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수님(4) - 십자가를 바라보며
말 씀: 누가복음19:28-40
설교일: 2023. 3. 26(주일 낮 예배)
어느 선교사님이 선교지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스튜디어스들이 음료를 갖다 주는,
좀 한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때 선교사님이 “아 이 때 전도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지나가는 스튜디어스를 불렀습니다.
“자매님, 예수님을 아십니까?”
그랬더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와서 하는 말이
“찾으시는 에수님은 탑승하신 손님 명단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예수님은 손님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 땅을 지으신, 이 땅의 주인으로, 이 세상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1-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멘
지난 3주간 우리는 예수님의 3중직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스스로 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단번에 그리고 영원한 피의 제사를 드리셨고,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2) 우리 예수님은 선지자로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말씀하시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입니다.
3)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우리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 주소서
주님을 찬양 하오니 주님을 경배 하오니
왕이신 예수님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아멘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 주소서
주님을 찬양 하오니 주님을 경배 하오니
왕이신 예수님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아멘♬
오늘 말씀 28-30절을 보겠습니다.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고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로 오라” 아멘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은 예수님이 자주 가셔서 기도하시던 동산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 두 명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고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예수님이 제자 두명에게 특별한 심부름을 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키시는 심부름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둘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선생님 심부름을 많이 했습니다.
그 심부름은 대개 시험지 채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부름은 귀찮은 심부름이 아닙니다. 심부름을 시켜 주신 선생님이 고맙고, 스스로도 자랑스럽고,
친구들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애들이 몰려와서 묻거든요! “
나 몇점이냐? 나는 몇 개 틀렸더냐?”
그래서 친구들은 다 집에 갔는데, 늦게까지 남아서 그 일을 해도
선생님이 시키신 심부름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심부름도 그렇게 감사하고, 자랑스러운데,
하나님의 심부름, 우리 예수님의 심부름은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가, 주보에도 있지만, 선교사님들과 교회 그리고 선교 단체에
예수님의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저 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다 그렇지요 !
예수님은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고,
어렵고 힘든 자에게 물 한 그릇을 주어도, 반드시 그 상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일본에 ‘이따이 이따이’ 라는 병을 있었습니다.
이따이 이따이 (아프다 아프다)하는 말입니다.
일본의 공업단지 부근 사람들이 몸이 자꾸 아팠습니다.
그래서 아프다 아프다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수은과 납중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따가 이따가” 라는 병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심부름을 시키시는데, “이따가 이따가”하겠다는 겁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의 심부름은 “이따가” 하면 안됩니다. 지금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도 보면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심부름을 시키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심부름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가고
예수님은 그 시간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네가,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나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내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아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수를 주십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 삶의 목마름으로 견디기 힘들 때
낙심하고 주저 앉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는 /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일을 하실 때,
하늘의 천사들을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성도들을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따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 예수님의 심부름, 사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심부름이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성도는 그 심부름을 잘하면 무한한 복을 받습니다.
* 그런데 이 심부름, 이 사명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심부름의 시작이요, 그 사명의 과정이요, 완성이요, 결과는 축복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건강하고, 아무리 많이 가지고, 아무리 쌓아 놓아도
마지막 순간은 누구나 하나님께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예”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아니요” 하고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부터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라보면서
순종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30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고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로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주인이 있는 나귀를 그냥 끌고 오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심부름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자 둘은 이해가 되지 않는 심부름에 무조건 순종합니다.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어서 순종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해가 안되고, 납득이 안되는데도 순종하는 것은 더 아름다운일입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은 인간의 한계, 세상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전지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 경험, 추측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전적인 순종이 가능합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납득이 되지 않지만,
하나님이 하시라고 하는 이 일에는
내가 일지 못하는 놀라운 일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감사하면서 기쁘게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순종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제자 두 사람의 순종으로는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는 십자가 피의 제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 거듭난 성도는 자기 일만 하고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심부름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 순종에 복이 있습니다.
이 순종에 반드시 상이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에 우리 모두 이 순종의 은혜로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계산하는 시대, 따지는 세상,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야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평생 내일만 하고 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심부름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순종으로 감당하며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