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인천, 문학속 인천을 찾다·13]진우촌과 그의 작품들
진취·해양성 짙어… 강렬한 독립의지 '신세계'로 상징화
목동훈 기자
경인일보 2014-04-10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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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우촌은 1950년 종합문예잡지 '백민'에 희곡 '파도'를 발표했다. '파도'의 공간적 배경은 강화도 어딘가의 한적한 어촌가로 추정된다. 사진은 강화도 하점면 창후리에서 촬영한 바닷가 풍경. 북한과 가까운 이곳 바닷가에는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진우촌은 인천에서 활발하게 청년·문화 활동을 하다 1942년 서울로 이주했고, 1951년 월북했다. /임순석기자 |
인천서 활동한 극작가… 잘못된 인습 비판 변화시도 엿보여
대표작에는 '개혁' '시들어가는 무궁화' '구가정의 끝날' 등
강화도 배경 '파도'는 실제 고기잡이배 난파사건들 모티브
장막극 '두뇌수술' 일제 조선문화말살 지적 국민정서 담아
진우촌(秦雨村, 1904~1953)은 일제강점기 때 인천에서 활동한 극작가다. 본명은 진종혁(秦宗爀)이다.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진우촌 제적등본에는 1915년 12월 5일 인천부 율목리 180에 이주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 이전 기록은 없다. 하지만 인천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작품 활동을 벌인 '인천 작가'임은 분명하다. 진우촌은 1918년 서울 배재학당에 입학해 4년 뒤 졸업했다.
그는 경인기차통학생친목회, 인천배우회(仁川培友會, 인배회), 한용단(漢勇團), 제물포청년회, 인천소성노동회(仁川邵城勞動會), 인천유성회, 칠면구락부(七面俱樂部) 등의 모임에 참여했다. 1927년에는 동인지 '습작시대'를 발간하고, 1938년에는 극단 '낭만좌'에 입단했다.
진우촌 작품은 잘못된 인습을 비판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진취성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1923년 동아일보 작품 공모에서 당선된 희곡 '개혁'과 '시들어가는 무궁화', 1925년 '조선문단'을 통해 발표한 희곡 '구가정의 끝날' 등이다.
1950년 '백민'에 실은 희곡 '파도'는 부부간의 사랑과 바다에 맞서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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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관극장은 1894년에서 1900년 사이 인천 중구 경동에 건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이다. 진우촌이 참여한 극단 '칠면구락부'가 공연을 한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애관극장의 현재(위)와 옛 모습. |
진우촌 작품에서는 진취성과 해양성이 짙게 배어난다. 인천이 진우촌의 의식을 지배하고, 이런 '인천 의식'이 그의 작품에 투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런 의식은 강렬한 독립 의지를 작품 속 '신세계'로 상징화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단막극 '개혁'의 무대는 인천 시외 김승지 집이다. 김승지의 아들 23살 청년문학가 '도상'은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19살 여종 '춘월'을 사랑한다. 도상은 춘월과 '비밀 연애'를 해 오다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의 승낙을 얻어내기로 한다.
도상 : 조금도 겁내지 마오. (중략) 참된 연애에 계급이 왜 있겠소.
춘월이 "영감께서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찌합니까?"라고 걱정하자, 도상은 "우리는 자기들의 사랑을 위해 맹렬히 나가지 아니하면 이길 수 없을 것이오"라고 안심시킨다.
도상의 부모가 결혼을 허락할 리 없다.
최씨(도상의 어머니) : 아니 네가 별안간 무슨 소리냐? 그래 어디가 색시가 없어서 집안에 있는 종년하고 혼인을 한단 말이냐?
도상 :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까? 사람이 사람하고 혼인하는 것이 무슨 큰일입니까? (중략) 저는 그이와 꼭 결혼하겠습니다.
도상은 "만일 집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나는 춘월이를 데리고 이 집을 떠나겠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우리의 세계를 새로 건설하겠습니다"라며 집을 나간다.
진우촌은 '개혁'이라는 작품을 통해 신분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연애를 꿈꿨다. 이는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독립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천은 근대 교육과 청년·문화 운동이 활발했던 도시다. 진우촌이 참여했던 경인기차통학생친목회, 인배회, 한용단 등이 그랬다. 당시 인천 문인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신문기자로 활동하는 등 계몽운동을 주도했다.
'파도'는 '밀물이 들 때'(1939년 '영화연구'에 실린 시나리오)를 개작한 희곡이다. 한 여인이 바다에서 숨진 남편을 그리워하다 결국 바다에 몸을 던져 남편 곁으로 간다는 이야기다. 진우촌은 잠시나마 강화도에서 교원 생활을 했다.
이는 희곡 '파도'의 공간적 배경이 강화도 어딘가의 한적한 어촌으로 추정하게 한다. 당시 강화도에서는 바다에 나갔다가 배가 뒤집히거나 부서져 주민들이 몰살하는 사건도 많았다.
동아일보 1923년 12월 3일자는 '지난달 24일 오후 3시경에 생활이 곤란한 동네 사람 남자 5명과 여자 32인을 싣고 강화군 서도면 근해에 나가서 굴을 따는 사이에 폭풍이 일어 타고 갔던 목선이 물에 엎어져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하고 전부 빠져 죽었으며 시체는 하나도 건지지 못하였다는데 그 동네의 몇 집은 한 사람도 없는 집이 있으며 부모의 자식을 찾는 소리와 자녀의 어머니를 부르는 참경은 눈으로 못보겠다더라'라고 보도했다.
며칠 뒤 강화 근해에서 배가 침몰해 40여 명이 익사했고, 이듬해 7월에도 폭풍으로 어선 11척이 파손되고 2명이 사망했다.
작품 '파도' 속 김씨의 남편도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참변을 당한다. 배가 파선을 당해 숨진 것이다. 김씨는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면 바위에 올라 남편 시신을 기다린다.
밀물이 들 때 남편 시신이 해변으로 밀려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는 황아장수(집을 찾아다니며 잡화를 파는 사람)로부터 바다에서 송장을 봤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김씨 : 그이가, 그이가, 응 그이가 왔어. 헤엄쳐서 왔어. (중략) 기운이 없을 텐데, 기운이 없을 텐데, 어서 가서 끌어올려야지.
김씨는 바위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한참 후 시아버지가 늘어진 김씨를 안고 바다에서 나온다.
박해로(김씨의 시아버지) : 기어코 저눔에 바다가 너까지 잡아갔구나. 오냐, 넌 잘 갔다. 네 남편을 따라서 잘 갔다. 인제 저 무서운 웬수의 바다도 안 볼 것이구 저 물결 소리도 안 들을 것이다. 오냐, 내 혼자 들으마. 늙은 내 혼자 들으면서 어린 것을 길러주마.
진우촌은 희곡뿐 아니라 시, 동화, 평론, 수필도 썼는데, 시 '작은 배 갑판에서' '달 뜨는 바다' '바닷가에서 올린 기도'는 진우촌의 강화도 생활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숲 사이를 거닐며'는 진우촌이 산근정(山根町, 현 중구 전동)에서 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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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23년 5월 동아일보에 실린 진우촌 희곡 '개혁'. 이 작품은 동아일보 1천호 기념 작품 공모에서 당선됐다.2 1923년 9월 동아일보에 실린 진우촌의 '시들어가는 무궁화'. 동아일보가 물산장려운동 일환으로 실시한 작품 공모에서 당선된 희곡이다.3 인천 출판사 다인아트가 2006년 출간한 진우촌전집 '구가정의 끝날'(윤진현 엮음). |
'시들어가는 무궁화'는 조선물산장려운동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자는 내용인데, 민족의 자각을 촉구하는 나무꾼들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늙은 나무꾼 : 얼마고 말고. 왜 연전에는 최서방네 아들이 한참 난봉 필 때에 여러 백석지기를 (동양)척식회사에 팔아먹었지. 그러고 또 재작년에도 인천 가서 미두(米豆)인지 한다고 또 많이 팔아먹지 않었나. 그런데 참 자네 주인집도 자꾸 엉망이 되어간다지?
미두는 일종의 투기로, 인천을 온통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인천 언론인 고일(高逸)은 '인천석금'(仁川昔今, 1955년)에서 "미두는 한때 이 항구를 번성케 했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서 빚어진 희비극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닌가?"라고 했다.
진우촌이 1945년 '신문예'에 실은 장막극 '두뇌수술'은 의학박사 '오영호'라는 인물이 부잣집 아들 백치 '상도'와 가난하지만 똑똑한 시골청년 '무길'의 두뇌를 바꿔치기한 뒤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 신문기자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자 : 음, 그렇지 그래 현대의학이 육체는 수술할 수 있지만 정신은 수술하지 못한다. 그렇다 팔과 다리와 배 속에 창자와 눈알맹이까지도 훌륭히 수술을 하되 형체 없는 정신은 손을 못 댄다.
'두뇌수술'은 일제의 조선문화말살정책을 비판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의 정신은 일제의 의도대로 바뀌지 않을 것임을 드러낸 듯하다. 이 작품은 지난해 극단 그린피그(윤한솔 연출)에 의해 무대에 올랐다.
그린피그 윤한솔(단국대 공연영화학부 교수) 대표는 "해방공간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 국민들의 정서가 담긴 작품"이라며 "계몽적이다. 당시의 정황 혹은 한국인의 정신적 상태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생각에 이 작품을 택했다"고 했다.
글 = 목동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