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2
文정부가 카카오 날개 달아줄 때 속칭 진보 뭐했나
● 尹과 민주당 ‘카톡 대란’ 인식, 동일
● 특정 메신저 독점, 세계적 조류
●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의 힘
● ‘충격과 공포’ 이후 권력의 역할
● 특정 앱에 국가 기능 의탁하는 나라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망이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국가 기반 통신망과 다름이 없다.”
10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꺼낸 말이다. 데이터센터 화재 탓에 발생한 ‘카톡 대란’(10월 15일)에 대한 언급이다.
이날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 도중 윤석열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전쟁 같은 비상 상황에 카카오톡이 먹통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온 국민이 다 카카오톡을 쓰고 있고, 공공기관들까지 쓰고 있지 않으냐”며 천재지변, 전쟁, 기타 재난 상황에서 카카오톡이 정상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은 정치권에서 여야 없이 통용되고 있는 듯하다. 같은 날 오전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박홍근 원내대표는 ‘카톡 대란’을 “전 국민이 패닉에 빠진 국가 재난”으로 규정한 후, “기업이 비용을 줄이느라 백업 시스템 구축 안 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카카오톡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지위를 사실로 인정하되, 민주당의 관점에 맞춰 ‘기업의 비용 절감’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셈이다. 같은 당 정청래 최고위원의 “절대 독점은 절대 망한다”는 발언 역시 민주당과 지지층의 일반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정치권의 합의는 발 빠른 법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10월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조승래 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 수립에 있어 기간통신사업자‧지상파방송‧종편‧보도사업자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에 더해 데이터센터 사업자와 부가통신사업자도 그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 골자인 법 개정안이다.
정치권의 발언과 움직임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만약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국가 기반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을 때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발언이 그 방향이다. 민주당은 ‘비용 절감을 꾀하는 독점 대기업’을 거론하면서 당의 색깔을 첨가했지만 근본적인 현실 인식은 동일하다. 카카오와 네이버로 대표되는 거대 IT(정보기술) 기업의 이른바 ‘플랫폼 비즈니스’를 실질적 공공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누가 카톡을 공공재처럼 보이게 했나
▲ 10월 15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SK C&C 판교캠퍼스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이날 오후 카카오 등 데이터 관리 시설이 입주해 있는 이 건물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카카오톡, 카카오택시 등 일부 서비스에 장애가 빚어졌다. 한 휴대전화에 다음 홈페이지 오류 안내가 뜨고 있다. / 뉴스1
당연한 사실부터 이야기해보자. 카카오톡은 국가 기간 통신망이 아니다. 일개 민간기업의 메신저 서비스다. 문제는 그 사용자가 워낙 많은 나머지, ‘카톡을 보낸다’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연락한다’는 말과 동의어처럼 쓰일 수 있을 정도라는 데 있다.
이렇듯 특정 기업의 메신저가 한 나라의 사용자층을 과점 내지 독점하는 일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건 보편적으로 벌어진다. 가령 일본은 네이버재팬의 자회사 라인이 개발한 메신저 앱 라인이 한국의 카톡과 거의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여러 동남아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위챗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유럽은 대체로 왓츠앱이 대세다.
그나마 다양한 메신저가 쓰이는 나라는 미국 정도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주로 아이폰에 기본 탑재된 아이메시지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폰 사용자끼리는 내가 보낸 메시지가 파란색 말풍선으로 뜨는 반면, 안드로이드 사용자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MMS로 전환되며 초록색 말풍선이 되는데, 그런 기술적 요소가 특히 십대 사이에서 따돌림을 유발한다는 비판이 나올 지경이다. 그 밖에는 왓츠앱이 대세를 이루지만, 페이스북 메신저 등 다양한 메신저 서비스가 서로 경쟁하는 중이다.
문제는 메신저 앱이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다는 데 있다. 네트워크 효과란 어떤 상품에 대한 수요가 다른 소비자들의 영향을 받는 현상을 뜻한다. 가령 우리는 책을 살 때 남들이 다들 보는 베스트셀러를 구입하기도 하지만, 남들이 알지 못해도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네트워크 효과를 상대적으로 크게 받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유행에 따라 어떤 옷을 산다면 해당 구매 행위에는 네트워크 효과가 상당히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늘 구입하는 기본적인 아이템을 또 산다면 그것은 네트워크 효과와 거리가 있는 소비 활동이다.
네트워크 효과는 메신저 앱의 사용에 있어서 결정적 요인이다. 메신저는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해 쓰는 앱이다. 즉, 혼자 쓰는 앱이 아니다. 특정인과의 대화를 위해 특수한 메신저를 설치하는 일이 없지는 않겠으나 대체로 남들이 두루 쓰는 앱을 택하게 된다. 그렇게 한번 어떤 메신저 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문자 그대로 ‘대세’가 움직이지 않는 한, 그것을 바꾸는 일은 그리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특정 메시지 앱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건 발생하는 일종의 자연스러운 시장 효과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카카오톡이 국가 기간 통신망이라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장주의 원칙의 원론을 놓고 본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해야 마땅하겠으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단지 특정 기업이 만들어낸 상품에 지나지 않는 카카오톡을 마치 공공재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원인을 대한민국 정부가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감염병 확산 방지 명분으로 도입한 QR코드
▲ 경기 성남시 분당구 SK C&C 판교캠퍼스에서 약 2㎞ 정도 떨어진 판교역 주변에 카카오 아지트가 있다. 사진은 10월 17일 카카오 아지트 내부 모습. /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시절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을 채 넘지 않았던 시점, 한국은 철저한 ‘추적-검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감염병 확산을 막는 것이 주된 목적인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 목적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을 완전히 무시했다. 보건당국은 신용카드 회사 등으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아 확진자의 동선을 확보했고, 언론에 해당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확진자들을 사회적으로 배척하고 비난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그 후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그 어떤 정책이 수행돼도 감히 반발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는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에서 말했던 바와 같다. 일단 대중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나면 그 후로 권력은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던 미국인들조차 9‧11 테러가 터지고 나니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고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벌어진 불법적 포로 고문을 도외시했다.
한국에서 벌어진 일 또한 강도는 달랐지만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는 모든 시민에게 식당이나 공공장소를 이용할 때 QR코드를 인증토록 한 후, 카카오톡과 네이버앱 등 IT 기업의 앱을 통해 해당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통신3사가 함께 만든 패스(PASS) 앱이 있었고, 손으로 인적사항을 남기는 등 대체 수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이미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카카오톡에 있어서, 정부가 ‘카톡으로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기존의 ‘저항세력’은 일제히 침묵을 지켰다. 2016년만 해도 ‘국가정보원이 자기들 마음대로 카카오톡 대화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악법’이라며 테러방지법을 반대했던 민주당부터가 그렇다. 야당일 때는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며 며칠간 필리버스터까지 하던 이들이, 여당이 되고 코로나19가 터지자 카카오와 네이버에 국민의 모든 동선 관련 데이터가 집중되는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인권과 자유를 목숨보다 소중히 지키겠다던 사람들, 국가가 개인의 생체 데이터를 저장하고 감시하는 게 싫다는 이유로 주민등록증에 지문 날인조차 하지 않겠다던 결연한 운동권 활동가들 역시, 그 무렵 무슨 저항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 5년을 지나오는 동안 카카오는 소위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자회사를 줄줄이 상장시키며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카카오뱅크다. 삼성을 비롯해 수많은 대기업이 갈구했지만 정부에 의해 거절당했던 은행업 면허를 카카오는 받아냈다. IT와 융합된 핀테크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설명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카카오뱅크보다 앞서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가 영업을 시작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카카오가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중심에 두고 광범위한 네트워크 효과를 만끽할 때, 정부가 그 과정에서 ‘공정’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카카오톡은 이른바 ‘국민 메신저 앱’이다.
법적 근거 없이 민간 기업 손 빌리다
2022년의 시민사회가 다른 그 무엇보다 앞서 비판적 관점에서 ‘코로나19 백서’를 만들고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검토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전지구적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덮쳐오는 가운데 너무도 크고 근본적인 변화가, 혹은 그런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여러 정책들이, 별다른 고민과 숙고 없이 도입·추진됐다. 국가는 국민들의 정보를 원하는 만큼 들여다볼 수 있다거나, 그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법적 근거나 숙의 없이 민간 기업의 손을 빌릴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미 코로나19는 종식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위기를 핑계로 급히 도입됐던 정책의 그림자는 짙게 남았다. 이제 대한민국은 민간 기업뿐 아니라 온갖 관공서와 공공기관들도 ‘문자로 받으시겠어요, 카톡으로 받으시겠어요’라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나라가 돼있다. 물론 카카오톡은 공공재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 ‘카카오톡은 다수 국민에게 국가 기간 통신망과 같다’는 말을 시시콜콜하게 반론하는 것 역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우스꽝스러운 행동 아닌가.
어느 나라나 독점적 지위를 지니는 메신저 앱이 존재한다. 이를 원천봉쇄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 메신저 앱이 추가적인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도록 국가가 편을 들어주느냐 아니냐에 있다. 멀쩡히 대체재가 존재하는 한, 어떤 메신저 앱이 사용자가 많다는 이유로 독점이라고 철퇴를 맞아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어떤 메신저 앱이 사용자가 많다는 이유로 국가가 해당 앱에 국가의 기능을 의탁하고 외주를 주는 일 또한 비상식적이다. 자유를 가장 중요한 화두로 삼는 윤석열 정부가 할 일은, 카카오톡을 공공재로 못 박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중립적 역할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노정태 /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신동아 2022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