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종철 (미술평론, 칼럼니스트, KCAA대표) 미술용어(美術用語)로서의 형(形)은 그 범위(範圍)가 넓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定義)를 내리기가 용이(容易)하진 않지만, 대체로 형태(形態), 형상(形象), 형성(形成), 모양(模樣), 모습(冒襲), 꼴, 외양(外樣), 등 물체(物體)와 표현대상(表現對象)의 윤곽(輪廓)은 물론, 작가(作家)에 의한 2차원적(2次元的)인 평면(平面)의 구상(具象)을 포함, 구도(構圖)와 그 감각(感覺)까지를 의미(意味)한다. 한편으로는, 형은 3차원적이며 다차원적인 입체적(立體的) 형상까지도 포함(包含)한다. ‘형(形)’의 개념(槪念)에 대한 이해(理解)를 돕기 위해 로마자를 예로 든다면 Form, Shape, Pattern, Style, Image 등과 연결(連結) 시킬 수 있다. ‘형’의 개념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위해 구체적(具體的)인 예(例)를 들어보자. ‘그녀의 얼굴은 계란형이고, 걷는 모습이 너무 우아(優雅)하다’ ‘A작가의 작품(作品)의 형상성(形象性)은 매우 독특(獨特)하다’ 위, 예문(例文)에서 ‘계란형’은 입체의 단순(單純)한 ‘윤곽선(輪郭線; Out line)’만을 의미하며, 걷는 모습은 맵시, 스타일을 의미하고, 형상성은 독창적(獨創的)이며 창조적(創造的)인 이미지를 의미한다. 환언(換言)하면 ‘단순한 윤곽선’은 자연 형(自然形; Natural form)이고, ‘걷는 모습’은 인공 형(人工形; Man-made form)이며, 독창적인 형상성은 창조적인 형(創造的 形; Creative form)을 뜻하며, 형은 위 세 가지로 분류(分流)된다. 결론적(結論的)으로 형은 ‘보여 지는 것’ ‘생각하는 것’ ‘구상(具象)하는 것’ 등을 망라(網羅)하며 평면(平面)과 입체(立體)로 형상화(形象化)하는 것을 총칭(總稱)해서 일컫는 말이다. 형의 변화(變化); 첫째, 시선(視線)의 고저(高低)에 따른 형의 변화이다, 즉 사물(事物)을 보는 눈의 높고 낮음에 따라 형이 변하는 경우(境遇)이다. 물 컵이 눈높이와 동일(同一)하게 위치(位置)할 때 사다리꼴의 형태로 보이지만, 컵을 완전하게 내려다 볼 때는 원(圓)으로 보인다. 둘쩨, 시선의 방향(方向)에 따른 형의 변화이다. 정육면체(正六面體; Cube)의 경우, 앞, 정면에서 볼 경우에는 정사각형(正四角形; Regular square)으로 보이지만 위, 측면(側面; 3면)에서 볼 때에는 입체감(立體感)을 감지(感知)할 수 있는 입방체(立方體)로 보인다. 셋째, 원근(遠近; Perspective)에 따른 형의 변화이다. 이 경우에는 가시거리(可視距離; Visible distance)를 벗어난 경우에는 모든 형태(形態)가 점(点; Dot)으로 보이는 경우이다. 한편, 가시적(可視的)이고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Concrete science)인 형상으로 설정(設定)되어진 형상이론(形象理論)에 비교(比較)하여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Metaphysics)인 형태론은 복합적(複合的)이고 심미적(審美的)이며, 철학적(哲學的)인 범위(範圍)를 갖는다. 흔히 ‘보는 관점(觀點)에 따라 매사(每事)가 다르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조형성(造形性)의 관점(觀點)에서 볼 때 기초미학(基礎美學)의 영역(領域)을 초월(超越)한 작가의 심미적 자세(姿勢)와 주관적(主觀的)인 미학(美學), 그리고 형태심리(形態心理; Gestalt)에 입각(立脚)한 감각적(感覺的)인 구상능력(構想能力)을 의미(意味)한다. 따라서 ‘형태감각(形態感覺)이 좋다’라는 말은 ‘조형적(造形的)인 구상능력(構想能力)이 좋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소위 ‘묘사력(描寫力)이 뛰어나다.’라는 말과는 무관(無關)한 말임을 밝혀둔다. 여기에서 참고(參考)로 필자(筆者)가 최초(最初)로 사용한 제너럴리얼리즘(General realism)을 말해보자. 제너럴리얼리즘은 위의 ‘묘사력이 뛰어나다.’라는 말과 관련(關聯)이 있다. 즉 묘사력은 ‘표현대상(表現對象; Subject)을 똑같이 그려내는 것’으로서 창의적(創意的)이거나 표현주의적(表現主義的; Expressionism)인 구상능력과는 대조적(對照的)인 말이다. 작가(作家)가 평면(平面)이던, 입체(立體)이던 간에, 구상(具象)이던 추상적(抽象的)이던, 작품제작(作品製作)에 앞서 구도(構圖; Composition)와 형상을 구상(構想)하게 된다. 이때의 구도와 형상을 고안(考案)해내는 일체의 과정(過程)을 넓은 의미에서 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되어진 화면상(畫面上)에서 레이아웃(Layout)의 결과, 형상의 배열(配列)에 따라 생성(生成)되는 모든 공간(空間)과 면(面)들이 일종(一種)의 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너럴 리얼리스트가 제작(製作)한 인물화(人物畵)나 정물화(靜物畵)에서는 주제의 형상을 묘사, 재현(再現)해내는 것을 제외(除外)한 구도나 색상(色相), 그밖에 필적(筆跡) 등에서 창의성을 찾을 수밖에 없으므로 미학적(美學的) 감성(感性)이나 예술성(藝術性)을 추출(抽出)할 수 있는 조형적(造形的) 요소(要素)의 범위(範圍)가 협소(狹小)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問題點)이 있다. 설사 색상이나 필적을 표현주의적으로 표현 한다 하더라도 기존(旣存)의 사실적(寫實的)인 형상과 불협화(不協和)를 가져오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필자는 제너럴리얼리스트들을 결코 폄하(貶下)할 의도(意圖)는 없다. 제너럴리얼리즘으로 간주(看做)하는 관점(觀點)은 각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너럴리얼리스트들은 사실주의의 영역(領域)에서 머무를 경우, 오스트리아의 구스타프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나 에곤쉴레(Egon Schiele; 1890-1918)처럼 과감(果敢)하게 형상을 바꾸어 장르를 전환(轉換)하진 않더라도, 저널리즘과 연결(連結)하든가... 아니면 감탄(感歎)을 자아내는 하이퍼리얼리즘에 관심(關心)을 가지던가...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구도와 색상(色相), 그리고 기법(技法)만이라도 창의성(創意性)을 갖도록 노력(努力)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우는 스냅사진과 같은 범속(凡俗)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미술작품(美術作品)에서 형은 그 중요성(重要性)을 아무리 강조(强調)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한국(韓國)의 소위 유명작가(有名作家)들, 일부(一部)에도 제너럴리얼리스트가 존재(存在)함을 부정(否定)할 수는 없다. 이점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미술에서의 다양성(多樣性)은 있을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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