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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며, 즐거워하며
성경본문: 느헤미야 12: 27-47
27. 예루살렘 성곽이 낙성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동네에서 모여 오고 29.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 들에서 모여 왔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를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동네를 세웠음이라
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을 정결케 하니라
31.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로 성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성 위로 항렬을 지어 가게 하는데 한 떼는 우편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32.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방백의 절반이요
33.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34.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며
35. 또 제사장의 자손 몇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손 아삽의 육대손 스가랴와
36. 그 형제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37. 샘문으로 말미암아 전진하여 성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 길에서 동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38. 감사 찬송하는 다른 떼는 저희를 마주 진행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으로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 위로 행하여 풀무 망대 윗 길로 성 넓은 곳에 이르고
39. 에브라임 문 위로 말미암아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그치매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떼와 나와 민장의 절반은 하나님의 전에 섰고
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43.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45. 저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의 명을 좇아 행하였으니
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두목이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47.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것을 주되 그 구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구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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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은 수고가 있는 생활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를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나그네의 삶이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전투하는 생활이요, 경주장에서 경주하는 것으로, 또 하나님께 몸으로 산 제사드리는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의 삶이라고 할 정도의 어려움의 삶입니다. 이 처럼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사는 일은 심히 어렵습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짐 지는 것 같이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평온을 보장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항상 고통이요, 어려움이요, 짐 진 것 같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싸움 끝에는 종종 쉴 수 있는 즐거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싸운 후에는 승리를 맛보게 됩니다. 고통 한 것 보다 더 큰 즐거움과 기쁨의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12장에서 크게 즐거워하는 축제의 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들에게서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있는 모든 거짓된 기쁨과 즐거움이 다 떠나고 참된 기쁨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으로 생을 즐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벽을 재건하고 율법의 말씀을 통한 회개와 순종의 부흥이 이들에게서 일어나고 난 다음에 재헌신의 각오가 있고, 그 다음에 이들에게 성벽낙성식의 이 축제가 열렸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인근 지역의 레위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을 오게하였고, 성벽을 올라서 거대한 행진을 하게 했습니다.
그 행진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한 무리는 느헤미야를 따라서 성벽 위를 돌았고, 또 한 무리는 에스라를 따라서 반대방향에서 성벽 위를 돌아 행진했습니다.
여기서 이들 무리들이 행진을 하고 모인 곳이 성전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을 그들의 중심에 두고서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치고 영원히 기념하게 하려는 뜻에서 성벽을 쌓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무리들 앞에는 각각 노래하는 자들이 앞 장 서 가며,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성벽을 한 바퀴 돈 다음에는 하나님의 전에 모여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는데 "예루살렘의 줄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봉헌이란 무엇입니까?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 사도바울은 마게도냐의 사람들이 실제로 환난 가운데서 극한 가난에 있으면서도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연보를 하는데, "저희가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곽을 봉헌하는 일에서도 이들은 먼저 자신을 드리는 일부터 했습니다.
12:30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먼저 몸을 성결케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을 성결케 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우선 그들의 몸과 의복을 씻는 의식을 행하고, 금욕하고, 속죄제를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먼저 사람이든지, 물질이든지 정결케해야합니다. 정결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이와 같이 오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는 성결이 먼저 요구됩니다. 목회자나 특별히 그날 예배에 순서를 맡은 자들, 성가대원들이 다 예배에 수종드는 자들인데, 이들이 깨끗하게 자신을 준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성결이 헌신이 됩니다.
우리가 성찬예식 때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떡과 잔을 대하므로 약하고 잠자는 자들도 많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예배에 다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우리의 행위를 씻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제사장들이 성소에 나아갈 때에 세수통에서 그들의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고야 성소에 들어간 것 같이 우리들은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아서 한 주간의 모든 더러운 모든 죄와 허물을 주의 보배로운 피에 씻어야합니다. 이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힘이 없고, 우리들이 하는 일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또 이것을 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신앙에 잠 자는 자들, 신앙이 아주 죽어버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결케 하는 일은 비단 목회자, 성가대원, 순서를 맡은 자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다 그러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먼저 깨끗하게 드리고 난 다음에 드리는 물질, 시간, 정력을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자신은 드리지 않고 물질만 드린 가인의 제사같은 이스라엘의 종교행위를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 백성들은 성벽봉헌식을 합니다.
그런데 이 봉헌 예배에서 중요한 요소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노래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들이 무엇을 노래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성호에 찬양했을 것입니다.
이들의 찬송제목은 감사였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에 있어서 노래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찬양을 몸으로 생활로, 드려야합니다. 그러나 입술로 찬송노래 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노래하는 것은 신구약 성도들에게 있어서 공통된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 이들이 합창을 하면서 함께 큰 소리로 노래하며,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하여 찬양했습니다.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은 거의가 다 신앙의 간증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우리들은 고난 가운데도 찬송합니다. 우리들은 심지어 장례식에서도 소망 가운데 찬송합니다. 찬송을 쉬지 않아야 합니다. 이 찬송에 힘이 있습니다. 어두움이 다 사라집니다. 그 입술에 찬송이 있을 때에는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찬송이 있을 때에는 근심도 없어집니다.
느헤미야가 낙성식에서 노래하는 일을 제일 우선 해서 준비한 것 같이 우리들의 찬양은 준비되어야합니다.
둘째로, 즐기는 것입니다.
이들은 노래하는 일과 함께 즐기는 일을 했습니다.
즐거운 노래는 즐거운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43절에는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나옵니다.
(느12:43)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그들은 심히 즐거워했고, 부녀들과 아이들 까지도 즐거워했고, 이 즐거워 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이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즐거워한 것은 신령한 즐거움이지 그저 쾌락주의의 즐거움은 아닙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삶의 목표, 철학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이를 얻기 위해 얼마나 인생들이 노력하고 있으며, 궁구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참된 기쁨과 즐거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참된 안식과 평강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에서 이것이 있습니까? 어디를 가도 위장된 기쁨과 즐거움으로 잠시 누리는 세상의 낙으로 우리를 꾀우는 마귀의 역사이지 그것이 우리 중심에서 올라오는 가치있고, 신령하고,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은 이 세상에서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에야 인생에게 비로소 안식도, 평강도, 기쁨도 즐거움도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라고 하신 기쁨을 가집니까?
하나님께서 크게 즐거워하라고 허락하신 이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아가십니까?
여전히 세상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줄 알고 찾아 다니는 삶은 아닙니까?
이 세상은 억지로 즐거워하려고 애를 씁니다. 즐겁지 않기 때문에 술을 마셔서 마약으로 인위적으로 즐겁게 해 보려고 합니다. 말초신경이라도 자극해서 찰라의 쾌락을 추구해 나가는 미친 자들의 행위를 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아직도 이 세상 같이 춤으로 세속적인 노래로 술로 즐거움을 찾는 분 계시지 않습니까?
이번 추석에도 모이면 세속적인 일을 해서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맙시다. 기독자들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주어야지 그들이 즐기는 것들과 같은 것으로 우리들이 웃고, 즐기면 우리들이나 그들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들에게 노래와 즐거움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이유입니다.
이들이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하는데도 많은 원수들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도우셔서 이 성벽을 다 재건하고 나니까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으로 즐거움이 있게 된 것입니다. 또 그들은 성벽 쌓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슴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조상 때부터 하나님께 진노를 쌓았던 모든 죄를 찾아 즉각적으로 회개하는 일을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일들을 낱낱이 순종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고 난 다음에 그 심령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졌기 때문에 노래하고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먼저 드린 자들에게, 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하였을 때에, 오는 이 기쁨은 우리 육신의 욕심을 이루고 기뻐하는 것 보다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기쁨이 있습니까?
이 즐거움이 있습니까?
기독자의 삶은 고통과 근심과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 아닙니다. 실은 그 안에서 행하는 자에게는 이 노래와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크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어떤 고난도 이기는 것입니다.
이 노래와 기쁨이 우리의 삶에 가정에 교회에 충만해야합니다. 이들은 부녀들과 아이들 까지 즐거워했는데, 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기쁨 없는 세상에 소망없는 세상에 우리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노래 소리가 들려질 때에 그들에게 소망이 될 것입니다. 이 기쁨을 나누어주여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랑하는 형제들, 부모님, 친지들은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없어질 것들로 기뻐하지 않습니까?
잠시 누리는 쾌락을 사모하여 죄를 짓고 고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불쌍하면 그들을 구원하는 일을 이번 추석에도 해야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찬송소리가 멀리 퍼져야합니다. 우리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그들이 볼 때에 우리들의 소망에 대해서 물을 것입니다.
기뻐합시다.
인상쓰지 말고, 즐거워합시다. 하나님께서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무엇을 고민하고, 고통합니까? 하늘에 속한 근심은 해야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까지도 다 주께 맡길 때에 주께서 주는 평강과 기쁨이 샘 솟듯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 노래와 즐거움이 끊이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