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夜 成 (밤중에 지음)
獨 夜 睡 難 着 (독야수난착) 외로운 밤에 잠을 이루기 어려운 데
殘 燈 滅 復 明 (잔등멸복명) 타다 만 등잔 불은 꺼질 듯 밝아지고
流 年 催 臘 盡 (유년최랍진) 흘러가는 세월은 연말을 재촉한다네
歸 計 待 春 生 (귀계대춘생) 돌아 갈 마음 봄을 기다리듯 간절해
塞 月 含 弦 細 (새월함현세) 가느다란 초생 달 변방을 비추는 데
寒 鍾 徹 響 淸 (한종철향청) 싸늘한 종소리 맑게 들려 오는 구나
孤 臣 眼 已 暗 (고신안이암) 외로운 이 몸 이제 눈마저 어두우니
何 日 見 時 平 (하일견시평) 그 언제나 태평 세월 다시 만나보리
<어 휘>
臘 盡 : 섣달이 다 지나감
歸 計 : 돌아 갈 방책, 돌아갈 계획
塞 月 : 변방의 달
寒 鐘 : 차가운 종소리
時 平 : 좋은 세월
<지은 이>
최명길(崔鳴吉, 1586 -1647), 자는 자겸(子謙), 호는 滄浪(창랑) 혹은 遲川 (지천)이고, 본관은 全州이며,
完城府院君(완성부원군)에 봉해지고 시호는 文忠이다.
1586년(선조 19년) 8월 25일에 태어 난 공은 17세에 이항복과 신흠의 문하에 나아가서 수학(修學)하였다.
20세 4월에 문과에 합격하여 공조와 병조의 낭관을 지내다가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폐모론에 반대하여서
삭탈 관직되어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38세 3월, 反正에 참여한 공으로 이조의 좌랑과 참의를 역임하였
으며, 靖社功臣(정사공신) 1등에 녹훈되어 完城君에 봉해지면서 이조참판을 지냈다. 이듬 해 李适(이괄)의
난에 摠督副使(총독부사)가 되어 공을 세웠다.
42세 봄, 丁卯胡亂(정묘호란)이 일어나자 和議(화의)를 주장해, 적이 물러난 뒤 탄핵을 받아 추고를 당하고,
啓運宮(계운궁) 神主(신주)의 私廟(사묘) 合祔(합부)문제에 따로 禰廟(이묘)를 세우기를 청해, 이 일로 인해
옥당(玉堂)의 논척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후로 누진을 거듭하여 우참찬, 경기감사, 예조판서, 양관대제학 등
을 두루 역임하고, 병자호란시에는 이조 판서로 척화론을 반대하고 청과의 화의를 적극 주장해 주화론자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공의 처사는 대의명분을 잃고 나라의 체모를 크게 손상시키며, 신하로서 임금에게 항복을 권유
하였다는 척화론자들로 부터 격심한 공박을 받았으나, 시종일관 자신의 소신을 관철해 나라의 위급을 구하
기에 이른다. 적과의 화의가 진행 중에 여러 차례 청나라 진영을 오가며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던 공은 종전
후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전후 정국의 실세로서 경륜을 펼쳐갔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
군사 지원을 요구하는 청에 사신으로 가서, 그 요구를 그치게 하고 포로로 잡혀 간 백성들 수천 명을 데리고
귀국하는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청의 거듭되는 징병 지원 요구를 수상인 영의정으로 청의
수도인 심양에 가서 담판하고 귀국하기도 하였다.
이후 임경업(林慶業)이 명나라와의 제휴를 통해 청을 공격한다는 사건에 연루되어, 화의론자인 공은 오히려
청의 심양에 사로잡혀 가는 곤욕을 당하면서, 3년 가까운 세월을 청나라에서 고통스럽게 보내야만 했다.
이 무렵에 마침 먼저 포로로 사로잡혀 온 청음 김상헌 선생을 만나 동병상린의 아픔을 나누며, 서로 간에 쌓
였던 불신과 오해를 풀기도 하였다고 한다.
60세 2월에 청으로 부터 왕세자와 봉림대군 등과 함께 귀국한 공은 수년 후에 향년 62세를 일기로, 그 파란
많은 일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역사가 이긍익 선생은 자신의 저서인 연려실기술에서 청나라 감옥에서 만난
김상헌 선생과 최명길 선생 간에 서로 주고 받은 시를 소개하면서, 오로지 나라를 위한 일념으로 피차 강력히
자신들의 소신을 주장한 두 분의 충정과 기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해 주고 있다.
(연려실기술에서)
1) 從尋兩世好 (종심양세호) 양대의 우정을 찾고
頓釋百年疑 (돈석백년의) 백년의 의심을 푼다 - 김상헌
君心如石終難轉(군심여석종난전) 그대 마음 돌 같아 끝내 돌리기 어렵고
吾道如環信所隨(오도여환신소수) 나의 도 둥근 고리로 경우에 따라 돈다 - 최명길
2) 遲川(지천)이 심양의 옥에 있을 때 일찍이 청음(淸陰)과 함께 경(經)과 권(權)에 대하여 강론하였다.
이에 청음(淸陰)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成敗關天運 (성패관천운) 성공과 실패는 천운에 달려 있으니
須看義與歸 (수간의여귀) 모름지기 의로써 돌아 가야만 한다
雖然反夙暮 (수연반숙모) 아침과 저녁을 바꿀 수가 있더라도
未可倒裳衣 (미가도상의) 웃옷과 아래 옷을 거꾸로 입을쏘냐
權或賢猶誤 (권혹현유오) 권은 혹 어진이도 그르칠 수 있으나
經應衆莫違 (경응중막위) 경은 마땅히 사람들이 어길 수 없다
寄言明理士 (기언명리사) 이치에 밝은 선비에게 말을 하노니
造次愼衡機 (조차신형기) 급한 때도 저울질을 삼가해야만 해
이에 지천(遲川) 최명길 선생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靜處觀群動 (정처관군동) 고요한 중에 뭇 움직임 볼 수 있어야
眞成爛熳歸 (진성난만귀) 진실로 원만한 귀결을 지을 수 있네
湯氷俱是水 (탕빙구시수) 끓는 물도 얼음장도 다 같은 물이요
裘葛莫非衣 (구갈막비의) 털옷도 삼베 옷도 옷 아닌 것 없나니
事或隨時別 (사혹수시별) 일이 어쩌다가 때를 따라 다를 망정
心寧與道違 (심령여도위) 속맘이야 어찌 정도와 어긋나겠는가
君能悟其理 (군능오기리) 그대도 이 이치를 능히 깨닫는 다면
語黓各天機 (어묵각천기) 말함도 침묵함도 각기 천기가 아닐까
3) 이경여(李敬輿) 선생이 또한 시를 지어 두 사람에게 보내기를,
二老經權各爲公 (이로경권각위공) 두 어른 경ㆍ권이 각기 나라를 위한 것인데
擊天大節濟時功 (격천대절제시공) 하늘을 받드는 큰 절개와 세상을 건진 공로
如今爛熳同歸地 (여금난만동귀지) 이제야 원만하게 함께 돌아간 곳이 있으니
俱是南館白首翁 (구시남관백수옹) 모두가 남관 옥중의 백발이 된 늙은이 일세
청음(김상헌) 선생은 정통 유가의 입장에서 대의명분을 주장하여 왕의 앞에서 청나라에 항복하는
항복 문서를 찢어버리는 강경함을 보여주기에 이르렀으나,
지천(최명길) 선생은 유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임기응변을 통한 국난 극복을 주장하면서 찢어버린
항복 문서를 주우며 그 종이 조각을 맞추면서, 찢어버리는 이도 있어야 하지만 이를
주워 깁는 이도 있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비록 주의 주장은 두 분이 서로 대조적이지만 자신들의 가치관과 소신에 따라 우국의 충정을 펼쳐가는
두 분의 뜨거운 마음만은 하나일 것이라고 믿는다. 후세에 이르러 일부 사람들이 두 분의 행적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경우가 있지만, 두 분 모두 한 시대의 큰 인물이요, 우리 역사에 보배같은 소중한 어른들임
은 분명하다.
오늘 소개한 최명길 선생의 이 시는 시인께서 청나라에 잡혀가서 고생하는 중에 그 착잡한 감회를 노래한
작품이다. 머나 먼 타국 땅의 쓸쓸한 감옥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시인의 처지가 딱하기만 하다.
흐르는 세월에 몸은 늙어서 시력조차 어두워지니, 장차 언제 쯤이나 태평 세월을 만나 볼 것인가. 타국 땅에
사로잡혀 간 몸이 언제 풀려나게 될 지, 기약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연민의 정이 이 시의 주제를 이
루고 있어, 후세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