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강아지 살찌고 생강꽃 노랗게 피는 봄이 오면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북 울진군 서면 삼근리지만 아기였기에 기억에 없고 내가 진정 고향으로 여기는 곳은 삼근리에서 박달재를 넘어 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서는 울진군 서면 왕피리다.
왕피리(王避里)라는 이름의 유래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모후와 이곳으로 피신했다가 금강산으로 들어갔다는 설과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피신한 곳이라는, 설이 있는데, 의미는 동일하다.《택리지(擇里志)》에서 울진을 유람하기는 좋으나 살기는 불편한 곳이라고 했으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지금도 오지체험으로 유명하니 숨어들기 딱 좋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왕피리에는 왕피천이 흐른다.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하계곡에서 발원하여 울진군 왕피리를 굽이쳐 동해로 빠져나가는 물길이다. 수하리의 끝 오무마을에서 왕피리의 한천까지는 오직 강물길은 있어도 사람 길은 없는 무인지경(無人之境)이다. 내 최초의 기억이 시작되는 수하계곡 마을에서 두 해 정도 살았고 왕피리에서 나머지 유년의 기억을 완성했으니 어쩜 난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멱을 감고 놀던 왕피천은 지금 환경 경관보전지역으로 묶여 있다. 그만큼 빼어난 산수와 더불어 산양이나 수달을 비롯해 원앙, 딱따구리 등의 조류, 은어와 연어가 회귀하는 곳이다. 꺽치나 버들치, 쉬리 등의 민물고기가 헤엄치는 곳이니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유년 시절에는 왕피리가 이렇게 그리운 곳이 될 줄 몰랐다. 화전을 일구며 살던 우리 집 살림은 소꿉놀이처럼 단출했다. 벌목꾼들이 쩡쩡 나무 찍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 가는 십리 길은 어린애가 다니기에 너무 멀었다. 아지랑이가 아련해지는 봄날이면 이제 풋기운을 내기 시작하는 잔디밭에서 저 멀리 흘러가는 왕피천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허기를 느꼈다.
저 물길이 돌아서 빠져나가는 곳에 있을 미지의 세계가 궁금했다. 가끔은 황토물을 냈지만,
강물은 언제나 반짝이는 비늘을 달고 흘렀다.
고향을 떠나온 지 몇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단발머리 나풀대던 아이는 중년의 여자가 되었다. 마법의 양탄자는 없고 삶의 파도만 밀려왔다. 넘어야 하는 순간마다 왕피리가 떠올랐다. 밤이면 꿈속에서 언제나 혼자 산길을 걸었다. 여덟 살 아이가 되어 맨몸으로 왕피천을 헤엄쳤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자유롭고 온몸이 평안했다. 꿈길에서는 혼자라도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았지만 복잡하게 엉킨 현실은 언제나 무서웠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고향이다. 내겐 왕피리다. 봄이면 생강꽃 살구꽃이 피는 동산, 여름이면 감자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는 동네 어귀, 가을이면 붉은 감이 등불처럼 내걸리는 집, 겨울이면 말라붙은 고욤 열매를 줍는 뒤란이 있던 마을이다.
그곳에 가서 사흘 밤낮만 쉬다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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