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성 목사 /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 23:9-14)
다음 주일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더 기쁜 날입니다. 맥추절은 참으로 복된 주일입니다.
여러분, 맥추 감사절이 얼마나 복된 날인지 잘 모르셔서 맥추 감사 주일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맥추 감사 주일은 정말 기쁜 날입니다.
성령 체험을 하고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사는 사람은 감사절이 참으로 복된 날인 줄 압니다. 왜냐하면 이 맥추절 절기에 성령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과 아주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을 경험하신 분들은 맥추 감사절의 은혜와 복을 분명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에게는 매 주일이 감사 주일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맥추 감사절이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러운 교인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감사절이 복된 날인지 몰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의무감 때문에 지킨 것 뿐이고, 특별 헌금을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저처럼 모태 신앙인인 경우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도 감사절이 오면 ‘교인들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그런 생각만 들었습니다. 모두 저 같은 줄만 안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들 중에 맥추 감사절을 정말 정성껏 지키는 교인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러다가 이사야서를 읽다가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감사절이 되면 하나님께서 부담스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사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 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아니 감사절이 되면 제물을 준비하여 바쳐야 하는 우리가 부담이지,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왜 짐이 되십니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감사 제사를 받으실 때 그것이 지기 힘든 짐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저는 그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하나님이 감사절이 더 부담스러우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묵상 중에 성령님께서 깨eke게 하셨습니다.
감사절은 하나님의 백성만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날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도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절기였던 것입니다.
(잠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감사를 형식적으로만 드렸는지 말라기 1장 8절에 보면 기가 막힌 말이 나옵니다.
(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복은 주셔야 하겠는데, 복을 주실 수 없으니 하나님에게 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겉으로만 감사를 드렸지, 마음이 없는 감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계획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또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흥미로운 통계를 내었습니다.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신혼 여행을 가서 하나님께 주일 예배를 드린 부부는 이혼율이 0.01%라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신앙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잡아 주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표현되어져야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통로가 감사입니다.
저는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 대하여 큰 애는 속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표현이 없다. 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전해 듣고 통곡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사랑하는 것도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말로 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더 진실한 사랑이라는 오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어머님을 사랑하는 줄 모르셨다고 하였습니다. 표현이 없어서! 표현이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는 표현되기까지 감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정말 은혜를 받았다고 느껴지면 감사합니다. 하고 표현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표현이 없다면, 그에게 별로 도움이 안되거나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길거리에서 광고 전단지를 받고 감사합니다! 하십니까? 아닙니다. 귀찮아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표현할 때, 그는 은혜 받은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표현이 없는 사람은 은혜를 받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복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표현하십니까?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 중에 살았음을 믿습니까? 그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오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서 예배에 오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가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배에는 오시기는 했는데, 감사의 표현이 만약에 없었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전혀 은혜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복이 있겠습니까? 감사는 하나님이 복주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 섭섭하고 원망이 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기도해도 응답해 주시지 않고 계속 어려움만 주시는 것 때문에 낙심한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응답 받지 못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하여는 감사하였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없는 자의 삶은 결코 복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무서운 죄 중의 하나가 원망과 불평의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도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불평하다가 다 죽었습니다. 이것이 감사가 없는 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감사가 없다, 원망과 불평의 죄를 가지고 사는 지를 모릅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화를 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자녀들을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 아이들을 야단치지 말고 부모인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은 위로부터 아래로 흐릅니다.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영적 영향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녀들에게 불평과 원망이 있고 감사가 없다면 감사가 없는 부모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제 삶을 돌아보니 감사할 사람이 참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몇 년 전 폭탄 테러 사고로 100여 명이 사상자가 난 타지키스탄의 현지인 교회에 집회를 요청받아 갔을 때, 장로님 한 분이 동행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인 권사님께서 목사님이 위험한 곳에 가시는데,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당신이 대신 죽으세요! 하고 보내셨음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지극한 정성으로 저를 살펴주셨는지.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감사를 다 표현했는지 부끄러웠습니다. 지금 교인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일일이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똑같은 사랑을 받고 사역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또 믿음의 조상들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증조 할머니는 선교사로부터 직접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된 우리나라 첫 교인 중에 한 분입니다. 당시로서는 너무나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목사가 된 첫 번째 목사님들 중의 한 분입니다. 당시로서 너무나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 때 순교하셨습니다. 목회자의 아내였던 저의 어머님은 40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감사할 것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도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태평양의 물 한 방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저 뿐만이 아니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뉴욕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29세 나이로 순교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 선교사의 일기에 보면 그가 회심하기 전에 하나님과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을수록 하나님께 화가 났답니다. 그가 성경에서 하나님에 관한 네 가지 진리를 발견했는데, 그 하나 하나 때문에 더욱 화가 났답니다.
첫째, 하나님은 완전한 의를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완전한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구주를 보내주셨고 그를 믿으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화가 났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그 믿음을 주실 수도 있고 주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 33:19)
이것은 또 무엇인가? 네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하실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공의로우시다. 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 마음에만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이 모든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침내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브레이너드는 절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불꽃곽 같이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고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구원해 주셔야 하는 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특별한 감격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든지 그냥 지나치실 수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예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나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전도를 받게 하셨고, 믿음을 주셨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살 집이 없어서 힘들 때, 어떤 사람이 아무 이유도 없이 집을 한 채를 주었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굳이 줄 이유가 없는데 집을 주었다면 평생 감사할 것입니다 .
집 하나 은혜로 얻어도 평생 감사할 것이라면, 영생 구원을 은혜로 받았음을 깨달으면 어떤 감사를 드리게 될까요?
우리는 아무런 받을 자격이 없는데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비켜가지 않으시고 나를 택하시고 내게 은혜를 주시고 내게 믿음을 주시고 나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예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을 보면서 여러분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 중에 복음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지.
이런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감사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되게 하는 열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감사 절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애급으로부터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는 무교절이고, 둘째는 첫 열매를 추수하여 드리는 맥추절, 셋째는 추수한 곡식을 저장하면서 드리는 수장절입니다. 그런데 이 세 절기 중에 가장 독특한 감사절이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절입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감사 절기가 바로 맥추절입니다.
많은 분들이 첫 열매를 드리는 감사절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놓져 버립니다. 그리고 추수 감사절은 큰 감사절이고 맥추 감사절은 작은 감사절로 아는 분도 많습니다. 또는 맥추 감사절은 안 지켜도 되는 절기로도 압니다.
일반적으로 맥추 감사절이 추수 감사절만 못한 감사절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14절) ...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여러분, 첫 번째 맥추절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내내 40년 동안 한 가지 만나만 먹었습니다. 곡식을 먹는 것을 몰랐습니다. 애굽에 살 때 그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전부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만나 밖에 먹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신들의 손으로 농사를 지어 첫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첫 이삭을 얼마나 먹고 싶었겠습니까? ‘이것은 무슨 맛일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리 침을 놓으셨습니다. 절대로 첫 이삭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0절) ... 위선 너희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4절) ...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찌니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시작부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감사를 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끝난 후에 감사할 생각을 하지 말고 시작부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시작이라고 소홀히 여기지 말고, 작다고, 어렵다고 감사를 잊으면 하나님은 복을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 끝난 다음에 계산해 보고 “하나님, 주신 것이 많네요.” 이렇게 감사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첫 열매를 땄을 때 하나님께 드리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 주일은 올해 주신 첫 열매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결코 소홀히 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1년 동안 하나님이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첫 열매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구별하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맥추 감사절이 절대로 작은 감사절이 아닙니다. 첫 열매 감사가 없으니 추수 감사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맥추절 감사 신앙에 눈이 뜨인 것은 저 자신이 첫 열매를 드린 경우에 해당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버님의 신앙이었습니다. 제 인생이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으나, 이제는 너무나 행복한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개인도 정말 어려운 때입니다. 들려오는 것은 다 마음이 무너지는 소식 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에서 나온 감사는 이 때 나타납니다. 감사는 모든 삶을 뒤바꾸어놓은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기적을 베푸실 수 있는 통로가 바로 감사와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오후에 있게 되는 찬양 축제가 성회라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형편과 처지는 노래할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는 놀라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을 떠난 청교도가 도착하기는 102명이었지만 출발한 사람은 153명이었습니다. 약 두달간의 항해, 3개월 동안의 추위와 또 갖가지 어려움 때문에 51명이 해상에서 죽고 겨우 102명만이 상륙할 수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겨울은 굉장히 추웠습니다. 다음 해 봄이 되기 전에 그 추위 때문에, 질병 때문에, 굶주림 때문에, 인디안의 습격 때문에 거의 반수가 죽었습니다. 생존자 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장정이 21명이었고 소년이 6명이어서 남자는 모두 27명이었습니다. 그해 가을 어느 정도의 농작물을 추수하기는 했지만 이 혹독한 겨울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들의 마음에는 염려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래서 1주일 동안의 특별 금식기도를 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과 여전히 근심이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또다시 한 주간 기도회를 더 연장하자는 그런 제안도 나왔지만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서 사랑하는 가족과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전히 은혜를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농사하여 추수까지 했습니다. 이제는 금식 기도는 그만하고 기분을 바꾸어서 이렇게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이렇게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 앞에 찬미하고 감사 예배를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온 회중이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 들여서 감사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 청교도들이 드린 첫 번째 감사 예배가 축복 속에서 드린 것이 아닙니다. 평안한 가운데, 성공했을 때, 다 건강할 때 드린 것이 아닙니다. 153명 중에 거의 100명이 죽었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의 죽음 곁에서 가난과 고통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링컨대통령에 의해서 추수 감사절이 국가 공휴일로 정해진 것도 평화와 축복의 때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북 전쟁의 참화 속에서 경제가 어두워지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고통하고 있을 그때 감사절을 지키도록 온 국민들에게 공포를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정 위기, 경제 위기, 환경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 명령하셨습니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 동안 우리가 잘 살아보려고 얼마나 애를 많이 썼습니까? 그러나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있다면 감사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번영과 안정과 축복과 성공의 때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죽음과 질병과 가난과 고난 속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적 불꽃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 사실에 전율합니다.
여호사밧 왕이 암몬과 모압 연합군과 싸우러 나갈 때, 찬양대를 앞세웠습니다. 병력 수로는 절대 부족하고 도무지 싸워서 이길 수가 없을 때 찬양대를 앞세웠던 것입니다. 그 때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암몬과 모압 연합군이 다 죽었습니다.
사도 사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한 밤중에 찬양했습니다. 그 때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려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일을 우리 가운데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음과 질병과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저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믿음은 하루 아침에 생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우리가 늘 들어 아는 주제이지만, 가장 실천하지 못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밥도 못먹는 사람이 있다. 병상에 누워만 있는 사람도 있다.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니?” 감사하라고 들었지만 실제로 감사한 것은 너무 나이 들어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감사를 방해하는 요소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눈이 어두워서, 때로는 삶의 분주함 때문에, 때로는 고통의 무게에 눌려서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감사가 살 길입니다. 감사로 개인과 가정이 일어납니다. 교회마다 드려지는 감사로 우리 민족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드리는 감사를 통해서 이 민족 가운데 기적을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되면서 감사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제 안에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의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제 심령 안에 빛으로 역사하옵소서. 제가 찬양하고 감사하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유기성 목사 / 첫 열매에 담긴 축복의 비밀! (레 23:9-21)
오늘 말씀하시는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도 그저 읽어서는 쉽게 이해가 안되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맥추감사주일을 지키지 않는 교회도 있고, 성도도 있습니다. 고루한 구약의 절기 중 하나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첫 열매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첫 열매가 왜 중요한지 목사가 되었기에 알았습니다. 해마다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는데 추수감사절을 왜 두 번 지켜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깨달은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맥추감사절에 담긴 매우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게 될 때, 첫 열매는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 감사절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첫 수확을 거두게 될 때, 단단히 경고하셨습니다.
10절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4절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그런데 이 말씀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 하신 것이 아니고, 출애급 직후인 시내산에서 하셨습니다. 그 때는 농사를 짓기 40년 전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고, 분명한 의도와 매우 강한 의지를 가지고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에 걸쳐 계속 말씀하셨고, 역사서, 예언서, 신약 성경에 이르기까지 첫 열매에 대하여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첫 열매를 바치면 복을 주시겠다고도 약속하셨습니다.
잠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어제 지난 530 전도집회를 잘 마친 팀원들이 모여서 닫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전도를 해 보면 늘 감동적인 간증들이 많이 생기지만 여전히 전도가 힘들고 부담스러운 교인들이 있음도 보게 됩니다. 전도가 힘들다고 말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전도가 힘든 것이 아니고, 자신이 예수 믿는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전도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축복을 말해주는 것이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가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가 어려우면 전도 받으라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전도가 힘들면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을 믿고도 간증할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첫 성 여리고성에서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아이 성에서는 패배하였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워 당황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첫 열매에 손을 댄 자가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여호수아 6장 16절부터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여리고 성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첫 성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성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자가 있는 것처럼 아간이라는 자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 전리품 중 은덩어리와 외투를 감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이 성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돕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에 손을 대는 것이 이처럼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첫 열매를 소홀히 여기지 않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을 때, 총독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는데, 낙성식을 하기 전에 먼저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학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울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니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나라를 잃고 포로생활을 하며 자기 땅에서 남의 종이 되었는지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한 가지라도 빠뜨리지 않고 꼭 지키겠다고 결단하게 되는데, 그 중에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포함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말씀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알고 있던 자들은 이 말씀을 소홀히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약속합니다.
느 10:35-37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하나님께서는 첫 열매를 거룩하다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겔 48:14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라
롬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이 말은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첫 열매를 드리면서 자신의 것을 드리는 것처럼 “부담된다, 힘들다.”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의 것을 도둑질하였다면 큰 죄책감을 가질 것입니다. 만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죄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인가 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사람의 것도 도둑질하면 이런데,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도 태연한 것은 영적으로 메마른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첫 열매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사실 첫 번째 익은 열매가 두 번째 익은 열매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첫 열매는 대개 작고 보잘 것 없습니다. 샐러리맨의 경우도 경력이 쌓여야 월급이 올라가고, 농부도 제철이 되어야만 풍성한 열매를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첫 열매는 다른 열매와 의미적으로 다릅니다.
때때로 자녀들 중에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가져오거나 부모님의 속옷을 사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 월급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당연히 부모님의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공부시켜주신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부모님에게도 이런 마음이 든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어떻겠습니까? 첫 열매가 당연히 하나님의 것으로 보이고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열매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경외하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보인 믿음 중에 가장 큰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독자 이삭을 받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이삭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첫 열매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바치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창 22:12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첫 열매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지를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창 22:16-18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첫 열매를 바칠 것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인데, 먼저 복받을 자격을 갖추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항상 잊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받으며 삽니다. 은혜를 받으면 즐거워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어려워져도 금방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야 할 것을 자기 것으로 삼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일, 십일조, 감사 절기를 작게 여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더 복을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리 마음에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면 지키기 어렵습니다.
첫 수확 때 너무 기뻐서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너무 작아서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이제 시작인데 하는 마음 때문에 여전히 모자란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첫 열매를 그렇게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맥추절이 없으면 추수감사절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혼여행 가서 예배드린 부부는 이혼율이 0.01%랍니다. 먼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잡아 주신다는 말입니다.
젊은이교회 맥추감사헌금을 개척교회 씨앗 헌금으로 드리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맥추헌금 자체가 복받는 씨앗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헌금을 기반으로 세워질 교회에 대하여 두고두고 간증하게 될 것입니다.
어제 한 중국 선교사님께서 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이 선교사님의 딸이 중국 북경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위될 사람을 만나 보니 너무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딸에게 왜 이렇게 복을 주셨나 하고 생각하다가 제게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목사님, 그동안 교회에서 보내주신 설교 테이프와 인터넷을 통해 목사님께서 첫 열매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설교를 수 차 들었는데, 우리 큰 딸 아이도 그 말씀대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가서 중국어 학원에서 강사를 시작할 때 힘든 형편에서도 첫 월급을 온전히 드렸더니 이렇게 큰 축복을 받는가 봅니다.
그러나 첫 열매 감사 신앙의 가장 큰 복은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첫 열매에 대한 너무나 놀라운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첫 열매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5:20-23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렇습니다. 첫 열매를 거두어 감사 예배를 드리는 날인 초실절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첫 열매 감사 신앙을 가진 자가 부활의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난히 첫 열매에 대하여 많이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맥추감사절을 위하여 먼저 설교를 하는 것도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게 하기 원하심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맥추감사절을 고루한 구약의 절기로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주시려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맥추절이 없으니 추수절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예수님을 잘 믿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입니다. 누가 그런 사람입니까? ‘첫 번 것은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자입니다.
모든 것의 처음 것!! 첫 열매, 첫 생산, 첫 봉급, 첫 작품, 첫 아이...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첫 열매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셔서, 진정한 맥추감사절을 지키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