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군왕들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을 만큼 산과 물의 관리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슴니다. 인심은 지덕(地德)에 따르기에 치산치수를 경국(經國)의 기본으로 삼은 것입니다.
(전편에 이어 갑니다)
근대의 치산치수 대표적 사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입니다. 조국근대화 기치를 내걸고 산림녹화 사업과 4대강 유역 개발을 밀어 부쳐 18년을 집권했슴니다.
우리 향토의 사례로는 1990년에 개통된 920번 지방도로를 위한 오산천에 제방을 쌓으니 상습 침수지역으로 자갈밭이던 고산 마을앞과 남산앞들이 옥토로 변했지요.
그러나 이 도로가 흙티재를 넘어면서 우리 향토의 진산인 복호(伏虎)의 정기를 끊어 버렸슴니다. 왜정시대였다면 고도의 풍수 술책이라 할만큼 요지를 잘라 버렸더군요. 더구나 복호의 정수인 용천수 흐름을 돌려 확실하게 거세해 버린 것입니다.
흐르는 물은 내맥(來脈)을 그치게 하는데 .. 이 곳외에 흙티재 다른 건천 지류는 모두 본래방향으로 진행하도록 도로밑을 관통시켰는데 왜 용천수는 산을 절개하여 도로를 따라 흘려 보냈는지 기가막힙니다.
참고로, 물이 어떻게 기를 막는가?
이는 비가 오거나 구름 낀 날에 햇빛이 다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용천사앞 용천수의 현재 흐름
용천수(湧泉水)는 지하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므로 지표수와 달리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솟으니 이 물을 기맥에 횡단시키면 맥을 확실히 단절시킵니다.
용천수의 원래 흐름
용천사앞 폭 30m 길이 145m 정도의 언덕을 도로와 용천수가 가로 지른 게 뭐가 그리 대단하여 야단인가 하겠지만 이 언덕은 복호의 양기가 집약된 곳으로 음기가 강한 각북의 지세를 중화 염승하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복호의 양물이었슴니다.
이로서 양기의 본산인 복호가 힘을 잃어 산천의 음양 조화가 깨어져 음란(陰亂)이 일으나면 지덕은 하극상으로 치닫게 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거역하고 지어미가 지아비 따르지 않고 후배가 선배를 능멸 .. 인륜 도덕이 무너져 헐뜯는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사태가 초래되지요.
복호 양물의 본디 모양
복호 양물의 현재 모양
(호롱칼럼 마무리 짓슴니다.)
용천수를 원래대로 복구하는데는 그리 많은 경비가 소요되지 않슴니다. 1차분의 레미콘과 토관 6-8m 정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복호의 양물을 횡단하는 도로에 오가는 자동차로 인해 흩어지는 기운을 갈무리 할 비보가 필요합니다. 중력은 질량에 비례하므로 적당히 무거운 바위나 철제 구조물을 도로 가운데 놓아두면 될 것입니다. 용천 치수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가 제격이고요 ^^
이서공과 같은 .. 송덕비의 주인공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