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득량면에 있는 오봉산 개흥사지를 발굴조사한 내용이다.
조선 후기에 발행된 청광집에 따르면 원효와 의상이 창건했다고 기록하였다.
발굴조사결과 1688년 중창된 개흥사開興寺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다.
청광집에서 1678년에 세 차례 중건, 1680년대 불사가 활발했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1620년대에 지은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의 시에서 다시 개흥사가 나오니 개흥사는 임진란 즈음에 폐사되고 1620년 이전에 재건된 것 같다.
2017년(3차) 발굴 조사결과 국가적 규모의 대가람임이 드러났다.
계곡 언덕에는 높이 4.8m, 길이 26m의 대형 석축이 있다.오봉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좋은 맥반석이 생산되는 곳이다.결따라 쪼개지는 맥반석은 구들장으로 이용되어 보성군 오봉산은 구들장의 최대산지로 이름을 떨친 곳이다.
개흥사지에서는 석탑 옥개석, 소조 불상, 청동 소탑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원西院과 동원東院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동원 4구역에서는 기와조각, 청자, 백자편 등 그릇들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찻사발 등은 개흥사의 차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보성군 득량면 다전마을에 수백년이 넘는 야생 차나무 군락들이 있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한국의 사지(寺祉) – 보성 개흥사지, 2019)편에는 개흥사에서 수륙재도 지내고(1662) 묘법연화경 등 7종의 불경(1647-1662)과 보성 선씨宣氏 문중 족보(1688)도 발간했다.는 기록이 있다.
개흥사 승려 계수는 동원석교(1685), 마천석교(1674) 등 지역 교량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해평리 조양마을 입구에 세워진 석장승도 개흥사가 폐사된 후에 옮겨 간것이다.
일본인들은 말차를 마시기위한 다구로 다완을 신성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보성에서 만들어진 다완을 호조 고비끼로 부르며 국보급 유물인 대명물로 지정하였다.
보성 둠벙이를 생산했던 도요지가 도촌리 분청사기 도요지이다. 도요지는 오봉산 개흥사로부터 750m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개흥사 사하촌에서 호조고비끼로 불리는 보성 덤벙이가 생산 되었다는 뜻이다.
벌교의 징광사는 조선후기 최대의 출판단지이며 화엄학을 이끈 문화 가람이었다면 득량면의 오봉산 개흥사는 도자문화로 보성의 차문화를 선도한 대가람이었다.
사진 1번 오봉산 개흥사 발굴조사로 드러난 사적지이다.
사진 2번 개흥사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소조불상과 개흥사 명문이 새겨진 기와유물이다.
사진 3번 개흥사 사하촌 도촌리 도요지에서 출토된 사발과 다완이다.득량만이 생겨나기 전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이다.
현재 국립 광주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절차를 거쳐 보성 차박물관으로 옮겨 보성의 차문화 역사를 전시해야 할것이다.
사진 4번 개흥사의 석축이다.거대한 성벽을 보는듯 하다.
사진 5번 일본의 다인들에게 최고로 평가받는 호조 고비끼라 불리는 보성 덤벙이 ㅡ대명물로 지정받아 보호받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