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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내용이 길어서 다 못봤지만 대략 구조론에서 옛날부터 해온 이야기를 학계가 비슷하게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인간은 원래부터 직립했다. 이건 필자가 고딩 때 생각한 것이다. 굽은 원숭이의 등이 점차 펼쳐지는 유명한 진화론 그림을 보면 3초 안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상하다는 것을 못 느끼는가? 엉거주춤한 자세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림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학계가 인정하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있다. 학계의 입장은 진화가 한 방향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는 말인데 틀렸다. 인간의 조상은 원래 직립했으므로 방향이 없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틀렸고 다윈의 돌연변이설은 옳다. 문제의 진화론 그림은 용불용설을 연상시킨다. 왜 이렇게 되는가 하면 다윈의 자연선택 개념과 돌연변이 개념이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게 충돌한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겠는가?
자연선택과 돌연변이는 공존할 수 없다. 서로 배치된다. 중요한건 엔진이다. 활이 화살을 쏘았는가? 과녁이 화살을 선택했는가? 활이 변화의 주체인가. 과녁이 변이의 주체인가? 돌연변이설은 활이 주체가 되고 자연선택설은 과녁이 주체다.
유인원의 굽은 등이 점차 곧게 펴지면서 직립하게 되는 그림은 조금이라도 직립에 가까운 쪽이 보다 굽은 쪽과 싸워서 이겼다는 말이다. 직립이 반직립을 멸종시켰다는 주장이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는 말이 맞겠는가?
다윈은 기린의 목이 돌연변이에 의해 원래부터 길었다고 말했다. 인간의 조상은 돌연변이에 의해 원래부터 직립했다는 말이다. 원래부터 직립했는데 반직립이 왜 나와? 학자들이 도대체 기본이 안 되어 있다. 다윈을 부정한다는 것을 몰라?
2. 인간의 직립은 한쪽 다리로 서는 것이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두 다리로 선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멀리뛰기를 해도 두 다리로 뛰면 제자리 멀리뛰기가 되는데 제자리에서 몇 센티를 뛰나? 두다리로 뛰는 제자리 멀리뛰기 최고기록은 3미터, 한 다리로 뛰는 멀리뛰기 기록은 8미터다.
초등학교 5학년 쯤 방학공부책에서 학이 한쪽다리로 서는 이유를 체온절약으로 설명한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서 조류를 관찰해 봤는데 대부분의 조류는 한쪽 다리로 선다. 참새도 심심하면 한쪽 다리로 선다. 사람도 짝다리 짚고 서 있잖아. 휴머노이드 로봇은 한쪽 다리로 걸어야 성공이 된다.
인간은 하체를 지렛대로 이용한다. 도구는 원숭이도 사용할 수 있지만 힘을 실을 수 없다. 고릴라나 침팬지와 팔씨름을 하면 당연히 인간이 진다. 유인원은 팔에 하체의 힘을 실을 수 없기 때문에 의미있는 수준으로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구석기 따위는 도구가 아니다. 체중을 이용해야 도구다.
무거운 물체를 들 때 팔힘으로 드는게 아니라 손으로 붙잡고 하체로 벌떡 일어선다. 역도선수의 경기를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영천할매돌이 들리지 않는 이유다. 기도를 하면 경건한 마음이 되어 허리가 꼿꼿하게 펴진다. 허리를 굽혔다가 펴거나 하체를 굽혔다가 펴면 잘 들린다. 간단한 트릭이다.
도구사용의 본질은 손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체중을 사용하는 것이다. 도구는 까마귀도 사용할 수 있지만 체중을 실을 수는 없다. 코끼리도 코를 손처럼사용하지만 의미없다. 네안데르탈인은 나무창을 불에 구워 날카롭게 갈아낸다. 그러나 체중을 실어야 동물의 두꺼운 털가죽을 꿰뚫을 수 있다.
사피엔스는 투창을 쓰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신체구조상 투창을 못한다. 창을 잡고 달려들어 들이박는 형태로 황소 옆구리를 직접 찌른다. 체중을 싣지 않으면 절대 말의 단단한 가죽이 뚫리지 않는다. 투수든 타자든 체중을 실을 수 있는 타격폼이는 투구폼을 만들지 못해서 야구를 못하는 거다.
3. 다윈의 돌연변이설도 문제가 있다. 말의 조상이 개 정도 크기였다면 기린의 조상도 크기가 비슷했을 것이다. 개 정도 크기에 목만 긴 기린? 그래봤자 당나귀 정도의 키다. 이 정도로는 경쟁력이 없다. 목이 길어봤자 얻는 이득이 없다. 목이 긴 기린만 살아남았다는 설은 신뢰하기 어렵다.
코끼리 조상 중에도 괴상한 형태가 많은데 지금과 달리 물가에서 수초를 뜯어먹는 형태였다. 수초를 캘 수 있도록 어금니가 아랫쪽으로 나 있다. 지금과는 상아의 방향이 반대다. 상아가 곡괭이 역할을 한다. 코끼리 조상을 보면 뭔가 이랬다 저랬다 하며 방황한듯 하다.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코와 상아와 덩치로 승부를 보려고 한 것이다. 코끼리의 큰 덩치는 하마나 맥과 통한다. 하마와 맥은 습지의 수초를 먹는다. 맥은 코끼리 사촌이다. 아메리카 북미 원산인 낙타는 원래 빙하시기 캐나다의 추위에 적응하려고 했는데 아시아로 옮겨와서 사막에 적응해 버렸다.
낙타의 혹은 빙하기 캐나다의 긴 겨울을 버티는 식량 저장고였는데 사막의 메마름을 견디는 용도로 용도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인류의 조상이 왜 직립을 했는지, 왜 처음부터 직립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알만하다. 하나의 엔진이 있고 엔진 하나로 변이의 승부를 보는 것이다.
다윈의 처음부터 목이 길었다는 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애초부터 기린은 목과 키의 높이로 승부하고, 코끼리는 코와 상아의 힘으로 승부하고, 인류의 조상은 하체의 힘으로 승부보려는 방향이 정해져 있었으며 그 쪽으로만 변이실험을 계속했다. 유전자 내부에 진화의 엔진이 있었다.
4. 지금까지 모든 진화와 관련된 이론이 틀린 이유는 원인론이 아닌 결과론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엔진이 없다. 화살이 과녁에 맞은 이유를 설명할 뿐 활이 화살을 날려보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못생기고 뒤틀려 무게중심이 안 맞는 화살은 과녁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세게 쏘면 바람의 영향을 무시하고 명중한다. 화살의 명중은 활의 힘에 달려 있는가 아니면 바람의 영향에 달려 있는가? 둘 다 의미가 있지만 활이 더 중요하다. 엔진이 중요하다. 자연선택은 활의 힘이 아니라 바람의 영향 위주로 설명한다. 바람은 간접적 요인이지 직접적 요인이 아니다.
다윈의 돌연변이설은 직접원인이고 자연선택설은 간접요인이다. 학자들은 돌연변이설을 지지하면서 자연선택설로 설명하는 모순을 저지른다. 둘은 배치된다. 학자들이 진화압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원인론이다. 학자들은 원인론인지 결과론인지 갈피를 못잡을 정도로 아둔하다.
5. 기린은 원래 키를 키워 멀리 있는 맹수를 피하는 쪽으로 진화하려다가 결과적으로 키가 큰 교목의 잎을 먹게 되었다. 사실 기린은 땅 위의 풀도 잘 먹는다. 코끼리는 습지의 수초를 먹는 쪽으로 진화하려다가 지금과 같이 바뀌었고 일부는 매머드가 되어 추운 곳으로 갔다가 이 산이 아닌게벼 되었다.
낙타는 추운 지역에 적응하려다가 사막으로 갔다. 낙타의 일부는 비쿠냐와 라마가 되어 안데스 산맥의 추운 고산지대로 올라갔다. 인류의 조상은 직립과 체중을 이용한 손의 사용으로 승부를 보려다가 망외의 달리기 기술 발달로 떠돌이가 되어 지구 어디든 못가는 데가 없게 되었다. 뜻밖의 횡재였다.
기린과, 코끼리와, 낙타와, 인간은 모두 중간에 길을 바꾸었다. 인간의 조상은 처음부터 도구를 사용했으며 도구의 사용에는 하체의 힘이 필요하고, 하체의 발달이 직립으로 이어지고, 직립을 하면 장거리 이동이 가능해져서 많이 돌아다니게 되었고, 다양한 환경과 만나서 타개하며 머리가 좋아졌다.
6. 학계의 주장과 다른 점은 생존경쟁, 자연선택이 큰 의미없고 애초에 돌연변이를 만드는 진화의 엔진이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우연한 변이에 의해 조금씩 변하는게 아니고 다른 곳은 놔두고 목만 집요하게 변이하는 기린, 코만 집요하게 변이하는 코끼리, 특유의 체온조절 능력으로 험한 날씨만 찾아가는 낙타, 하체의 힘으로 도구만 발달시키는 인류로 특정한 깔때기를 정해놓고 변이실험을 계속하다가 우연히 적합한 생태적 지위를 찾아낸 것이다.
낙타는 원래 빙하기의 추위에 적응하려고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웠는데 빙하기에 베링해협을 건너 구대륙으로 옮겨와서 몽골의 사막에 적응했다. 낙타는 낮에는 41도, 밤에는 34도로 체온을 바꿀 수 있다. 기린은 처음부터 목이 길었지만 인간 중에 피그미가 있듯이 목이 짧은 기린도 있었다. 긴 목으로 사자를 감시하려면 갈대(아프리카 갈대는 키가 최대 5미터다)보다 키가 커야 하므로 다리도 길어지고 신체가 전반적으로 다 길어진 것이다.
목이 길어서 나뭇잎을 먹고 살았다는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목이 길어서 사자를 감시하다보니 주변에 흔한 나뭇잎을 먹게 된 것이다. 사자가 나무 뒤에 잘 숨으니까. 어쩌다 돌연변이가 나오면 불안정하므로 안정될때까지 추가적인 변이가 쏟아질 수 밖에 없다. 목만 변이하고, 코와 상아만 변이하고, 날씨변화에만 적응하고, 도구사용쪽으로만 변이하고 등등 어떤 하나만 집요하게 변이를 일으키게 되며 그러다가 순식간에 고래까지 가버리는 거다.
우연에 의해서는 절대 고래가 될 수 없다. 변이를 상쇄시키는 반대쪽 변이가 있기 때문이다. 목이 긴 기린과 목이 짧은 기린이 교배하여 중간목 기린으로 수렴되므로 변이를 해봤자 의미가 없다. 꼬리가 긴 기린이나 꼬리가 짧은 기린 같은 것은 없다. 기린은 오로지 목만 변이를 일으킨다. 목만 지나치게 길어지면 목이 부러진다. 혹은 긴 목의 사용법을 몰라서 생존하기가 어렵다. 신체의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변이실험은 계속된다.
틀린 가설 - 목이 긴 기린과 목이 짧은 기린이 있었는데 목이 긴 기린이 키가 큰 교목의 나뭇잎을 먹고 살아남았고 목이 짧은 기린은 굶어죽었다.
바른 이해 – 수풀 뒤에 숨은 맹수를 감시하는 쪽으로 변이를 일으켰는데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교목의 잎을 먹게 되었지만 기린은 갈대의 순도 잘 먹는다. 인류 중에 키가 작은 피그미족도 있듯이 키가 작은 기린도 있었겠지만 수풀에 숨은 사자를 발견하지 못해서 사자한테 먹혔다.
명확히 엔진이 있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자연은 답을 찾을때까지 변이를 생산한다. 안정단계에 이르면 변이된 개체가 도태되므로 더 이상의 변이가 없게 된다. 환경변화가 없는 아프리카에서는 머리가 좋은 개체가 우연히 등장해봤자 높은 지능을 써먹을 데가 없어서 원래로 돌아간다. 동아시아는 추워서 머리가 좋은 개체가 옷을 지어입고 불씨를 잘 관리해서 살아남았다. 동아시아에서는 변이가 계속 일어나서 아이큐가 100을 넘었다.
바탕설과 간섭설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두 가지 생각이 있다. 하나는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빈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듯이 내부에서 준비된 바탕에 외부에서 무언가를 플러스 해서 우주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이다. 원자는 바탕이다. 세상은 하나의 모니터다.
그런데 말이다. 당신이 영화를 달라고 하면 모니터를 주겠는가, 아니면 USB를 주겠는가? 모니터는 외부 관측자가 있다. 모니터는 중간 매개수단이다. 외부 관측자가 눈으로 보려고 하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중간 매개물로 모니터가 필요하게 된다.
원자는 관측자를 위한 매개자라는 말이다. 관측자가 없다면 매개자도 없는 것이다. 우주가 탄생할 때 관측자가 없었는데 원자가 왜 있어? 시청자가 없으면 모니터도 없다. 관객이 없으면 스크린도 없다. 이는 외부 관측자의 개입에 의해 오염된 생각이다.
인간이 관측자다. 세상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오만과 몽상이다. 세상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다. 치명적인 문제는 바탕자와, 매개자와, 관측자로 3원화 된다는 점이다. 바탕우주, 매개우주, 관측우주로 세 우주가 별도로 존재하게 된다.
3위일체냐? 세 우주를 통합하려면 네번째 우주가 필요해진다. 네번째 우주를 통합하려면 다섯번째 우주가 필요하다. 이 숫자는 계속 증가해서 수습이 불가능하다. 수도관을 외부에서 막으면 물이 새고 그 새는 물을 막으려고 덧붙이면 또 새는 격이다.
내부에서 막아야 수돗물은 새지 않는다. 타이어 펑크를 때워도 그렇다. 내부에서 막으면 내부 압력에 의해 교착되어 저절로 막힌다.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외부에서 해결하면 반드시 덧난다. 환자를 수술해도 배를 째고 내부에서 해결한다.
관측자와, 매개자와, 바탕자가 하나여야 한다. 하나의 오른팔과 왼팔이 관측자가 되고 매개자도 된다는 것이 간섭설이다. 태초에 두 존재가 있었다. 둘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다. 그 칸막이가 제거되자 서로 침범하여 간섭한 결과 우주는 크게 이루어졌다.
바탕은 없다. 그것이 공 사상이다. 아트만은 없다. 석가의 가르침이다. 자아는 없다. 제법무아. 그러므로 세상은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다. 태초에 무언가 제거된 결과로 빅뱅이 일어났다. 차단장치가 제거되지 서로 간섭하여 물질이 탄생한 것이다.
핫팩과 같다. 흔들면 섞이고, 섞이면 간섭하고, 간섭하면 따뜻해진다. 야광 낚시 라이트의 원리다. 가운데 차단벽을 부러뜨리면 양쪽의 물질이 섞여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불빛이 난다. 우주는 대초에 서로 다른 두 존재의 간섭에 의해 널리 이루어졌다.
차단벽에 해제되는 순간 둘은 합쳐져서 하나의 계를 이룬다. 이는 부부가 간섭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과 같다. 남녀를 한 방에 두고 문을 닫아두면 서로 간섭하여 자녀가 발생한다. 자녀는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고 부부 내부에서 자동발생한 것이다.
모든 변화는 계 내부에서 자신과 간섭되어 일어나고 외부에서 새로 유입되는 무언가는 없다. 우주는 우주 자신과 결혼했다. 우주의 음과 양이 간섭하여 천하는 널리 이루어졌다. 한 방울의 물질도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았다. 그것이 바탕설의 관점이다.
기독교의 창조설은 신이 외부에서 어떻게 해서 세상을 만들었다는 바탕설이다. 신이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로 우주를 만들었다고 해야 간섭설이 된다. 무엇이 다른가? 외부에서 작용하면 신은 완전한 존재다. 내부에서 간섭하면 신은 불완전한 존재다.
화가는 완전하다. 화가 머리 속에 든 생각을 캔버스에 옮긴다. 그림을 다 그려도 화가는 멀쩡하다. 그러나 배우는 불완전하다. 자기 몸으로 뭔가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못생긴 배우는 조연만 맡는다. 무대의 배우가 뭔가 보여주려면 옷을 벗어야 한다.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고 내부에서 쥐어짜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바탕설의 우주론에서 간섭설의 우주론으로 갈아타야 한다. 외부에서 플러스 하는 관점에서 내부에서 마이너스 하는 관점으로 바꾸기다.
우리가 아는 것은 대부분 바탕이 있다. 종이에 먹을 플러스 하여 글자를 생성한다. 덧칠하는 것이다. 구형 모니터의 전자총은 전자빔이 유리에 칠해진 형광물질과 간섭하여 색깔을 이루므로 잉크가 필요없다. 나무가 자란다는 것은 대개 간섭의 결과다.
뿌리를 통해 유입되는 물질도 있지만 햇볕이 엽록소와 간섭하여 에너지의 저장이 이루어진다. 관찰해보면 자연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간섭에 의해 탄생함을 알 수 있다. 자동차 엔진도 내부의 불안정한 가솔린을 건드려 점화하여 이루어지는 에너지다.
배가 아프다면 위장 내부에서 무언가 간섭이 일어난 것이다. 방귀가 나오는 것도 무언가의 간섭 때문이다. 간섭은 내부에서 자원이 조달된다는 점이 다르다. 신은 신 자신을 부러뜨려서 우주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신은 불완전하고 계속 전진해야 한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존재는 바탕에 외부에서 덧칠된 것이 아니고 내부 차단벽이 제거되어 간섭한 결과다. 외부 덧칠은 유한하고 내부 간섭은 무한하다. 우주의 변화는 무한하며 그것은 간섭의 결과다. 간섭하는 다섯 방식은 구조론이다.
