘러싸여져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동정 마리아의 프레스코화로 성당의 전체 면을 매우 아름 답게 꾸미고 있다.
특별히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께 대한 깊은 신심뿐만 아니라
뛰어난 신학적 가교를 놓았던 성인들께는 ‘마리아 박사’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주어졌는데
성 알퐁소(S.Alphonsus), 성 안셀모 (S.Anselmus),
성 베르나르도(S.Bernardus) 그리고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가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성 이레네오(S.Irenaeus), 성 에프렘(S.Eufrem Syrus), 성 베드로(S.Petrus Dam),
성 안또니오 (S.Antonius De. A), 성 이시도로(S.Isidorus), 성 제르마노(Germanus),
성 토마스(S.Thomas), 성 치릴로(S.Cyrillus Al), 성 브르노(S.Brunus), 성 암브로시오(S.Ambrosius),
성 요한(S.Joannes Gioms), 성 일데퐁소(S.Ildephonsus), 성 아타나시오(S.Athanasius),
성 보나벤뚜라(S.Bonaventura)들이 방문 성당에서 기억하고 있는 성모님께 충실했던 성인들이다
성당의 왼쪽 벽에는 천사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벽기둥에는 성모찬가의 절들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구약에서 유명한 성서의 여인들이 그들의 찬미가와 함께 새겨져 있다.
구약의 여인들로는 아브라함의 아내이며 이사악을 낳은 ‘사라’,
야곱의 아내로 요셉과 벤야민을 낳아 유대인들에게 민족의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는 ‘라헬’,
모세의 누이이며 여자 예언자인 ‘미리암’, 판관 ‘드보라’,
잠든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인 ‘야엘’,
페르시아 때 하만의 음모에서 유대인들을 구한 ‘에스델’,
아시리아 제국의 적장의 목을 친 ‘유딧’,
아세르 지파 출신인 여 예언자로 성전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다가 아기 예수를 본 ‘한나’가 있다.
이들은 모두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민족의 어머니가 되고,
위기상황에서 민족 을 구한 위대한 여인들이지만
성모 마리아야말로 ‘여인들 중에 가장 복되신 여인’(루카 1,42 참조)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윤리신학에서 말하는 자연덕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으뜸 덕목인 '사추덕'
(성 아우구스 티노의 저서 교회론, 제15장 ‘죽은 이들에 대해’에서)을
성당 각 모서리 위에 새겨 놓았는데
사추 덕은 절제(Temperantia), 용기(Fortitudo), 정의(Justitia), 현명(Prudential)이다.
‘절제’는 그 목적이신 그분께 전적으로 승복하는 사랑이고,
‘용기’는 그 목적이신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감수하는 사랑이며,
정의는 그 목적이시고 공정하게 통치하시는 그분만을 섬기는 사랑이고,
예지는 방해가 되는 것과 도움이 되는 것을 현명하게 구별하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추덕의 실천이야 말로 천사의 아룀에서부터 십자가 밑에 서 계셨던
그리고 예수님 승천 후에는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던 참 신앙인
(루카 8,21; 마태 12,50; 마르 3,35 참조)이었던 마리아가 보여주었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성당 입구에는 성모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고 있는 동상이 있는데
이것은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두 인물인 아기 예수님과 아기 요한의 첫 번째 만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모 찬가는 마리아와 엘리사벳 뿐만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과 아기 요한이 서로 만나
기쁨에 찬 찬미가 중의 최고의 찬미가로 매일 성무일도 저녁기도 때 노래되고 있다.
방문성당 성당 마당에는 각국어로 된 성모찬가가 63개국(2008년 3월 현재)의 언어로 벽에 붙어 있다.
윗줄 좌측으로 3번째가 한국어 판 마니피캇 입니다
한국어 판 성모찬가(마니파겟)는 박정희 정부시절 국회의장으로 재직한
한솔 이효상(아킬로) 선생님께서 쓰신 친필입니다.
한솔선생은 대구교구 전 교구장이신 이문희 대주교님의 부친 이시기도 하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성당정원의 벽에는 41개 나라의 말로 쓰인 마리아의 노래가 있는데 ....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초입에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의 장면이
청동 조각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소박한 표정이며 몸짓이 아주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마리아의 노래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 다.”(루카 1,46-55)
엔 케렘의 두 수도원 - 이강근 박사
첫댓글
자료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의 신앙을 채찍질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편히 주무세요~
님으로 인해 소생은 견문을 넓혀갑니다..감사드립니다
제이든 님, 체칠리아 님, 은산 님 격려의 댓글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