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 09. 08
‘불혹시대’다. 우리나이로 40세인 1976년생 베테랑 선수들이 투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삼성 이승엽과 임창용, NC 이호준, 한화 박정진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오래 야구를 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팀 전력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임창용와 박정진의 피칭, 이승엽과 이호준의 타격, 그리고 이들의 철저한 몸 관리는 이제 막 프로에서 꽃을 피우는 젊은 투수들과 타자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다. 전성기를 지나면 나이를 먹어갈수록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단 야구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인체의 법칙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 속도와 선수의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무조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는 경험과 요령은 베테랑만이 누릴 수 있는 특전이다. 시속 150㎞의 공을 생각 없이 우겨 넣는 20대 투수보다 140㎞도 안 되는 공으로 타자의 허를 찌르는 40세 투수가 팀의 현재에는 더 값진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 불혹에 접어들었지만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이승엽은 상대 투수와 볼카운트에 따라 매 순간 준비 자세를 바꾸는 경지에 올랐다. /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씁쓸한 현실과 매일 싸우다
최근 은퇴한 A 야구인은 30대 중반 이후의 현역 생활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보다 잠을 깊이 못 잔다. 그래서 야간 경기가 끝나고 다음 원정지까지 버스로 이동할 때는 잠을 잘 안 자려고 한다. 새벽에 숙소에 내려서 한 번에 깊이 자기 위해서다. 또 젊을 때는 경기가 끝나면 밤늦은 시간이라도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지만, 나이가 들면 소화력도 예전만 못해서 야식도 자제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한번 리듬이 깨지면 회복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점점 더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해진다. 팀의 훈련 스케줄보다 개인의 필요에 맞춰 훈련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어떨 때는 무리해서 연습하다 다음날 경기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힘을 최대치까지 끌어 올리는 건 젊은 선수에 뒤지지 않지만, 회복이 훨씬 더디기 때문에 훈련도 원하는 만큼 할 수가 없다. 새로운 것을 해보려 해도 점점 고민이 많고 망설여진다.”
씁쓸한 고백이지만, 30대 중반을 넘긴 많은 선수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 이 야구인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라운드에서 나태하거나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한물갔다’는 말을 듣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더 이를 악물게 된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갈림길이 찾아온다. 자신만의 비법을 터득해 더 오래 버티거나, 구단의 따가운 시선에 못 이겨 유니폼을 벗거나. 올 시즌 맹활약하고 있는 불혹의 선수들은 확실히 전자다. 하루하루가 끝없는 관리와 노력의 연속이다. 그래서 20대 선수들보다 더 큰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 임창용
# 좋은 몸을 타고나야 한다
송진우 KBS N스포츠 해설위원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유일한 200승 투수다. 마흔을 훌쩍 넘겨 선수 생활을 하며 숱한 투수 통산기록의 맨 윗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가 밝힌 ‘장수’의 첫 번째 비결은 사실 가장 솔직하면서도 허무하다. “선천적으로 건강한 몸을 타고 나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이 운동을 해도 유독 덜 지치고 빨리 회복하는 선수들이 분명히 있다. 송 위원도 “야구를 수십 년 하면서 사실 보약도 제대로 먹은 적이 거의 없다. 보양식을 막 찾아다니며 먹는 성격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힘이나 체력이 좋은 게 전부는 아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부드러움, 즉 유연성이다. 그래야 좋은 폼으로 최대한 불필요한 힘을 덜 쓰면서 부상 없이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다. 특히 투수에게는 유연성이 더 중요하다. 몸의 남다른 회전력 덕분에 많은 이닝을 던지고도 선수 생활을 오래 했던 B 투수코치는 “몸이 부드러워야 근육에 무리가 생기지 않는다. 근육이 끊어지거나 다치면 선수 생명도 끝이기 때문”이라며 “명 투수였던 선동열 전 KIA 감독이나 조계현 KIA 수석코치 등도 모두 유연성이 뛰어났다. 특히 선 전 감독은 실력뿐만 아니라 유연성으로도 역대 최고로 통했고, 조 코치는 선수 시절 골밀도 검사에서 동료들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데뷔하자마자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했던 LA 다저스 류현진도 늘 타고난 유연성과 부드러운 몸을 이용한 완벽한 투구 밸런스가 최고의 강점으로 평가 받았다.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이름을 날린 임창용도 마찬가지다. 한 후배 투수는 “피칭을 할 때는 물론 캐치볼을 하는 모습을 봐도 몸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면서 공이 홱 차고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건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연습한다고 되는 부분도 아니다. 그냥 갖고 태어난 몸 자체가 다른 것 같다”고 감탄했다.
# 끊임없이 변화하라
‘국민 타자’ 이승엽은 2013년 한 차례 부진을 겪은 뒤 이듬해부터 타격폼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배트스피드가 느려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배트를 꼿꼿이 세우는 대신 어깨 위에 눕히는 듯한 자세로 타격을 시작했다. 그 후에는 점점 진화를 거듭해 이제는 상대 투수와 볼카운트에 따라 매 순간 준비 자세를 바꾸는 경지에 올랐다. 끊임없는 변화는 이승엽이 여전히 최고의 타자로 군림하고 있는 비결인 셈이다.
C 타격코치는 “이승엽은 투수의 유형에 따라 다리를 드는 타이밍과 스트라이드도 조절해가며 경기를 하고 있다”며 “이승엽이 400홈런을 때려내고 마흔인 지금까지 3할대 타율을 유지하는 것은 매년 조금씩 자신이 보완해야 할 점과 그 해결방법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촉수’와 그 방법을 몸에 빠르게 익히는 ‘감각’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 송진우
송진우 위원 역시 데뷔 후 수년간 공만 빠르고 제구가 불안한 투수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빠른 공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만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송 위원도 투구폼을 조금씩 수정하며 몸의 변화에 적응해 나갔다. 또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하던 그가 체인지업을 레퍼토리에 추가해 구속 저하로 인한 단점을 보완했다. 변화가 곧 살 길이었던 셈이다.
그런가 하면 임창용은 한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의 프로야구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몸 관리법에 눈을 떴다. 그는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안 거르고 운동하는 게 컨디션 유지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일본에서 5년, 미국에서 1년 6개월을 지내보니 많은 부분이 한국과 달랐다. 일단 선수가 원하고 찾아서 운동하지 않으면 안 시키고, 부족한 게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그게 나에게는 더 편하고 맞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임창용은 또 “정말 확실하게 깨달은 게 있다면, 하기 싫을 때는 안 해야 된다는 것이다. 정말 힘들고 컨디션도 안 좋은데 눈치 보느라 참고, 시키니까 참고 하다가 부상이 오는 것”이라며 “정말 쉬고 싶을 때는 편하게 쉬어야 부상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정진은 프로 생활 초중반을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보낸 케이스다. 그 과정에서 몸 관리에 도가 텄고, 건강한 몸으로 경기에서 던질 수 있는 행복을 깨달았다. 그는 “주위에서 자꾸 ‘힘들지 않느냐’고 하면 오히려 ‘내가 힘들어야 하는 건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며 “나 스스로 ‘힘들다’ 생각하면 한없이 힘든 것이고,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공을 많이 던지면 피로는 쌓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리’가 중요하다. 그는 “나도 프로에서 많은 경험을 해봤고, 나이도 있으니 피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다”면서도 “여기서 ‘힘들다,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버리면 그냥 여기서 멈추게 된다. 대신 부상은 최대한 조심하려고 한다. 하도 아프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면 위험신호라는 것을 내가 잘 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정진의 철저한 자기 관리는 후배 투수들마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일례로 그는 시즌 도중에 술을 마시지 않고, 식단도 건강하게 관리한다. 같은 팀 후배 투수는 “몸에 좋은 것을 열심히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반대로 몸에 안 좋은 것을 절대 하지 않는 것도 그만큼 대단해 보인다”고 귀띔했다.
▲ 이호준. / 사진제공=NC 다이노스
# 루틴을 철저하게 지켜라
오래 1군 생활을 해온 베테랑 선수들일수록 매일같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루틴(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을 철저하게 지킨다. 출근 시간과 식사 시간부터 정해진 훈련을 해나가는 과정, 경기 전의 준비와 경기 후의 마무리까지 최대한 일정한 패턴으로 유지하려고 애쓴다. 몸에 좋은 습관을 들여 최적의 향상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이호준은 특히 루틴을 강조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그는 심지어 징크스에도 민감하다. 손톱과 발톱은 꼭 월요일 오전에 깎고 시즌 중에는 미역국을 절대로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다르지 않다. 만 42세인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아침식사를 하고 같은 패턴으로 경기를 준비한다. 은퇴한 마리아노 리베라도 처음 마무리투수를 맡은 1997년부터 은퇴한 2013년까지 매일 경기장에서 루틴대로 움직였다. 이런 끈기와 절제가 결국 자기관리의 또 다른 방식인 것이다.
두산 용병 더스틴 니퍼트도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선배 투수들에게 루틴의 중요성을 익히 들었다. 그는 “유명한 베테랑 투수들은 다들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고 하더라. 그 루틴을 잘 지키는 게 오래 선수생활을 하는 비결이라고 들었다”며 “선발로 나가서 잘했든, 못 했든, 혹은 로테이션을 걸렀든,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자신만의 루틴을 매우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했다. 강한 자가 오래 버티는 게 아니라, 오래 버티는 자가 강하기 때문이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일요신문 [제1217호]
‘살아있는 전설’ 일본 50세 투수 야마모토
- 등판할 때마다 ‘역사’가 바뀐다
1965년 8월 11일. 일본 주니치의 왼손 투수 야마모토 마사가 태어난 날이다. 롯데 이종운, 두산 김태형, 넥센 염경엽, KIA 김기태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야마모토는 그러나 여전히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
야마모토는 50세 생일을 이틀 앞둔 지난 8월 9일 야쿠르트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일본 최고령 등판 기록을 49세 363일로 늘렸다. 시즌 처음으로 마운드에 오른 그는 첫 타자를 3구 삼진으로 잡아낸 뒤 볼넷과 좌전안타, 폭투로 만든 1사 2·3루 위기에서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줬다. 이후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더 이상의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지만 마운드에 오른 건 거기까지였다.
이날 야마모토의 기록은 1이닝 1안타 1실점. 직구 최고 구속은 133㎞/h, 투구수는 22개. 야마모토가 야심차게 도전했던 세계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 경신에는 아쉽게 실패했다. 공식 기록은 메이저리그의 제이미 모이어가 콜로라도 시절인 2012년 4월 18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전에서 기록한 만 49세 150일이다.
야마모토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신화’다. 1984년 주니치에 입단해 1986년 1군 무대에 등장한 그는 지난해까지 579경기에서 219승 165패, 방어율 3.45를 기록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도 당연히 야마모토가 보유하고 있다. 만 49세 25일의 나이였던 지난해 9월 5일 한신전에서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올해 3월 스프링캠프에서 후배 투수들과 선발 경쟁을 하다 오른쪽 무릎을 다쳤지만, 부상을 털고 6월부터 2군에 합류해 다시 경기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다시 1군 무대를 밟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노력과 투지의 산물이다.
최근 2년간 성적이 부진했던 주니치는 지난해 말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방출했다. 그런데 가장 나이가 많은 야마모토는 연봉 4000만 엔(약 3억 9000만 원)에 재계약했다. 주니치 구단은 “야마모토 스스로 은퇴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는 계속 뛸 수 있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데뷔 후 4년간 1군에서 단 1승도 따내지 못했고, 지난 5년간 거둔 승수를 다 합쳐도 15승에 불과한 투수. 특출한 구종도 없고 출발도 화려하지 못했던 노장 투수가 마지막 순간까지 투혼을 발휘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프로야구 전체에 귀감이 된다는 뜻에서다. 주니치에서 수년간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야마모토 역시 아직은 감독석이 아닌 마운드가 자신의 자리라고 여긴다.
현재 주니치의 감독은 바로 야마모토와 호흡을 맞췄던 후배 포수 다시시게 모토노부(45)다. 다니시게 역시 ‘감독 겸 선수’라는 흔치 않은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1989년 4월 11일 히로시마전을 시작으로 26년 3개월 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온 그는 올해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다 출장 신기록도 세웠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