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一到) 창해 (蒼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청산 속을 흐르는 푸른 계곡 물아 빨리 흘러 간다고 자랑하지 말거라
네가 한번 저 푸른 바다에 이르고 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니
지금 밝은 달이 저 산을 환하게 비춰 주고 있으니 좀 쉬어가면 어떤가
<감 상>
이 시조는 황진이의 시조이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조이다.
황진이 (黃眞伊)는 조선 앙조 중엽에 개성 출신의 기녀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 여인이다.
대부분의 기녀들이 부모나 가계(家系)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황진이 역시 출생이나 부모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다. 물론 출생과
별세 연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여러 편의 한시와 고시조를 전하면서 뛰어난 문재(文才)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일화를 남기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인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요즘 말로 하면 가히 수퍼 스타 (super star)라고나 할까.
이 시조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시조이다.
그녀의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왕족 출신인 벽계수(碧溪守)를 만나 왕실 후예
임을 자처하고 도도하게 처신하는 것을 놀려주기 위해 지었다는 일화가
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벽계수라는 분의 이름은 이종숙(李終叔)으로
세종의 서자인 영해군의 손자라고 한다. 벽계수(碧溪守)는 정4품으로 종친
에게 내린 벼슬이라고 한다. 평소에 거문고에 능하고 호방한 성격으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황진이의 시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도 있다. 그녀의 시재(詩才)가 얼마나
출중한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1)
어저 내일이여 그릴 줄 모르던가
이시랴 하드면 가랴마는 제 구테어
보내고 그리는 정을 나도 몰라 하노라
2)
동짓 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둘로 내어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시는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3)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 간들 청산이야 변할소냐
녹수도 청산을 못잊어 울어 예어 가는다
4)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나니 옛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도 저와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
5)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月枕) 삼경(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바람에 지는 잎이야 낸들 어이 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