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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상장례문화의 콘텐츠화
2.음악 콘텐츠
2)상엿소리
상엿소리는 상여로 시신을 장지까지 운구하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상엿소리가 가장 먼저 재연하는 장례절차는 발인이다. 발인은 시신이 집에서 나갈 때 지내는 마지막 제사를 일컫는다. 죽은 이가 안치된 관을 상여에 올리고 상두꾼이 상여를 들어 올리면 상엿소리에 맞추어 1분가량 제자리에서 좌우로 흔든다. 이는 상여 행렬을 정비하는 기능도 하겠지만 망자가 마지막으로 익숙했던 집안에 인사하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 곧이어 상여가 길로 접어들기 직전 상주를 비롯한 조문객이 관이 올려진 상여를 마주 보고 절을 한다. 상여도 이들의 절에 맞추어 앉았다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며 절을 받는다. 이처럼 가족들과의 마지막 인사하는 의식이 끝나면 곧이어 상여가 길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상여와 요여를 통해 죽은 이를 옮긴다. 특히 양주 상엿소리에 등장한 상여의 모습은 무척 크고 화려한 모습이다. 각종 비단과 색실로 꾸며져 있으며 도깨비나 봉황, 용 조각으로 주위를 꾸몄다. 상당히 복잡하게 꾸며져 있는 상여의 생김새의 의미에 대해 임재해는 "상여는 시신을 옮기는 역할 뿐만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세계관적 구조물"이라고 한다. 양주 상여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도깨비, 용, 봉황, 연꽃을 꼽을 수 있다. 도깨비(귀신)는 상여행렬의 방상과 같이 상여에 잡귀가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미이다.
상여의 앞뒤에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몸을 꼬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용마루라고 한다. 용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신격으로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상여의 사면에 봉황이 화려한 색깔로 그려 있거나 조각되어 있는데, 봉황도 용과 마찬가지로 신격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새가 되어 저승으로 비상한다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봉황이 아니더라도 새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기도 하고, 재생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꽃도 재생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특히 상여 지붕에 연꽃 봉오리로 표현하는 것은 영혼의 재생을 형상화하고 상여 앞부분에 녹색 바탕에 연꽃 그림은 영혼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여가 죽은 이의 육체를 옮긴다면 요여는 죽은 이의 영혼을 옮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마채가 허리까지 온다고 하여 요여(腰輿)라고 하는데, 죽은 이의 영혼을 옮기기 때문에 보통 영여(靈輿)라고 한다. 서양에서 사자의 사진을 실은 차 뒤에 관을 실은 영구차가 뒤따르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생화로 장식을 하기도 한다. 요여도 상여와 마찬가지로 연꽃이나 용, 봉황으로 꾸며져 있다. 상여와 다른 요여의 특징으로 문 앞의 신발을 꼽을 수 있다. 임재해는 "요여의 문 앞에 신발을 놓아둔 것은 요여에 신발의 주인이 타고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상여 행렬의 맨 앞은 약 30여개의 만장(挽章)이 선두에 서고 죽은 이의 혼백을 태운 요여(腰輿)가 따른다. 그 뒤는 잡귀를 쫓는 역할을 하는 방상(方相)이 붉은 탈을 쓰고 찌르는 등의 위협적인 춤을 추며 이어진다. 다음에는 운(雲)자와 아(亞)자를 쓴 장대를 든 이를 앞뒤에 배치한 상여가 선다. 상여 뒤에는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따른다. 바로 뒤에는 흰색으로 이루어진 가마가 뒤따르는데, 이는 나이든 맏상제를 위한 가마라고 한다. 그 뒤에는 여러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자들과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행렬의 마지막을 이룬다.
상엿소리는 구전민요로는 드물게 아직도 그 기능이 살아있는 민요이다. 물론 도시에서는 그마저 사라지고 없지만, 시골에서는 장지가 아주 멀지만 않으면 대부분 상여로 운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망자를 상여로 모시는 것이 분명 귀찮은 일인데도 아직까지 상여를 사용하는 것은, 단지 운반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 어떤 좋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여는 망자를 저승으로 모시는 가마이다. 옛날에 귀한 사람들을 가마에 태워 모시고 신랑 신부를 가마에 태워 보냈듯 망인을 저승으로 모시는 데도 가마가 필요하다. 상여를 꽃과 구름무늬로 장식하는 것도 망인을 극락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뜻에서이다. 상여를 메기로 하고 나면 상엿소리 메길 앞소리꾼을 모셔와야 한다.
전통 상장례에는 어느 마을이든 앞소리꾼이 있었지만, 지금은 읍이나 면 단위에 앞소리꾼 한두 사람만 있어도 다행일 정도로 소리꾼이 귀하다. 상엿소리는 지방마다 어느 정도의 특색이 있지만, 농요만큼 확실하게 지역색을 띠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엿소리는 '어이가리 넘차' 또는 '어나리 넘차' 소리로 충청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곳에 따라서는 매우 특이한 상여소리를 하는 곳도 있다.
강원도에서는 처음에 발인을 하면서 느리게 '미리미리 타불'소리를 하고 본격적으로 운상을 할 때는 '어이넘차' 소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상여소리가 발달한 평야지대에 비해 노래의 가짓수도 적고 가락도 단순한 편이다. 강원도의 언어나 음식이 그런 것처럼 상여소리도 소박하다. 하지만 강원도 영동의 중심지인 강릉에는 특별히 음미할 만한 상여소리가 남아 있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오오오 해 넘어간다
만장 같은 집을 두고 북망산천 찾어가네
오오오 해 넘어간다
친구 하나 삼었더니 술만 먹고 잠만 자네
오오오 해 넘어간다
나비 나비 호랑나비 날과 같이 청산 가세
오오오 해 넘어간다
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 보고 웃지 마라
오오오 해 넘어가네."
이것은 상여가 천천히 평지를 갈 때 하는 소리다. 앞소리꾼이 노래를 내놓으면 다른 상두꾼들이 곧 함께 따라 부른다. 후렴구에 해당하는 "오오오 해 넘어가네"하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뜻하는 표현으로는 매우 문학적이다. 또한 앞소리 세 번째 구절인 "친구하나 삼었더니, 술만 먹고 잠만 자네"에서는 북망산천을 떠나가는 망자를 술 마시고 잠자는 친구로 비유하고 있다. 생사를 초탈한 인생관이 아닐 수 없다. 네 번째 구절인 "나비 나비 호랑나비 날과 같이 청산 가세."라는 대목에서는 망인의 영혼이 나비를 벗삼아 훌훌 떠나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강원도의 민요는 사람들의 심성을 닮아 모두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 특징이지만, 강릉시 유천동의 상엿소리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인생의 허무함과 이별의 슬픔이 문학적으로 승화되어 있는 예술이라 하겠다.
충남의 상엿소리는 '어허이 어호' 계통이 대부분이지만, 역시 곳에 따라 특이한 상엿소리가 있다. 논산의 '짝소리'가 그중 하나이다. 짝소리란 상두꾼들이 두 패로 나뉘어 한 절씩 번갈아 부르는 가창방식을 말한다. 상엿소리를 짝소리로 부르는 곳은 충남 공주, 논산, 부여군과 전북의 일부 지역이다. 짝소리를 하는 두 패로 나뉘어 상여 앞뒤에 들어서서 상여를 멘다. 일반적인 상여의 상두꾼들은 상여 좌우에서 상여를 멘다. 앞뒤 두 패로 나뉘어 메는 상여는 "방맹이상여"라고 하여 상여 앞뒤에 가로로 굵고 긴 통나무를 댄 다음 여기에 방망이를 가각 세 개씩 대고 방망이 하나에 두 명씩, 앞뒤로 각각 6명이 들어서서 멘다. 짝소리는 앞뒤의 상두꾼들이 번갈아 한절씩 부른다.
"헤리 가자 허허허하 어허하 어허하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이수 건너 백로 가자
갈까 말까 망성거리다 내친 걸음에 도망질 한다
남문을 열고 바라를 치니 계명 산천 다 밝아온다
오작교 다리가 더덜썩 무너져 건너갈 길 막연하다
죽장 망혜대지팡이와 짚신 단표자표주박하나로 천리강산 들어를 간다
시내 갱변 종조리새종달새는 천질 만질 구만질 떴다
신산 구산 다 버리고 명산대천 찾어를 간다
우불퉁구불퉁 저 남산 보아라 우리도 죽으면 저 모양 된다
청소난뎅이마을이름 막걸리 장사 목이 말라서 나 못살것다
앞에 가는 행자들아 너희에 산소 어디메냐."
짝소리는 논매는 소리에도 있으므로 가창방식 자체는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상엿소리로 부르는 짝소리는 발을 맞추어 걸어가면서 부르기 때문에 듣는 사람도 함께 흔들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만일 상여에 누워있는 망인이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머리끝과 발끝에서 번갈아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극락으로 가는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상장례는 죽음을 확인한 뒤 죽은 사람을 산 사람들에게서 분리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죽은 자의 존재를 변화시켜 조상의 세계에 좌정시킨다. 그리고 조상으로 자리 잡은 죽은 자는 죽음 이후에도 후손들과 교류한다. 전통 상장례에서 육체적 죽음은 혼(넋)과 육체가 분리됨을 의미하며, 이는 보통 호흡 즉 숨의 끊김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이해는 상장례 전 절차에서 고르게 나타난다. 상장례 전 과정은 주검을 처리하는 절차(장례식)와 혼을 처리하는 절차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하면, 혼과 육체의 분리 즉 죽음을 확인하고, 주검을 처리한 다음에 영을 모시는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발인 때의 장례행렬 역시 혼을 모시는 영여(靈輿)와 혼이 빠져나간 육체를 모시는 상여(喪輿)로 구분한다. 이는 요즘의 장례행렬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요즘의 장례행렬은 영정을 실은 승용차와 시신을 실은 장의차로 이뤄지는데, 승용차는 영여, 장의차는 상여 역할을 한다. 상여에 실린 죽은 사람의 육체는 장지에 매장되어 집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데, 영여에 실린 죽은 사람의 혼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매장 이후 탈상까지의 상장례 절차는 육신을 장지에 묻고 집으로 돌아온 죽은 자의 혼에 대한 절차이다. 이런 절차를 통해 한국의 전통 상장례는 죽은 사람을 조상으로 새롭게 위치 짓는다. 즉 살아있는 존재(혼과 육체의 소유자)에서 과도기를 거쳐 몸 없이 영혼만을 가진 죽은 사람의 세계(조상의 세계)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상장례를 통해 조상으로 자리 잡은 죽은 자는 죽음 이후에도 살아있는 가족들과 여전히 관계를 유지한다. 돌아가신 조상의 신주를 모신 유교식 사당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집안에 조상을 모시는 공간인 사당이 있고 그것이 가정생활의 중심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집이란 조상과 후손이 함께 사는 장소이며, 조상 역시 살아있는 후손과 함께 가족의 성원 가운데 하나임을 말해준다. 조상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살았을 때처럼 가족공동체의 성원으로 남아있다.
<그림20>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0호 <바위절마을호상놀이>이다. 이는 서울 강동지역의 고유 민속놀이로 '쌍상여호상놀이' 라고도 한다. 호상놀이는 가정형편이 좋고 오래 살고 복이 있는 사람의 초상일 경우 노는 놀이로, 출상시 험난한 길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전날 밤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모여 빈 상여를 메고 밤새도록 만가를 부르며 발을 맞추는 놀이이다.
민간의 가정신앙에서도 조상은 집안 신의 하나로서 조상단지나 그 외 다른 형태로 집안에서 모셔진다. 또한 기제(忌祭), 시제(時祭), 차례(茶禮)를 비롯한 다양한 유교제사를 통해 끊임없이 살아있는 후손들과 만난다. 이런 점에서 죽은 조상은 살아있는 후손들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후손들과 공존하며 지속적인 상호관계를 유지한다. 한마디로 죽은 사람은 그저 죽어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죽었지만 살아있는 존재이다.
이승에 대한 공간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공간을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가령 가정 안에서는 가옥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안방을 기준으로 저승의 공간이 설정된다든가, 가정이라는 소우주를 중심으로 저승의 공간이 설정되기도 하고, 마을이라는 대우주를 중심으로 저승의 공간이 설정되기도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삶의 공간과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인식이 상엿소리의 앞소리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인제가면 언제올까 / 언제오실줄 내모르겄네
북망산천 머다허니 / 문턱밑에가 북망산이라
못가겄네 못가겄네 / 차마서러서 내못가겄네
공든허니 백발이요 / 면치못할것 인생죽엄이라
명천공포 운아삽은 / 천리강산을 앞을세우네
가세가세 어서를가세 / 하관시간이 늦어를간다."
위의 상엿소리에서 보면, 삶의 중심 공간이 안방이고 안방의 문턱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임을 말해 주고 있다. 안방을 기준으로 보면 문턱 밑이 저승의 공간인 북망산인 것이다. 안방은 집안의 어른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가장권, 가독권, 살림살이 경영권 등을 행사하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례적인 행위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이 임종이 다가오면 대개 안방에서 운명하게 되는데, 안방은 산 자들의 삶의 공간이고, 죽은 자들의 공간은 문턱 너머인 셈이다. 인간이 안방에서 영원히 나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안방의 공간은 사방이 막혀 있고 유일하게 외부로 연결할 출입문이 있는데, 이 출입문이야말로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물이다. 따라서 출입문이 있는 문턱을 기준으로 사후공간을 인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처럼 가정의 중심인 안방을 기준으로 사후의 공간을 설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이에를 갈거나 어이가리 / 황성내길은 내어이갈거나
염왕그길이 멀드래건디 / 대문밖이 염왕아닌가
황성천리길 멀드래헌디 / 해변그길이 황성길이라네
북망산길이 멀드래헌디 / 이건너안산이 북망이로다."
위의 상엿소리에서는 가정을 기준으로 저승의 공간을 설정하고 있다. 염라대왕 앞에 가는 길이 멀다고 하지만 대문 밖이 저승이라고 말한다. 저승이 대문 밖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정과 인접한 공간에 설정되어 있는데, 대문은 가족 구성원들이 삶을 영위할 가정과 죽음의 공간이 서로 교통하는 매개물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대문을 통해서 가정의 공간에 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제재와 징계를 받기 마련이다. 조상신들이나 여타의 신들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죽어서 가정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곳도 대문을 통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문을 경계로 저승의 공간을 인식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하겠다. 저승의 공간은 문턱 밑, 대문 밖, 황성, 북망산으로 표현되어 있다. 위의 상엿소리는 이승에서 저승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저승의 공간이 일생을 보낸 가정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마을 밖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황성 천릿길이라고 하는 해변 길은 북망산 길로 연결되어 있고 그 길을 통해 북망산으로 가게 되어 있는데, 북망산은 저승의 공간으로 곧 마을 앞 안산임을 말해 주고 있다. 저승이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인접해 있는 곳에 설정되어 있고, 이러한 사례는 다음의 상엿소리에서도 보여준다.
①북망산천이 머다고허더니 / 건너안산이 북망이로고나
만산호랭이는 술주정을허고 / 물가각새들이 산두거름을긴다
내가살던 이땅을밟기를 / 몇년이나 밟았는길
발자죽이 남이있으데니 / 여러분들이 ?아주세요
하적이야 하적이로고나 / 오늘날이 이자리가 하적이로고
이다리를 건너가먼은 / 어느시절에 다시건너 오리야.
②인제가면 언제올끄나 / 오실날도 창망(蒼茫) 없네
먹덕밤을 개덮어놓고 / 황천길이 웬일인가
언지녘엔 우리집서잤드니 / 오늘지녘부터는 명산대천홀로누워
두견이잡동새로 벗을삼네 /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설워마라 / 맹년춘삼월 돌아오면
그꽃다시 환생허네 / 황천이 멀고멀다드니
앞의강산이 황천이네 / 어화청춘 소년들아
백발보고 반대마라 / 백발이 따로있는가 청춘이 늙어지면 / 백발이 되네.
①과 ②의 상엿소리에서도 저승이 북망산천이고 황천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북망산천과 황천이 모두 동네 앞 안산에 있음을 볼 수 있다. 동네 앞 안산(案山)은 혈 앞의 낮고 작은 산을 말한다. 혈은 용맥중에서 가장 생기가 몰린 곳으로 핵심적인 곳이다. 이 혈에 마을이 성촌(成村) 되고 동네 앞 낮고 작은 산이 안 산이다. 안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의 역할을 한다. 안방의 입구인 문턱 밑에, 가정의 입구인 대문 밖에 저승의 공간이 설정된 것처럼 마을의 입구인 안산에 저승의 공간을 설정하고 있다. 입구는 미지의 세계로 연결되는 곳이어서 입구에 인간 생명의 원향이라고 할 사후세계로 설정하고 있다.
저승의 공간이 진산이라고 할 주산(主山)에 설정되어 있지 않는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삶의 가치를 우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승의 공간을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조종산(祖宗山)이나 조산(朝山)에 설정하지 않는 것도 삶의 공간을 가치화시키고, 삶 중심의 공간 인식의 반영임을 알 수 있다. 저승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죽음을 준비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은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가 혼인만 하면 벌써 죽어서 장사지낼 때 입힐 옷을 장만하다"고 하는 것에서 찾아지는데, 이것은 살아생전에 관을 준비하는 것이나 장지를 미리 마련하는 것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리 준비하는 관념에서 비롯된다.
"이제 가시면은 / 어느세월에 오실라요
명년욧때 제사때나 오실라요 / 오실날짜를 일러주고 가십시예요
열두당군님네
설소리를 들어보고 / 뒷소리도 잘맞어주오
오늘이길로 돌아가시면은 / 어느세월에 오실라요
우리맹인이 정상보소 / 이길로 돌아가시면은
산토로 집을짓고 / 송죽으로 울을삼어
두견지 벗을삼어서 / 산첩첩 작막한곳에
혼자누워 계시게되네."
위의 상엿소리에서 보면, 망자가 저승에 가면 함부로 이승에 올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면 가족의 의례력에 근거하여 일 년에 한 번 돌아올 수 있는데, 그것은 제사의례를 통해서 가능하다. 제사의례는 한 마디로 이승의 후손들과 저승의 조상신들이 서로 교통하도록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제사의례를 통해서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이승에서 삶의 안정과 풍요를 꾀할 수 있다.
결국 상엿소리에 나타난 저승의 공간의 삶의 공간을 기준으로 삶의 공간과 미지의 세계와 서로 교통할 곳에 설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안방/ 문턱 밑, 가정/대문 밖, 마을/마을 앞 안산이 안과 밖의 공간 구조 속에서 이승의 공간/저승의 공간이 구조화되어 있다. 이것은 이승과 저승의 삶에서 이승의 삶을 더 우위에 두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삶의 공간을 중시하면서 저승의 공간을 가까운 곳에 두었던 것은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고, 죽음을 준비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 죽음관과 상장례의 콘텐츠화 연구/ 한성열(탄탄) 원광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문학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