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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전후 시대의 태양숭배
개요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를 모태로 하여 로마제국의 일부 통치지역인 팔레스틴에서 발흥할 때 대중은 미신 중에서 헤매며, 헬라와 로마의 여러 잡신들을 신봉하고 있었으며, 이미 이교의 종교적 의식들을 미신으로 고수하고 있었고, 지식 계급에 있는 자들과 통치자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민중을 다스렸다. 그래서 니브(J. L. Neve)의 말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메시지는 이교적 철학의 모든 세력과 온갖 종교적 이단의 세력이 그 메시지를 거역하고 대항하던 세계로 진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당시 제국의 판도인 지중해 일원의 모든 민족들로부터 가장 존숭받던 잡신은 역시 바로 태양신이었다. 이 태양신 숭배는 제국시대에 와서 새삼스럽게 비롯된 것이 아니고, 학자들이 묘사한 것처럼:
“우리에게 빛과 따뜻함, 그리고 생명을 주는 이 위대한 천체에 대한 경배는 역사만큼 오랜 것이다. 그것은 원시 시대의 페니키아인(the Phenicians), 이집트인(the Egyptians), 페르시아인(the Persians), 그리고 힌두인(the Hindus) 등등 사이에 행해져 왔고 후에 헬리오스(Helios), 솔(Sol), 바알(Baal), 오시리스(Osiris) 등의 다른 이름으로서 경배의 대상으로 그리스인(Greeks)과 로마인들에 의해 존경하여졌다.”
그래서 앤드류스(John Nevins Andrews, 1829-1883. A.D.)는 다음과 같이 확언했다.:
“태양 숭배는 가장 오래된 형태의 우상 숭배 가운데 하나이며, 고대의 모든 지도적인 이방 민족들 속에서 발견된다. ‧‧‧ 성경에 기록된 초기의 태양 숭배는 애굽(Egypt), 앗시리아(Assyria), 바빌로니아(Babylonia), 파사(Persia), 페니키아(Phenicia), 그리이스(Greece), 로마(Rome)의 신전들과 비문에서 나타난 무수한 표현(묘사)에서 확증된다. ‧‧‧ 라(Ra), ‧‧‧ 오시리스(Osiris), 바알(Baal), 미트라(Mithra), 헬쿠레스(Helcures), 아폴로(Apollo), 유피테르(Jupiter) 등은 다 태양과 광명을 나타내는 이교 신들이다.
천체들은 그렇듯 높이 평가하는 행위는 자연히 신들의 이름을 따서 주일(week)의 일자를 명명하는데서 그 존경의 뜻을 나타내게 했다. 신들은 가장 높은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빛과 열을 솟구쳐 내는 태양이야 말로 천연계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강력한 경이의 대상이었으므로 주일 중 첫째 자리가 주어졌다. ‘태고로부터 동방에서 주일(week)의 첫째 날은 일요일(Sunday)이었다’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은 갈대아인(the Chaltheans)이 주일의 일곱 날들에 봉헌된 일곱 신들이었다. ‧‧‧ 베르스테간(Verstegan)은 게르만인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대의 게르만인들은 대부분이 이교도들이었다. 주일(week)의 첫째 날을 특히 태양 숭배일로 바쳤다. 이것 때문에 영어에는 일요일을 지금도 태양의 날(Sunday)이라 한다’”
이처럼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들(Pagans)은 아주 오래 전부터 서로 방언은 달라서도 각각 민족별로 또는 국가별로 태양을 모든 신들 중 최고의 주신(Lord god)으로 신봉해 왔었다.
중동지역 제민족들의 태양신 명칭들.
이 태양을 인격화해서 하나의 신(god)으로 받들어 섬겨오던 여러 민족들의 태양신 명칭들을 살펴보면
1. 가나안인(the Canaanite)들과 페니키아인들(the Phoenicians)은 태양신을 바알(Baal), 또는 탐무즈(Tammuz)라 호칭했었는데, 전자는 팔레스틴(Palestine)에 널리 알려졌고, 성경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후자는 그리이스인(the Greeks)의 아도니스(Adonis)와 동격의 태앙신이며, 성경의 에스겔서, 8장 14절-16절에 나타난다.
2. 이집트인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태양신의 명칭은 달랐다. 대개 라(Ra 또는 Re), 오시리스(Osiris), 아멘(Amen), 그리고 아톤(Aton 또는 Aten)이라 하여 섬겼다.
3. 앗시리아인(the Assyrians)들은 태양신을 앗수르(Assur)라 했다.
4.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둠무주(Dummuzu)에서 탐무주(Tammuzu)로, 그리고 샤마쉬(Shamsh)에서 벨(Bel)과 마르두크(Marduk) 또는 벨-마르두크(Bel-Marduk)로 고쳐 불렀다.
5. 헬라인들은 제우스(Zeus)에서 아폴론(Apollon)으로 바꿨다.
6. 로마인들은 태양을 솔(Sol)이라 했으며, 유피테르(Jupiter)를 태양신으로 여겨 마르두크(Marduk)와 동일시(Identification)했고, 황제 안토니우스(Antonius, Emp. 218-222. A.D.) 시대는 에메사(Emesa)인들의 태양신 엘라가바루스(Elagabalus, 또는 Helio-gabalus)를 존숭했고, 후에는 미트라(Mithra)를 거쳐 Apollo로 바꾸었다.
7. 소아시아 사람들은 세라피스(Serapis)를 이집트의 오시리스(Osiris)와 동일시하여 숭배했고,
8. 페르시아인들(the Persians)은 미트라(Mithra)를 태양신으로 신봉했는데, 로마 군인들에 의해 제국에 소개되어 로마제국 전 판도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인지 황제 아우레리아누스(Aurelianus, Emp. 270-274. A.D.)는 A.D. 273년에 이 페르시아인들의 태양신 미트라(Mithra)의 탄생 경축일인 양력 12월 25일을 로마제국의 공식 국경일로 선포하고, 태양신 미트라의 신전을 크게 존대하여 장엄하게 장식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태양을 미트라신의 명칭으로 숭배토록 장려했다.
이 모든 국민과 대다수 민족들로부터 가장 존경스럽게 숭배함을 받던 최고의 신 태양에게 드리는 공통 축제일이 일요일(Sunday)이었는데, “태양의 날”(dies solis-the day of sun)이라 불렀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종교적 진공의 세상에서 꽃피운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순결성은 처음부터, 명확히 말해서,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
교부들의 증언들
라틴 신학의 비조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Bishop of Carthage, ca. 160-230? A.D.)는 그의 변증서 “모든 민족들에게 고함”에서 아래와 같이 지적하였다.:
“그대[이교도]들, 대다수는 아니지만, 때때로 하늘의 천체들을 경배하지 않는 체 하고서도 태양이 솟아오른 쪽을 직면하여 그대들 입술을 중얼거리지 않은가? 좌우간에 태양의 날을 주력(the Calendar of week)에다 실린 것은 바로 그대들이 아닌가! 그리고서 그대들이 태양의 날을 우선하여 그 첫 머리가 되는 날로 선택해 놨다. 그대들은 한 주간 중에서 목욕을 온전히 금하는 최적의 날로서, 저녁이 될 때까지 그것을 위해 연기하는 날로, 그리고 향연을 베풀기에 가장 적절한 날로서 그 어느날보다 우선적으로 선택해 놨다....
이러한 관습들을 근거로 해서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들의 종교적 의식에서부터 고의적으로 다른 자들과 분리 짓는다....”
고 밝히면서,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하고 박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태양의 날”을 성별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확실히 지적했다. 테르툴리아누스 감독은 황제에게 보내는 “변증서”에서:
“‧‧‧ 그러나 그대들은, 그대들 대부분이, 역시 하늘의 천체들을 가끔 숭배한다는 구실 아래서 태양이 솟아 오르는 쪽을 향하여 입술을 움직거린다....”
고 하면서 이교도들은 동방 경배를 하고 있었음을 나타내 보였다.
로마의 감독 밀티아데스(Miltiades, Bishop of Roma, ca. 311-314. A.D.)는 명령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반드시 단식해서는 안되니, 이는 우상숭배 교도들이 이 일요일에 단식으로 성별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리고 로마 법왕 레오Ⅰ(Leo, the Great, Pope of Roma, ca. 440-461. A.D.)도 증언하기를:
“그들[우상숭배 교도들]은 주일의 첫째 날과 둘째 날에 태양과 달을 각각 존경하기 위하여 단식했다.”
고 하면서 이교도들은 일요일을 신성하게 구별하였음을 밝혔다. 또한 당시의 저명한 교회사가 소조멘(Hermias Sozomen, ca. 400-443. A.D.)도 그의 저술 교회사에서 밝히 증언하기를 우상숭배 교도들이 주일 중 첫째 날에 태양에게 봉헌한다고 밝혔다.
A.D. 5세기 경, 아프리카 힢포의 감독이며 석학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Bishop of Hippo, ca. 354-430. A.D.)는 주장하기를:
“우리는 그대[Faustus]가 토성에 예속된 날이라고 칭하는 그 안식일에 관하여 그대들의 조롱을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대들이 일요일(Sunday)이라고 부르는 날에 그 태양을 경배하는 관습에 그대가 오로지 흠뻑 젖었기 때문에 그렇게 상기되는 것 뿐이지, 거기에 무슨 의무가 있다거나, 뜻있는 표현은 못되는 것이다. 그대가 Sun-day라고 부르는 날을 우리는 Lord’s Day라고 칭하나 우리는 태양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을 경배하는 것이다....”
라고 변증하였다. 그래서 D. B. 바에엘스의 증언대로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처음 유럽에 전파되었을 때 본 것은 유럽 원주민들이 대개 일요일에 태양을 경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문헌들에 나타난 증언들
“일요일은 모든 이교 시대의 태양의 공휴일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현대 일요일 신성론 신학자들까지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 문헌들이 이 사실들을 뒷받침하는 증언들로 현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비그리스도교 문헌들로부터 이에 관한 여러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106-43 B.C.)는:
“이 화성 다음이면서 거리적으로 거의 중앙에 위치한 별이 태양(the Sun)인데 이별은 주(the lord)이시며, 우두머리(chief)이며 그리고 다른 모든 빛들의 통치자(ruller)이신 우주의 마음이요, 지도적 근본원리(the mind and guiding principle of the universe)이시어서 그렇게 위대하시므로 이 태양은 그의 빛으로 만물을 들어보이시고 만물을 충족케 하시는 것이다.”
고 하였다. 플리니우스(Plinius, the Elder, ca. 23-79A.D.)는:
“이 별들 중앙에서 태양(the Sun)이 선회하는데, 이 태양의 위대함과 권능은 심히 지대하다. 그리고 이 태양은 이 지상의 계절(seasons)을 통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별들과 하늘까지 통치하신다. 이같은 태양의 모든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태양이 영혼(soul)이 있다고 반드시 믿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정확히 마음(the mind) 곧 온세상(the whole world) 마음과 최상의 통치원리(the supreme ruling principle)와 만물의 신(divinity of nature)이라고 믿어야 한다. 이 태양은 세상에 빛을 제공하시며 어둠을 제거하신다. 이 태양은 또 나머지 별들을 어둡게 하고 밝게도 하신다. 태양은 자연 현상의 선례를 따라 계절의 변화를 규제하시고 해(the year)를 계속적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하늘의 어둠을 개이도록 하시고 또 심지어는 사람의 마음의 폭풍운(the storm-clouds)을 잠잠하게도 하신다. 또한 나머지 별들에게도 자기의 빛을 발산하신다. 그래서 태양이야말로 영화로우시고 탁월하시며, 모든 것을 보시고, 심지어는 모든 것을 들으신다....”
성 이시도루스(Isidorus Mercator, Archbishop of Seville, ca. 560-636. A.D.)는:
“신들은 요일들(the days of the week)을 정돈하였다. 이 요일 명칭은 로마사람들이 혹성신들에게 봉헌된 날들이다. 첫째 날을 그들은 태양의 날(dies solis)이라고 불렀는데, 그 까닭은 태양이 모든 혹성들의 통치자이기 대문이다.”
중동지역 제민족들의 태양신 부활절 행사와 그 풍습들.
개요
영국이 낳은 그리이스 고전학과 종교 인류학으로 명성을 떨친 석학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1941 A.D.)경은 그의 대작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서:
“동부 지중해와 접경한 여러 지방보다 이 의식이 광범위하고 장엄하게 거행된 곳은 없다. 이집트와 서부 아시아의 여러 민족은 오시리스(Osiris), 탐무즈(Tammuz), 아도니스(Adonis), 그리고 아티스(Attis)의 이름으로 매년 죽어 다시 소생하는 신(god)으로서 인격화한 생명, 특히 식물의 생명을 죽이고 부활시키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지방마다 그 의식의 명칭과 세부적인 사항이 달랐다. 그러나 그 본질은 동일하였다. 이 동양의 신, 그 이름은 여러가지이나 본질은 동일한 이 신의 상상된 죽음과 부활에 관한 것이다....
아도니스의 숭배는 바빌로니아와 시리아의 셈족들에 의해서 행해졌으며 그리이스인은 이미 기원전 7세기 때 그들로부터 그것을 수용하였다. 이 신의 진짜 이름은 탐무즈이었다. 아도니스란 칭호는 셈語의 아돈 즉 ‘주님’이다. 이 아돈이라는 말은 숭배자들이 그를 부를 대 사용하는 존칭이다. 그런데 그리이스인은 이것을 오해하여 이 존칭을 고유의 이름으로 바꿔버렸다. 바빌론의 종교 문학에서는 이 탐무즈는 자연의 생식력의 구현인 大母神 이쉬타르(Ishtar)의 젊은 배우자나 혹은 애인으로 나타난다....”
또한 대한 기독교 서회에서 발행한 「신약성서신학」에서도:
“이것은 ‧‧‧ 자연히 말라 죽으며, 그러한 가운데 새 생명이 움트는 신비를 상징한 것이다. 시리아의 아도니스(Adonis), 프리기아의 아티스(Attis), 애굽의 오시리스(Osiris), 바벨론의 탐무즈(Tammuz)는 다 이같은 신들이었다. 그 모든 신들은 죽고 다시 사는 신비로운 농신(農神)을 대표하였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초기 그리스도교에 그처럼 강력하게 영향을 끼쳤던 이 “태양신 부활 신화”와 관련된 의식들을 살펴보면,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부활 축제 의식”으로 변모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을 인식하게 될 것이며, 동시에 마리아를 女神으로 모시게 된 사유도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바빌로니아의 태양신 탐무즈와 그의 배우신 이쉬타르와의 얽힌 부활신화
앗시리아-바빌로니아 신화(Assyria-Babylonian Mythology)에 의하면, 태양신 탐무주(Sun god, Tammuzu 또는 Tammuzi)는 “봄에 태어나 가을에 사멸하는 곡물의 정(精), 수확의 신, 수목의 신, 죽음과 부활의 신이다.”
바빌로니아 역(Babylonian Calendar)으로 4월을 “탐무주의 달”(Dummuzu)이라고 부른다.
앗시리아-바빌로니아의 만신전(Assyria-Babylonian Pantheon)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다산과 풍요, 정열과 욕정의 신으로 최고의 각광을 받고 있는 신은 이쉬타르(Ishtar)인데, 그녀는 또한 전쟁도 관장하였다. 이 여신 이쉬타르는 젊음이 물씬 넘치는 그녀의 연인 탐무주(Tammuzu)를 심히 사랑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화가 전하는 전설에 의하면:
“Ishtar의 사랑은 치명적이었다. 이 여신은 탐무주(Tammuzu)를 사랑했는데, 길가메쉬(Gilgamash)의 말에 의하면 그 사랑은 탐무주의 죽음을 초래했다. 이쉬타르는 그것을 무척 슬퍼하고 애인에게 비탄의 눈물을 뿌렸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후에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의 죽음을 애탄하게 되었다. 탐무주를 찾기 위해, 그리고 끔찍한 저승으로부터 살려내기 위해, 그녀는 지옥에 내려가서 <돌아오지 않는 땅에 일단 들어간 자는 나올 수 없는 집>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지옥의 문을 열게 하고 하나씩 하나씩 몸에 지닌 장신구를 빼앗기고 7개의 성곽을 기연히 뚫고 들어갔다. 그녀의 머리 위의 큰관, 귀걸이, 목걸이, 가슴의 장식, 탄생의 보석을 박은 허리 띠, 손목과 발목의 장식, 끝으로 그녀가 입은 정결의 의상 모든 것을 빼앗겼다. 이쉬타르는 지옥의 여왕 에레슈키갈[화성(火星) 네르갈(Nergal)의 배우 여신 ※필자 주] 앞에 다다라서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에레슈키갈은 자기의 심부름군인 남타루(Namtarou)에게 도움을 청하여 그로 하여금 이쉬타르를 궁정에 유폐시켜, 예순가지의 병에 걸리게 했다. 이렇게 해서 이쉬타르는 포로가 되었는데, 그 사실이 지상에서는 고뇌요, 하늘에서도 무한한 슬픔이 되었다.”
“지상에서 사랑의 신이 어디론가 그 모습을 숨겨버려서 아기도 태어나지 않고, 동물도 번식하지 않으며, 식물도 번성하지 않아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이것을 우려한 여러 신들이 회의를 열고”
사랑의 여신 이쉬타르를 구하기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이쉬타르의 오라비 “샤마쉬(Shamash)와 그의 아비 신(Sin)은 에아(Ea-땅과 물의 신 ※필자 주)에게 가서 애원했다. 에아는 이쉬타르를 구하기 위하여 아수슈나미르(Asoushounamir)를 만들어 그를 여자로 변장시켜, 마술의 주문을 가르쳐서, 돌아오지 않는 땅으로 보냈다. 그 주문은 에레슈키갈의 의지를 구속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옥의 여왕의 저항도 아랑곳없이, 그녀는 <위대한 마술>에 의해 아수슈나미르에게 주박(呪縛)당해 버렸다. 에아의 주문의 힘은 더 강했다. 에레슈키갈은 이쉬타르를 석방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쉬타르는 생명의 물이 끼얹어져 남타루에 안내되어, 도중에 앞서 잃어버린 장신구를 하나 하나 되찾으면서 일곱개의 문을 넘어섰다. 그녀의 출발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탐무주는 축전의 의상을 입고, 피리를 불었다. 왜냐하면, 지옥의 여신 벨리리(Bêlili-탐무즈의 여동생. ibid. 121.)가 말하고 있듯이,
탐무즈가 나를 위해 흑옥탄(黑玉炭)의 고리를 낀 청금석의 피리를 불어줄 때,
그와 함께 곡하는 남녀가 울어줄 때,
죽은 자들은 다시 일어서서 은은한 향기를 맡는다.”
는 것이다.
땅과 물을 관장하는 신(神) 에아(Ea)의 도움으로 “생명의 물”로 표상된 봄비가 대지에 조용하게 내릴 때, 기나 긴 악몽같은 암흑의 겨울(흑암의 여신의 세력)을 벗어나게 되어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게 된 이쉬타르(Ishtar)는 그녀의 연인(lover) 탐무주(Tammuzu)와 재회의 기쁨, 결혼의 환희를 함께 나누는 때가 바로 새싹트는 따사로운 봄인 것이다. 이리하여 이 지상에는 다시 사랑이 속삭이게 되고, 생명력이 소생하여 약동하게 되었다.
최태응은 이 신화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끝맺었다.:
“이 이야기는 이집트에선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이야기로, 그리고 그리이스에선 비이너스와 아도니스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어느 것이나 대지의 생산력을 상징한 신석기 시대 말기의 대모신(大母神) 숭배에 그 기원을 가진 내용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아기 예수를 껴안고 있는 마리아 숭배도 역시 이 계열에 속하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늦가을에 고사한 식물의 생명이 봄과 함께 다시 싹트는 것을 상징한 이야기이다. 농경 민족에게 특유한 곡물의례에서 널리 세계에 분포되고, 신화 중에 가장 오래고 또한 정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쉬타르와 비이너스는 함께 금성으로 상징되고 있다.”
고 했으며, 또 이같은 신화를 “둘러싸고 그 죽음을 슬퍼하는 제사와 부활을 기뻐하는 제사가 거행된다”고 했다. 이런 신화를 두고 민족적으로 매 해마다 경축행사를 거행하는 달이 바빌로니아 역(Babylonian Calendar)으로 4월인데, 그들은 이 달을 “탐무주”(Tammuzu) 달이라고 부른다. 이 풍습이 또 다른 태양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교가 이를 계승하여 매년 4월이 되면 어김없이 엄숙히 거행된다.
시리아의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
구약 성경 에스겔서, 8장 1-18절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가증한 죄악상을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다음과 같이 보여 주셨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의 행하는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 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여기에 나타난 태양신 “담무즈”는 일명 탐무주(Tammuzu, Tammuz, 또는 Tammuzi)라 하며,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하류 지역에서 일찍부터 고대 바빌로니아의 문화를 꽃피운 수메리아인들(the Sumerian)의 태양신 둠무주(Dummuzu)에서 유래되었다.
1955년도 판 국제 표준 성서백과사전에는 이 탐무주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
“여기 에스겔서, 8:13, 14에 기록된 이 신은 천주교 성서(The Roman Catholic Deuay Version Bible)에는 아도니즈(Adonis)로 기록되었다. 헬라(Greek)에 아도니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신(god)의 명칭은 바로 다름이 아닌 페니키아(Phenicia)의 ןודא[’Adôn]인데, 이 이름은 히브리(Hebrew)어에서도 같은 것이다.... 이 신은 근본적으로, 그리이크 사람들의 아프로디테(Aphrodite-Venus)에 해당하는 이쉬타르(Ishtar)의 남편인 두무주(Dumuzu)라 불리우는 수메리아(Sumuria), 또는 바빌로니아(Babylonia)의 태양신(sun god)이었다. 이 신들의 예배가 일찍이 시리아(Syria)에 탐무즈(Tammuz)와 아스타르테(Astarte)라는 명칭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헬라 사람들(the Greeks)에게는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Adonis and Aphrodite)의 신화로 나타났는데, 이 신들은 이집트 사람들의 만신전(Pantheon)에 나오는 오시리스와 이시스(Osiris and Isis)와 동격들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들에 대한 신앙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졌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신화에는 겨울을 상징한 들곰에게 살해 당해버린 아름다운 목동인 두무즈(Dumuzu 또는 Tammuzu)로 묘사됐다. 여신 이쉬타르(Ishtar)는 그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몹시 슬퍼한 나머지 죽음에 사로잡힌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계에 내려갔다. 탐무주를 위한 이 애도가 바빌로니아에서는 “탐무주”란 칭호를 받은 넷째 달 둘째 날이면 여인들로 인하여 축제 무드로 성황을 이루어버린다....
게발(Gebal-Syria)의 여성들은 하지가 되면 아도니스(adonis) 혹은 탐무주(Tammuzu)의 죽음을 찬미하기 위하여 그의 신전에 가는 판례가 되어있다. 그런데 이같은 경축제식과 관련해서 욕정스러운 음분한 제사가 행해졌는데, 그 제식의 풍속이 음탐스럽고 너무나도 추잡스럽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the Great)가 철폐해 버렸다.”
오늘날도, 베이루트(Bayrut) 북방에 아도니스 강(the river Adonis)이 흐르고 있다. 이 강물은 레바논(Lebanon) 산지를 지나면서 모래에 포함된 산화철을 안고 흘러내린다. 매 해 4월이 되면 장마비로 이 강물은 붉게 보인다. 이 고장의 사람들은 아도니스(Adonis 혹은 Baal)가 죽임을 당해서 이 강물이 피에 물들어 붉어졌다고 믿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이 강을 “아도니스 강”이라고 부른다. 봄이 되면 엘(El) 신에게 탄원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마련된 신전이 이곳에 세워졌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전설과 풍속이 오늘 날에 와서까지도 행해지고 있는데, 곧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 강에 와서 슬퍼하고 애도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부활을 찬미하기 위해 부활절(Easter)이 되면, 천주교 신부들과 수녀들이 그들의 신부복과 수녀복을 입은 채로 이곳에 와서 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오늘날 개신교도들도 부활절이 되면 높다란 언덕에나 구릉 등을 찾아가서 아침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찬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별로 놀라워하지 않을 것이다.
태종출판사에서 발행한 “세계의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아도니스 신앙은 전 페니키아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보다 장엄한 제전이 집행된 곳은 뷔불로스 지방에서였다.
뷔블로스와 바알베크의 중간에 있는 그리이스인들에 의해 <아도니스 강>이라고 불리운 나아르이브라힘강의 수원 근처에, 아파카의 촌락, 즉 오늘날의 아프카가 있다. 그 유적은 현대의 여행자들에게 그 이상한 매력을 예찬받고 있는데, 거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파괴된 아스타르트(Astart 또는 Astarte > Aphrodite ※필자 주)의 성소가 있다. 그 성소의 축대에 서면 낭떠러지가 된 웅대한 계곡이 보이며, 그 속에는 동굴에서 분출하는 물의 흐름이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흐르고 파랗게 나무들이 무성한 기슭 사이를 지나, 깊은 폭포 밑에서 신이 죽었다는 것이다.
기네에도 아직껏 아도니스를 위해 세운 기념물이 남아있다. 그것은 바위에 새겨진 것인데, 신은 손에 창을 들고 그에게 덤벼들려는 한 마리의 동물과 마주 겨누고 있는 반면에, 여신은 깊은 고뇌에 잠긴 채 앉아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땅에서는 매년 아도니스가 곳곳에서 탄생했다가 다시 상처를 입고 죽는다고 믿어졌다. 그 때에는 물이 피 빛같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장마비 같은 그 무슨 자연현상에 의해 적철광이 약간 바위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 원인이었음에는 틀림없다.”
프리기아의 아티스와 연상의 연인 키벨레 여신과 얽힌 부활 신화
지중해(the Mediterranean Sea) 몇몇 연안국들의 민속적으로 각각 전승된 “신의 죽음과 부활”(dying and rising of god)의 신화와 그리고 그 祭禮儀式들 중에서 로마(Roma)의 사회와 종교 그리고 문화와 예술에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서는 로마의 그리스도교 신앙(the Christianity of Roman Church)에까지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게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프리기아(Phrygia)의 태양신 아티스(Attis)와 그의 연상의 연인 키벨레(Cybele)와 사이에 얽힌 “죽음과 부활”의 제례의식(祭禮儀式 또는 축제의식)이었다.
B.C. 1200년 경에, 프리기아인들은 트라키아(Thracia) 지방에서부터 소-아시아(Asia-Minor) 서부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한 때 이 지역에서 통일 대국을 건설했던 힛타이트(Hittites) 왕국을 밀어내고 골디온(Gordion)을 수도로 한 왕국을 건설했었다.
힛타이트 왕국이 멸망하면서 진공상태가 된 소-아시아 지역에 이주해서 정착한 민족들이 많았다. 무시아인(Mysian), 비디니아인(Bithynia), 리디아인(Lydia), 카리아인(Caria)들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 여러 부족들 중에서도 나중에 그리이스와 로마인들에게 예술, 문화 그리고 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는 프리기아 왕국이었다. 즉 그들의 종교의식에서 사용했던 악기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으며 그들이 전한 신앙은 조각가들에 의해서 묘사되었다.
“프리기아의 물질문화가 이 때까지 알려있지 않는 것은 기원전 7세기 초 질풍과 같이 카프카즈 산맥을 넘어서 서남 아시아의 북방에 나타난 騎馬民族 킴메르인(the Cimmerians)에게 습격을 당하여 철저하게 약탈, 파괴되”
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프리기아인은 당시 주위의 넓은 지역의 범위에 걸쳐서, 그리고 후세에까지도 영향을 주어서 정신문화상으로 크게 공헌하였다. 프리기아인이 깊이 신앙하였던 大地의 神 키벨레는 ‧‧‧ 그 연인 또는 아들이라고 일컫는 ‧‧‧ 아티스는 ‧‧‧ 로마로 전해졌는데, 그 광신적인 신앙과 儀禮는 ‧‧‧ 채용되었다. 영혼불멸의 신앙도 密儀를 발달시켰다. 그 열광적인 밀의에 수반되는 무용과 음악은 우수한 악기를 필요로 하였다. 플루트(flute), 탬버린(tambourine), 심발(cymbal) 등이 프리기아에서”
부터 그리이스를 거쳐 에트리아인들에 의해 로마에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프레이져 경은 진술하기를:
“‧‧‧ 행렬을 지어 여신상을 운반하고 심벌과 탬버린 그리고 플루트와 뿔나팔의 반주에 맞추어 찬송가를 부르면서 시가를 통과한다. 이 때 군중들은 환상적인 이 행렬에 감동되고 격렬한 노래에 들떠서 ‧‧‧ 장미꽃으로 그 인형과 중성적인 존재들(갈리 galli-거세한 사제들 ※필자 주)을 휘덮었다. 그 경향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로마의 기성 종교에 프리기아의 신성한 나무에 대한 숭배와 떠들어 흥청거리는 아티스의 주신제적인 의식을 합쳤을 때에 뚜렷해졌다. 키벨레와 아티스에 대한 봄의 대제례는 로마에서 거행된 것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부활이 해마다 봄의 제례로 애도되고 거행되었다.... 아티스는 신들의 어머니인 키벨레 즉 풍요의 위대한 아시아의 여신에 의해서 사랑받은 아름다운 목동이었다고 한다.... 아티스가 이 여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女神 Cybele에게 주어진 로마의 정식 명칭(Roman full name)은 “위대한 이다의 신들의 어머니”(Mater Deum Magna Idaea Great Idaean Mother of the gods)이다.
프레이져 경은 계속 증언하기를: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이교의 낡은 줄기에 새로운 신앙의 종자를 접붙이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고안해내었는가를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식이 같은 계절에 ‧‧‧ 똑같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 의식에 접목되지 않았나하고 추측할 수 있다.... 이미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 그리이스의 저술가들에 의해서 창작된 죽어가는 연인을 팔에 안고 슬퍼하는 여신의 형태는 가장 유명한 예로 삼는 기독교 예술의 ‘피에타’(Pieta) 즉 그리스도의 시체를 무릎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흡사하고 또 그 모델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 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성 베드로 성당 안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어머니의 깊은 슬픔과 그 아들의 음상한 죽음이 놀라울 정도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그 고귀한 조각은 대리석으로써 나타낸 가장 우수한 구상 중의 하나이다....”
“「신의 위대한 어머니」와 그녀의 애인이나 아들에 대한 숭배는 로마제국하에서는 매우 보편적이었다. 여러 비문들의 증명에 의하면 이 둘에 대한 숭배는 ‧‧‧ 이탈리아 특히 로마에서 ‧‧‧ 있었다. 그 숭배는 콘스탄티누스에 의한 기독교의 공인 후까지도 잔존했었다.... 잔인한 야망성과 정신적인 영검을 기묘하게 혼합한 「위대한 어머니」의 종교는 이교의 최후 시대에 전로마제국에 퍼지고, 생활의 이국적 이상을 유럽의 민족에게 침투시킴으로써 고대 문명의 전조직을 점차로 침식”
케 했다.
“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제례가 같은 계절에 같은 장소에서 거행되었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놀랄만한 일치이다. 왜냐하면 춘분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한 곳들은 프리기아와 고울 그리고 바로 아티스에 대한 숭배가 발생하였거나 혹은 가장 뿌리를 깊이 내린 곳이 로마였기 때문이다. 이 일치를 우연한 것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는 점이 너무나 많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기독교의 제례와 이교의 그것과의 일치를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밀접하고 또 일치되는 점이 너무 많다. 그 일치는 승리를 쟁취한 교회가 비록 정복되었으나 여전히 위험한 그 이교도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표시한다.... 이 성직자들은 기독교가 세계를 정복하려면 그 창시자의 지나치게 엄격한 교리를 완화시킴으로써만, 다시 말해서 구원에 이르는 좁은 문을 조금씩이라도 확장시킴으로써만 성공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인식하였다.”
가나안의 바알과 아세라 부활 신화
구약성경에 “바알”(Baal)이라는 잡신이 처음 나타난 것은 민수기 22장 41절인데, 이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서려고 그 변경에 진치고 있었을 때였다.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이 사건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인가. 한 때 하나님의 성실했던 선지자 발람이 아이러닉하게도 하나님의 대적자 사단을 표상 하는 태양신 바알의 신전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고 서있는 그 모습은 다시 연출될 예언적 기사인가!
가나안의 만신전(pantheon)에서는 바알이 엘(El)신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신으로써, 그들의 신화에서도 종종 바알이 엘 신의 대적 자로 등장한다. “바알”(Baal)은 셈어(the Shemitic)의 보통 명사로서는 “소유주”(owner)또는 “주인, 주”(lord)라는 뜻이다.
현재 라스 샴라(Ras Shamrah)라고 호칭된 시리아의 북부에서 고대인 아리위트족의 도읍지였던 오리엔트의 위대한 도시 국가 우가리트(Ugarit)가 독일의 고고학자 샤에페르(Claude Frederic Armand Schaeffer, 1898- ? A.D.)에 의해 AD1929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샤에페르는 수백 개의 쐐기문자로 된 점토 판들을 발견했다. 이 문서들은 고대 가나안 문명과 종교 그리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부조들의 풀리지 안았던 역사적 기사들이 해명되는 자료들로 정평 되었다. 이 문서들은 고대 우가리트 왕국의 문명이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그리고 기타 지중해 연안국들과의 교역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 나타났다. 우가리트 본문(Ugaritic text)에서는 바알이 대기와 구름 그리고 폭풍의 신 하다드(Hadad)로 나타나는데, 그는 구름 위에서 소리를 울리게 하고 번개를 내리치고 비를 내리는 신이다. 그래서 바알은 황소나 구름을 타고 다니는 폭풍의 신일 뿐만 아니라 태양신으로도 숭배되었고 페니키아(Phoenicia)에서는 “하늘의 신”으로 불려졌다. 이러한 그의 특질 때문에 이 바알은 특별히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서도 “풍요의 신”(a fertility deity)으로 그들의 사당에서도 가장 중요한 신으로 널리 숭배의 대상이었다.
헬라 신화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최고 신 제우스(Zeus)가 그리했던 것처럼 이 바알도 여신들과의 관계가 매우 난잡하고 괴상하다. 구약성경에 바알이 그의 배우 여신과 동반되어 최초로 나타난 곳은 사사기 2장 13절인데, 이 여신은 “아세라”(Asherah-또는 Asherat)가 아니고 “아스타롯”(Ashtaroth)이였다.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음으로‧‧‧”(cf. 삿10:6, 삼상7:4, 12:10)
여신 “아스다롯”은 수메리아어(the Sumerian)로 여신 “이난나”(Inanna)와 같은 말로서 “하늘의 여왕”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셈어의 “이스타르”(Ishtar)이며, 시리아의 “아스타르테”(Astarte), 프리기아의 여신 “키벨레”(Cybele), 헬라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로마의“베누스”(Venus) 그리고 애굽의 “이씨스”(Isis)와 동일한 여신이다. 그리고 나중에 A.D. 5세기경의 그리스도교 시대에 와서 그 모든 여신들이 “마리아”(Maria)로 통일되어 버렸다.
가나안 사람들의 신화에서는 바알이 다른 모든 신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투쟁하는데, 그는 여신 아세라(Asherah)에게 때를 써서 그녀의 남편이며, 만신전에서는 최고의 신인 엘(El)의 권좌를 강탈하게 한다. 그리고 우가리트 본문에서는 아세라가 “바다의 여신”이며 엘 신의 배우자로 나타난다. 그리고 “구약성서에서 아스타롯이 바알과 짝하여 나오듯이(삿2:13) 아세라 역시 바알과 짝지어 있는 신이다(삿3:7, 왕상18:19, 왕하23:4).”
가나안 사람들의 신화 속에서는:
“바알(Baal)이 엘(El)처럼 신들의 탄생이전에 존재한 것이 아니다. 바다의 여신 아세라트(the goddess Asherat of the Sea)가 바알의 모친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아세라는 바알의 배우자이다(His consort also is Asherat).”
그런데 우가리트 본문에 의하면 바알의 어머니는 아세라 여신이지만 그 아버지는 엘이 아니고 다곤(Dagon)이다. 그래서 바알과 아세라와의 관계는 모자지간이면서 동시에 부부지간이다. 구약 성경에서는 아세라를 “가증한”자로 규명했다. “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왕상15:13) 구약 성경에는 태양신 바알이 여신 아스다롯과 아세라가 함께 나란히 등장하여 나타나기도 한다(cf. 왕하23:4,13,14).
우가리트 본문에는 바알(Baal)이 줄곧 처녀(virgin)로 행세하는 “처녀 아나트”(Maiden Anath)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 여신 아나트는 바알의 배우자인 동시에 누이(his consort and sister)로 나타난다. 그리고 가나안 사람들의 신화 속에서는 “처녀 아나트는 바알의 딸이며, 알레인의 누이 동생이다.”(The virgin Anat was the daughter of Baal and Sister of Aleyin)
태양신으로, 폭풍의 신으로, 하늘의 신으로 신령한 황소로 숭배를 받는 이 가나안 사람들의 신 바알은 여신들과 성적 관계가 매우 괴팍스러운데, 실은 그들 가나안 사람들의 가증하고 괴상한 성문화와 그들 종교의 부패상을 묘사하고 반영한 것이다. 가나안사람들의 유적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풍습들과 종교 그리고 문화를 고찰했던 고고학자들은 자비하신 하나님이 고대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셨던 그 사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들이 멸망되지 않고서는 그런 성적 노예의 쇠사슬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분의 행위는 의로우셨고, 동시에 그들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자비였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판자로써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고 정복할 것을 명하시면서 아래와 같이 경고하셨다.
“‧‧‧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를 행치 말고‧‧‧ 너희는 골육지친을 가까이하여 그 하체를 범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네 어미의 하체는 곧 네 아비의 하체니 너는 범치 말라. 그는 네 어미인즉 너는 그 하체를 범치 말지니라.... 너는 자매 곧 아비의 딸이나 네 어미의 딸이나‧‧‧ 그들의 하체를 범치 말지니라.... 너는 여인과 함께 그 여인의 딸의 하체를 아울러 범치 말며‧‧‧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에 거민을 토함같이 너희를 토할 까 하노라”(레18:3-28)
우가리트 본문에도 바알 신이 엘 신의 아들 모트(Mot)에게 죽임을 당한다. 아나트가 바알의 죽음에 대해서 모트를 비난했을 때 모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바알 알레인을 죽였다. 제물로 바친 것이다. 나는 속죄의 제물로서 깨끗한 밀과 함께 받혀진 양새끼를 죽인 것이다.”
바알의 죽음은 초목이 매말라버리고 황폐한 것을 나타낸 것이다. 바알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고 울음을 터트린 아나트는 복수를 다짐한다. 그들의 신화는;
“아나트는 신의 아들 모트를 잡았다.
그녀는 낫으로 모트를 배었다.
그녀는 막대기로 모트를 때렸다.
그녀는 맷돌로 모트를 갈았다.
그녀는 불에 모트를 구웠다.
그녀는 그것으로 논과 밭에 뿌렸다.
‧‧‧‧‧‧”
신의 아들 모트가 살해되었을 때 바알 알레인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오고 하천이 넘치고 홍수가 시작된다. 이에 대해서 정인찬 편저 성서대백과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논술했다.:
“‧‧‧ 바알의 승리에 관한 이 가나안의 신화는 그 주권에 대해 손쉽고 생생한 설명을 해준다.... 이 두번째 요소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신에 대한 주제를 지닌 다산의식에 속한다. 여름의 가뭄이 극도에 달할 때 알리얀-바알은 모트(죽음)신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가뭄이 심할 때 식물은 죽어가고 그 토지는 바싹 마른다). 아나트는 태양 여신 샤프쉬(Shapsh)의 협조를 받아 그 몸을 찾아 다녔다. 아나트는 그 몸을 찾았으며, 수많은 짐승을 희생제물로 바친 후(들소와 목우와 작은 소와 사슴과 숫노루를 각각 70마리씩), 바알은 다시 소생하여 모트(Mot) 위에 군림하였으며, 따라서 다음해를 위한 생명과 다산을 보장해 준다. 이러한 신화는 가나안의 신년 축제에서 공감적인 마법의 배경에서 실현되었고, 바라는 풍작에 관한 중대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가장 중요한 연중의식이었음에 틀림없다. 이 의식에는 예배자의 적절한 반응이 수반되었는데, 종교적 결혼이 수행되는 추잡한 성적 의식 가운데 절정에 이르렀다. 이 성적 의식은 두드러진 특징으로써, 양성이 모두 관계된 매춘 행위였다....”
발견된 사실들
태양신과 그 배우 여신의 이름은 나라마다, 또는 민족별로 서로 달랐다. 그러나 그 태양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절 축제행사와 그 풍습은 앞서 살펴본대로 대동소이 하였는데 그 축제의식의 공통된 기본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 그 祭禮儀式의 主體는 女人들이다.
② 그 제례식의 서막은 여인들이 태양신의 죽음을 애절하게 통곡하면서 시작된다. 이는 마치 자신들이 바로 그 女神인양 슬피 울었다.
③ 태양신이 죽음에서 깨어났다는 신호와 동시에 통곡에서 즐거운 환호의 탄성이 터진다. 그리고 희열이 넘치는 광란적인 춤을 춘다.
④ 여인들은 북소리와 각종 악기의 음악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그 템포가 빨라지면 춤이 더 격렬해지면서 나체로 변한다.
⑤ 이 제례의식에 참례하고 있던 남자들은 그 광경에 앞도되어 정신을 잃고 있을 때 裸女들의 청에 의해 이끌려져서 현장에서 난잡하고도 아주 추악한 그룹 성교가 이루어진다.
「국제 표준 성서 백과 사전」에는 Syria의 Adonies와 Aphrodite와 사이에 얽힌 부활절 축제 의식과 그 풍습을 에스겔서 8장 14절에 나타난 “‧‧‧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를 주해하는 논설에서 그 끝부분에:
“‧‧‧ 그런데, 이같은 축제 제식과 관련해서 욕정스럽고 음란한 제식이 행해졌는데, 그 제례의 풍습이 음탕스럽고 너무나도 추잡스럽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를 철폐해 버렸다....”
기독지혜사에서 펴낸 「성서백과」에는:
“‧‧‧ 이 의식에는 예배자와 적절한 반응이 수반되었는데, 종교적 결혼이 수행되는 추잡한 성적 의식 가운데 절정에 이르렀다. 이 성적 의식은 두드러진 특징으로써 양성이 모두 관계된 매춘행위였다....”
아가페출판사에서 펴낸 「주제별 설교 대사전」에는:
“‧‧‧ 또한 농산물의 풍요는 바알과 그 배우 여신인 아스다롯의 성적 교섭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어져, 바알을 대표하는 남자와 아스다롯을 대표하는 여자와의 성교가 성전에서 의식으로 영위되었다. 가나안 정착으로 농경문화를 생활 패턴으로 형성하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의 제례는 큰 영향력을 끼쳤다....”
벨기에의 대석학 쿠먼트(Franz V. M. Cumont, prof. of Unr. of Ghent, 1968-1947 A.D.) 교수는 그 대역작에서 Phrygia의 태양신 Attis와 그의 연상의 연인 Cybele 여신과 사이에 얽힌 부활 신화에서 발생된 부활절 경축 행사의 풍습이 Roma에서 성행했던 광경을 묘사하는 글에서
“‧‧‧ 갑자기, 절망하는 절규스러운 통곡에서부터 기뻐서 흥분하는 환호의 탄성 곧 ‘힐라리아’(the Hilaria)로 돌변한다. Attis가 죽음의 긴 잠에서 청춘으로 깨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발동한 그 기쁨과 환희는 이제 야외에서 환락과 음탕스러운 가장 무도회로 그리고 성욕을 돋구는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는 향연으로 대폭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