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강(羅至强) 연보
나지강(羅至强, 597년경 신라 시대 진평왕(眞平王) 19년 생~686년경 신라 시대 신문왕(神文王) 6년 몰; 향년 90세)
신라 시대 문신
신라조 상서시복야•장군•좌승상 역임.
기원전 1세기경 마한 시대 옛 발라현 초기 정착 나 씨 3형제의 후예
옛 발라현 7대조 선조 나장언의 후손
―나 씨 3형제의 7대조 후손
―나장언은 발라현에서 지나로 갔으며, 신라 좌승상 나지강은 나장언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다.
―발라현은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개칭되었다가, 백제 멸 후에 중국 당나라에서 대방군(帶方郡)을 설치했다가, 686년 신라 신문왕 6년 통의군(通義郡)으로 바뀌고,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금산군, 금성군으로 개칭되었다. 따라서 서기 600년대 백제 멸 후에 발라현 나주 지역이 당나라의 속군 대방군이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금성 나 씨 선조
발라현 나장언의 후손•신라 좌승상 역임(아들 나주사찬 나경과 같이 나주 귀향)
중국 당나라 태종(太宗, 재위 626년 9월 4일~649년 7월 10일) 때 재상 상서좌복야•장군 역임.
―당 태종 때 최고위 재상은 상서우복야였다.
―645년 2월 당나라의 1차 고구려 정벌로 개모성, 요동성, 안시성 공격, 647년 2차 고구려 정벌, 648년 3차 고구려 정벌(최종 고구려 원정 실패 후에 이질로 649년 붕어, 향년 52세(598년 생~649년 몰))
―나지강이 당 태종의 고구려 정벌을 반대하고 신라로 왔다는 귀화설이 있으나, 당나라인이 고구려 정벌을 반대했다면 고구려로 갔을 것이고, 고구려 정벌을 반대하고 신라로 귀화했다는 설은 무리한 논리적 모순에 해당한다.
―당 태종 당시 고위직 재상 상서좌복야 나지강은 동명이인이거나 다른 인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복할 목적으로 발라현 출신 나장언의 후손 나지강을 당나라 고위직 재상 상서좌복야에 임명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에는 한반도 삼국과 중국 당나라의 인적 교류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금성 나 씨 기록으로는, 나지강은 발라현 나 씨 3형제 7대조 후예 나장언의 후손이며, 나주에 근거했던 신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나지강은 신라에서 좌승상을 역임한 후에 아들 나경이 나주사찬에 임명되자, 부자가 같이 옛 고향인 나주 지역으로 귀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기 660년 백제 멸 후부터 686년 신라 문무왕 6년까지 옛 발라현 나주 지역에 중국 당나라 대방군이 설치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당시 당나라 대방군인 나지강을 후에 당인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650년대 신라조 좌승상 역임.
서기 600년대 후반 신라조 아들 나주사찬 나경과 나주 귀향
선조
발라현 초기 나 씨 3형제
발라현•지나 정착 나장언
후손
서기 600년대 후반 신라조 나주사찬 나경
597년경 1세 신라 진평왕(眞平王) 19년 옛 발라현 나주 지역에서 옛 선조 나 씨 3형제와 7대손 나장언의 금성인 후예로 출생(출생 추정 연도, 출생 연도 미상)
645년경 49세 당나라 태종(太宗) 19년•신라 선덕왕(善德王) 14년 때 재상 상서좌복야•장군 역임(당인 귀화설, 발라인 당조 재상설, 동명이인설 등이 있다.)
650년경 54세 신라 진덕왕(眞德王) 4년 좌승상 역임.
660년 64세 신라 무열왕(武烈王) 7년 백제 멸 후에 중국 당나라에서 옛 발라현 나주 지역에 대방군(帶方郡) 설치
660년경 64세 신라 무열왕(武烈王) 7년 아들 나경 나주사찬 임명. 아들 나경과 나주 귀향
―나주사찬 나경은 서기 897년경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인물이며, 나지강의 후손으로서, 이때부터 나주가 나 씨의 본관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676년 80세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 신라의 삼국 통일 완성. 통일 신라 시대 원년
686년 90세 신라 문무왕(文武王) 6년 옛 발라현에 신라 통의군(通義君)을 설치해서 옛 백제 속군 당나라 대방군 종료
686년경 90세 통일 신라 신문왕(神文王) 6년 옛 발라현 나주 귀향 후에 서거, 향년 90세(사망 추정 연도, 사망 연도 미상)
897년~912년경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좌승상 나지강의 후손 나경이 나주사찬에 임명되었고, 이때부터 나주에서 나 씨의 본관이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 신라조 좌승상 나지강(羅至强)의 생몰 추정 연도: 서기 600년대 신라에서 좌승상을 역임한 나지강(羅至强, 597년경 신라 시대 진평왕(眞平王) 19년 생~686년경 신라 시대 신문왕(神文王) 6년 몰; 향년 90세)의 생몰 연도는 연도 미상이며, 생몰 추정 연도이다. 신라 좌승상 나지강에 대한 기록상의 연도는 다음과 같다. 나지강은 기원전 1세기경 마한 시대 옛 발라현 초기 정착 나 씨 3형제의 후예이자, 옛 발라현 7대조 선조 나장언의 후손이다. 나장언은 발라현에서 지나로 갔으며, 신라 좌승상 나지강은 나장언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다. 645년~649년경 당나라 태종(太宗)•신라 선덕왕 재임 당시 고구려 정벌 때 재상 상서좌복야와 장군을 역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기준으로 당인 귀화설, 발라인 당조 재상설, 동명이인설 등 나지강에 대한 여러 설이 존재한다. 서기 600년대 나지강이 신라에서 좌승상을 역임했다는 기록이 있다. 660년 백제 멸망 후, 중국 당나라에서 옛 발라현 나주 지역에 대방군(帶方郡)이 설치되었고, 686년 신라 문무왕(文武王) 6년 옛 발라현에 신라 통의군(通義君)을 설치해서 옛 백제 속군 당나라 대방군이 종료되었다. 또한, 897년~912년경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좌승상 나지강의 후손 나경이 나주사찬에 임명되었고, 이때부터 나주에서 나 씨의 본관이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위와 같은 기록을 바탕으로 신라 좌승상 나지강의 주요 활동 시기는 645년~686년 사이로 추정된다. 이 기간을 왕성한 활동기인 40대로 추정하면, 좌승상 나지강의 생몰 추정 연도는 대략 서기 600년대 초엽부터 서기 600년대 말엽까지로 추산된다.
* 금성인(錦城人)의 선조 나지강(羅至强): 서기 600년대 후반 신라 시대 좌승상을 역임한 인물 나지강(羅至强)에 대해서 역사적 이설이 존재한다. 나지강은 신라 시대 문신으로서, 신라조 재상인 좌승상을 역임했다. 나지강의 선조는 기원전 1세기경 마한 시대 옛 발라현 초기 정착 나 씨 3형제의 후예이자, 옛 발라현 7대조 선조 나장언의 후손이다. 나장언은 나 씨 3형제의 7대조 후손이며, 나장언은 발라현에서 지나로 떠났으며, 그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신라 좌승상 나지강이라고 알려져 있다.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금성 나(羅) 씨 금성인(錦城人)으로서, 금성 나 씨의 선조로 논의되고 있다. 고려 개국공신 금성태수•나주성주 나총례가 금성 나 씨 중시조라면, 신라 좌승상 나지강은 그 이전의 금성 나 씨 선조들 가운데 1인이다.
서기 600년대 나지강은 발라현 나장언의 후손이자 신라 좌승상을 역임하고, 아들 나주사찬 나경과 같이 나주로 귀향했다는 설이 있다. 서기 600년대 나지강이 신라에서 좌승상을 역임했고, 서기 897년경 그 후손인 나경이 신라 효공왕 때 나주사찬이 되어 나주로 부임했으며, 그때부터 나주가 나 씨의 본관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중국 당나라 태종(太宗, 재위 626년 9월 4일~649년 7월 10일) 당시 나지강이 재상 상서좌복야와 장군을 역임했다는 설도 있다. 나지강이 당 태종의 고구려 정벌을 반대하고 신라로 왔다는 귀화설이 있으나, 당나라인이 고구려 정벌을 반대했다면 고구려로 갔을 것이고, 고구려 정벌을 반대하고 신라로 귀화했다는 설은 무리한 주장이며 논리적 모순에 해당한다. 성서좌복야라는 직위는 당나라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에서도 존재했던 직위이며, 따라서 이 직위는 삼국 시대 신라에서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나지강은 당나라 태종조 신라 선덕왕조 무렵에 신라에서 정2품 상서좌복야를 재임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복할 목적으로 발라현 출신 나장언의 후손 나지강을 당나라에서 고위직에 임명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에는 한반도 삼국과 중국 당나라의 인적 교류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나 씨 가문의 기록으로는 나지강은 발라현 나 씨 3형제 7대조 후예 나장언의 후손이며, 나주에 근거했던 신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나지강은 신라에서 좌승상을 역임한 후에 아들 나경이 나주사찬에 임명되자, 부자가 같이 옛 고향인 나주 지역으로 귀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기 660년 백제 멸 후부터 686년 신라 문무왕 6년까지 옛 발라현 나주 지역에 중국 당나라 대방군이 설치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당시 당나라 대방군 출신 나지강이 후에 당인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서기 600년대 나지강은 신라 선덕왕조에 상서좌복야와 장군을 역임하고, 신라에서 좌승상이 되었다. 서기 600년대 후반 아들 나주사찬 나경과 나주로 귀향했다는 설도 있다. 나지강의 선조는 삼한의 마한 시대 발라현 초기 나 씨 3형제와 7대조 선조 발라현•지나 정착 나장언이 있다. 후손으로는 서기 600년대 후반 신라조 나주사찬 나경이 있다.
좌승상 나지강은 서기 645년경 중국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3차에 걸쳐서 정벌할 당시 상서좌복야의 직위에 있으면서 이를 반대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공로로 나지강은 신라에서 좌승상에 올랐다. 결국, 당 태종은 고구려 정벌에 실패하고 이질에 걸려 앓다가 향년 52세로 붕어했다. 그로부터 15년 후, 서기 660년에 백제가 멸하고 백제 발라현에는 당나라 대방군이 설치되었으며, 신라가 당군을 한반도 이북으로 몰아내고 통의군으로 개칭하기까지 옛 발라 지역은 당나라 속군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 나지강(羅至强)의 동명이인들: 나지강(羅至强)의 동명이인들에는 고려 시대 명종 2년 무안현 초대 현감 나지강이 있다.
일제 강점기 및 대한민국 시대에 관료와 서예가로 이름을 남긴 친일파 군수•서예가 나지강(羅智綱)의 연보는 다음과 같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 관료 군수 나지강(羅智綱, 1899년 12월 3일 생~1989년 몰; 향년 91세)―평안남도 출신, 일제 강점기 친일파 군수, 창씨개명 화도수강(和島秀綱). 1918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 본과 졸업, 1919년 4월 경북 포항공립보통학교 훈도, 1922년 대구공립보통학교 훈도, 1926년 경성사범학교 훈도, 1930년 경북 내무부 학무과 시학, 1930년 11월 대구여자공립보통학교 훈도 겸임, 1935년 경북 내부무 학무과 시학 겸 학무과 속, 경북 대구부 남욱정립보통학교 훈도 겸직, 1936년 8월 경북 예천군 속, 1937년 경북 달성군 내무과 속, 1938년 3월 경북 칠곡군수 승진, 1937년 중일전쟁 중 전시 업무 협조로 지나사변 공적조서 등재, 1940년 9월 경북 예천군수, 1943년 3월 의성군수, 1944년 12월 상주군수, 1945년 해방 후에 10월 1일 미군정청 이동사령 제57호로 상주군수 파면, 1946년 1월 경북 영일군수 임명, 1949년 3월 반민특위 경북 조사부 체포(『친일인명사전』 친일파 관료 1,207인의 1인으로 수록), 반민특위 조사 후에 1958년 12월 12일 경북대학교 사무국장 이사관보로 공직 임용, 1963년 6월 1일 경북대학교 행정부이사관으로 정년퇴임. 공직 은퇴 후에 서예가 활동
대구화단의 천재 동양화가•서예가 목산(牧山) 나지강(羅智綱, 1899년 12월 3일 생~1989년 몰; 향년 91세) 선생―1963년 6월 1일 공직 은퇴 후에 서예가로 활동. 대구 근대미술 수용기(1921년~1945년) 화가, 국전 2회 특선, 국전 16회 입선, 국전 추천 작가, 경북 미전 심사위원, 경북문화상 수상, 대표작. 「묵모란도」 3폭, 제자 조계종 원학스님 외 다수, 1969년~1970년 해동서화협회 제9대~제10대 회장, 1974년 대구백화점 화랑 개인전, 1975년 경북서예가협회 제15대 회장, 1984년 태백화랑 개인전 등 여러 개인전, 1965년~1981년 국전 특선 2회, 입선 16회, 1968년 부산동아미술대전 입선, 1978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대전, 1982년•1984년•1985년•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초대전, 2014년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대구가톨릭미술가회 40주년 기념전, 1975년 경북미전 운영•심사위원 등, 1977년 경북문화상 수상, 2000년 2월 8일~27일 소장 작고작가 서화전(나지강 등 9인, 대구문화예술회관)(「나지강」, 『위키백과』 참조)
현대의 인물로는 대만(臺灣)의 정치인•국민당 혁명위원회 총회장 라지강(羅智强)이 있으며, 그는 2024년 1월 13일 제11대 대만 입법위원 타이베이시 제6선거구 국민당 입법위원에 당선되었다.
* 나지강(羅至强)에 대한 역사적 연구: 나지강(羅至强)에 대한 현대의 연구는 중국 예장인(豫章人) 나지강과 마한•백제 발라인 나지강 그리고 서기 676년 통일 신라인 나지강으로 구분해서 연구된다. 서기 600년대 후반 신라 좌승상 나지강의 활동기가 676년 삼국 시대가 끝나고 통일 신라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데에서 신라의 장군이자 재상으로서 당시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끝> <2024년 1월 31일, 나종혁 글>
* 참고 자료: 「나지강」, 『위키백과』; 나종혁, 「나총례 연보」, 『진로정책상담연구소』, 다음 카페; 기타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