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자유대한이 괴뢰와 오랑캐들로부터 무참하게 짓밟히고 강토가 불타고 있을 때 수많은 피난민을 지극정성으로 안아주고 보듬어 준 따뜻한 희망의 항구(港口)였다.
부산은 공산도배(共産徒輩)들의 침노(侵擄)로부터 세계의 젊은이들이 피 흘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자유와 희생의 성지(聖地)였다.
6·25 전쟁 71주년 기념행사가 6월 25일 오전 10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개최됐다. 1994년 기념식 주체가 국가보훈처로 이관된 이래 처음으로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열렸다. 행사 주제는 '기억 1129 새로운 비상'이었다.
국가보훈처는 1950년 6월 25일 김일성 남침으로부터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까지 1129일을 기억하고 국난 극복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부산은 전쟁기간 1129일 가운데 1023일을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수도로서 역할을 다했다. 부산을 비롯한 대구 등 낙동강 전선이 무너졌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 나마 피란수도 부산에 역할을 기리고 기념식을 갖게 된 것은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임시수도 복원 운동이 부산지역에서 줄기차게 전개되자 정부도 이제야 정신을 차린듯 피란수도 부산에서 6·25 71주년 기념식을 했다. 이제 기념식 뿐 아니라 진정한 국가 안보와 6·25 호국 영령들의 유가족에 대한 예우를 말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오늘 기념식에서는 6·25 참전 용사로 강원도 김하 동부 734고지에서 적진에 접근해 수류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전공을 쌓은 김종호 옹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기념행사에 이어 임시수도청사와 부산항 1부두, 수영비행장 자리인 벡스코, 영도다리, 40계단, 유엔기념공원 등 피란수도 부산의 기억을 간직한 대표적 장소 6곳을 배경으로 육·해·공군 의장대의 역동적인 공연 영상이 상영되고, 후배 장병이 참전용사에게 바치는 헌정공연도 웅장하게 펼쳐진다.
‘임시수도 부산 1023일’은 학문과 예술이 재생, 부활된 부산문화의 ‘르네상스’기였다.
부산은 1950년 8월18일부터 10월26일. 그리고 1951년 1월4일부터 1953년 8월14일. 두 차례에 걸쳐 1023일간 임시수도였다. 한반도 5000년 역사에 특정한 한 도시가 두 차례나 수도(首都)의 칭호를 부여받고 국가를 지켜 낸 역사의 현장은 부산이 유일(唯一)하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했던 ‘임시수도 부산, 1023일’의 자랑스런 역사는 그동안 무관심과 관리 소홀로 안타깝게도 잊혀지고 그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임시수도 부산, 1023일, 그 위대한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고 보존함은 이 시대 우리들이 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임시수도 부산’의 소중한 역사현장은 대부분 사라지고 그 일부가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헤밍웨이와 피카소가 한때 살았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고택들이 잘 보존돼 관광자원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임시수도 부산’의 문화유산들이 자취를 잃어가고 있음은 가슴 아픈 일이다.
‘유엔기념묘지’ 일대를 ‘부산평화기념광장’으로 만들어 ‘자유평화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 등을 건립하여 후세에 전하자는 여론이 많았다.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비탈진 언덕에 ‘임시수도 기념관’이 있고 구(舊) 경남도청 앞거리가 ‘임시수도 기념거리’로 지정된 것은 초라하나마 임시수도 부산을 말해주고 명맥을 이어가는 실낱같은 희망이기도 하다.
‘임시수도 부산’의 위대한 역사에 대한 보존관리와 기념사업은 부산시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고 계승 발전됐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한 국가와 중앙정부 위정자들의 무관심한 역사인식을 성토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산은 3명의 대통령(김영삼, 노무현, 문재인)과 5명의 국회의장(곽상훈, 박관용, 박희태, 김형오, 정의화)을 배출했다. 그 누구 하나 ‘임시수도 부산’의 위대한 역사를 소중하게 조명하고 깊이 생각한 지도자가 없었음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 2021.6.25, 조갑제닷컴 (필자 : 필명 문무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