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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간음 → 장남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성폭행함.
다윗의 살인(우리아) → 삼남 압살롬이 형 암논을 계획적으로 살해함.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은밀한 죄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의 잔재는 자녀들의 삶 속에 쓴 뿌리가 되어 독버섯처럼 피어났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뼈아픈 비극은 아들들의 범죄가 아니라, **그 범죄를 다루는 '아버지 다윗의 침묵'**에 있습니다.
2. 본론: 텍스트 깊이 읽기 (Theological Exegesis)A. 암논의 정욕과 요나답의 간교함 (삼하 13:1-14)
상황: 장남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짝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립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철저한 '육체적 정욕'이었습니다.
악한 조언자: 암논의 친구 요나답(심히 간교한 자)이 꾀를 냅니다. "병든 체하다가 아버지가 오면, 다말이 와서 내게 음식을 먹여주게 하소서."
사건: 다윗은 이 간교한 꾀에 속아 다말을 암논의 방으로 보냅니다. 결국 암논은 완력으로 다말을 짓밟고, 욕정을 채운 후에는 그녀를 쓰레기처럼 내쫓습니다.
Theological Lens: 죄의 속성입니다. 탐할 때는 목숨을 걸지만, 범하고 나면 미워합니다(13:15 "미워하는 마음이 이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B. 다윗의 치명적 침묵: 분노하되 징계하지 않다 (삼하 13:21)
팩트: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was very angry)."
문제: 화는 냈는데, 아무런 후속 조치(징계, 재판, 다말에 대한 보호)가 없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암논은 사형을 받거나 엄벌에 처해져야 마땅했습니다.
왜 다윗은 침묵했을까요?
바로 '영적 콤플렉스(Spiritual Complex)' 때문입니다. "내가 밧세바를 범한 간음죄인인데, 내 새끼의 음행을 무슨 자격으로 벌하겠는가?"
자신의 과거 죄책감이 아버지로서, 그리고 국가의 최고 재판관으로서의 **'도덕적 권위(Moral Authority)'**를 마비시켜 버린 것입니다.
C. 압살롬의 복수: 사적 제재가 시작되다 (삼하 13:22-29)
다윗이 공의(Justice)를 세우지 않자,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이 칼을 갑니다.
압살롬은 무려 **2년(Two full years)**을 기다렸습니다. 2년 동안 다윗은 이 곪아 터진 상처를 방치했습니다.
결국 양털 깎는 축제 날, 압살롬은 부하들을 시켜 취한 암논을 쳐 죽이고 외할아버지의 나라(그술)로 도망칩니다. 다윗의 침묵이 살인을 불렀습니다.
D. 요압의 개입과 반쪽짜리 화해 (삼하 14:21-24, 28)
상황: 3년 뒤, 군사령관 요압이 교묘한 비유를 써서 다윗의 마음을 돌려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최악의 처방: 다윗은 아들을 불렀으면서도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고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14:24)."
결과: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도 2년 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Pastoral Point: 용서하려면 확실히 안아주고, 징계하려면 공의롭게 법의 심판을 받게 했어야 합니다. 부르기는 불렀으되 얼굴은 보지 않는 이 **'반쪽짜리 화해'**가 결국 압살롬의 마음에 분노의 불씨를 당겨, 국가 전체를 뒤엎는 대반역(삼하 15장)으로 이어집니다.
3. 신학적 렌즈 (Theological Lens): 공의 없는 사랑의 폭력성
다윗은 자식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공의의 매'를 들지 못했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겁탈했을 때도 징계하지 않았고,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을 때도 제대로 된 재판을 열지 않았습니다.
"공의(Justice)가 빠진 사랑(Love)은 결국 방임이며, 더 큰 폭력을 낳습니다." *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찢으심으로 **'사랑'**을 베푸셨지만, 동시에 죄에 대한 무서운 형벌을 집행하심으로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다윗의 가정에는 이 십자가적 공의와 사랑의 균형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4. 목회적 적용 (Pastoral Point)
1. "영적 콤플렉스를 십자가의 보혈로 돌파하십시오."
목사님, 목회자도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연약함이 있습니다. 내 자녀가 엇나갈 때 "나도 똑같은 죄인인데 어떻게 혼내나" 하며 위축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죄 때문에 현재의 직무를 유기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하여 용서받았다면,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다시 일어서서 치리자의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방관은 겸손이 아니라 직무 유기입니다.
2. "교회 안의 죄악을 덮어두지 마십시오."
아름다운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말이 짓밟히는 것 같은 억울한 일이나, 암논 같은 권력 남용(부교역자, 직분자 간의 문제)이 발생했을 때, "은혜롭게 넘어갑시다"라며 덮어두면 안 됩니다. 다윗의 2년의 침묵이 살인을 낳았습니다. 곪은 상처는 수술 칼을 대어 도려내야 생명이 삽니다. 치리는 교회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3. "반쪽짜리 화해는 독(Poison)입니다."
성도 간에 갈등이 있을 때, 억지로 악수시켜 놓고 끝내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오게는 하되 얼굴은 보지 않겠다"는 식의 관계는 시한폭탄입니다. 철저하게 죄를 직면하게 하고, 온전한 용서와 포옹이 이루어질 때까지 목회자가 중재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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