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67 장 - 내게로 와서 쉬어라
*** 한 줌의 흙이 되리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장 24절),
난, 흙이 되어 당신의 뿌리로 살고 싶어라, 상처받은 뿌리에 빗물 같은 사랑이 되어 당신의 숨결로 머물고 싶어라,
난 흙이 되어 당신의 생명으로 살고 싶어라, 시들어가는 나무에 한 줌의 거름이 되어 당신의 잎이 되고 가지가 되어 햇살 같은 열매로 맞이하는 흙으로 살고 싶어라,
위의 글은 시인 강명환 씨의 “흙이 되어”라는 시입니다.
첫째: 1연 “난 흙이 되어 당신의 뿌리로 살고 싶어라” 작가의 겸손한 흙의 정신을 보게 됩니다. 흙은 언제나 낮은 위치에 존재하며, 존재 방식도 자체의 꼴을 갖지 않습니다. 흙은 그것을 담는 용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리고 흙은 발길에 무참히 밟히기도 합니다. 흙은 표피만 나타날 뿐 거의 그 속에 숨겨집니다.
흙 정신은 결코 스타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흙이 된다는 말은 겸손해진다는 뜻입니다. “겸양하라, 진실로 겸양하라, 왜냐하면 그대는 아직 위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겸양은 자기완성의 토대이다.” 라고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둘째: “상처받은 뿌리에/ 빗물 같은 사랑이 되어/ 당신의 숨결로/ 머물고 싶어라,” 에서는 흙에 대한 포용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흙은 상처받은 뿌리를 포근하게 감싸는 빗물 같은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사랑을 받기만을 원하고 자신을 감싸주기만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흙은 모든 생물을 감싸고 받아줍니다. 화분에서 죽어가는 나무라도 흙에 심어놓으면 싱싱하게 되살아납니다. 우리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줄 수 있기에 다른 사람의 상처를 싸매 주는 사랑과 포용성을 지니고 살아야합니다. 사랑과 포용성은 곧 그 사람의 인간성을 가늠 하는 척도가 됩니다.
셋째: “난/ 흙이 되어...../ 시들어가는 나무에/ 한 줌의 거름이 되어/ 당신의 잎이 되고/ 가지가 되어/ 햇살 같은 열매로 맞이하는/ 흙으로 살고 싶어라” 의 글에서는 흙만이 지닌 희생의 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들어가는 나무에 한 줌의 거름이 된다는 일은 곧 한 영혼의 희생과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기꺼이 썩어지는 밀알이 되겠다는 거룩한 희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로망 롤랑은 “톨스토이의 생애에서” ‘사랑! 사랑은 그것이 자기 희생일 때 이외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에 적합하지 않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께서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장 13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위대한 사랑은 곧 희생하는 것임을 천명하셨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잘 아는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로 갈 때 세 가지 희생을 각오하였습니다. 오르간 연주와 대학 교수자리와 경제적 풍요의 포기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바하 협회로부터 피아노를 선물 받았고, 많은 대학의 강단에서 강의 할 수가 있었으며, 오르간 연주와 저술로 경제 문제 또한 해결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자기가 희생한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고 미안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처럼 진정한 희생은 오히려 햇살 같은 열매로 그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엠마오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싸매주고 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 나보다 못한 내 이웃이 있으면 그들을 위하여 봉사와 헌신하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랑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한 줌의 흙이 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썩어야 합니다. 우리가 썩지 아니하면 내가 그대로 살아있고, 예수가 죽습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사십니다. 그리고 더불어 나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줌의 흙이 되어 시들어 가는 영혼들에게 나를 밟고 올라가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셨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희생입니다. 그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죽고 썩어져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장 낮아지고 낮아질 때에 겸손을 배울 수가 있고, 그것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당신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셨다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제 2일만 지나면 2004년 입니다.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시작을 하게됩니다. 이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벗어서 길에 깔고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거룩한 성으로 입성하시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사명이고 축복입니다.
2009.2.200 단비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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