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 <15>
15
절집 할머니가 죽었다.
눈부신 추석날 아침 부처님께 귀의했다. 엄마는 어제, 절집 할머니가 오지 않는다며 가사도우미에게 갖은 투정을 부렸다. 정작 가사도우미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절집과 왕래하는 마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걸 당신은 망각한 듯했다. 아랫집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같은 입장이었다. 그건 소통의 단절이 아니라 그냥 무관심일지 모른다. 예전의 시골 인심이 아니었다. 다들 마음의 빗장을 질러놓고 살았다. 더구나 바깥출입을 못 하는 엄마는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마을의 애경사를 알 수가 없었다. 유일한 소식통인 가사도우미도 입이 무거운 편이라서 당신이 먼저 꼬치꼬치 캐묻지 않으면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갔다.
비보를 듣고도 당신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절집 할머니의 죽음을 예고라도 한 듯. 한 달이 넘도록 절집 할머니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언제부턴가 당신은 대문을 열어놓지 않았다. 가사도우미가 가고 나면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듯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었다. 그럴 때면 당신도 모르게 희망이를 와락 껴안고 있었다.
당신은 현관문을 밀고 마당을 기어갔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였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전동차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대문을 열었다. 청명한 가을 햇살이 절집으로 올라가는 골목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당신은 대문 턱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망연히 전방을 주시했다. 누굴 기다리는 걸까. 절집 할머니는 더 이상 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났는데…. 언제까지 대문 문턱에 목석처럼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한 줌의 티끌이 되어 날아가는 절집 할머니의 영혼을 보았기라도 한 걸까. 따라 나온 희망이가 허공을 향해 멍멍, 오랫동안 짖었다.
중추절 하늘은 코발트블루처럼 청명했다. 추석 분위기는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지만 대기는 가을 냄새를 한껏 담고 있었다. 마을 들판에서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냄새이기도 했다. 부산에 살고 있다는 아들 집으로 역귀성 했는지 아랫집은 잠잠하다. 320번 시내버스가 오치마을 정류장으로 들어선다. 명절인데도 운행하는 버스가 신기해 보인다. 승객은 한 명도 없다. 오늘 같은 날 대중교통 이용객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절로 궁금해진다.
“할매가 오는갑다.”
버스가 빵빵거리자 대번에 엄마가 반응한다.
“절집 할매? 그 할매는 죽었는데….”
부르릉하며 마을을 떠나는 버스를 보며 나는 말한다.
“저 버스 잡아라. 저기 할매가 타고 있는디….”
엄마는 또 애먼 소리를 한다. 한 손으로 대문 문턱을 짚으며 애써 일어선다. 나는 엄마를 부축하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버스 잡으라니께. 할매랑 항꾸 가고 싶구나.”
말투는 간절한데 표정과 행동은 하나도 간절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른다. 안방으로 들어가자 텔레비전부터 켠다. 불교방송에 채널이 맞춰져 있다. 엄마는 침묵한 채 텔레비전 화면을 주시한다. 선문사 도솔암 지장보살 불상이 클로즈업되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장보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온유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을 저에게 주시고 제가 받을 복은 타인에게 나눠주십시오. 이처럼 좋은 복을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돌리고 고통은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현세의 지옥인 죄악과 번뇌와 질곡을 초월한다면 나도 지장보살처럼 될까? 엄마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신도 모르게 지장보살을 읊조리고 있었으니까.
절집은 오래지 않아 빈집으로 남았다. 독거노인이 된 대처승을 자식들이 와서 데려갔기 때문이다. 필요해서 가져간 건지 처분할 생각이었는지,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은 트럭에 실어 가고 소소한 가재도구는 그대로 놔둔 채였다.
엄마는 무릎걸음으로 골목을 올라갔다. 희망이가 줄레줄레 당신 뒤를 따라갔다. 엄마는 자물쇠로 채워진 절집 대문 앞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절집 할머니가 떠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걸까. 다 늙어서 부처님의 존재를 일깨워 준 절집 할머니가 당신은 눈물 나도록 고마운 모양이다. 엄마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마을에 절집이 들어서고 나서였다. 아버지가 죽고 혼자 된 엄마는 과부 신세타령을 하더니 급기야 동네 사람들을 미워하기 시작했었다. 아랫집과의 불화는 여전했고, 금실이 좋은 집들을 싸잡아서 험담했다.
“지들은 천년만년 살 줄 아나벼. 그딴 것들, 무슨 씰 데가 있겄냐.”
엄마는 밥을 먹다가도 원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애꿎은 사람 잡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조금씩 변해 간다고 생각했다. 누나는 결혼 못 한 내 탓을 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그건 과부의 가슴앓이였다.
“그랬다냐. 남 못 되기를 좋아하고, 잘되면 배 아파하고….”
당신은 걸핏하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올가미를 놔서 괴로움을 초래하는 <질곡>이라는 것. 죄악이나 번뇌가 될 수 없는 그것은 부지불식간 생을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트린다. 누구는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또 누구는 사랑 때문에 힘들어한다. 성인(聖人)은 번뇌 때문에 자살하지만, 속인(俗人)은 질곡 때문에 자살한다. 다행히 엄마의 질곡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아서 힘들게나마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등장한 절집 할머니는 엄마의 질곡을 덜어주었는데,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더 한층 무섭게 다가온 질곡을 엄마는 타파할 묘책을 세웠는가 보았다. 망각.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엄마는 깨끗이 잊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제 일도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였다. 나보다 가사도우미가 그 사실을 먼저 알아차렸다. 여자는 우리 집에 와서 언제나 그랬듯이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방문 요양을 하는 요양보호사 입장에서는 엄마에게 대접할 반찬을 장만하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는 찬거리를 사 와서 너무 짜거나 맵지 않게 요리를 한다. 엄마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콩으로 만든 식용유로 생선을 굽거나 전을 부치면 먹지도 않는다. 올리브유 맛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만 고집한다. 계란도 왕란을 사 오지 않으면 막 화를 낸다. 어제 사다 놓은 초생란 한 판이 냉장고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당신에게 계란찜을 해줄 생각이었는데 가사도우미는 퍽이나 난감했다. 야채 박스에도 냉동칸에도 계란은 없었다. 다른 곳에 짱박아 두었는가 싶어 여자는 초생란 행방에 대해 물었다. 엄마는 벌컥 화부터 냈다. 니가 달걀을 언제 사 왔다고 그러냐? 엄마는 여자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사 오지도 않았던 계란을 당신에게 내놓으라고 한 건지 여자는 잠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쓰레기봉투에 버려져 있는 계란을 보고 어이가 없어 쓴웃음만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롱에 꼭꼭 감춰 놓은 통장과 현금카드가 없어졌다며 여자를 도둑년 취급했다. 방금 밥을 먹고도 배가 고프다며 아이처럼 칭얼댔다. 당신에게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며 여자는 날 붙잡고 하소연했다. 백번 생각해도 여자 아니면 당신을 수발하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양보호사는 식모나 가정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여자를 식모 취급해 왔다. 여자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더니 이제는 생떼까지 쓰기 시작했다. 여자는 당신에게 두손 두발 다 들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치매기가 있다고 여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신과 얘기하다 보면 확실히 그걸 느낀다고 했다. 오래전 일은 기억하는데 최근에 일어난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치매안심센터가 있는 보건소 관계자에게 당신의 행동거지를 설명했다. 치매 초기 증상과 비슷하다고 했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거동이 불편해도 정신은 말짱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당신은 말수가 현저히 줄어들더니 날 바라보는 표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도 망연한 표정. 마치 초면에 무슨 말을 할까 뜸 들이며 바라보는 눈빛이 저럴까? 엄마와 대면하는 게 부담스러웠고, 급기야 무섬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피하고 싶었다. 퇴근하는 게 싫어졌고, 신새벽에 출근하고 싶었다. 집에 있을 때 당신은 안채에서, 나는 별채에서 죽은 듯이 지냈으면 싶었다. 그러나 당신은 무릎걸음으로 잘도 돌아다녔다. 행동반경이 절집과 아랫집 대문까지였지만 지치지도 않고 쏘다녔다. 가사도우미는 엄마를 감시하는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다. 밥을 안치거나 집 안 청소를 할 때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차라리 예전처럼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해댔으면 훨씬 나았겠거니 싶었다. 갑자기 집안이 너무 조용하니까 절도죄를 짓는 것마냥 불안했다. 현관문을 잠그는 건 좀 그래서 케어를 마치고 돌아갈 때면 대문에 쇠통을 채우고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까 누나가 서울에서 내려와 있었다. 반갑다기보다 왠지 씁쓸했다. 근무 시간도 아닌데 가사도우미까지 온 걸로 보아 엄마 신상에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누나는 날 보더니 다짜고짜 화를 냈다.
“지금 직장이 문제냐? 그깟 공장이 대수냐고? 엄마가 사라져서 오후 내내 찾아다니고 난리가 났는데….”
누나는 가사도우미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당신이 그렇게 된 게 자기 책임인 양 가사도우미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나는 누나가 과대 포장해서 말을 한다는 걸 잘 안다. 기껏해야 절집이나 아랫집을 기웃거리고 다녔을 엄마를 동네방네 호들갑 떨면서 찾아 나섰겠지. 사태 수습이 잘 됐는지 엄마는 안방에 오도카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내려왔어?”
안타까운 시선으로 엄마를 일별한 뒤 누나에게 물었다.
“어찌 알긴? 아줌마가 말해줘서 알았지.”
누나는 가사도우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래도 치매 노인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추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실상 가사도우미에게 물었지만 내가 먼저 반응했다.
“뭘?”
“벽에 똥칠할 때까지 엄마를 그냥 둘 거냐고?”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이 맹꽁아, 진작에 그랬어야지.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어?”
“안 믿겠지만, 최근 며칠 사이에 변한 거야. 치매 초기 증상이 다 그렇다더라.”
이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내 자신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공장 노동자의 일상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행운은 내게서 영영 비껴갈 것인가? 대관절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왜 주지 않는 것일까? 고난의 장막이 너무 두꺼워서 걷힐 날이 까마득했다. 아무리 살아도 묵묵히 견디라고만 하는 비참한 현실이 너무 싫었다.
“엄마가 비명횡사했으면 좋겠어? 그러게 내가 뭐랬니? 진작에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했잖아.”
마치 요양 시설에 입소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처럼 누나는 말했다.
“지금껏 아무 문제 없었잖아. 엄마도 이 동네 떠나기 싫다고 했고…. 왜 지금 와서 난리야?”
“이제부터가 걱정이니까 그러지. 긴말 필요 없어. 내가 데리고 갈 거야. 엄마 짐 정리하러 내려왔어. 아줌마도 그렇게 알고 내일부터 오지 말아요.”
누나는 막무가내였다. 무작정 엄마를 서울로 데려가는 게 효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서울에 여동생도 있으니까 적이 안심이 되긴 했다. 나도, 가사도우미도 그렇게 되길 바랐는지 모른다. 치매 노인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우리에겐 없으니까. 하지만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엄마의 거취 선택권은 나에게도, 여자에게도 얼마쯤 주어져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