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로의 딸을 살리고 혈루증 여인을 고치심1(마9:18-26)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고
혈루증에 걸린 여인을 낫게 하신 기사는
모든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다(마9:18-26, 막5:21-43, 눅8:40-56).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은 비슷하고
마태복음만 뼈대만 간추린 듯 간단하게 기록한다.
이러한 기록 방식은 마태가 말하려는 의도를 잘 알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본문도 마태의 편집의도를 따라 문맥에 한하여 해석할 것이다.
마태복음이 편집되었다는 말은 처음 기록된 마가복음을 토대로 편집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는 예수의 사역이 구전으로 전승되는 기간이 있었다.
그런데 복음서 기자들은 자신들의 목적과 의도를 따라
예수의 공생애 사역을 골라서 편집하였다는 말이다.
그래서 복음서마다 예수의 사역을 배치한 위치와 내용의 분량과 기록 방식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성경 기자의 뜻과 의도를 잘 알게 한다.
이는 복음서의 대상을 따라 복음서에서의 위치와 기록 분량을 조절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복음서 기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를 잘 드러내기 위함이다.
따라서 각 복음서의 차이는 복음서가 말하는 강조점이다.
이처럼 공관복음서는 성경기자의 뜻과 의도를 따라 편집된 예수의 공생애 사역의 기록이다.
따라서 각 복음서는 복음서 기자가 기록한 대로 사실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본문을 시작하는 말은 비슷하다.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거라사 지방의 군대귀신을 쫓아내시고
본 동네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는데
예수의 소문을 들은 큰 무리가 몰려들었다고 말한다.
그 때에 회당장중 하나인 야이로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에 엎드려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얹으셔서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라고 간구한다(막5:22-23).
이처럼 마가는 급박한 상황임을 강조한다.
이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가실 때도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고 기록한다(막5:24).
이처럼 마가복음은 선교의 상황에서 큰 무리가 따름을 강조한다.
이는 선교의 큰 효과를 내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야이로가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다.
그래서 누가는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기를 간구하니”
라고 사실적으로 기록한다(눅8:49).
이는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마가와 누가복음은
야이로의 위급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여 급박한 상황임을 강조한다.
이는 야이로의 급박한 상황과 대비하여 아들의 권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혈루증에 걸린 여인에 대해서도
마가복음은 아무에게서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괴로움만 받으며 모든 돈을 탕진한 상황을 기록한다.
이는 여인의 비참한 상황과 대조하여 하나님 아들의 권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그녀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술한다.
마태복음은 시작하는 말부터 전혀 다르다.
마태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라고 기록한다(마9:18).
마태의 강조점은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독특하게 기술한 시작하는 말에 있다.
마태는 본문의 예수께서 죽은 소녀를 만지셔서 살리신 일과(마9:24-25),
유출병에 걸린 여인이 깨끗하게 된 일을(마9:20-22)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일과(마9:10-13)
금식할 필요가 없는 혼인잔치와 연결한다(마9:14-17).
예수께서 율법이 금하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마9-13),
제자들은 율법이 명하는 금식을 하지 않고(마9:14-17)
율법에서는 접촉이 금지된 혈루증 여인을 접촉하신 일과(마9:20-22),
율법으로 접촉을 금한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서 일으키신 일을(마9:23-25)
서로 연결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한다.
예수의 사역과 제자들의 행동은 모세율법을 어기는 일이다.
이러한 마태의 증거들은 유대인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모세율법을 거스르는 행동은 여호와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모세율법의 가르침을 받은 백성들이다.
그들이 갖고 있던 성경도 구약성경, 곧 모세율법이다.
그런데 모세율법은 죄인들이나 유출병자, 사체와의 접촉을 금한다.
죄인이나 불의한 자들과 어울리거나,
부정한 문둥병자나 혈루증 환자와 접촉하면 여호와 앞에서 부정하게 된다.
또 모세율법은 금식함으로 여호와를 섬길 것을 말한다.
이는 휘장의 장벽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반복적인 피 흘림이 요구된다.
이는 이스라엘이 죄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제사장이 나아갈 수 있는 한계는 휘장 밖이다.
이스라엘의 먹고 마심도 죄 아래에서의 먹고 마심이다.
그런데 예수와 제자들은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따라서 예수의 사역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수와 함께 한 제자들의 행동도 율법과는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의 사역을 기록하여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한다.
이는 더 이상 율법 아래에 머무르지 말고 예수께 나아오라는 권면이다.
더 이상 모세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예수께 나아와서 영생을 얻으라는 초대이다.
본문에 대해서도 마태복음은 무리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야이로의 딸의 상황에 대해서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야이로는 지방의 관리이며 회당장이다.
그는 예수께 나아와서 방금 자신의 딸이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복음에서 딸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기록한다.
이는 예수의 도움이 시급한 상황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한 직원이 예수께 와서 자신의 딸이 방금 죽었으나
예수께서 그 몸에 손을 얹으시면 다시 살겠다고 말한다(마9:18).
이러한 기록 방식은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의 권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기록방식은 요한복음에서도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다는 급박한 소식을 듣고도 즉시 가지 않으신다.
나사로를 무덤에 매장한 후 사흘 뒤에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다(요11:1-46).
그런데 마태복음은 두 여자의 급박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죽은 소녀와 혈루증 여인만을 등장시킨다.
이는 예수의 권능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 한 직원의 집으로 가시는 중에
혈루증에 걸린 여인이 예수의 겉옷 끝을 만졌다.
이는 예수의 겉옷 자락만 만져도 구원을 얻겠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마9:20-21).
예수께서는 그녀를 돌아보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신다.
혈루증은 부인병으로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병이다(레15:19-30).
혈루증에 걸리면 여호와 앞에서 부정하다.
접촉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접촉된 모든 물건도 부정하다.
혈루증 환자는 성소와 거룩한 회중으로부터 분리된다.
이는 피의 유출은 몸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인은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무리에도 불구하고 예수께 나아와서 옷자락을 만진 것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수레에서 떨어지려던 법궤를 붙든 웃사를 죽이셨다(삼하6:1-8, 대상13:9,10)
그러나 혈루증 여인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깨끗함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마태는 여자가 즉시에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병이 낫게 되어서 성소와 회중과의 교제가 회복됨을 말한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부정한 여인과 접촉하셔서 깨끗하게 하시며(마9:20-22),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서 일어나게 하신다(마9:25).
이처럼 혈루증 환자나 죽은 사체와 접촉하는 일은 모세율법(구약성경)에서는 금하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부정한 두 여인과 접촉하셔서 정결하게 하시고 생명을 부여하신다.
이러한 예수의 사역은 하나님의 참되고 온전한 뜻에 의한 것이다.
결론 구절도 마태복음만이 독특하게 기록한다.
마가복음은 무리가 놀랐다고 기록하여 반응을 강조한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죽은 딸의 부모가 놀랐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두 복음서와 반대로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고 말한다.
아이가 살아났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는 평가로 마무리한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죄인과 부정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한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