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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호-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열쇠
1.세상의 작은 등대가 되어
강영은
주여!
이제 당신의 손에 배의 키를 맡깁니다.
힘 다해 노저었어도
삶의 파도 거세게 나를 휩쓸어
어둠 속에서 표류하는 시간들은 쌓여가고
이제 키를 쥔 손 힘없이 떨려
배는 자꾸만 항구에서 멀어져 가기에
주여, 친히 배를 저으시는 항해의 주인이 되어주시라고
당신의 능력의 손에 배의 키를 맡깁니다.
잔잔히 구원의 항구로 인도해주실 것을 알기에...
주여!
이제 당신의 손에 방문의 열쇠를 드립니다.
보물인 양 애지중지하던,
방에 가득한 허울좋은 값싼 물건들을
모두 쓸어버릴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 오래 미루다가
번쩍이며 우리의 가슴을 우롱한 그것들이
한갓 빛바랜 욕망의 찌꺼기들이었음을 깨닫고
주여, 나의 가슴 깨끗이 쓸고 지나가실 당신의 손에
방문의 열쇠를 놓습니다.
깨끗이 비워지면 아름다운 하늘의 보석들로
가득 채워주실 것을 알기에...
주여!
이제 당신의 손에 피리를 놓습니다.
오랜 세월 현란하게 불어대어도
스스로 내는 허황된 소리는
한가닥 영혼의 현도 울리지 못하고
그 덧없는 유희는 삶을 무거운 땅에 꽂히게 만들었습니다.
주여, 이제 당신이 연주해 주십시오.
생명의 숨결로 불어주시는 당신의 피리 소리는
감미로운 화음이 되어 나의 가슴에 젖어들고
당신의 손에 들리웠기에
더 이상 쇳소리를 내지 않는 나의 작은 피리는
노래의 날개를 타고 하늘로 퍼져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는 새 노래를 연주할 것입니다.
주여!
이제 사랑의 금 줄을 가지고 오시옵소서.
끊을 수 없는 세상의 쇠사슬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
삶에서 빼놓을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들을
공들여 모아 정신없이 사슬을 만들어가다
그 단단한 쇠사슬에 그만 묶이고 말았습니다.
기쁨과 자유를 얻으리라던
희망은 영혼을 깊은 절망으로 가두고
향방없이 허공을 친 싸움은 깊은 상처만 남겨놓았습니다.
주여, 이제 하늘의 줄로 나를 두르소서.
당신의 사랑의 금 줄은
영혼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줄 것을 알기에...
주여!
이제 입을 벌려 내 속의 자아를 꺼내주십시오.
어디를 가든지 피할 수 없이 따라와 큰 소리를 내고
늘 높은 소리로 말대꾸를 하는
육신의 자아를 꺼내가 주십시오.
조그맣지만 크게 행동하고 형편없지만 뽐내기 좋아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교만한 자아를
주여, 이제는 아주 뽑아가 주십시오.
자아가 뿌리 뽑혀진 마음에
해보다 빛나는 빛으로 당신이 가득 차실 것을 알기에...
주여!
이제는 향기를 날리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심겨진 당신의 생명의 씨앗은
깊은 어두움 속에서도 싹이 터 작은 꽃봉오리 맺게 하고
지난날 허락하신 고난은 기름진 퇴비되어
아름다운 꽃을 피게 했습니다.
아프기만 했던 당신의 수술하시는 칼은
끝내 가슴에 달콤한 인내를 새기고
보석처럼 영롱한 기쁨의 꽃을 피게 했습니다.
주여!
매일 죽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듯이
매일 잠자리에 영원한 죽음으로 눕고
매일 아침 영원한 거듭남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낡은 노래가 입술에서 사라지면
새로운 음률이 가슴에서 솟아나고
옛 길 아득히 스러져 가면
새로운 길이 마음속에 기적으로 나타나듯이...
주여!
이제는 험한 세상에 작은 등대가 되겠습니다.
당신께서 마음의 등잔에 불 밝히신 진리는
혈관을 돌아 모든 찌꺼기들을 태우고
사랑의 빛으로 나의 생명 속에서 춤추고 있습니다.
나의 눈 속에 귓 속에 사시는 주님이시여,
생명의 고동으로 나의 영혼에 깃드시는 주님이시여,
이제는 당신의 분신이 되어
당신의 마음으로 웃고
당신의 손으로 어루만지고
당신의 말로만 말하겠습니다.
절망과 낙담이 있는 곳에 소망에 찬 웃음을
무정함과 차거움이 내린 곳에 부드러운 동정의 손길을
상처와 소외가 자리한 곳에 따뜻한 말을 흘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어두운 세상이
기쁨의 빛으로 환하게 비치도록...
여러가지 빛깔의 노래로 가득 차도록...
주여!
작은 등대가 되겠습니다.
삶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영혼을 잃은 사람을 위하여
마음속에 사랑을 잃은 사람을 위하여
마음의 등잔에 진리의 빛을 잃은 사람을 위하여
작은 등대가 되겠습니다.
아주 환한 당신의 빛으로 인도하는
작은 등대가...
이 세상을 사랑의 빛으로 가득 채우는 작은 등대가...
2.권두언
강병국 목사
세상 어디에 가든지 아이들의 순진함과 밝은 미소는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들의 애정과 평화로움에 어른들의 마음들이 쉼을 얻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이러한 선물로 얻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교육시키느냐 하는 큰 관건이 부모들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육의 영향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하늘의 빈 자리들을 채우며 영원히 살게 될 인물들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오염이 전혀 없는 곳에서 영원토록 배우며 성장하고, 또 나아가서는 자기들의 원하는 모든 소원들과 꿈들을 성취시키고 이룰 수 있는 우주의 주인공들로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 목표는 영원한 하늘이지 잠깐 있다가 떠나갈 이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자녀 교육의 이념과 사상이 세상의 것들과 큰 차이를 갖게 됩니다.
과연 요즈음처럼 혼잡하고 타락한 세상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우리 자녀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킬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을 영원히 살 수 있는 자로 꼴지 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여야 반항적인 아이들을 그리스도인적인 예모를 가지고 다룰 수가 있을까요? 자녀 교육처럼 힘든 일이 없습니다. 자녀들의 교육만큼은 아무도 장담할 자가 없습니다. 특히 요즈음과 같은 악한 세상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십시오! 우리들에게 자녀들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며 도와 주시려고 팔을 벌리고 계십니다.
또한 삭막해져만 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참으로 그리스도인다운 부부관계를 유지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임재하시는 가정, 그러한 곳이야 말로 타락한 세상 속에서 가족들을 지키는 요새이지요. 이번 호는 여러분들에게 우리의 가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과 힘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3.태초에 세워진 세 가지 제도
생애의 빛 편집실
가정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가정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만물이 창조주의 손에서 새롭게 만들어졌던 그때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창조 후 첫 번째 주말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3가지 제도가 세워졌는데, 그 첫 번째는 정해진 날에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를 드리는 예배일에 관한 제도였다.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음이라” 창 2:1~3.
두 번째 제도는 아담과 하와를 맺어준 결혼 제도였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세 번째 제도는 그들에게 최적의 건강과 행복을 약속해 주는 건강 원칙이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29.
에덴동산에 세워진 인류 최초의 가정을 위하여 마련된 그 세 가지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복음이 세대와 세대를 걸쳐서 이어지고 보존되기를 원하셨다. 에덴동산에서 세워진 이 세 가지 제도와 원칙을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을 파괴하고 없애기 위하여 애써온 사단의 계략을 살펴보면, 그 속에서 우리는 매우 놀라운 영적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세상과 기독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에덴동산에서 세워놓으셨던 세 가지 원칙들이 매우 성공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 제도, 예배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로서 정해진 날인데,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가정들이 매 주말마다 안식일을 정확하게 준수함으로써 모든 가정들이 자신들을 창조해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계속해서 기억하게 되기를 원하셨다. 만일 인류가 창조를 기념하는 안식일을 정확하게 기억하여 준수해 왔다면 진화론이나 빅뱅과 같은 마귀의 교묘한 거짓말이 전혀 존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온 인류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지식과 진리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구약에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한 진리를 보존하고 하나님이 유일하신 창조주이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후에 그들에게 주신 십계명에서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돌비에 기록하여 주셨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명을 공격하였는데, 예수께서 초림하셨던 시대에는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을 동원하여 안식일 계명을 율법주의적으로 가르쳐서 하나님의 안식일을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를 변질시키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제도에 대한 사단의 공격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특히 중세기에는 로마 교황권을 통하여 안식일 계명의 변경을 시도하였다. 지나간 중세기의 역사 속에서 안식일 계명을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한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법에 대한 사단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마 5:18). 온 가족이 안식일에 손을 잡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 드리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바로 그것이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첫 번째 제도였다.
두 번째 제도, 결혼과 가정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결혼 제도를 설립하심으로써, 가정을 통하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전수되고 그분의 뜻이 계승되도록 하셨다. 만물을 창조한 이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식을 주관하시면서 세우신 결혼 제도와 가정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진리와 복음을 보존하고 전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우신 가장 중요한 제도이다.
창세기 1장 27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는 말씀을 읽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몸과 마음을 창조하셨다. 이사야 43:6-7에는,“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시조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였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사이의 사랑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세워진 제도이다. 하나님께서는 결혼한 남녀들이 결혼 생활을 통하여 당신의 성품을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결혼 제도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제도이며,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결혼은 사단의 가장 무서운 공격으로 인하여 파괴되어 가고 있다. 결혼의 열매로서 생기는 가정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단도 그의 최대의 관심을 가정에 두고 있다. 왜 결혼과 가정이 사단의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을까? 왜냐하면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의 능력이 날마다 실제적으로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함을 받았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였다. 그러자 즉시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생명을 인류를 위한 대속제물로서 바치는 구속의 계획을 수립하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동물의 희생 제도가 세워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첫 번째 희생 동물의 가죽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 입히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이 범하여지지 않았더라면, 인류에게는 형벌과 죽음이라는 것이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구세주의 필요성도 없었을 것이고, 동물의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은 회한이 가득한 심령으로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법과 복음을 가르쳤지만 그의 장남인 가인은 인류의 첫 번째 살인자가 되었다. 인류를 위한 위대한 구속의 계획이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정의 숫자는 극히 적었다. 선보다는 오히려 악이 신속하게 퍼져 나갔으며 아담 이후로 열 번째 세대가 되는 노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그 죄와 악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홍수로서 다시 정결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홍수 후, 하나님의 법과 복음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 의해서 보존되고 전수되었다. 가정은 진리를 보존하고 복음을 전수하는데 있어서 가장 강력하며 기본이 되는 조직이다. 그래서 사단은 가정을 파괴하여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결혼을 앞 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충고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울 가정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에 맡겨지는 신성한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어린 자녀들의 행복과 구원은 대개 부모들의 신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부모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자녀들의 육체적, 도덕적 특성이 결정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가 이토록 부패하고 부도덕한 이유는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 가정이 부패되고 부도덕하게 변모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적은 숫자의 가정들만이 하나님의 법과 복음을 보존하고 전수하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을 뿐이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결혼하는 당사자들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태어날 자녀들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유익을 얻기에 가장 합당한 조건을 고려해야만 하며, 동료 인간들에게 축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젊은 남녀들은 자신들이 결혼에 따른 의무와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실제적인 사회 생활을 경험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조혼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혼과 같이 그 결과가 본인들이 무덤에 들어간 후에도 자녀들을 통하여 지속되는 일생일대의 중대사를 조급하거나, 충분한 준비 없이,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충분히 발달되기 전에 결정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귀중한 선물이다. 순결하고 거룩한 애정은 감정이 아니고 원칙이다. 참된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충동적이거나 맹목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눈이 가리워져서 모든 일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것은 진실되고 순결한 사랑이 아니다. 참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에 역사하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상대방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결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생애의 운명을 함께 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품성을 낱낱이 헤아려 보아야 하며, 그 성품이 표현되는 하나 하나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판단해 보아야 한다. 결혼은 이 세상에서의 삶과 장차 얻게 될 영원한 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할 수 없는 결혼 계획을 세우지 않을 것이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문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권고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만일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듭난 부모들을 가지고 있다면, 부모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계획과 희망을 부모에게 말하고, 그들의 인생 경험에서 습득한 교훈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충고들을 잘 받아들이면 불필요한 많은 고통과 시련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그리스도를 안내자로 모셔야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이 결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연구하자. 여자는 남자를 고를 때, 순결하고 남성다우며, 부지런하고, 긍정적인 진취성이 있으며, 정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남자를 일생의 반려자로 골라야 한다. 또한 남자는, 자기에게 고상한 감화력을 끼치며, 생애의 부담과 짐을 함께 질 수 있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남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칠 수 있고, 가정을 환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만들 수 있는 영적인 여자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부부들 사이의 사랑도 순결하고 강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나타내신 정신이야말로 부부가 서로에 대해서 나타내어야 할 정신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에베소서 5:24-25. 남편과 아내가 상대방을 독재적으로 지배하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서로 상대방을 자기의 뜻에 굴복시키고자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들이 그렇게 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대들의 사랑은 그 빛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결혼 후에도 친절하고, 인내하며, 견디고, 사려 깊고, 예의 있게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대들이 결혼 서약에서 실천하기로 맹세한 그대로 피차를 행복하게 하고 사랑하는데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 두 사람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서로의 애정을 나누는 일에만 집중할 때에는,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주변에 데려다 놓은 사람들의 불행과 가난과 아픔을 도와줄 수 있는 기회들을 포착하라. 참된 행복과 기쁨은 오직 이기심 없는 봉사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같은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자아와 이기심을 정복하며,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노력할 때, 비로서 그대들은 승리에서 승리로 올라가는 영광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인생에 닥쳐오는 모든 시련과 고통들은 오히려 그대들의 사랑과 보람을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묘약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제도, 건강 원칙
건강을 잃어버린 가정은 행복해지기 힘들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이 땅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인류를 창조하신 후 즉시로 그들에게 어떤 것을 먹으며 살라는 원칙을 주셨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29.
하나님께서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마련해 주신 첫 번째 식단은 채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음식이 인간의 몸에 가장 유익한지를 알고 계셨다. 비록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영원히 살 수 있는 특권을 상실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음식물을 먹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수명은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아담으로부터 노아 홍수 전까지의 평균 수명은 912살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긴 수명은 죄가 급속하게 퍼져 나가는 중요한 수단이 될 뿐이었고, 인간은 긴 수명을 가지고 온갖 죄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의 죄악의 잔이 넘치기까지 정욕을 만족시켰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도덕적으로 오염된 땅을 홍수로 정결케 하실 수밖에 없었다. 홍수 후에 노아의 가족들이 지면에서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얻을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방주에 들어갔던 동물의 고기를 먹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이 긴 인류에게 동물성 음식을 먹도록 허락하시어 그들의 죄스러운 생애를 단축하게 하셨다. 인체의 생리적 구조에 어떤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육식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홍수로 인하여 식물이 없어진 어쩔 수 없는 환경과 인류의 죄악이 퍼져나가는 속도를 억제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 때문에 동물의 고기가 인간의 식탁 위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노아 홍수 이후, 사람의 신체의 크기와 수명은 급격히 감소되어서 노아의 아들 샘은 600세까지만 살았고,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은 것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다. 육식이 인간의 식단에 등장한 이후, 인간의 몸은 급격하게 쇠약하게 되어서 다윗은 70세까지 살았는데, 그것은 오늘날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수명의 한계이다.
채식을 하도록 창조된 인체 구조
해부학적 소화기능을 볼 때에도 인간은 채식을 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초식 동물은 과일, 채소, 풀, 곡식류 등을 먹으면서 살고, 육식 동물은 다른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서 살며, 잡식 동물은 모든 것을 다 먹으면서 산다. 고기를 먹는 동물들의 치아를 살펴보면, 고기를 찢을 수 있도록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으며, 치아들이 드문드문 나있고, 어금니는 톱니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치아는 실질적으로 길이가 고르며 치아 사이에 아무런 공간도 없는 완전한 아치형을 이루고 있다. 치아의 수나 형태나 배열을 보아도 사람은 초식 동물의 치아와 동일하며, 육식 동물의 치아와는 전혀 다르다.
육식 동물의 소화기관은 짧아서 코끝부터 등뼈 끝까지 길이의 약 3배인데 반하여, 초식 동물의 소화기관은 자기 몸 길이의 12배에 달한다. 사람의 소화기관을 아래와 같은 특성들과 비교해 볼 때, 사람은 채식을 하도록 창조 받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된다.
육식 동물
1) 장의 길이가 5~6미터이다.
2) 장의 길이가 짧아서 많은 영양분을 순간적으로 흡수 처리해야 한다.
3) 육식 동물은 맹장이 없다.
4) 어금니가 없다.
5) 고기에서 나온 독소들이 대장벽에 정체되면 질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대장 모양이 파이프처럼 원통형으로 되어 있다.
6) 내장이 동물성 단백질을 소화하기 쉽도록 설계되어 있다.
7) 성질이 잔인하다.
초식 동물
1) 장의 길이가 10미터 이상이나 된다.
2) 장의 길이가 길어서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3) 맹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4) 어금니가 잘 발달되어 있다.
5) 대장의 구조가 꾸불꾸불한 원통형으로 되어 있다.
6) 성격이 온순하다.
사람의 소화기관은 초식 동물의 소화기관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식을 하기에 부적당한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체의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는 과학자들 사이에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주장은 인체는 채식을 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가진 몸에 알맞은 음식물을 먹자는 것이다.
자동차 엔진 구조에 따라서 사용하는 연료가 다르듯,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도 각자의 소화기관 구조에 따라서 먹는 음식물이 다르다. 휘발유 엔진에 디젤유를 넣어서 사용하면, 엔진이 어떻게 되겠는가? 초식 동물인 소나 코끼리가 죽은 시체를 뜯어 먹는다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런데 사람은 자신들의 길들여진 입맛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고기와 야채에 많은 양의 감미료를 섞어서 먹는 복잡한 잡식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래에 설계하신 대로 살아가지 않는 결과가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의학과 식품산업은 최고로 발달되었지만, 몸의 저항력은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수많은 질병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진리와 복음의 전수를 위하여 세우신 가정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세우신 세 번째 원칙을 무시하고 무너뜨림으로써 행복과 건강을 잃어버리고 있다. 무엇을 먹느냐는 문제는 우리의 인생의 밝고 어두움을 결정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건강하고 웃음이 넘치는 가정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바라고 얻기 원하는 행복한 가정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주신 세 가지 제도를 신실하게 지키는 가정, 하나님의 십계명을 지키고, 성경의 모든 진리를 보존하며, 사랑으로 연합된 행복과 건강한 삶을 누리는 가정, 바로 그것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다.
4.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열쇠1부-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
인간의 회복과 향상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원래의 인간으로의 회복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와 교회와 국가의 심장은 가정입니다. 사회는 가정들로 구성되고 그 가정들에 따라 사회의 분위기와 질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구심점이 되는 가정을 행복하고 올바른 가정으로 유지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이 곧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끌고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부모의 과업은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매력적인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가정은 문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자녀들을 영원한 영생을 얻도록 인도할 수 있을까요? 이번 호에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기사들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이 기사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1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첫번 째 요소는 무엇일까? 어린이들이 부르는 오래된 교회 노래 중에 “주님이 계신 가정”이라는 노래가 있다.
주님이 계신 가정 행복된 가정
행복된 가정 행복스런 가정
주님이 계신 가정
행복된 가정 행복된 가정
위의 노래의 가사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가정, 즉 가정에 계시는 주님의 임재이다. 가정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다. 부부, 부모와 자녀, 혹은 형제나 친지들이 함께 모여 살며 이루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는 그 가정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만일 그 가정과 그 가정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면, 그 가정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첫 번째 요소를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께서 가정에 함께 하심”은 모든 가정의 문제들 - 깨어지고 금이 간 부부 사이의 불화나 부모와 자녀 사이의 문제들, 시부모와의 문제들 - 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 해결책이 된다. 아무리 불가능한 문제도 하나님 안에서 각 개인이 변할 때 해결이 가능하게 될 뿐 아니라, 모든 상황이 역전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을 변화시키시고, 그 변화된 개인으로 인해 그 주위 사람들과 환경도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또 가정을 이루는 각 개인들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 때, 그리고 그 개인들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매일 변화된 생애를 살 때, 그 가정은 문제가 없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감미로운 하늘의 상징은 예수님의 정신이 지배하는 행복한 가정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가정에 모셔들이면, 그분의 임재는 그 가정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가정으로 만들 것이다. 청년 시절에 받은 행복한 그리스도인 가정의 감화는 일생을 통하여 세상의 죄악과 부패에 대한 가장 확실한 방어 장치가 될 것이다.
가정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만든다.
1. 행복하고 화평한 가정;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모든 남녀를 행복하게 한다. 예수님의 임재하심은 가정을 화평하고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 마음에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품은 사람들이 있는 가정은 화평한 가정이 되고 사랑의 장소가 된다. 우리의 가정은 벧엘(하나님의 집)이 되고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마음속에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랑과 동정과 자비심으로 아름답게 된 가정은 천사들이 방문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장소가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과 가정에 모셔들이면, 불화는 사라지고 대신 하늘의 화평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가정의 구성원 모두가 예수님의 품성을 소유할 때, 그 가정은 명랑하고 즐거운 가정이 될 것이다. 가족들 사이에 있던 다툼은 사라지고 이해와 인정과 격려가 가정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친절하고 온순하게 대하고 그러면 그들도 온순함을 배울 것이다. 가정 생활에서 친절과 관용과 사랑이 실천되고 화평이 넘치는 가정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며, 초조하거나 신경질적이거나 거친 격정의 말이 한마디라도 새어나오지 않는 가정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정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산 실증이 될 것이다. 가정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가족들을 매일 새로운 사랑으로 채워 주고, 용서와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하며, 가정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여 주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게 해 준다.
2. 예절있고 질서있는 가정;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를 질서있고 모범적인 사람들로 만든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가정은 화평과 은혜와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될 뿐 아니라, 질서있고 예의있는 가정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하늘 가족의 상징으로 삼기 원하신다. 우리들은 날마다 이것을 기억하고 가족들간에 서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을 대하듯이 예의를 갖추며, 예절있는 말과 행동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남을 먼저 고려하는 친절과 너그럽고 이기심 없는 예절 가운데 나타나는 모든 가족관계와 가정생활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가정으로서의 하나의 실물교훈이 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은 질서와 규율이 있어야 한다. 가정이 질서 정연하고 올바른 가정이 되도록 모두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부모들은 말과 행동에 있어서 자녀들이 가지기를 희망하는 그런 품성과 습관을 형성하도록 그들의 자녀들에게 생생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깨끗한 언어와 참된 그리스도인의 예모를 가정에서 항상 실천해야 한다. 아버지가 아내인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를 아들이 닮게 되어 있으므로, 아버지는 아내에게 잘 대하는 모본을 보여야 하며, 엄마는 남편을 대하는 태도를 모본으로써 딸에게 잘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 자녀들이 하나님을 순종하도록 가르침을 받으면, 그 가르침은 앞으로 자녀들의 생애를 제어할 것이며 또한 그들이 남들과 교제할 때 실천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가정에서 질서있게 자라난 자녀들은 어디를 가든지 정결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는 세상과 연약한 사람들에게 하늘로 인도하는 길로 가도록 격려해 주는 감화를 끼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계신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은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의 감화력과 미덕을 나타내는 가정이 될 것이며, 신실한 부모들은 그들의 가정을 도덕적으로 해로운 모든 것들로부터 보전하여야 할 책임을 깨달아 아름답고 질서있는 가정을 꾸려 나갈 것이다.
3. 신앙 있는 가정;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가정에는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기도와 찬미의 제물로써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기도와 예배 시간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아침과 저녁마다 열렬한 기도와 끈기있는 믿음으로 자녀들 주위에 울타리를 치는 것이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의무이다. 부모와 자녀들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살며 매일의 생활에서 그분과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족 관계는 가족간의 신앙의 감화를 통하여 성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 가정에서 낯설지 않고 그분의 이름이 가족의 한 이름으로 존경과 영광을 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가정, 자녀들이 신앙과 성경과 그들의 창조주를 존경하도록 가르침을 받는 가정, 이러한 가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다. 가정 교회에서 자녀들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받았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각 가정마다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이런 가정들에서 아침 기도가 아름다운 향기처럼 하나님께 올라가고 그분의 긍휼과 축복이 아침 이슬처럼 그 가정에 내려온다. 언제나 자신과 자녀들 앞에 유혹과 위험이 있음을 의식하고 믿음으로 자녀들을 제단에 바치고 자녀들이 주님의 보호를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나오는 부모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천사들은 이런 부모들의 찬미와 믿음의 기도를 듣고, 성소에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봉사하시며 저들을 위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께 그들이 드린 탄원을 가지고 나간다. 부모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 때, 그런 부모가 있는 가정에 깃드는 하나님의 임재는 가정을 영성과 신앙있는 가정으로 만든다.
4. 하나님의 성품을 자녀들에게 형성시키는 가정;
부모들은 자녀들의 품성을 형성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위탁을 받은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자녀들의 지성과 애정과 품성은 부모들에 의해 형성되어 간다. 그런데 어떤 모본을 따라서 형성될까? 바로 부모들의 모본을 따라서 된다. 바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새기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표정, 말 그리고 행동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본을 따라 완전하게 되도록 부모는 늘 기도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앞에 보여진 예수님의 모본에 일치하는 품성들을 건설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인정하시는 인을 찍으실 수 있는 품성을 건설하게 하시기 위하여 힘과 시간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각 자녀가 깨끗하고 고상한 품성을 건설하여 사람과 하나님께 존귀를 받는 조화되는 건물, 아름다운 성전이 되기를 원하신다.
품성은 그리스도 위에 건설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품성 건설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 되신다.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하는 목표는 하나님의 품성으로 꼴짓는 일이다. 최고의 교육은 가장 훌륭한 품성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얻도록 만드는 지식과 훈련을 주는 교육이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하나님의 품성을 심어주는 일은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가정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형성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5. 사랑이 있는 가정;
하나님의 임재는 사랑이 있는 가정을 만든다. 인간의 진정한 연합은 하나님의 사랑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결혼관계와 가정이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시는 가정에만 진정한 이타적인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귀중한 선물이다. 순결하고 거룩한 애정은 감정이 아니고 원칙이다. 진정한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충동적이거나 맹목적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그들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최선으로 삼아야 한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고 강해질 수록 부부사이의 사랑과 가족들간의 사랑은 더 순결해지고 강해질 것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사랑을 강요하기보다는 사랑을 서로 주어야 한다. 서로의 좋은 특성을 인정해주는 것은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인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서로에게 큰 힘과 만족을 준다. 동정과 존경은 서로를 격려하여 사랑을 증가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정신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나타내야 할 정신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 24, 25).
남편과 아내가 상대방을 독재적으로 지배하려고 하거나, 서로 상대방을 자기의 뜻에 굴복시키려고 고집을 부리면 사랑을 자라나게 할 수 없다. 친절하고, 인내하고, 견디고, 사려 깊고, 예의 있게 행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 사도 바울이 말한 사랑이다. 사랑은 받는 것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에 행복이 있다. 만일 부부 두 사람만의 세계나 자기 가족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자기들끼리만 애정을 쏟는다면,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공헌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얻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해야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기쁨은 이기심 없는 봉사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가정이 하나님의 임재를 가지며, 그리스도를 돕는 분으로 모시게 되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지혜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은 사람들을 서로 연합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마음을 바친 부부들과 가족들에게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도 견딜 수 있는 영원한 사랑의 금사슬로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도록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많은 가정의 불행을 해결해 주고 회복시켜 행복한 사랑의 가정을 이루어 살도록 하신다.
2부-가정의 위치
1). 가정의 위치를 어디에 정할 것인가?
인생은 하나의 예비 학교이며, 부모와 자녀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상급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이 예비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가정의 위치를 정할 때에는 이 목적을 선택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이 세상의 기준보다 영적인 면에 더 신경을 쓰며, 영원한 하늘을 위하여 자녀들을 교육 시키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장소에 가정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가정은 그것이 위치하고 있는 주위 환경과 인근 지역사회의 영향력과 감화력을 자연히 흡수하게 되어 있으므로, 어떤 지역, 어떤 장소에 가정이 위치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성경을 보면 가정의 위치의 선정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원칙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원칙들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과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잘 알게 된다. 가정의 위치를 선정하는 하나님의 원칙을 적용하면서 이 문제에 대하여 함께 연구해 보자.
1. 자연적인 환경을 고려할 것
세상의 본보기였던 최초의 가정, 우리의 첫 시조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가정은 앞으로 이 세상에 살게 될 후손들을 위한 하나의 모본이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손으로 아름답게 만드신 그 가정은 화려한 궁전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사는 가정을 자연적인 환경의 한 동산에 두셨다. 이 곳이 그들이 사는 집이었다. 푸른 하늘은 그 집의 둥근 지붕이 되었고, 땅과 그 섬세한 꽃들 그리고 산 풀들로 된 융단은 그 집의 마루였으며, 아름다운 나무들의 무성한 가지들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그 집의 벽들은 크신 미술가이신 주님의 창조물의 가장 훌륭한 장식물들로 드리워졌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조를 위하여 마련하셨던 가정의 주위는 자연적인 환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장엄하고 인공적인 값진 건물들과 인간의 손으로 만든 예술품들을 좋아하고 자랑한다. 그러나 만일 현대의 사람들이 인공적인 것에 관심을 덜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최초의 가정을 두셨던 것과 같은 자연적인 환경에 가정을 설립한다면, 그들의 삶이 더욱 순수하고 영적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신 목적에 부합하는 삶에 훨씬 가까이 이르르게 될 것이다. 또한 자연적인 환경 속에 우리 가정의 위치를 둔다면, 많은 문제들, 곧 도시 오염, 환경 오염, 자녀 교육 문제와 청소년 비행 문제 등으로부터 우리 가정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대도시의 오염과 공해 속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이 놓아 두신 창조의 기쁨의 근원들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발견하며 살 것이다. 천연계의 미와 고요와 평화 가운데서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 푸른 들과 숲과 산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도시의 먼지와 매연으로 흐려지지 않은 푸른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곳, 그리고 생기를 주는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에 가정을 위치하게 하자. 참된 행복은 자랑과 사치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2. 도덕적, 종교적 환경을 고려할 것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위치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가족들을 두를 도덕적, 종교적 감화를 고려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가족들의 영적 향상에 가장 유익이 될 환경, 곧 도덕적, 종교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받지 않을 좋은 환경들을 택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격을 이루기에 불리한 영향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순결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택하는 것, 이것이 가정의 위치와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 도시들은 범죄와 죄악의 발생지가 되고 있다. 도시 어느 곳에서나 죄악에 대한 것을 쉽게 보고 듣게 되며, 어느 곳에나 정욕과 세속으로 이끌어가는 유혹들을 쉽게 만난다. 또 도시의 생활은 허위적이고 인공적이 되기 쉽다. 돈을 벌려는 강한 열망, 흥분과 쾌락, 자랑과 사치와 낭비에 대한 욕구 등은 많은 사람을 인생의 진정한 목적에서 돌아서게 한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공격하는 가장 위험한 유혹 중의 하나는 쾌락을 사랑하는 일이다.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사용되어야 할 시간과 돈이 오락을 위하여 함부로 쓰여진다.
가정의 위치를 정할 때, 부에 대한 욕망이 조장되지 않을 만한 곳, 유행과 사회의 관습에 지배를 받지 않을 만한 곳, 단순, 순결, 건강 및 인생의 참된 가치를 얻게 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장소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인간의 업적들 밖에 볼 수 없는 인공적인 것들로 가득한 곳, 보는 것이 자주 죄악적인 생각을 암시해 주는 곳, 소동과 혼란이 피로와 불안을 가져오는 그런 곳에 사는 대신에 하나님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한적한 전원이나 시골,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곳에 산다면, 가족들의 신앙과 자녀들의 도덕적이도 영적인 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3. 믿음의 선조들이 택했던 가정의 위치는?
A. 예수님의 지상 가정:
고가(高價)의 주택, 정성들여 만든 가구, 과시, 사치, 안일 등은 행복하고 유용한 생활의 필수적인 조건들이 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최대의 사업을 이루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독생자로서 인생에 있어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생활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면 영원하신 하늘의 아버지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위하여 택하신 지상 가정의 위치와 생활 환경들은 어떠하였는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위하여 선정하신 지상 가정의 위치는 시골이었다. 그곳은 갈릴리 산지의 한적한 장소였다. 푸른 산 골짜기의 고요한 새벽과 아름다운 저녁의 황혼을 볼 수 있는 곳, 천연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를 연구하고 명상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조용한 전원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정직하며 근면한 노동으로 유지되는 가정, 검소한 생애, 날마다 곤란과 역경을 극복하는 것, 자기 희생, 절약과 인내, 즐겁게 하는 봉사, 어머니의 곁에서 성경을 펴놓고 공부하는 시간,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유년 시대의 환경과 기회였다.
B. 침례 요한이 살았던 가정의 위치:
그리스도의 선구자 침례 요한은 그의 부모로부터 초기의 훈련을 받았다. 그는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시골의 광야에서 보냈다. 그는 하나님의 훌륭한 종이 되기 위하여 광야의 엄격한 훈련을 받고 도시 생활의 향락과 사치한 것들을 버렸다. 시골에서의 그의 환경은 단순성과 극기의 습관을 형성하는 데 유리하였다.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그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천연의 계시와 섭리들을 연구할 수 있었다. 시골의 한적함과 광야의 고독은, 의심, 불신 그리고 불순함이 편만한 인간적인 사회로부터 그가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그는 죄의 유혹을 저항하고 자신을 지키며, 죄가 얼마나 악하다는 것에 대한 감각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죄와의 계속적인 접촉을 피하며 한적한 곳에서 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기 위한 훈련을 받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C. 시골 가정에서 자라난 성경의 믿음의 선조들:
각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고상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시골에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의 역사, 그리고 모세와 다윗, 엘리야와 엘리사의 역사를 읽어 보면, 또 책임 있는 지위를 가장 훌륭하게 감당한 후대의 위인들의 생애를 연구해 보면,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 위치한 가정에서 자라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사치를 알지 못했고, 청년 시절을 오락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고난과 장애를 정복하는 법을 배웠고 용기와 인내력과 자립과 자제의 교훈을 배웠다. 시골 한적한 곳에서 살므로 대체로 나쁜 친구들과 사귀지 않았고 사회의 악으로부터 멀리 할 수 있었으며, 그 대신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기쁨과 건전한 교제로 만족하였다. 그들의 취미는 단순하고 그들의 습관은 절제적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칙을 따라 순진하고 강하고 진실되게 자라났다. 그리하여 일생의 사업에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은 육체와 정신의 힘, 쾌활한 마음, 계획력과 실천력, 또는 악을 저항하는 확고 부동한 태도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였다. 시골에 가정의 위치를 선택한 것은 이렇게 훌륭한 결과를 낳았다.
2). 거주 지역 환경이 가정과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거주 지역과 주거 환경이 우리 가정과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사회 환경 연구가 클리포드 쇼(Clifford Shaw)씨는 “도시 환경의 변화와 청소년 문제의 관계”에 대한 연구보고서에서, 지역 사회의 도시화에 따라 주거 환경이 나빠지고 상업지구화와 인구 팽창이 심화되자, 그 진행되는 비율에 따라 청소년 비행의 비율도 높아지고 매우 빈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 이 보고서는 주위 지역 주민들의 가치관이나 생활습관이 범죄나 비행을 방조하는 경향이 크다는 사실도 밝혀내었다. 크리포드 쇼씨는 헨리 매케이(Henry McKay)와 함께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행한 연구를 통해, 인구의 높은 이동성, 고인구밀도, 슬럼화 등과 같은 고빈도 비행지역의 특징을 밝히고 환경이 비행의 발생에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주장을 하였다.
또 사회 연구가 커를(Kearl)과 골든(Gordon)씨는 “또래 관계”가 청소년 비행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는데,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가족, 성인과 보내는 시간보다는 또래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고, 이러한 시기에 비행 친구 또는 비행을 하는 집단과의 관계가 이루어질 경우 청소년의 비행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고했다. 즉, 비행 친구가 있는 집단에서의 사회적 지지는 그렇지 않는 집단에서 보다 비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그는 보고했다.
◆청소년 비행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인 중 주거 환경이 들어감
청소년 비행의 원인은 청소년 개인, 가족과 환경의 영향의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보고가 발표되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청소년의 비행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인은, 첫 번째, 청소년 개인의 기질과 심리, 두 번째 가족환경, 세 번째, 주거하고 있는 지역 사회의 환경이 청소년 비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빈민지대, 환락가, 대도시 등 불량지구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청소년 범죄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인간생태학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사회의 산업화, 인구이동, 거주 지역의 변화 등이 청소년들의 비행과 범죄를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사회 환경과 인간 행동과의 관계
지역 사회는 개인의 성격형성과 행동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람이 성장하여 사회화되는 과정에 있어서, 반드시 지역 사회의 일반적 지식, 사회적 가치, 사회적 행동양식을 전수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 사회의 유산이 자연히 개인의 성격에 녹아들게 된다. 지역 사회내에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 가치관, 신념, 규범, 행동양식 등은 개인의 성격발달뿐만 아니라 생활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자녀들이 가정과 학교 다음으로 접하는 곳이 지역 사회이다. 따라서 지역 환경이 청소년들에게 주는 모든 사회적, 심리적 자극은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며, 범죄학자인 타르데(J.G. Tarder)와 진 가브리엘 (Jean Gabrial)은 청소년문제 요인에 대하여 생물학적, 자연과학적 견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사회 조건만이 범죄의 최대 원인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구미 선진국 경찰조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주거 지역이 나쁜 곳에서 성장한 아동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비율이 높고, 사회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고층아파트 거주 청소년들이 활동영역, 즉 자연과의 접촉의 제약에서 기인되는 정서불안으로 인해 발생되는 비행률이 높다고 한다.
위의 사실들을 보아 우리의 가정을 어떤 위치에 둘 것인가 하는 것은 가족과 자녀들의 영적인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능한한 가족과 자녀들이 사회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고, 신앙으로 잘 살 수 있는 장소에 가정을 두는 것이 좋다.
3부-아버지의 역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남편으로서, 또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으로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고 책임을 지고 인도해야 하는 리더로서의 아버지의 자리는 결코 쉬운 자리만은 아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가족들을 인도해야 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는 더 엄숙하고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제사장으로서 이중 삼중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아버지. 과연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일까? .
1). 아버지의 역할
1. 가장(家長)으로서 아버지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물질적, 정신적, 영적 원천이 되어야 한다. 가정을 이끄는 가장으로서 아버지에게는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들을 귀중한 한 인격체로 성장시키며, 전체 가족의 구성원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책임이 주어져 있다. 영어로 남편이라는 “Husband”의 의미는 “가정의 띠”라는 뜻이다. husband - 남편, 아버지는 자신의 강하고 헌신적인 애정으로 그의 식구들 즉, 어머니와 자녀들을 연합의 줄로 함께 매는 가정의 띠이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책임은 어머니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들도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아버지는 자기 가정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생활의 전반적인 것들을 책임져야 하고, 또 아버지로서의 감화력과 역할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자녀들의 모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자녀들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세워주는 책임과 자녀들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지도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다.
2. 가정의 제사장으로서의 아버지
아버지는 가정에서 하나님을 대표한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녀들에게 올바른 원칙들을 심어주고 자녀들이 순수하고 고결한 품격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협력하는 동역자이다. 또 아버지는 아침과 저녁에 예배의 제사를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는 가족의 제사장이다. 아버지는 가족의 제사장으로서 매일 가족들을 예배 시간에 모으고 그날에 자기 자신과 자녀들이 잘못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루의 생활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아버지가, 아버지가 없을 때는 어머니가 주도하는 예배의 제사는 가정에 행복을 가져올 것이다.
아버지는 산 믿음으로 자기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아침마다 가족들과 자신을위하여 열렬하게 기도하며, 날마다의 일과를 수행하는 중에도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한다. 아버지의 조용하고 열렬한 기도는 거룩한 향처럼 은혜의 보좌로 올라갈 것이며, 가족들을 위하여 드려진 기도는 하나님께 가납될 것이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자신이 먼저 말씀대로 살며, 가정이나 사회나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모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 모든 사업 거래에서 하나님의 원칙을 고수하며 자신이 속한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잘 나타내어야 한다.
3. 교육자로서의 아버지
아버지는 교육자로서, 자녀들이 의무를 잘 감당하는 아이가 되도록 훈육해야 한다. 자녀를 교육하는 귀중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위해 아버지들은 자녀들과 더불어 사귀고, 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면서 밀접히 교제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자녀들이 좋지 않은 친구를 사귀지 않도록 선도해 두어야 한다. 활동적인 아이들을 전적으로 어머니의 보호에 맡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머니가 혼자 지기에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아버지는 자기 자녀들의 성질과 필요를 연구할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직업에나 혹은 연구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자녀들과 함께 보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되는 교육 방법을 실행하기 위하여 자녀들의 성격과 여러 가지 성향을 알아내려고 힘써야 한다. 아버지는 교육자로서 아이들을 낙담시키는 말을 하지 말고 자녀들에게 쾌활하고 친절하고 애정을 가지고 대하며, 자녀들과 함께 일하고 운동하며 더불어 사귀어야 한다.
4. 아버지의 자격과 자질
A. 성숙한 인격;
아버지는 단순히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는 어린아이와 같아서는 안 된다. 그는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아버지는 균형 없이 자라고 훈련받지 못한 소년으로서가 아니라 남성다운 성격과 정욕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가정의 머리에 서야 한다. 그는 올바른 도덕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의 가정 생활에 있어서의 그의 처신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결한 원칙에 의하여 지도되고 제어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키고, 마음을 순결하고 거룩한 분위기로 유지하며, 날마다 그리스도의 온유한 정신을 그분에게로부터 배워야 한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절대로 전제군주적 정신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모든 능력을 다하여 가족들의 생애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B. 겸손함;
아버지가 언제나 가장으로서의 지위만을 강조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아내나 자녀들에게 자기의 계획이 마치 그릇될 수 없는 것처럼 무조건 따르라고 요구하는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어 그의 아내의 보호자가 되도록 제정하신 것이지 위에서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사랑으로 모든 가족들을 함께 매는 가정의 띠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들은 그가 가진 지위를 남용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권위를 지혜와 모든 친절과 온화함과 겸손함으로 행사하신 것 같이 아버지들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2). 당신은 혹시 이런 남편?
1. 아내가 이중의 짐을 지기를 기대하는 남편;
나태하고 게으른 남편들은 자신의 무거운 짐을 이중으로 아내에게만 지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때때로 그 의무를 미쳐 감당해내지 못하는 아내를 판단하고 비난한다. 무거운 책임감과 비난 아래서 불쌍한 아내들은 그 환경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일 처리가 잘 안되면 흔히 죄책과 후회를 느낀다. 자녀를 혼자 교육해야 하고, 남편의 시중을 들어주고, 집을 치우고, 가사를 담당하는 아내의 노력이 옳게 평가되고, 인정을 받고, 마음이 즐거워져야 할 때, 자신의 일을 스스로 혼자 해내지 못하고 아내가 자기의 몫까지 완수하여 주기를 기대하는 사정 모르는 남편 때문에 아내의 일생은 슬프고 피곤한 일생이 된다.
남편들은 아내들이 흔히 온 종일 끊임없는 집안 살림살이에 얽매여서 겪는 염려와 난처한 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며 감사하지 않는다. 남편들은 흔히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직장의 일과 문제들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가정에 그늘을 드리우며 가정에 명랑한 햇빛을 가져오지 않는다. 혹시 집에 돌아 왔을 때 식사가 제때에 준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흔히 주부, 간호사, 식모 그리고 하녀의 일을 혼자서 맡은 그 피로한 아내에게 책망과 흠잡는 말을 한다. 아내의 의무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동정심을 가진 남편이 되는 것은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남편은 그의 가족에게 큰 관심을 나타내야 한다. 특별히, 연약한 아내의 감정을 매우 부드럽게 취급해야 한다. 그는 아내에게 많은 질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 버릴 수 있다. 친절하고 유쾌하고 용기를 주는 말은 가장 효력이 빠른 약보다 더 효과가 있다. 남편은 자녀들을 교육하는 대부분의 짐이 어머니에게 지워져 있다는 것과, 자녀들의 마음을 꼴 짓는 일에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남편은 이 사실을 깨닫고 가장 부드러운 감정을 발휘하고, 주의 깊이 아내의 짐을 가볍게 해주어야 한다. 그는 아내에게 그의 넓은 애정을 의지하도록 격려하고, 아내의 마음을 평화가 있고 안식을 주는 하늘로 향하게 해야 한다.
2. 독재적이고 지배적인 남편;
신경질적이고 독재적인 아버지는 그의 아내와 자녀에게는 일관성 있게 보일 수 없다. 어떤 입장을 취했을 때,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그 의견을 기꺼이 철회하려고 하지 않는 아버지들이 많다. 그런 아버지는 자신의 독재적이고 지배적인 성격을 고치고 고집 부리는 것을 그만 두어야 가족들이 행복해진다. 당신은 혹시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독단적인 아버지는 아닌가? 대화하기보다는 명령하고 권위를 부리는 아버지는 아닌가? 독재적이고 지배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반항적인 아이들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3. 초조하고 성미가 급한 남편;
많은 남편과 아버지들이 어린 시절에 하던 습관들을 결혼한 다음에도 계속한다. 아버지들의 급한 성미는 아이들에게 유전이 되고 가족들의 일생을 속박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얼굴을 잘 찌푸리고 성격이 급한 아버지는 자기 자신이 불행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가정 안에 있는 모든 식구에게 어두운 그늘을 던져 주어, 그 급한 기질 때문에 아내와 자녀들에게 낙담을 주게 된다.
4. 이기적이고 무뚝뚝한 남편;
자기 가족들에게 인정의 말을 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아버지들이 있다. 무뚝뚝하고 거만한 아버지들은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히기 쉽다. 그런 아버지들은 부드러워져야 한다. 친절함과 예의를 계발시키고 가족들에게 그렇게 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특별히 자기 아내에게 아주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여야 하며, 아내의 마음에 그늘을 던질 말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아버지는 애정을 계발시켜서 자기 성벽 가운데 있는 거칠고 무정한 특성들을 극복하여야 한다.
5. 예의를 무시하는 남편;
흔히 남편들은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동정적인 것을 연약한 것으로 생각하여 가족들과 아내에게 부드럽고 친절히 말하는 것은 남자의 위엄을 깎아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말 남자답고 품위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친절을 베풀지 않는 성격은 품성의 명백한 약점이며 결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의 바른 태도를 귀중하게 여기시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해야 할 참된 그리스도인의 예의로 여기신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남편들은 사랑과 애정을 장점으로 삼아야 하며, 자녀들과 아내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친절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면, 그는 아내의 존경과 애정을 받을 수 없으며, 그 결혼 관계는 아내에게 증오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남편은 조심성 있고, 정중하며, 변함이 없고 충실하며 인정이 깊어야 한다. 그는 가족들에게 사랑과 동정을 표시해야 한다. 남편이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꼭 가져야 할 고상한 품격, 순결한 마음, 친절한 예의를 가정에서 나타낼 때, 그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다.
3). 어떻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도 인간이므로 누구와 마찬가지로 일상 생활에서 여러가지 어려움과 실망과 유혹을 만난다. 여러가지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책임이 무거운 위치에 서서 어떻게 하면 훌륭하게 아버지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를 굳게 의지하라”,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리라”,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고 하신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조용한 기도를 드리면서 언제나 또 어디서나 예수를 쳐다보라! 그러면 사단의 유혹과 세상의 어려움이 홍수처럼 엄습할 때 주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세상의 유혹에 항복하려고 할 때, 인내력과 자제를 잃어갈 때, 힘이 들고 큰 소리가 나오려고 할 때, 결점을 찾고 비난을 하려고 할 때, 이때가 바로 기도를 하늘로 보내야 할 때이다.
아버지의 기도
“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사 시험을 이기고 모든 괴로움과 분노와 나쁜 말을 나의 마음에서 물리쳐 주시옵소서. 주의 온유하심, 주의 겸손하심, 주의 오래 참으심 그리고 주의 사랑을 내게 주시옵소서. 나의 구세주에게 욕을 돌리지 않게 하시고 나의 아내와 나의 자녀들, 그리고 믿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말과 동기들을 오해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나를 도우사 나의 가족들과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불쌍히 여기며,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지고 용서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나를 참된 가정의 띠가 되게 하시고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도록 도우소서!”
좋은 아버지가 되는 방법 20가지
1.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아침 인사를 하세요. 그러면 자녀도 언젠가는 아버지께 아침 인사를 할 것 입니다.
2. 식사시간에는 대화를 많이하세요.
3. 공부하라는 말을 줄이고 먼저 공부하고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이가 부모를 따라갑니다.
4.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키세요. 한번 한 약속을 어기기 시작하면, 자녀도 부모에게 한 약속을 어기기 시작합니다.
5. 한 달에 한 번, 날짜를 정해 자녀와 함께 데이트 시간을 가지세요. 자녀에게 친근감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6. 가훈을 정하거나 가족 놀이를 만드는 등 자기 집안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7. 자녀 앞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좋은 점을 말하는 모범을 보여주세요.
8. 집을 화목하게 만들어 주는 아버지가 되세요. 아버지는 항상 온화한 얼굴로 가족들을 대하여야 합니다.
9.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버지가 되세요. 아버지는 항상 이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10. 칭찬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가 되세요.
11. 아내를 사랑하세요.
12. 먼저 말을 걸어주는 아버지가 되세요.
13. 가부장적인 자세를 버리세요.
14. 자녀를 무시하지 않는 아버지가 되세요.
15.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는 아버지가 되세요.
16. 노 부모님을 공경하는 아버지가 되세요. 자녀들이 효도를 배우게 됩니다.
17.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사랑하세요. 남의 자녀도 내 자녀처럼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하여 자녀들이 이웃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도록 하세요.
18. 자녀가 스스로 판단한 의사를 존중하는 아버지가 되세요. 어린이도 소중한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자녀에게도 결정권을 주세요.
19.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마세요.
20. 스승같은 아버지가 되세요. 아이들은 자라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절망과 시련을 겪게 될 때, 살아온 인생의 지혜를 총 동원하여 자녀에게 조언해 주는 인생의 등대와 같은 아버지가 되세요.
어린이들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1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주시 마세요. 사실 나는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다만 아빠를 시험해 보고 있는 것 뿐이예요.
2 좀 엄격하면서 확신을 가져 주세요. 나는 아빠가 확고할 때 편안하거든요.
3 나쁜 습관에 물들지 않도록 도와 주세요. 나는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기 위해, 아빠께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예요.
4 나는 아직 배우고 있고,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아빠가 나를 실제보다 못하게 느끼시면, 나는 어리석은 일을 하기 때문이예요.
5 내가 잘못했을 때 조용히 말해 주세요. 그러면 저는 더 잘 듣게 돼요.
6 때로는 내가 잘못을 저지르도록 내버려 두세요. 그래야 제가 고통스러운 좌절을 통해 바르게 배울 수 있거든요.
7 내가 “아빠 미워!”할 때, 주의 깊게 들어 주세요. 내가 미워하는 것은 아빠가 아니고 아빠 때문에 내가 작게 보이기 때문이예요.
8 잔소리를 하지 말아 주세요. 계속 잔소리를 하면 나는 귀를 막고 그것으로 나를 방어하게 돼요.
9 대단치 않은 병을 앓을 때,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말아 주세요. 만일 아빠가 지나치게 관심을 보여 주시면, 나는 그것이 아빠의 관심을 끄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것으로 배우게 돼요.
10 내가 아직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사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표현을 못할 때가 많아요. 그것이 내가 정확하지 못한 이유예요.
11 내가 물어볼 때 진지하게 대답해 주세요. 무시하거나 핀잔을 주면, 나는 다시는 질문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답을 찾게 되고 말아요.
12 일관성을 지켜 주세요. 이랬다 저랬다 하면 나는 혼돈을 일으키게 되고, 아빠를 믿을 수 없게 돼요.
13 내가 무서워할 때 잘 살펴 주세요. 나는 정말 무서운 거예요. 아빠가 이해하려고 한다면, 나를 진정으로 도와주고 확신을 줄 수 있어요.
14 인간적인 아빠가 되어 주세요. 만일 아빠가 완전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하면, 나는 완전하지도 못하고 실수도 하는 아빠를 발견할 때 너무나 큰 충격을 받기 때문이예요.
15 잘못했을 때는 사과를 하세요. 그러면 나는 놀랍게도 아빠에게 따뜻한 정을 느끼게 돼요.
16 내가 얼마나 빨리 자라고 있는지 기억하세요. 나를 따라 오기 힘이 들 거예요. 그러니 노력해 주세요.
17 나는 넘치는 사랑과 이해를 받을 때, 무럭무럭 자란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이것은 아빠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18 부디 건강하세요. 나는 아빠가 진정으로 필요합니다.
-미국 감리교회 교육국 목회 자료집에서 발췌-
4부-좋은 어머니
- 어떤 어머니가 되어야 할까? -
어머니는 강하다. 연약한 여성도 어머니가 되면 강해진다. 자녀를 향한 모성애는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이며, 하늘에 근원을 둔 사랑이기 때문에 강하고 아름답다. 결혼을 통하여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것은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일이다.
여성은 어머니가 되면서부터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내와 어머니는 가족의 행복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좋은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1). 어머니의 위치
여성은 가정에서 원래 하나님께서 남편과 동등하도록 계획하신 - 돕는 배필과 반려자로서의 - 소중한 지위를 차지하여야 한다. 어떤 면에서 어머니의 특별한 의무들은 남자의 의무보다 더욱 신성하고 중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 어머니들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자신들의 신성한 직무를 인식하고 그 사명에 감사하며 이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좌에 앉은 왕의 직무가 어머니의 직무보다 더 높다고 할 수 없다. 어머니는 가정의 여왕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품격을 고상하고 훌륭하게 꼴 지어서 영원한 생명에 합당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천사도 이보다 높은 사명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들을 교육하므로 천사처럼 하나님께 봉사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자기의 귀중한 위치와 업무의 특성을 깨닫고, 용기를 가지고 어머니된 위엄으로 가정을 다스려야 한다.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감화는 으뜸이 되고 어머니의 말은 법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그들의 시중을 드는 종이 아니고 그들을 지도하고 인도하며 교훈을 더하여 가르치는 여왕으로 존경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2). 어머니의 책임
1. 자녀를 교육하고 품성을 꼴 지우는 일
어머니의 책임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훈계를 따라 자녀를 양육하도록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다. 조각가가 아름다운 예술품을 조각하듯이, 어머니는 자녀들의 품성을 아름답게 조각하여야 한다.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자녀들의 성품을 꼴 짓고 다듬고 품위 있게 만드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다. 다른 어떤 사업도 어머니의 일의 중요성에 비길 수 없다. 그 일은 화가와 같이 화폭 위에 아름다운 형상을 그리거나 조각가와 같이 대리석에 형상을 아로새기는 것은 아니지만, 또는 저술가와 같이 고상한 사상을 멋진 문구로 나타내거나 음악가와 같이 아름다운 감정을 음률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머니의 임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형상을 계발시키는 것이다.
가정은 품성의 건설을 위한 가장 좋은 장소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일치하게 자녀들의 품성을 계발시키는 일을 첫째로 해야 한다. 자녀들의 품성을 꼴 짓는 것은 어떤 일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교훈을 무시하게 하고, 자녀들의 결점을 보지 못하게 만들며, 올바른 제지를 가하지 않는 엄마의 슬기롭지 못한 애정은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해로운 것이다. 부모들은 장차 자녀들이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 그리스도와 사람들과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자녀들을 위하여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현대 엄마들은 아이들을 자신의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아기 시절부터 자제하고 극기하도록 훈육하며, 단정하고 절도 있는 습관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한다. 어린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품성을 형성하는 일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맡겨졌다. 이 일을 하는 어머니는 비록 선교지에 가서 큰 일을 하지 않는다 해도 가정의 선교사로서 그에 못지 않은 큰 일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자녀들의 품성을 올바르게 형성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머니의 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큰 선교사의 하나로 기억하실 것이다.
집은 깨끗하게 청소하지만 자녀들은 거리에서 뛰어다니며 거리의 교육을 배워도 내버려두는 어머니들이 있다. 아이들이 거칠고 이기적이며 버릇없고 불순종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을 방치하면 안 된다. 어머니들, 특히 한국의 어머니들이 어려운 교육조건과 과다한 공부 때문에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시킬 시간이 없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아무튼 어머니의 책임을 진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대해서 엄숙한 의무감을 느끼고, 그들의 자녀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성격을 가지며, 도덕적으로는 깨끗하고, 또 온유하고 아름다운 품성을 갖도록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2. 신앙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대사
어머니와 부모들의 책임은 첫 번째로 자녀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자녀들이 끝까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일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대사이다. 어머니는 아이의 첫 번째 교사이다. 어머니는 매일의 생활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품성을 잘 드러내고 즐겁게 의무들을 감당함으로써, 신앙이 실제적인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녀들에게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또 어머니는 자신이 먼저 예수님 안에서 거듭나는 경험을 하고, 자녀들에게도 거듭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어머니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신실하게 실천한 다음,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가서 간절하고 인내하는 믿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돕는 조력자가 되실 것이다.
자녀들이 배워야 할 첫째 공부는,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를 알도록 가르쳐 주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모든 교훈으로 가르쳐야 한다.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주는 모든 교훈에 그리스도가 포함되어야 한다. 자녀는 가장 어린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익숙하도륵 교육을 받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이 가족 내에서 교육의 기초가 되고, 가정의 개혁의 기초가 되면 좋을 것이다.
세상은 타락하게 하는 감화로 가득 차 있다. 유행과 습관은 젊은이들에게 강한 힘을 발휘한다.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며 제지하는 자기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자녀들은 자연히 악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은 “이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합니까? 가르쳐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자주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지혜를 주실 것이다. 자녀들의 운명은 많은 부분 어머니의 손에 달려 있다. 어머니가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교육시키고, 경건한 모본과 신실한 교육으로써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면, 그 자녀들은 자라나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능력있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3).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한 감화와 자질
어머니의 활동 범위는 보잘것 없을지 모르지만, 그 감화는 영원에까지 미친다.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진 어머니의 부드럽고 거룩한 감화가 자녀들에게 끼쳐져 후에 열매를 맺을 때, 그 어머니의 감화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얼마나 강력한 능력이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어머니의 표정과 말과 행동이 영원한 열매를 맺게 되고 많은 사람들의 구원과 멸망이 그 감화의 결과라는 것은 얼마나 엄숙한 생각인가! 그렇기 때문에 좋은 어머니가 가져야 할 감화와 자질들은 중요한 것이다.
1. 미소와 부드러움
어머니의 미소와 부드러운 태도는 자녀들을 북돋우는 힘이 된다. 어머니는 사랑의 말과 미소로써 가정과 자녀의 마음을 밝게 만들 수 있다. 어머니가 너무 무뚝뚝하거나, 자신의 기분에만 집착하는 변덕스러운 기분파이거나, 화를 잘 내며 거칠다면, 자녀들은 정서적으로 우울하고 불안한 아이가 될 것이며, 엄마의 성격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의 미소와 부드러움은 그 가정의 분위기를 화창한 봄날처럼 만들 것이다.
부모들이여, 미소지으라!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미소를 지어야 한다. 어떤 부모들은 어떤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한때는 어린이였다는 것을 잊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위엄을 세우고 냉정하고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얼굴은 언제나 엄숙하고 책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그런 성격의 어머니나 교사들로부터 아이들의 사소한 비행은 중대한 죄처럼 취급을 받는다. 이와 같이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나 교사들을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그들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그들의 아이다운 경험과 그들만의 세계를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머니여, 부모들이여, 웃으라. 마음이 슬퍼도 얼굴에 그 사실이 나타나지 않게 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온유하고 즐거운 마음에서 나오는 미소가 햇빛이 비추듯이 가정을 환하게 비출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다.
2. 쾌활
어머니는 쾌활하고 만족하고 행복한 기질을 계발해야 한다. 어머니가 이런 면에 열심히 노력할 때, 그 보답은 자녀들의 육체적 건강과 도덕적 품성으로 풍성하게 받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들 앞에서 늘 명랑한 용모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는 음울한 것이 조금도 없다. 경박하고 쓸데없는 말은 피하여야 하지만, 예수님 안에는 달콤한 안식과 평강이 있으므로 그 기쁨은 용모에 표현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슬퍼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침착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만이 나누어줄 수 있는 명랑함을 세상에 나타낼 것이다.
어린이들은 명랑하고 쾌활한 태도에 이끌린다. 어린이들에게 친절과 예의를 보이면 그와 똑같은 정신을 어머니에게와 또 자기들 서로간에 나타내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을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큰 사랑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가르치고, 쾌활함과 마음에 햇빛과 기쁨을 가져오는 말을 하도록 교육하고, 늘 행복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장려하면 그 가정은 하나님과 천사가 거하기를 즐겨하는 가정이 될 것이다.
3. 칭찬과 격려
어머니의 상냥한 말씨와 칭찬과 격려는 아이들의 마음에 햇볕과 같다. 어머니의 신뢰를 받고 자란 아이는 자신감이 넘치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가지기 때문에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해 낸다. 어머니의 칭찬과 격려는 자녀를 긍정적인 아이로 키워낸다. 또 어린이들이 착한 일을 했을 때에는 반드시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 슬기로운 칭찬은 아이들이 용기있게 자라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4. 참을성과 인내
하루에 여러 번씩 어린 자녀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여기저기 돌아보아야 하는 어머니에게 참을성은 꼭 필요한 덕목이다. 번번이 어머니는 주목할만한 가치도 없어 보이는 성가신 일 때문에 혹사당한다. 장난꾸러기의 손들과 침착하지 못한 발들이 어머니에게 많은 노동과 곤란을 가져다 준다. 이럴 때 어머니가 인내와 자제의 고삐를 단단히 붙잡지 않으면, 성급한 말이 혀에서 금방 새어 나오게 된다. 어머니는 침착한 정신을 잃어버릴 때가 종종 있지만, 그때마다 예수님께 조용히 기도함으로써 자기의 신경을 진정시켜야 한다. 급한 말을 억제하고 성난 감정을 억누른 후, 침착한 음성으로 말을 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아이들에게 좋은 감화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아이들은 인내와 사랑스러운 음성, 그리고 조급하고 성난 명령을 잘 식별하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들에게 즐거움을 베풀어 주고, 어머니가 있는 곳이 자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곳이 되게 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5. 건강
어머니의 건강은 잘 유지되어야 한다. 어머니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건강과 활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가족의 유익을 위한 현명한 일이다. 또 어머니는 건강 개혁에 선두에 서야 한다. 자신이 먼저 신체와 건강의 법칙을 잘 지킴으로 자녀들에게 건강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건강에 좋은 식사를 준비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6. 외모
생활이 바쁘고 힘들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외모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아내와 어머니들은 집안 일을 할 때나 남편과 아이들만 보는 앞에서는 아무렇게나 보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눈을 위하여서는 매우 정성을 들이고 세련되게 옷을 입는다. 남편과 아이들의 평가와 사랑을 다른 사람들이나 일반 친구들보다 더 귀중히 여겨야 되지 않을까? 만일 어머니가 집에서 단정하지 않은 옷을 입는다면, 자녀들에게 자신들과 같은 단정하지 못한 본을 따르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어머니들이 집에서는 어떤 옷이든지, 그 옷에 때가 묻었든지 지저분하든지 입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족에 대한 어머니의 감화와 존경심을 약화시키는 일이 된다. 어머니들은 가능한 한 매력 있게 자신을 꾸며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값비싼 장식품으로 꾸미기보다 깨끗하고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음으로써 그렇게 하면, 그 어머니는 몸에 걸치고 있는 모든 것으로 자녀들에게 깨끗함과 질서를 가르쳐 주는 것이 된다. 질서와 청결은 하늘의 법칙이다. 하늘의 질서에 일치하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단정하고 품위 있게 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어머니를 위한 예수님의 격려와 축복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어머니들이 예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자녀들을 예수께로 데려왔다. 그러나 제자들은 어린이들 때문에 주님의 사업이 방해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어머니들을 돌려 보내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이 신실한 어머니들을 위하여 길을 열어 주도록 군중에게 명하셨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 어머니들은 오랜 시간 먼지가 많이 나는 길을 지나서 자기의 아이들을 주님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다. 예수께서는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소리 없는 기도를 드리면서 진정한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떠는 것을 보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책망의 말을 하는 것을 들으시고 즉시로 반대 명령을 하여 그 일을 중지시키셨다. 예수님의 크신 사랑의 마음은 아이들을 영접하시기 위하여 열려 있었다. 예수께서는 찾아온 아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팔에 안으시고 축복하셨다. 어떤 한 아이는 그런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곤한 잠이 들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어머니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격려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은 어머니들의 마음은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던지!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수고를 이해하고 격려하시는 예수님의 온유하심과 자비하심을 보고는 큰 기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의 은혜의 말씀은 어머니들의 마음에서 무거운 짐을 제거시켰고, 새로운 소망과 용기를 그들에게 불어넣었다. 모든 피곤한 느낌은 사라졌다.
이것은 각 시대의 어머니들에게 용기를 주는 교훈이다. 자녀들의 유익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한 후에 그들은 자녀들을 예수께로 데려올 수 있다.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는 갓난아이도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하다. 어머니 스스로 자녀들에게 줄 수 없다고 생각되는 도움과 은혜를 얻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와 자녀들을 그분의 자비로우신 팔에 맡기는 어머니들과 자녀들을 주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자녀들에게 평강과 소망과 행복을 주실 것이다.
어머니들은 매일 자신들의 어려운 일들을 가지고 예수께 나갈 수있다. 그러면 매일 자녀들을 키우는 일에 충분히 도움이 되는 은혜를 발견할 것이다. 구주의 발 아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도움의 문이 열려 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어머니들에게 그들의 어린 자녀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그의 축복을 받도록 초청하고 계신다.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는 갓난아기일지라도 기도하는 어머니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능하신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할 수 있다. 만일 어머니가 매일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산다면 어린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라도 성령께서 그들을 은혜로 꼴 지어 주실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이 귀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녀들과 가족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모든 어머니들을 위하여 주신 격려와 축복의 말씀이다.
위대한 어머니의 교육
어느날 요한 웨슬레의 아버지가 그의 아내인 수산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당신은 저 돌대가리같은 아이들에게 스무 번이나 똑같은 말로 타이를 수 있단 말이요?”
꾸중하듯 내뱉는 남편의 말에 수산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열아홉 번만 이야기했더라면 내 말은 헛수고가 될 뻔 했을테니까요.”
위대한 어머니의 교육이 있었던 이 가정에서 바로 영국을 영적, 도덕적으로 뒤집어 놓은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들, 요한 웨슬레와 챨스 웨슬레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 모든 부모들이 수산나와 같이 사랑으로, 눈물로 기도하고, 인내하며 가르친다면 이 땅의 모든 자녀들이 요한 웨슬레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머니의 마음
서 정희
너를 위해 살았단다.
돌아보면
무거워 견디지 못했을 것 같은 삶의 짐들을
내가 질만한 것이라고 느꼈던 것은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란다.
소망의 빛이 보이지 않고
믿음마저 끊어져 힘겨울 때도
너를 생각하면 견딜 수 있었단다.
눈물이 흘러도
주저 앉을 수 없었던 것은
눈물을 닦으며
앞으로 나아간 것은
너의 행복을 위함이었단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어두움이
너에게 빛을 준다면
나의 인내가 너에게
위로와 평안을 준다면
나의 생명으로 너에게 새 생명을 준다면
나의 죽음도 가치있는 것이란다.
너를 위해 살았단다.
너를 위함이었단다.
내가 너를 위해 기꺼이 진 십자가는
열 번이라도 질 나의 사랑이란다.
5부-좋은 교육
서정희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이 질문을 해 보았을 것이다. 필자 또한 자녀를 기르면서 수없이 이 같은 질문을 내 자신에게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 보았다. 성경을 통해 답을 얻기 전까지 말이다.
언제나 성경은 답을 가지고 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잔잔하지만 힘있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교육의 성공과 실수와 실패를 통해 나는 ‘나의 자녀를 이렇게 교육시켜야겠구나’ 또는 ‘이렇게 교육시키면 안 되겠구나’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경인물들의 어린 시절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의 삶을 살펴 보면서 어린 시절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고, 누가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으며, 무엇을 교육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성경에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몇 명의 삶을 살펴 보며 성공적인 교육과 실패한 교육에 대하여 답을 찾아 보도록 하자.
1). 성공적인 교육, 성공적인 삶
1. 다니엘과 세 친구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
성경에는 어떤 포로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잡혀간 이스라엘 포로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이 이야기를 자세히 연구하면 좋을 것이다. 바벨론으로 잡혀 간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강철처럼 원칙에 굳게 서고, 이기심으로 부패되지 않은,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그리스도인 애국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
남달리 총명한 그들은 왕의 궁전에 뽑혀 들어가 바벨론에서 마련한 학과 과정에 입학하게 되어 왕궁의 학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결정적인 시험이 이르러왔다. 그것은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라는 명령이었다. 그 명령은 바벨론의 왕이 특별히 베푸는 은총이었다. 그러나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은 우상숭배에 바쳤던 것이므로 이것을 먹는 일은 바벨론 신들에게 충성을 표하는 것이 될 것이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이방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음으로 우상숭배에 충성을 표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음식을 먹는 체하고 그 술을 마시는 체하는 것이라도 그들의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그 세 청년은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모욕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술과 음식의 방탕으로 육체적, 지적, 영적 발전을 저해하고 싶지 않았다.
절제의 습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부모들로부터 엄격히 절제하는 습관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이 교육은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바벨론 궁정의 부도덕한 감화 중에서도 자신들을 지키게 하는 방편이 되었다. 부패하고 사치스러운 궁정 안에는 매우 강한 유혹들이 그들을 둘러있었으므로 그들은 부절제로 그들의 몸과 정신을 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권세나 어떠한 감화도 저희가 어린 시절에 배운 하나님의 말씀과 그 원칙에서 그들을 떠나게 할 수 없었다.
성실
만일 다니엘이 하려고만 했더라면 그 환경에서 엄격한 절제의 습관에서 떠날 수 있는 그럴 듯한 핑계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음식은 왕의 은총의 표시로 주어졌으므로 그 음식을 먹어야 하고, 만일 하나님의 가르침을 고수한다면 왕의 노를 사서 그의 지위와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다면 왕의 총애를 받게 되고 자신의 뛰어난 지력을 활용해서 세속적 번영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주의 총애를 받는 것보다 더욱 귀중했고 생명 그 자체보다 귀중했다.
원칙 안에서 뜻을 정함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 같은 결심은 세 친구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따돌림을 받는 이상한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기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되려고 했다. 만일 그들이 환경의 압력에 굴복하여 죄와 부절제에 타협하였더라면, 원칙으로부터 이탈하는 그 일이 의(義)에 대한 그들의 판단력과 악에 대한 경계심을 약화시켰을 것이다. 최초의 잘못 디딘 발걸음이 다른 발걸음을 잘못 딛게 하여 마침내 하늘과의 연결은 끊어지고 그들은 유혹에 횝쓸려 버렸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확고 부동함과 자신을 부인하는 자기 부정과 그들의 동기의 순결함을 귀중히 여기셨고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과 함께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셨다.
좋은 습관에서 온 지,덕,체의 아름다운 조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3년 동안 바벨론의 모든 지식을 배운 것에 대한 시험을 보았다. 그러나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었다. 그들의 예민한 이해력, 해박한 지식, 정확한 언어는 그들의 힘과 지력이 뛰어남을 보여 주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그래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였다.
바벨론 궁정에는 모든 나라의 대표자들, 최고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 천부적인 재능과 가장 넓은 교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나 그 모든 사람들 중에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과 견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체력과 용모와 지력과 학식에 있어서 그들과 비길 사람이 없었다. 바로 선 자태, 굳고 탄력 있는 발걸음, 우아한 용모, 흐리지 않은 판단력, 오염되지 않은 호흡, 이 모든 것은 좋은 습관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증명서가 되었다.
믿음과 기도의 활용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 사람의 지혜를 습득하는 일에 동료 학생들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지만, 그들의 학식은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고 하나님의 지식을 교육의 기초로 삼았다. 지혜를 얻기 위하여 그들은 믿음으로 기도하였고 저희의 기도를 실천하였다.
하나님을 높이려는 동기
그들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교의 거짓 신앙 중에서 참 신앙의 대표자들로 서기 위하여 명료한 지력을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인 성품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교사가 되셨다. 어떤 방면에서든지 참된 성공은 기회나 우연이나 운명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하는 일이고, 신앙의 보상이며, 덕행과 인내의 보상이다. 우수한 지력과 높은 도덕적 경향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들을 주시며 성공은 그 기회를 이용하는 데 달려 있다.
2. 엘리사
조용한 시골 생활, 단순한 습관, 순종 그리고 가정감화
성경의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 중에는 엘리사가 있다. 엘리사의 아버지는 부유한 농부였고 그 가족들은 우상숭배가 거의 보편화됐던 배도의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무리 중에 속해 있었다. 그들의 가정은 신앙에 굳게 섰고, 그것이 날마다의 생활의 법칙이 되어 있던 곳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엘리사는 그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조용한 전원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교훈과 자연의 가르침을 배우고 유익한 일에 대한 훈련을 받음으로 단순한 습관과, 부모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후일에 엘리사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높은 직분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했다.
집안 일을 도움
엘리사가 선지자의 소명을 받은 것은 그가 아버지의 종들과 함께 밭을 갈고 있을 때였다.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일에 성실하였다. 그는 사람들을 지도할 능력과 섬기려고 하는 겸비한 마음을 함께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하고 온순한 정신을 가졌지만, 또 활동적이고 확고 부동하였다. 그는 성실함과 충실함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고, 매일의 평범한 일과에서 목적을 이루는 끈질김과 고상한 품성을 연습하여서 그의 실생활과 영적인 지식이 끊임없이 증가하였다. 그는 집안일에 그의 아버지와 협력함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을 배웠다.
작은 의무에 충실함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 엘리사는 더욱 무거운 임무를 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날마다의 실제적인 경험을 통하여 보다 넓고 높은 사업에 대한 적합성을 배웠다. 모든 사람들은 작은 일에 충실히 하는 것이 큰 책임을 지기에 적합한 증거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의무에 있어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보다 높은 책임을 맡게 하실 것이다.
작은 일은 어떻게 하든지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보다 높은 직분을 맡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는 큰 의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외모보다 더 깊은 곳을 들여다 보신다.
3. 나아만 장군 집의 어린 하녀
선교사로 교육시키는 부모의 역할
이교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나아만 장군 집에 하녀가 된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교도의 가정에서 처신한 그 소녀의 행동은 어렸을 때에 받은 가정 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가에 대한 유력한 증거이다. 그 소녀의 부모는 딸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칠 당시에는 그 소녀에게 닥쳐올 운명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소녀는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배운 대로 충실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주어진 임무 중에 저희 자녀를 돌보고 교육하는 일보다 더 높은 임무는 없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습관과 품성의 기초를 놓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자녀들의 장래는 부모의 모본과 가르침에 의하여 거의 결정된다. 부모의 생애가 하나님의 형상을 제대로 반사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이 자녀의 마음속에 감사와 경의를 일으키게 하는 부모, 부모의 친절과 공의와 오래 참음이 자기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오래 참으심을 설명해주고, 자녀에게 부모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침으로 그 아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치는 부모는 훌륭한 부모이다.
우리의 자녀가 어느 분야에서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받을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가정의 범위 내에서 저희 생애를 보낼지, 인생의 일반적인 직업에 종사할지, 아니면 복음의 교사로서 이교의 나라로 갈지 모르지만, 모두 다 똑같이 하나님을 위한 선교사, 곧 세상을 위한 자비의 기별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자녀들은 헌신적인 봉사로 그리스도의 편에 서는 데 도움이 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선교사로서 받아야 할 교육, 바로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을 부모로부터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공한 인물들이 받은 교육을 살펴 보았다. 이제는 실패한 인물의 삶을 보며 왜 실패했는지를 살펴 보고 그들의 실패를 통해 성공한 인물에게서 배우지 못할 더 큰 교훈을 알아 보도록 하자.
2). 실패한 교육, 실패한 삶
엘리와 두 아들
자녀의 종이 되는 아버지
엘리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인 동시에 사사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가장 높고 책임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엘리는 거룩한 제사장 직분과 최고의 재판권을 가지고 그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로서, 본받아야 할 사람으로 추앙되고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큰 감화를 끼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는 비록 온 백성을 다스리도록 임명을 받았으나 자기 가족들을 잘 다스리지 못하였다.
엘리는 아이들을 너무 귀여워하는 아버지였다. 평화와 안일을 사랑하는 그는 자녀들의 악한 습관과 정욕을 시정하는 데 자기의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다. 그는 자녀들을 나무라거나 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뜻에 굴복하여 그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방임하였다. 그는 자녀들의 교육을 가장 중요한 책임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고 사소한 일처럼 취급하였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요, 사사인 엘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보호 아래 두신 자기 자녀들을 억제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는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려면 그의 아들들의 뜻을 거스리고 그들을 체벌하고 어떤 것은 거절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는 그의 자녀들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하도록 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봉사와 생애의 의무를 감당하는 일에 적합한 자가 되도록 교육하는 일을 게을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그가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창 18:19) 할 것을 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엘리는 자기의 자녀들이 자기를 지배하도록 허용하였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종이 되었다.
‘크면 나아지겠지’라는 잘못된 생각
엘리는 가족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그의 가족을 다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따랐다. 그 다정한 아버지는 그의 아들들의 유년 시절에 그들의 과오와 죄를 묵과하고 장차 그들이 자라나면 그들의 악한 성벽을 버릴 것이라고 혼자 속으로 믿었다. 지금도 그와 같은 과오를 범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 부모들은 자녀들의 그릇된 성벽을 조장하면서 “아이들은 벌받기에는 너무 어리다. 저희가 커서 사리를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자”고 핑계한다. 그리하여 그릇된 습관들은 제2의 천성이 된다.
제지하지 않는 잘못의 결과
제지를 받지 않는 자녀들은 좋지 않은 품성의 특성을 가지고 자라난다.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도록 허락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더 큰 저주가 없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고 유익이 되지 못하는 방종적인 일을 마음대로 하게 할 때에, 자녀들은 곧 부모들에 대한 모든 존경심과 하나님이나 인간의 권위에 대한 모든 존중심을 잃어버리고 사단의 뜻에 복종하게 된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교사는 분명 부모이다. 부모들은 먼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신실하며, 우리의 완전한 모본이신 예수님이 우리 자녀들의 교사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최고의 교과서인 성경으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교육 받아야 한다. 우리 앞에 제시된 성공적인 교육방법은 어려운 길이 아니요, 밝고 분명하고 명확히 제시된 길이다. 부모된 우리들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성경을 통해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얻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