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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80
80. ‘레밍’으로 소환(召喚) 된 한국 정치
이재명 대표에 대한 ‘법난(法難,법의 난장판)의 시대’가 참혹하다. 그래서인가. 현 정국을 바라보는 한 국민의힘 국회의원(박정훈)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쥐 중에 레밍이라고 있잖느냐. 걔들이 왜 이유 없이 바다 절벽에 떨어져서 다 죽잖느냐”라며 “똘똘 뭉쳐서 비극적인 상황으로 가는 것”이라며 자당의 대통령을 직격(?)했다.
‘레밍(Lemming)’은 나그네쥐로 비단털쥐과(Cricetidae) 나그네쥐족(Lemmini)에 속한다. 자살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나그네쥐들은 개체 수가 많아지면 무리 지어 이주를 시작하는 것까지는 사실이지만 바다나 절벽이 있는데도 돌진하지는 않는다. 나그네쥐는 일정 수 이상의 개체가 밀집될 경우 메뚜기 마냥 갑자기 행동 양상이 바뀌어, 떼를 지어 무작정 몰려다니기 시작하는 습성은 있단다. 일단은 먹이가 바닥나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행동이지만, 한번 떼를 지으면 무작정 앞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기만 한다는 게 괴이한 점이다. 심지어 험한 강을 만나도 어지간해선 그냥 수영해서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 때문에 자살하는 동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나그네쥐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퍼뜨린 것은 1958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하얀 황야(White Wilderness)>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많은 수의 레밍들이 바다로 가기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건너갈 수 없는 바다를 헤엄쳐 가는 모습이 나온다. 툰드라에 사는 브라운 색의 작은 설치류 레밍(나그네쥐)이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이라 하였다.[이 프로는 레밍의 이러한 희생정신은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레밍의 희생정신’이란 신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2003년 디즈니사는 이 다큐는 완전히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일찍이 이 ‘레밍’을 한국 정치에 인용한 이가 있었다. 한미연합군사령관이자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제30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존 위컴 2세(John Adams Wickham Jr)이다. 그는 1980년 8월 8일 미국 L.A 타임스에 “한국인들은 들쥐(:field mice:레밍이라는 의미로 사용)와 같은 근성을 지녀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복종을 할 것이며, 한국인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지 않다(koreans are like field mice, they just follow whoever becomes their leader. Democracy is not an adequate system for koreans.).”고 하였다.
1979년 취임한 그는 12.12 사태와 1980년 5.18을 지켜보면서 한국 정치에 매우 실망하였다는 발언이다. 따라서 그는, 전두환 군부가 한국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한국의 안보가 유지된다면 이를 한국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 전 장군(전두환을 지칭)을 지지할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한 말이다.(하지만 당시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등은 위컴의 이 외신 인터뷰를, 쥐 발언이 포함된 내용을 빼고 그저 ‘미국이 전두환을 지지할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왜곡해 보도했다. 경향신문 1980년 8월 8일자 1면 등 참조)
하지만 존 위컴 2세가 한국인의 정치 수준을 폄하하기 위하여 한 저 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 대한민국은 명실 공히 세계적인 민주주의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대통령과 함께 자당이 공멸한다는 의미에서 ‘레밍’을 끌어왔다. ‘레밍’이 자살하는 동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떼를 지어 무작정 앞을 향해 직선으로 우르르 몰려가기만 한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현 대통령에 의해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 모쪼록 국민의힘 의원들이 저 대통령을 따라 눈 가리고 내달리는 ‘레밍’이 되지 않기를 경고한다. 민심이란 성난 횃불이 타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